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67
강철의 열제 467화
“이제야 알겠군. 가끔 전장에 미친놈들이 날뛰고는 하지. 저급한 광기에 휩싸인 종자들. 아군도 적군도 가리지 않고 피와 살육에 미친 자들을…… 바로 지금 네놈처럼. 넌 위대한 무인이라 불릴 자격이 없어. 저급한 광기에 사로잡힌 무능한 놈이야. 무인이 아니지. 쓰레기 였군. 냉혈의 검호 루키아는 말이지.”
쇼오 공작의 입에서 루키아 후작을 향한 독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쓰레기? 내가?”
더 이상 흰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붉은색.
그 붉은 눈이 쇼오 공작을 향했다.
[이런. 쓰레기라니.]“닥쳐.”
쇼오 공작이 놀란 눈을 하였다.
검은 그것의 한가운데에 루키아 후작과 같은 붉은색의 눈동자가 생겨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빨간 입을 벌리며 루키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것!”
[허. 저 늙은이, 내 말도 들리나 보군.]검은 덩어리가 놀란 듯이 쇼오 공작을 향해 빨간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음산한 목소리가 쇼오 공작의 심령을 흔들어 대었다.
“루키아, 잠시나마 너에게서 벽을 느꼈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는군.”
그러나 쇼오 공작의 평정은 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에는 힘이 빠지고 호흡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빌어먹을 늙은이. 꿈틀대 보겠다는 건가.”
“적어도 저 괴상망측한 것에 정신이나 빼앗기는 놈에게 질 생각은 없지.”
“킥!”
쇼오 공작의 기도가 달라졌다.
차분하면서도 웅장한, 그가 사랑하는 바다와 닮아 갔다. 그 주변으로 일렁이는 기운이 파도처럼 솟구쳐 올랐다.
변화된 쇼오 공작의 모습에 잠시 실소를 흘린 루키아 후작이 자신의 롱소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정신을 빼앗긴 걸로 보이나? 정말로?”
말을 내뱉는 순간 붉었던 눈동자의 한가운데가 하얗게 갈라졌다.
잠시 후 파랑이 전장을 덮치고, 얼음 폭풍이 세상을 얼렸다.
제169장 구멍 뚫린 모래시계
구름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대무덕의 지원군이 합류하자, 4국 동맹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하기도 했었지만, 아군의 수가 늘어났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더 전력이 강화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열제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연휘가람이 지원군 선두의 대무덕을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하지만 정작 대무덕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폭발 직전의 화산과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휘가람의 인사말에도 불구하고 무덕은 고진천의 위치부터 찾았다.
“그게 정찰을…….”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버럭 소리부터 지르는 무덕에게 휘가람이 재빠르게 보충 설명을 붙였다.
“제가 일어났을 땐 이미 빠져 나가신 이후였습니다.”
“끄응. 노인네 명줄을 이렇게 줄이시는 건가.”
휘가람의 보고에 무덕은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더 이상의 질책을 하지 못하고 얼굴을 찌부러트렸다.
그러고는 말을 몰아 들어가며 계속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그 뒤를 따르는 장수들은 오랜만에 보는 무덕의 등장에 모두가 잔뜩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무덕의 잔소리를 열제인 진천이 도망칠 정도인데 그 누가 감당하겠는가?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것이 어디 있냐는 말이 있듯이, 도착한 무덕이 진영을 둘러보면서 시작된 지적에 온 병영이 들썩거렸다.
“응? 이건 뭔가?”
지휘막사로 이동하던 무덕의 눈에 걸린 것은 날 없는 도끼 자루였다. 여분의 자루를 가져왔던 것인데 그것이 장작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것이 우연히 지나던 무덕의 눈에 걸린 것이다.
“이게 참…….”
부여기율이 한쪽으로 나와 무덕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난감한 모습을 보였다.
“허어, 군기가 빠져 가지고…….”
스쳐 지나가는 무덕에게서 조그만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무덕에게는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듣는 기율의 귓가에는 계곡에 친 천둥처럼 메아리치고 있었다.
‘빠져 가지고, 빠져 가지고, 빠져 가지고…….’
지금 이러고 지나가는가?
절대 아니다.
지휘관 회의에서 반드시 말이 나올 것이고, 비겁한 열제께서는 자신에게 조금의 잔소리라도 나올까 봐 자신들을 먹이 삼아 굴릴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굴릴 것이다.
토닥토닥.
“고생이 보인다. 킁.”
“그러게.”
그나마 동기인 삼두표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위로를 했고, 그 옆을 지나던 계웅삼이 안쓰러운 눈길을 남겼다.
“오라질. 군수 담당자랑 이쪽 부월수 부……, 아니다 도끼 든 놈들 중 책임자급은 전부 당장 튀어 와!”
멀어져 가는 행렬을 향해 기율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눈덩이가 위에서 아래로 굴러 내리듯 무덕의 한마디는 기율을 거치며 한마디가 주먹 한 방으로 급격한 변화를 거쳤고 이후 그 밑으로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한마디가 한 방이 되고 한 방이 두 방이 되고 두 방이 몽둥이찜질로 변화를 거듭했다.
그렇게 무덕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나마 풀어진 전열이 단단히 조여졌다.
저녁이 되자 정찰 나갔던 고진천이 정찰 부대를 이끌고 본진으로 복귀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몇날 며칠 초장거리 정찰을 나서고 싶었으리라.
“흠! 고생이 많았소! 먼 거리를 오시느라 노고가 크…….”
“이야기 좀 하시지요.”
잔뜩 무게를 잡으며 말문을 열었던 진천의 입을 강제로 다물리는 대무덕의 한마디.
