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83
강철의 열제 483화
“귀공들이 지켜 주면 되지 않나? 벌판에서 밥 한 끼 먹자는데, 그것도 우리가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고 말이지. 아직 저쪽에선 승낙도 하지 않았네.”
“그렇지만 폐하!”
“귀공들과 뮤 대법사가 지켜 주는 날 어찌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아니면 설마 병사들 사이에 도는 풍문처럼 팔란시아 평원에서 하늘에서 군신이 나타나 신성제국 병사들을 농락했다는 이야기처럼 허무맹랑한 일이 생기리라 보는 건가?”
“으음…….”
마지막 팔란시아 평원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의 밀리오르 황제는 마치 추궁을 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그의 말에 샤이완 공작을 비롯한 콰이어 공작과 다른 마스터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저희들이 전부 참여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암습이 있을지 모릅니다. 저들 입장에서는 황제 폐하가 나서는 순간이 최대의 기회이니 말입니다.”
“말씀대로 저 역시 참여하겠습니다. 물론 저뿐 아니라 미케인 대법사와 탈로스 대법사까지 대동하지요.”
샤이완 공작의 말에 이어 뮤 대법사가 나서며 삼현자까지 호위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앞뒤를 다투어 전부 나서겠다고 하니 밀리오르 황제의 표정이 그다지 편치 않게 변했다.
자신의 의사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모습은 그에게 있어 익숙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전에서와 달리 이곳의 지휘관은 자신이 아닌 샤이완 공작이고 또 전장에 나선 이상 그의 의사를 존중해 주어야 기사들의 사기와 병력 운용에 차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래도 화가 치민다는 것?
그것을 눈치 챈 슈엥 공작이 재빠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 샤이완 총사령관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장소도 이쪽에서 정하고, 경호 인원 역시 샤이완 공작이 말한 대로 배치한다고 통보를 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슈엥 공작의 말대로 준비한다면 이쪽에서 함정을 파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이 일방적인 결정에 과연 4국 동맹이 따를까?
슈엥 공작은 샤이완 공작을 일부러 총사령관이라 지칭하였다. 황제의 의중을 알고 또 그것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밀리오르 황제에게로 집중되었다.
억지나 다름없는 요구를 하라는 것이었다.
왠지 저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일전에 백여 명의 병력으로 트리폴리아 요새를 점령한 것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다시금 슈엥 공작이 밀리오르 황제의 고민에 끼어들었다.
계웅삼에 의해 수뇌부가 장악되며 어이없이 함락된 프리폴리아 요새를 말한 것이다.
그러자 밀리오르 황제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뭐, 그렇기도 하군. 최소한 장소는 이쪽에서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지휘부들도 저쪽 지휘부 얼굴을 보는 게 나쁠 것 같지도 않군.”
“그럼…….”
밀리오르 황제의 말에 샤이완 공작이 반색하였다. 그의 환해진 표정에 화답하듯 밀리오르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연결하게나.”
“네?”
“지금.”
밀리오르 황제의 명령에 미처 생각도 못했던 탓에 탈로스 대법사가 직접 통신용 수정구에 부랴부랴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즉흥적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 황제의 변덕을 염려해서이다.
또한 여기 있는 이들이 최고 지휘부인데 시간을 끌 필요도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수정구가 연결되었고, 탈로스 대법사가 직접 이쪽의 의사를 전달하였다.
“…….”
전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자, 답신이 왔고 탈로스 대법사는 꺼진 수정구에서 물러나 다시 밀리오르 황제와 샤이완 공작 등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대답은 언제 준다고 합니까.”
슈엥 공작이 탈로스 대법사에게 묻자,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맘대로 하랍니다.”
“…….”
“그것도 가우리의 왕이 직접 말해 준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
왠지 이 사실을 가지고 옥신각신했던 자신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귓가로 밀리오르 황제의 한마디가 스쳐지나갔다.
“누가 보면 그 친구들이 제국인 줄 알겠군.”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 * *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가.”
“대, 대답을 해 버리시면…….”
신성제국의 통신이 들어오자 마침 그 근처에 있던 고진천이 대뜸 대답을 해 버린 것이다.
“무슨 일인가?”
창백하게 변한 카이로스에게 진천이 자신이 뭘 잘못이라도 했느냐고 되물어왔다.
“신성제국의 마스터들이 죄다 있는 그 자리가 적들의 함정이면 어쩌려고 덥석 대답을 하십니까!”
“다 죽이고 오면 되지.”
“…….”
“함정이면 그 자리에서 밀리오르 멱만 따 가지고 오면 전쟁 바로 끝나는 것이군. 차라리 그래 주면 고맙겠는데.”
“…….”
전혀 긴장감 없이 한마디 툭 던지고는 휘적휘적 막사 밖으로 나가는 진천이었다.
그날 저녁 고진천의 막사에서는 대무덕의 포효가 밤새도록 울려 퍼졌다.
제177장 전장 위의 피크닉
넓은 초원 위에 사방이 트인 천막이 햇볕을 가려 주기 위해 세워지고 그 안에 넓은 식탁이 놓였다.
그 옆으로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화덕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 많은 식재료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내 해가 점점 높이 떠오르자, 재료 앞에 선 주방장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고, 이내 맛있는 향기와 연기들이 솔솔 풍겨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음식들이 준비가 되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서둘러 마차에 타고 되돌아갔다.
