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74
강철의 열제 474화
슈엥 공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불렀다.
후작위의 대귀족이 목이 날아가는 이 순간 슈엥 공작을 비롯한 다른 귀족들은 감히 대화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슈엥, 난 자네가 좋아.”
슈엥 공작에게서 빠른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밀리오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딴소리를 했다.
“이미 토벌전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군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재고를 하심이…….”
“슈엥, 자네는 눈치라는 게 있어서 좋아.”
“폐하.”
몸을 일으킨 밀리오르 황제가 뒷짐을 지며 천천히 자리로 되돌아가며 말을 이었다.
“나 같은 폭군에게 자네 같은 눈치 잘 보는 이가 있어 줘야 하지 않겠나?”
“…….”
슈엥 공작은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밀리오르 황제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이어진 계단을 밟아 오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열 받은 것인지. 아니면 열 받은 척하는 것인지. 또는 미친 건지, 미친 척하는 건지. 구분할 줄 아는 자네가 있어 이 대전에서 죽어 나가는 이가 덜하지 않은가?”
밀리오르 황제가 말을 늘어놓으며 주변 귀족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귀족들은 서둘러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들은 평소 슈엥 공작을 아부쟁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던 대귀족들이었다.
“신은 그저 황제 폐하의 수족이길 바랄 뿐이옵니다.”
“그럼 명대로 전하게. 수족은 말을 따를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니.”
“……알겠사옵니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명을 이행할 것으로 대답하는 슈엥 공작에게 밀리오르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뒤에 저 친구는 상을 줘. 잘 읽어 주었으니.”
“화, 황제 폐하! 가, 감사하옵니다!”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멍하니 정신이 나가 있던 상인 사내는 감격에 겨운 외침을 외쳤다.
“참, 대전의 카펫에 오줌 지린 값은 그것대로 따로 계산하도록.”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근위기사들이 무기를 빼어들고 잠시지만 생존의 기쁨을 누렸던 사내를 끌고 나갔다.
사내가 끌려 나가자, 팔로 2세는 빠르게 대전을 빠져나갔다. 오줌을 지린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 * *
로드비안 남작이 이끄는 병력 4만여 에 달하던 무리가 줄어 이제는 3만 남짓하였다. 주로 부상자로 이루어진 1만여 병력은 토벌군의 이목을 끌기 위해 떨어져 나간 병력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찰나의 시간을 벌어 준 대가로 그 삶을 다했을 것이다.
이런 아군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어진 탈주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빌어먹을!”
로드비안 남작의 입에서 암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방을 둘러싼 신성제국의 깃발들.
결국 포위당한 것이다.
3만여 병사들의 눈에는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여력도 없었다. 그저 이젠 지휘관들의 눈치만을 보며 있을 뿐이었다.
삶 앞에서 당당한 인간은 드물 것이다.
특히 이미 패한 전쟁에서 도망치는 이들 중에서는 말이다.
항복한다면 목숨은 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침략 전쟁에서의 패배자의 입장은 이런 것이다.
“남작님.”
복잡한 시선으로 병사들을 바라보는 로드비안 남작의 표정을 본 기사들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사신을 준비하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백기를 매단 말이 포위를 하고 있는 신성제국 진영을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영에 다다르기도 전에 고슴도치가 되어 나뒹구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개자식들! 사신을!”
“후우…….”
로드비안 남작은 분노하는 기사들을 다독이며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백기를 달고 나갔던 기사의 죽음에 표정들이 변한 것이다.
포기의 눈빛에서 악만 남은 눈빛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후퇴하면서 토벌군들의 무차별적인 학살에 대해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었다.
그것이 지금 눈앞에서 확인이 된 것이다.
사신이 저리 허무하게 죽어 나가는 마당에 일개 병사들은 어찌 되겠는가?
“병사들에게 준비시키게.”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말을 몰아 나갔다.
병사들도 그 모습에 절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함성과 비명이 뒤섞인 소리가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 * *
포위를 완성했을 때만 해도 쉽게 전공을 올릴 줄 알았던 위얀 후작은 의외로 강렬한 저항에 맞닥트리자 얼굴을 구기고야 말았다.
“저런 피죽도 못 먹은 놈들을 상대로 이 무슨 추태인가!”
3만의 병력에 6만이 넘어가는 병력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적들의 병사가 아무래도 전장을 경험한 정예들로 구성이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합니다.”
“거기에 우리 병사들이 그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적들을 추격해 오면서 쌓인 피로가 적지 않아…….”
몇몇 귀족들의 변명에 위얀 후작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적들은 놀고먹고 쉬면서 이동해 왔다는 건가!”
“그, 그건…….”
적들에게 쉴 시간을 안 준 것은 자신들 아니었던가?
위얀 후작의 일침에 귀족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대귀족이라지만 전쟁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기에 그저 위얀 후작의 서슬 퍼런 눈빛을 피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물론 그러는 위얀 후작도 전쟁과는 거리가 멀기에 후방에서 징집 업무를 보고 있지 않았던가?
“병사들을 움직여서 물고 늘어지라고 해! 어차피 적들은 오래 싸우지 못한다! 지치게 만들라고 하라!”
위얀 후작의 명령을 들은 전령들이 전장의 일선 지휘관들을 향해 말을 달려 나갔다.
그렇게 밀리던 양상이 조금씩 변했다.
