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57
강철의 열제 457화
폭발이 생긴 순간 로드비안 남작은 말에서 튕겨 떨어졌다. 별이 떨어진 중심에는 인간의 흔적이 파괴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 위쪽의 반이 잘려 나간 모닝스타가 뒹굴고 있었다.
“남작님, 괜찮으십니까!”
느닷없는 폭발에 피해를 입은 신성제국의 용병 기사들이 주춤하는 동안 제국연합 기사들이 로드비안 남작을 둘러쌌다.
“쿨럭.”
“어서 모시겠습니다.”
“쿨륵. 큭, 큭큭큭!”
걱정하는 기사들의 목소리에 로드비안 남작은 연신 기침을 토해 내다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나, 남작님?”
“으하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로드비안 남작의 눈동자에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태양빛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는 가문의 보검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왠지 가슴이 시원했다.
전장의 한가운데.
돌아온 가문의 보검을 반기는 로드비안 남작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 * *
아름답게 그려진 마법진이 빛을 발하고 이내 그 위에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정찰 겸 간을 보았던, 고진천과 리셀이었다.
“…….”
빛이 사라지고 진천과 리셀이 등장했지만, 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던 무장들의 입에서는 아무런 예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폭발 직전의 모습들 아닌가?
무언가 짐작한 진천이 슬며시 리셀을 향해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 얘기한 건가.’
‘그, 그게…….’
‘…….’
자신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는 리셀을 보고 진천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대충 둘러대라고 명령했건만 기어이 그대로 말한 것이 분명한 것 아닌가?
진천은 구겨졌던 얼굴을 바꾸어 위엄 있는 음성을 내뱉었다.
“흠. 모두 막사로 간…….”
“내래 짚을 건 짚고 넘어가야 하갔습네다.”
위엄은 단방에 무너졌다.
뚱한 표정으로 한 걸음 나선 이는 바로 을지우루였다. 그와 보조를 맞추듯이 계웅삼과 삼인방이 우루의 뒤에 병풍처럼 늘어섰다.
하나같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
평소라면 귀찮은 대화보단 무력을 통한 강제 진압을 택했을 진천이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쉽게 넘어가진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계웅삼이 저지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흐음. 미리 말을 안 해서 미안하다. 휘가람, 내 대신 설명 좀 부탁한…….”
“무슨 설명 말입니까?”
“……다.”
“설마, 사전에 저와 이야기가 돼 있었다는 등의 설명은 아니겠지요?”
“…….”
순진무구한 소년과 같은 표정으로 만면에 가벼운 미소를 띤 연휘가람의 표정에서 진천은 잠시 절망을 느꼈다.
‘휘가람, 너마저…….’
차라리 신성제국의 세 마스터와 싸우는 것이 나았다.
“하나만 묻갔시오.”
“음.”
잔뜩 무게 잡힌 우루의 질문에 진천은 난생처음 긴장감을 느꼈다.
긴장한 진천에게로 우루의 질문이 쏘아져 나갔다.
“조졌습네까?”
“아니. 절대로. 내 명예를 걸고!”
눈을 부릅뜨며 강한 부정을 외치는 진천.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루키아였던 것이다.
진천의 부정하는 모습에 우루를 비롯한 계웅삼과 삼인방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쪽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 리셀을 보고 다시 날카로운 눈빛들을 진천에게 보내었다.
이번에는 웅삼의 질문이었다.
“손톱만큼도? 생채기 하나 없이?”
“…….”
웅삼의 질문에 진천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와 동시에 웅삼과 장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길! 그럴 줄 알았어! 믿을 사람을 믿어야지!”
제일 처음 웅삼의 타박이 튀어나왔다.
“킁, 설마 팔 한 짝이나 다리 한 짝?”
삼두표가 삐딱하게 서서 웅삼의 말에 추임새를 붙였다. 뒤이어 부여기율과 몽류화가 한마디씩 덧붙여 나갔다.
“절반만 남겼을지도…….”
“내 생각엔 몸은 멀쩡할 것 같아. 다만 정신이 백치가 되었을지도…….”
연달아 나오는 의혹에 진천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차차창!
진천의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에 반응하며, 우루와 웅삼, 그리고 삼인방이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순간 흐르는 긴장.
자신들이 도가 지나쳤음인가?
뒤늦게 약간의 후회를 해 보는 우루와 일당들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 진천이 들어 올린 팔, 정확히는 엄지와 검지를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간격으로 벌린 손가락이 보였다.
보통 아주 조금을 뜻하는 손 모양이다.
진천의 입이 열렸다.
“마빡에 요만큼.”
“…….”
“…….”
진천이 그들에게 한 그날 진술의 마지막이었다.
고진천이 루키아의 이마에 남긴 상처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일전에 을지우루가 화살을 날렸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다더라는 둥의 진술이 더해져 더 이상 추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히려 양 볼에 이마까지 표시가 되어 있으니 알아보긴 쉽겠다는 둥의 대화를 주절거리며 무엄하게도 자기 할 일을 하러 사라졌다.
그러나 그 뒤에 진정한 강적이 남아 있었으니.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전투 시에 선두를 지키시는 것까진 이해했습니다만, 이번 일만큼은 그냥 넘기긴 어렵습니다.”
“…….”
고윈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진천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상식, 논리, 역사 등을 들어가며 떠들어 대는 고윈의 집요함에 진천은 얼굴을 잔뜩 구길 수밖에 없었다.