여기서 할 이야기라는 게 뻔하지 않겠는가?
바로 제국연합과 신성제국 간의 전장에서 그 무위를 떨쳤던 일에 대한 잔소리일 것이다.
진천의 반항을 한마디로 수습한 무덕이 그와 함께 지휘막사로 향했다. 무덕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진천의 얼굴은 누가 봐도 ‘저 양반 똥 씹은 표정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급신이옵니다!”
전령 하나가 이러한 심각한 분위기를 깨며 달려왔다.
달려오는 전령을 보자 진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일반적인 소식이라면 지휘 체계를 밟거나, 또는 지휘막사로 이동을 한 뒤에 가져왔을 것이다.
거기에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어지간한 내용은 나중에 보고하려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급히 달려올 정도라면 그 내용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진천의 옆에서 근심 섞인 음성이 울려 나왔다.
대무덕이었다. 그도 역시 진천과 같은 생각을 하였는지 얼굴을 잔뜩 굳히고 있었다.
그들의 앞까지 달려온 전령이 부복하자마자, 가져온 소식을 펼쳐 내었다.
“제국연합이 패퇴하였다 하옵니다!”
“…….”
전령이 가져온 소식에 모두가 침묵에 빠져들었다.
* * *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느낌까지 주는 청발의 사내가 드러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키아 후작이었다.
양손은 깍지를 끼어 뒤통수에 베개처럼 대어 놓았고, 한 다리는 무릎 위에 꼬아서 올려놓았다.
까딱까딱.
허공에 뜬 발끝이 무언가 리듬을 타고 있었다.
등을 붙이며 드러누워 발을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동네 뒷산에 소풍이라도 나온 사람과 같이 보였다.
그 여유 속에서 리듬을 타는 발끝.
까딱.
“크아악!”
“죽여라!”
까딱.
인간의 생명이 꺼지는 소리와 병장기 소리를 벗 삼아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곳은 동네 뒷산이 아닌 전장이었다.
“이런 취미가 있었나?”
전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루키아 후작에게 들려온 음성.
그 음성은 그다지 친근하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음성을 들은 루키아 후작이 머리에 댄 깍지와 다리를 풀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 보았다.
“늦으셨습니다.”
“아무래도 저항이 저항이다 보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루키아 후작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샤이완 공작이었다. 본진을 이끌고 온 그는 루키아 후작을 올려다보면서도 결코 편한 얼굴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샤이완 공작의 불편해 보이는 시선에도 루키아 후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하며 무언가를 던졌다.
“참, 여기 쇼오입니다.”
턱! 데구루루루.
해상제국의 마스터 쇼오의 이름을 거론하며 던진 것은 그의 수급이었다. 이를 악물은 것이 죽기 직전까지 처절하게 저항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구르는 쇼오의 수급을 본 샤이완 공작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쇼오 공작을…….”
“밀리엄의 수급은 블라미르가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
블라미르라면 전장에서 조우를 했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놀라는 것은 밀리엄 후작의 머리통 때문이 아니었다.
바닥에 구르고 있는 쇼오 공작의 머리통 때문이었다.
한 전장에서, 한 존재에게, 두 명의 마스터가 머리를 잘렸다.
이전까지 있지도 않았던 일이고,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사실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샤이완 공작 뒤편에 시립해 있던 기사들이 부드러운 주머니를 들고 와 조심스럽게 쇼오 공작의 수급을 수습했다.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샤이완 공작은 고개를 들어 다시 루키아 후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샤이안 공작이 살짝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병사들 보기 안 좋네. 내려오게나.”
“이것 말입니까?”
샤이완 공작의 말에 루키아 후작이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루키아 후작이 바닥을 친 충격 때문인지 핏기를 잃은 팔 하나가 툭 하고 늘어져 내렸다.
“뭐, 쇼오 공작에 대한 나름의 예의입니다.”
“자네 예의는 시체로 산을 쌓아 그 위에서 노닥거리는 것인가.”
루키아가 올라가 누워 있던 곳은 바로 제국연합 기사와 병사들의 시신들로 쌓아 올린 시체의 언덕이었다.
그 언덕 위에 앉아 있는 루키아의 뒤로 떠 있는 달빛이 푸르름을 더해 주었다.
“이것 말입니까?”
루키아 후작이 샤이완 공작의 질문에 몸을 일으켜 훌쩍 뛰어내렸다. 바닥에 내려선 그가 시체의 언덕을 툭툭 두드리고는 기사들이 들고 서 있는 쇼오 공작의 수급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쇼오 공작의 몸뚱이에게 나름의 예우는 해야 할 듯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 다시 전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갔다.
아메리 연방제국 대전.
노회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 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유명한 비쉬 황제였지만, 지금 그의 모습에서는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게…… 무슨 말인가.”
“…….”
비쉬 황제의 반문에 정보부장은 아무런 답변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었다. 마치 패전의 책임을 홀로 진 듯한 모습이었다.
“미, 밀리엄 후작이 죽은 것이 화,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비쉬 황제의 떨리는 음성.
이어지는 담담한 답변.
이것이 지금 그들에게 놓인 현실이었다.
제국연합의 괴멸과 연방제국 밀리엄 후작의 전사 소식.
지금 그들에게는 쇼오 공작마저 전사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충격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쇼오 공작은 해상제국의 마스터였고, 밀리엄 후작은 자국의 마스터였으니 당연하지만 말이다.
“서먼 대법사는 어찌 되었는가!”
“행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제국연합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 한 번에 날아갔다.
무력과 마법의 상징이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대법사의 경우 전사 소식이 안 들려온 것이 조금이지만 희망을 걸어 볼만은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례를 깨는 신성제국의 행동을 볼 때 그 생사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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