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68
강철의 열제 468화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맞이한 비쉬 황제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 지금 우리 병사들은 누가 이끌고 있는가?”
“알 수 없습니다. 괴멸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소탕되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지막 연락이었습니다.”
다시 어이지는 침묵.
아메리 연방제국의 넓은 홀이 오늘따라 더욱 비어 보였다.
* * *
“쇼오오오오오오오!”
비야홀 황제의 절규가 대전을 울리고 있었다.
털썩.
“화, 황제 폐하!”
쇼오 공작의 전사 소식에 비야홀 황제는 대전 한가운데에 힘없이 무릎 꿇었다.
“으어어어어어!”
오랜 지기이기도 한 쇼오 공작의 사망은 비야홀 황제에게 더없는 충격이었다. 거기에 병력들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으허어어어어!”
각 영주와 황제 간의 이해관계가 확실한 해상제국으로서는 자신들의 병력의 실종 상태에 대해 황제에게 따질 법도 하지만, 지금 그의 절규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침묵할 뿐이었다.
아니, 그들도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끄으으…….”
비야홀 황제가 붉게 충혈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응징을 한다. 병력을 총동원하라!”
비야홀 황제의 분노에 찬 음성이 대전을 울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동조를 할 수 없었다.
단지 병력만 잃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두 제국의 유일한 초인들마저 잃은 상황이었다.
묵직한 현실이 홀로 광분한 비야홀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어깨를 눌렀다.
* * *
“빌어먹을…….”
마법통신을 마친 제라르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심각한 그의 표정에 장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심각한 일입니까?”
“어느 정도는.”
낙천적인 성향의 제라르가 저리 대답을 할 정도라면 심각한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한숨을 내쉰 제라르가 긴 이동에 녹초가 된 수하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눈빛을 보내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심각해진 제라르의 분위기에 무어라 선뜻 질문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병사들은 오랜만에 맞이하는 제대로 된 휴식을 기대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
녹초가 되었지만, 쉴 생각에 막사를 세우는 병사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간간히 그려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제라르의 얼굴에 더없이 착잡한 표정이 그려졌다.
동부 지역에 비해 경계가 심한 서부지역이었기에 이동해 오는 것도 상당히 어려웠다. 사실 팔란시아 평원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동조차 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싸우느라 반도 못 왔을 것이 분명했다.
말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병사들에게 무리가 가는 행군이었다.
전투를 벌이거나 이동하거나.
많은 피로가 누적이 된 상황이었다. 물론 수레 등을 최대한 징발하여 번갈아 가면서 병사들을 태우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분명했다. 또 가우리 본진과 달리 이들의 보급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간간히 리셀이 직접 대규모 마법을 이용하여 보급을 해 주었지만, 각자 며칠 분량을 짊어지고 달려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지금처럼 며칠에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막사를 설치하고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전투는커녕 이동하다가 낙오되는 병력이 슬슬 속출했다.
이들이 언제 이렇게 이동을 해 봤겠는가?
해적들이…….
한숨을 내쉬고 잠시 병사들을 바라보던 제라르가 보고에게 명령을 내렸다.
“애들에게 막사는 세우지 말고 쉬라고 해.”
“대모달…….”
보고는 제라르의 명령에 무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병사들과 격 없이 지냈던 것이 바로 제라르였다.
그런 그가 병사들의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알아. 애들 힘든 거.”
“…….”
보고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 듯, 보고가 하고 싶었던 말을 그가 대신 말했다. 그럼에도 쉴 수 없다는 것은 한 가지를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설마…….”
안색이 변한 보고를 향해 시선을 던진 제라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제국연합이 깨졌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쇼오와 밀리엄이 다 죽어 나자빠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거야. 병력은 패퇴해서 후퇴하는 수준이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서 토벌을 당하는 수준이고.”
보고는 제라르의 말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제국연합의 패배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제라르가 알려 준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정작 충격은 제라르가 보고받았던 상황이었다.
역사상 소드 마스터라는 초인이 한 전장에서 두 명이 죽은 일도 없었고, 또 제국 전쟁 역사상 일방적으로 토벌을 당할 정도로 대군이 패한 적도 없었다.
가우리인들과 달리 대륙에서 나고 자란 제라르로서는 이 일이 더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나마 다행이군. 본진과 거리가 얼마 안 남았으니.”
“그렇습니다.”
본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 제라르가 병사들에게 휴식을 멈추라고 소리치는 보고를 보며 다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 마치 모래시계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야.”
운명의 시간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제국들이 들썩이는 가운데 가우리의 선전으로 한껏 고무되었던 4국 동맹은 들썩이는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져 버렸다.
당장 위협에서 거리가 먼 말린 왕국은 내부에서 병력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하이안 왕국과 로셀린 왕국의 경우에는 불안감이 증폭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가우리를 통한 분석 덕에 제국연합의 패배에 대한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이 결과는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쇼오 공작과 밀리엄 후작의 전사.
서먼 대법사의 실종.