‘대무덕의 후계자가 나타났군,’
무덕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 주는 고윈의 집요한 잔소리 공세에 진천은 자연스럽게 대무덕을 떠올렸다.
이때 처음으로 고윈을 주어 온 웅삼을 원망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대무덕을 떠올린 진천이 걸음을 멈추고 고윈에게 당부하듯 입을 열었다.
“이 문제는 내가 감내하겠다. 하지만 아직 합류를 하지 못한 병력들에게 근심을 줄 수 있으니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를…….”
“이미 대무덕님께도 세세하게 알렸습니다.”
“…….”
진천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고 서있는 고윈을 바라보며, 그의 입에 자신의 주먹을 쳐 넣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 시각 대무덕이 이끄는 병력은 갑자기 속력을 높이며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었다.
제165장 소강상태
태양이 떠오르며 시작된 전투는 다음 날 또 다른 태양이 얼굴을 내밀고 나서야 멈추었다.
대륙을 호령하는 삼대 제국의 전투답다고나 할까?
팔란시아 평원 위에는 도시를 이루고도 남을 만큼의 생명들이 주검으로 변해 누워 있었다. 그 시체들의 구성이 신성제국이나 제국연합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이지 않은 것만 보아도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승패를 가르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병력이 많다 하더라도 하루 밤낮을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공성 혹은 수성에서나 기록이 있을 뿐 이런 평원에서의 기록은 역사서에서도 드문 경우였다.
“아군이 돌아온다!”
“용병왕께서 복귀하신다!”
신성제국 병사들의 외침 속에 용병왕 블라미르를 비롯한 그가 이끄는 병력이 초췌한 모습으로 진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5만여 병력은 온데간데없고, 대충 눈으로 보아도 그의 뒤를 따라 되돌아오는 병력은 1만도 채 안 되는 5천 남짓이었다.
“크윽, 빌어먹을.”
진영으로 들어서는 블라미르의 입에서는 연신 욕설이 내뱉어지고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의 태반이 되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타격을 할 때까지만 해도 문제없었다.
아니 적의 본진을 들이칠 때까지도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전황에 변화가 없자, 차츰 수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열세인 그의 용병 부대의 피해는 속수무책으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는 뻔했다. 역으로 포위당해 하나둘씩 수하들이 죽어 나가고 나중에는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충실한 수하들은 쫓기는 그 와중에 자신을 위해 하나둘씩 몸을 던져 가며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치욕스럽게 살아 온 것이다.
진영에 들어서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린 블라미르가 병사들을 가로지르며 케니클 후작을 소리 높여 불렀다.
“케니클! 케니클 어디 있나!”
그의 음성에는 아끼던 수하들을 잃은 장수의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병사들이 듣건 말건 귀족들의 표정이 어색하게 변하건 말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반말로 케니클 후작의 이름을 불러 대며 찾을 뿐이었다.
마치 변명이라도 해 보란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블라미르의 시야에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지휘막사가 들어왔다.
으득!
붉어진 얼굴로 이를 갈아 댄 블라미르는 보초를 서는 기사가 그의 입장을 안에 알리기도 전에 막사의 휘장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케니…….”
지휘막사로 들어서며 다시 한 번 케니클 후작의 이름을 부르려던 블라미르는 끝까지 친우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아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잊은 것이다.
“왔는가…….”
그를 맞이한 케니클 후작의 음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지만, 그의 행색은 전혀 달랐다.
“큭, 이게 지금…….”
“마중을 나가지 못해 미안하네.”
케니클 후작에 이어 그를 맞이하는 샤이완 공작.
붉어졌던 블라미르의 얼굴이 평소대로 되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준수하게 생긴 케니클 후작의 얼굴에는 파편이 튄 것처럼 자잘한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갑주와 망토가 망가지고 찢기어 있었다.
그뿐인가?
샤이완 공작의 얼굴에는 푸르딩딩한 멍 자국이 박혀 있었으며, 그의 흉갑에는 누군가가 찍어 놓은 주먹 자국이 선명하게 부조처럼 새기어져 있었다.
천하의 검공 샤이완 공작이 주먹에 맞았다.
광검이라 불리는 케니클이 무엇에 당했는지 모르지만 얼굴에 상처를 그득히 안고 있었다.
반드시 통하리라 생각되었던 작전은 실패로 끝나 자신의 용병들은 몰살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되었다.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둘의 얼굴만으로도 자신이 분노할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둘?”
블라미르는 곧 막사 안에 있어야 할 다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케니클 후작을 바라보았다.
이 두 명이 이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왔나?”
블라미르의 궁금증을 덜어 주려는 듯 그의 뒤에서 콰이어 공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막사 입구에 들어서는 콰이어 공작을 보자마자, 블라미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
“우화화화! 당해 버렸어!”
멋쩍은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콰이어 공작의 얼굴에는 허연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다. 그것도 코를 중심으로 감긴 것이 묻지 않아도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멋쩍게 웃음을 터트리는 콰이어 공작의 입안에는 있어야 할 이빨 두어 개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밀리엄 후작이 아쉬운 표정으로 자신의 투구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블라미르를 놓친 것이 참으로 아깝습니다.”
“적의 정예병 숫자라도 그나마 좀 줄였으니 그것에 만족해야지. 그런데…… 앞으로 어찌할 예정인가.”
고개를 끄덕이며 밀리엄 후작의 말에 동조하던 쇼오 공작의 얼굴에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실 오늘의 결과는 천행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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