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6
강철의 열제 46화
“넬, 넌 의외다.”
“네? 뭐가요?”
“안 따라올 줄 알았는데.”
밀리언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넬은 그의 질문에 실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멋있잖아요.”
“뭐?”
“저 사람들이요.”
“하핫.”
단순 명쾌한 해답에 밀리언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걸음을 재촉해 갔다. 마을인원 580명 중 밀리언을 포함한 191명이 합류했다.
“다 합류한 것인가?”
“예.”
고진천은 눈을 돌려 수레에 올라탄 화전민들을 돌아보았다. 눈을 돌리던 중 밀리언이 그의 시야에 들어오자 진천이 말을 몰아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각 다각 다각.
강쇠의 쇠굽 소리에 화전민들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땅바닥에 깔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고진천이 이들의 우두머리인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리언 세일러.”
“네? 예!”
진천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밀리언은 화들짝 놀라 대답을 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겨우 수습한 그에게 진천이 한마디 툭 집어던졌다.
“앞으로 합류할 인원은 네가 맡는다, 제라르.”
“예!”
제라르가 진천의 부름에 달려오자, 진천이 턱짓으로 밀리언을 가리키면서 지시를 했다.
“모르는 것 있으면 도와주도록.”
“제가요?”
“…….”
“알겠습니다.”
진천의 침묵에 재빨리 대답을 하곤 밀리언의 옆으로 달려갔다. 제라르가 옆에 오자 밀리언이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저분이 누구 신지 아시는가?”
“그게…….”
밀리언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자 대답은 진천에게서 들려왔다. 귓속말이라지만 못들을 진천이 아니었다.
“가우리의 열제.”
“……네?”
“니들 왕이다.”
“…….”
열제를 못 알아듣자 알기 쉽게 일러준 진천이 다시 말을 돌려가자 밀리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제라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여기 뇌전의 제라르도 있는데 신기 할 거 있습니까?”
“누가요?”
“저요.”
“…….”
제라르의 대답에 밀리언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긴 여행에 주의할 점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진군을 위해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 고진천이 휘하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부루.”
“명을 내리시라요.”
“가까이.”
을지부루가 군례를 올리자 진천이 손짓으로 부루를 불렀다. 부루가 눈을 굴리며 다가가자 진천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돼지들을 몰아서 우리 마을로 돌아간 뒤에, 본진으로 오지 말고 다시 이리로 오도록.”
“이리 말입네까?”
“그래.”
“왜 말입네까?”
진천의 말에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른 이들도 진천을 주목했다. 그러자 그들의 의문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간다면 이곳이 버티리라 보는가?”
“힘들디요.”
“그래. 거기에 밀리언이 전투를 지휘하던 자였는데 우리를 따라간다. 결국 저 인원들을 데리고 지휘할만한 자가 없을 것이다.”
“음.”
진천의 말에 장수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우루가 눈을 굴리며 질문을 던졌다.
“기럼 보호해 주라는 말씀입네까?”
“아니다.”
“기럼 남는 이유가 없지 않습네까? 기달려 봐야 뭐 합네까.”
“할일은 있다.”
우루의 질문에 가차 없이 잘라 말한 진천이 부루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다시 오크가 쳐들어와서 방어가 힘들어지면 그때 오크를 다시 잡고 사람들은 모두 마을로 끌고 가도록. 이번엔 그들의 목숨 값으로 노예로 쓴다.”
“알갔습네다.”
“나는 이미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진천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고, 리셀과 제라르는 자신들이 선택한 주군의 냉정하면서도 치밀한 계산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부루에게 한 가지 덧붙였다.
“만에 하나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예.”
백성을 고르는데 있어서도 철저히 시험을 치르는 그의 모습은 제라르와 리셀로 하여금 이들의 군대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제라르.”
“예.”
진천은 고개를 돌려 제라르를 불러 다른 지시를 내렸다.
“밀리언과 함께 상의해서 청년들에게 무장을 지급하고 이동 중에 체력 훈련을 시킨다. 단 실전은 배제하고 우리의 전투를 보고 느끼게 하도록. 장비는 휘가 알아서 나누어 줄 것이다.”
“예.”
“단 부상에 철저히 대비하고 이외의 가족들에게는 최대의 편의를 보아 주도록. 그들이 달리며 땀 흘리는 만큼 자신들의 가족은 편안해진다는 것을 최대한 각인시키도록. 훈련의 목적은 그것이다.”