처음에는 패배만이 전해졌다가 시간이 흐른 뒤 공식적으로 두 초인의 전사가 알려졌다. 이어서 서먼 대법사의 실종 소식은 더더욱 암울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출병을 시작한 로셀린군을 당장에 도로 물려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북로셀린을 포기하자는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그나마 가우리군과의 동맹을 당장 포기하자는 이가 없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말만 없었지 몇몇 귀족은 은연중에 그런 눈치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때에 알세인 왕은 반전론을 일으키는 인원들을 몇 골라내어 목을 침으로써 무력으로 여론을 가라앉혔다.
죄목은 국가 반역죄였다.
이미 신성제국에게 한 번 나라를 빼앗겼음에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세를 읽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어차피 걸러낸 귀족들은 로셀린 멸망 당시 신성제국에 투항했다가 수복전을 벌일 때 재빨리 다시 로셀린 왕가로 투항을 했던 이들이었다.
일종의 본보기.
이전에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본보기가 필요할 때였다.
알세인 왕의 강력한 징치로 로셀린의 내부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면서 여론은 알세인 왕의 강력한 통치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의 치하에서 착취를 당했던 백성들은 알세인 왕의 강력한 조치를 오히려 칭송을 하였다.
이는 기댈 곳 없는 약한 백성들로서는 당연한 행동일이지 몰랐다.
술렁이기는 하이안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친신성제국파였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사전에 반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큰 피해 없이 진압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이안 왕국은 휘청거렸다.
가우리 본국 역시 술렁임이 없지 않았으나, 타국에 비해서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개문산성의 복구에 나섰던 백성들의 입에서 나온 그날의 처절한 항쟁은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게 하였고, 지난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진천이란 이름은 신앙이 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여느 나라와 달리 한 나라의 어미인 을지와 유니아스를 비롯, 가우리의 신귀족층들이 직접 몸소 나서 전방위적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지니 불안감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물론 집집마다 병사 하나씩은 있기에 근심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화전민 때의 기억과 가우리 초창기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들은 아직도 스스로의 손에 무기를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증거가 개문산성 아니었던가?
나라의 대장군이 그곳에서 제국을 막아섰다.
목숨과 바꾸며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우리는 하나가 되기에 충분했다. 일부에선 스스로 병영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도 있었고 심지어 여인들까지 줄을 이어 군대에 자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의 패배를 맞이한 제국연합의 두 제국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아메리 연방제국의 경우 밀리엄 후작의 복수를 부르짖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한 강경파는 소수였다.
밀리엄 후작이 비쉬 황제의 측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신성제국의 반격을 걱정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있었다.
강대한 해군력과 바다라는 방패가 존재하는 해상제국에 비하여, 연방제국이 아무래도 더 공략에 여유가 있는 것은 당연했고, 옛날의 경우에도 반격은 주로 연방제국을 향해 이루어졌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밀리엄 후작과 서먼 대법사라는 연방제국의 무력을 담당하는 두 기둥이 한 명은 전사에 한 명은 실종이라는 처참한 결과까지 있지 않은가?
거기에 원정 갔던 부대가 철수를 한 것도 아니고 뿔뿔이 흩어져 토벌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무리 제국이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서둘러 방어를 걱정해야 할 입장이다.
이 한 번의 전쟁에 정예를 모조리 잃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에 연방제라는 독특한 형식의 아메리 제국이었기에 각 영주들의 지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의 책임을 비쉬 황제에게서 묻는 것이었다.
연방제의 치명적인 약점인 것이다.
반면 해상제국의 경우 비야홀 황제의 분노가 끊이지를 않았다. 지방 영주들을 통해 추가 병력을 모집하는 한편 모든 함선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연방 제국의 도움이 없더라도 기필코 정벌을 하겠다는 비야홀 황제의 의지였다. 하지만 황제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제국의 역습(실제로는 제라르의 함대에 의한 기습이었다.) 때문에 해상제국 역시 주력 함대의 괴멸로 인한 함선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 섬으로 이루어진 제국의 특성상 중앙의 힘이 신성제국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전쟁이야 신성제국의 재화를 노린 영주들의 참여로 인해 쉽게 이루어졌지만, 그 영주들이 전사하거나 힘을 잃음으로써 해상제국의 내부는 먹고 먹히는 상황으로 변모해 갔다.
영주가 사라진 곳은 이웃 영주의 먹이가 되었고, 주력 병력을 잃은 영주는 그 옆의 강대한 영주에게 합병되는 등, 황제의 명령보다는 먹이사슬의 재편에 힘을 쏟았다.
그렇게 제국 전쟁은 일단락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한 분위기가 신성제국 대전에 감돌고 있었다. 승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밀리오르 황제 역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보고를 올리는 이들도 덕분에 편한 모습으로 황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슬레지안 해상제국과 아메리 연방제국의 동향을 먼저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토벌 작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지 오 일이 지난 지금 배고픔에 투항하는 적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외에 헤번 영지에서 농성 중이던 제국연합의 병력들도 어제 일소되었습니다. 다만 투르파 산에 아직도 삼만여에 가까운 잔당들이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 저항하고 있습니다. 해서 굳이 잔당 토벌에 힘을 뺄 필요가 없어 지금은 투항을 권고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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