위얀 후작의 말대로 힘이 다했는지 밀리던 병력이 다시금 포위를 굳히면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후작 각하의 혜안 덕에 이거 대승을 거둡니다!”
“역시 얼마 못 버티는군요!”
“흠.”
귀족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자 그제야 위얀 후작의 안색이 펴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저들의 수급을 모아 가지고 돌아가면 수도 정치계 입성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들이 서로의 공적을 치하하는 이 순간에도 버티고 버티던 제국연합의 병력들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아도 이제는 반수 정도만 남아 저항하고 있었다.
물론 그 짧은 시간 강렬히 저항했던 탓인지, 포위망을 구성했던 신성제국 병사들도 거의 삼분지 일이 소모되었다.
“그런데 정찰을 나선 병력은 어찌 되었는가.”
“4국 동맹 말입니까?”
“혹시 이 기회에 4국 동맹까지 치는 겁니까?”
“하하하!”
이미 보이는 승전에 떠들썩한 귀족들의 농담이 오갔다.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만, 제가 곧 연결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리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4국 동맹이 후퇴를 시작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수도에서는 확실한 것을 원하니 남는 병력으로 잔당 청소도 할 겸 움직이는 게지.”
위얀 후작의 말에 귀족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와중에 연락을 하러 나갔던 전령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후, 후작 각하!”
“무슨 일이냐.”
“연락이 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후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마법적인 문제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크게 된다.
“별문제 없을 겁니다. 다른 정찰부대의 실종이야 그 수가 소규모였으니 그랬겠지만, 이번에 보낸 병력은 일만에 가까운 병력 아닙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으음, 하지만…….”
“응? 저기 저건 뭐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귀족이 언덕 너머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지 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혹 정찰 나간 부대가 복귀하는 건 아닌가?”
한 귀족이 중얼거렸다.
위얀 후작도 먼지 구름이 일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불안한 모습이었다.
“적입니다!”
마법사 하나가 허공에서 내려오며 짧게 외쳤다.
“수는!”
“약 사천여 정도의 기마들로 구성된 병력입니다.”
“사천여 기마!”
적은 수가 아니다.
거기에 기마로만 사천이라면 인근에 보병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부대가 있다는 것이 된다. 마법사의 보고에 귀족들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적이라니…… 대체 어떤 적이…….”
한 귀족이 답답하다는 듯이 질문을 던지자, 마법사가 재빨리 대답하였다.
“붉은 바탕에 검은 새 모양이 그려진 깃발로 보아 가우리의 병력입니다.”
“뭣!”
“어찌 그들이!”
마법사의 말에 귀족들이 전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쯤이면 4국 동맹은 이삼 일 거리를 벗어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느닷없이 나타났다는 말은 곳 그들이 퇴각 중이 아니라 북상 중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국연합에서 이 병력을 구조하라 한 것 아닐까요?”
“으음…….”
“충분히 일리 있습니다. 이미 반 토막이 나긴 했지만 원래 오만에 육박하는 병력이었지 않습니까.”
여러 귀족들이 떠들어 대는 가운데, 위얀 후작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정찰마법사를 불렀다.
“주변에 적 보병 부대는 발견이 되었는가?”
“인근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법사의 대답에 위얀 후작은 고개를 끄덕인 후, 기사단장을 불렀다.
“적 병력은 약 사천여라 한다. 기사들과 기마들을 이끌고 나가서 저지하게.”
“알겠습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서 적 보병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니, 누구 말마따나 구출 병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윽고 대기하던 기사단이 말을 몰아 달려 나갔고, 그 뒤를 따라 기마들이 줄줄이 달려 나갔다.
그 수가 약 3천여에 달했다.
적에 비하면 적은 수였지만, 적들의 시선을 잡아 시간만 끈다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들이 합류할 시간을 충분히 줄 수 있다.
그리되면 순차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가지.”
“알겠습니다!”
위얀 후작이 직접 말을 몰고 나가자, 그 뒤를 따라 예비 병력들이 전장을 향해 몰려 나갔다.
더 이상 느긋하게 전쟁을 감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 *
치열했던 저항의 불꽃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친 기사들이 하나둘씩 몸을 누이자 그 뒤를 따르던 병사들도 힘없이 쓰러져 나갔다.
“남작님! 포위를 뚫고 달려야 합니다.”
“저희가 길을 뚫겠습니다.”
피범벅이 되어 달려온 기사들을 본 로드비안 남작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남작님!”
기사들의 눈빛에 안타까움이 번졌다.
로드비안 남작만큼은 살리고 싶은 것이 그들의 심정이었다. 그와 이들은 지난 전투부터 쌓아온 동질감이 있었다.
험난한 적들의 포위를 뚫고 사령관들을 구하고, 또 적들의 추격을 막아 본진의 병력을 구하였다.
거기에 그의 과단성 있는 결정으로 본국이 포기한 5만여 병력을 여기까지 잘 이끌어 오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괴멸 직전에 놓여 있다고 하나, 그것은 로드비안 남작의 잘못이 아니다.
“포위를 뚫는다 해도 얼마 못갈 것이 뻔하다네. 그리고 우리 병사들을 두고 어딜 가겠나.”
나직하게 말을 늘어놓는 로드비안 남작의 음성에는 이미 각오가 서려 있었다.
피가 덕지덕지 붙은 자신의 롱소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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