“예.”
제라르의 대답을 들은 진천이 다시 장수들을 차례로 보며 입을 열었다.
“나머지 장수들은 앞으로 전투를 벌일 때 병사들의 안전에 최대한의 신경을 쓰도록. 특히 부상자는 용서치 않는다. 최대한 새로 합류한 인원들로 하여금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전투를 수행한다. 여의치 않으면 돼지 생포보다는 사살에 중점을 두도록.”
“예!”
“열제폐하 신 연휘가람 한마디 아뢸까 합니다.”
“…….”
이중 유일하게 대무덕을 따라 진천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언사를 서슴없이 행하는 존재는 휘가람뿐이었다. 진천의 침묵에도 휘가람은 고개를 숙이며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수가 모자라면 어찌합니까?”
“기건 그렇습네다.”
휘가람의 우려에 우루가 동조했다. 그러자 진천이 우루를 슬쩍 쳐다보면서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놈이 재워버린 돼지들 중 스무 마리 가량이 밥이 되었다지?”
“…….”
가끔이지만 의외로 지나간 일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무안을 주는 진천의 성격도 천성인 듯했다. 그리고 비수를 꽂는 듯한 한마디가 다시 나왔다.
“부루를 보고 배우도록. 돼지먹이는 당분간 돼지로 준다.”
“헉.”
내심 부루보다는 조금은 똑똑하다고 느끼던 우루에게는 치명적인 언사였다. 삶의 의지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루를 무시하고는 진천은 휘가람을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모자라는 돼지들은.”
“예.”
모자라는 수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휘가람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귀로 명쾌한 대답이 흘러들어 갔다.
“새끼 까면 된다.”
“…….”
“대충 발정제 먹이고 한데 몰아 놔. 이용을 하기로 했으면 죄의식 따위는 버려라. 어차피 저들도 사람을 먹거나 부린다고 들었다.”
“예.”
진천의 간단명료한 말에 휘가람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오크들은 새끼를 낳는 데 걸리는 기간이 5달 정도에, 힘쓸 정도라면 두 달이면 된다고 했다. 물론 성인이 되기까진 시간이 걸리지만 말이다. 결국 모자라는 상황에서는 진천의 말대로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몰랐다. 이들이 다 수컷인 것을.
“그럼 모두 움직이도록 한다.”
“충!”
장수들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며 늘어난 인원들을 대동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럼 우리도 가야디.”
멀어져가는 본진을 보며 을지부루가 낮게 말을 내뱉자 부여기율이 부대를 향해 길게 외쳤다.
“진구우우우우운!”
“돼애지 몰러나간다! 이랴아!”
“…….”
기율의 외침에 끼어들며 부루가 말을 달려나갔다.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되었다. 남은 이들은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선택이 맞았는지 걱정을 내비쳤고 떠나는 이들 역시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들의 마을을 자꾸만 뒤돌아 볼 수밖에 없었다.
제13장 귀축과 가축차이
한 달 만에 돌아온 가우리의 부대와 유민들의 숫자는 불어 있었다. 을지부루의 부대는 그동안 마을에 남기를 원하는 자들의 주변에 진을 펼치고 있다가 오크의 공세로 인하여 괴멸될 때쯤 구해내어 진천의 명대로 모조리 쓸어왔고, 스스로 자리를 떠난 자들은 고진천의 부대와 함께 움직이며 생활을 같이 하다가 정착할 수 있었다.
총 십오 개의 마을을 돌며 모은 백성의 수는 생각 외로 많아 사천여 명에 달했고, 부루가 모아온 유민의 숫자는 그보다 더 많은 육천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가우리 군보다도 수가 많으면서도 대항할 의지조차 내밀지 못했고, 정착할 인원들을 위해 한 달간 도시에 집을 짓는데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진천의 대부대가 되돌아오자 노예로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진천의 부대를 따라온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물론 노예라 해서 그들이 아는 노예와는 개념이 달랐다. 신분상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재화의 취득에 불평등이 있었고, 집단 농장을 통해 배급만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원래 가우리 군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비겁자에게는 따듯한 눈길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못 느낄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선택한 탓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노예라 하지만 그들을 구한 것 또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처음 이들이 정착할 때와는 달리 호수를 중심으로 한 이 도시의 인구는 만 사천에 육박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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