다만, 음식을 마무리하고 내어 갈 인원들 10여 명만이 한쪽에 고개를 숙이고 서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신성제국의 본진에서 달려온 것이 분명한 한 무리가 도착했다.
그 중심에 보석으로 치장된 은빛 찬란한 갑주 위에 화려한 로브를 걸친 밀리오르 황제를 비롯하여 샤이완 공작, 콰이어 공작 등 제국의 중심인물들이 모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의 존재감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지 남아 있던 주방장과 시녀들의 몸이 크게 위축되었다.
“나머지 병력은 되돌아가도록.”
호위기사만 대동했던지라 케니클 후작이 직접 함께 온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호위기사들은 곧바로 뒤돌아 본진으로 되돌아갔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본래 이곳에 있던 요리사들과 밀리오르 황제, 슈엥 공작, 오인의 마스터, 거기에 뮤 대법사를 포함한 삼현자까지 총 20여 명 남짓한 인원이 전부였다.
“어떤가? 의외로 좋지 않나, 슈엥?”
넓게 펼쳐진 탁자 앞에 앉은 밀리오르 황제가 드넓게 펼쳐진 풍경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마치 나들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흥얼거리는 밀리오르 황제의 행동을 보며 슈엥 공작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그래. 이건 고마워해야겠군.”
이런 자리를 만들게 한 고진천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변 풍광을 즐기던 밀리오르 황제가 마치 호위기사들처럼 서 있는 샤이완 공작, 콰이어 공작, 그리고 케니클 후작과 루키아 후작, 블라미르까지 쭈욱 둘러보더니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들 그렇게 서 있나? 모두 자리에 앉으시게 들. 그쪽 삼현자들께서도 앉으시게.”
그렇게 밀리오르 황제가 권유를 할 때, 뮤 베이니어가 한 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지금 4국 동맹 측에서 누군가가 오고 있사옵니다.”
“그래?”
뮤 대법사의 말에 밀리오르 황제와 슈엥 공작이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범인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눈에는 기껏해야 초원의 바위 등만이 보일 뿐 이었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주시하던 중에 몇몇 점이 낮은 언덕을 넘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오는군. 그런데 척후병인가 보지?”
저 멀리서 세 개의 점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 하나에 가우리의 상징인 삼족오기가 들려 있었다.
“전령인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밀리오르 황제에게 딱딱하게 굳은 샤이완 공작의 대답이 들려 왔다.
“아닌 것 같사옵니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
살짝 얼굴을 찡그리는 밀리오르 황제에게 루키아 후작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진천 본인이옵니다.”
“…….”
잠시 후, 침묵에 쌓인 그들에게로 고진천이 달랑 두 명만을 대동하고서 천막에 도착했다.
천막 앞으로 다가온 고진천이 말에서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음식 냄새가 괜찮군. 오길 잘한 것 같아.”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말에서 내린 진천의 모습을 본 밀리오르 황제의 인사말에 고진천이 응수했다. 인사말이라고 하기엔 밀리오르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날아왔다.
“그렇군. 조금 늦었지만, 제국연합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축하하지.”
“그럼 난 위얀 후작령을 점령한 것을 축하한다고 해야 하겠군.”
밀리오르 황제는 곧바로 싸늘한 음성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진천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코를 한번 매만진 그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뭐 축하받을 거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하긴 그 머저리들이 공 세운다고 뭉쳐서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지.”
“고생이 많겠군.”
그 말에 고친천은 밀리오르 황제에게 정말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중유골(言中有骨).
오고 가는 한마디마다 뼈가 있었고, 마주하는 눈빛에는 칼날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자리에 앉아 있던 밀리오르의 시선이 진천의 뒤로 향했다.
그가 함께 온 인물들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한 명은 호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이런 자리에서 진천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주방장들이 준비하는 음식에 시선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천은 밀리오르 황제의 시선이 자신의 뒤로 향하는 것을 보고 살짝 돌아보며 소개를 했다.
“아, 여기는 가우리의 대대로(大対盧). 그쪽으로 치면 재상으로 보면 되겠군.”
“대무덕이라 하오이다.”
진천의 소개와 함께 대무덕이 한 걸음 나서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제국의 황제에게 하는 예라고 하기엔 너무 무례한 행동임에 틀림이 없었다.
당장 성격이 급한 콰이어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감히 황제 폐하에게 그런 예라니!”
콰이어 공작의 살기 어린 음성에 무덕이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나지막하지만, 무게감 있는 음성을 내뱉었다.
“예의라 했는가.”
상황을 살피던 슈엥 공작이 무덕의 말에 발끈하는 콰이어 공작을 제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엄연히 제국의 황제이시오. 아무리 적대 상황이라 하지만, 지금 가우리의 재상께서 표하실 예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슈엥 공작의 말에 모두가 무덕을 바라보았다. 슈엥 공작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왕과 왕이 대면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지금 무덕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무덕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과가 아닌 나직하면서도 강렬한 질타였다.
“손님을 청한 쪽에서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앉아서 맞이하는 것은 그 예의가 맞는 것이오?”
“이런.”
무덕의 시선은 말을 꺼낸 슈엥 공작을 향해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진천을 앉아서 맞이한 이는 오로지 밀리오르 황제뿐이었다.
무덕의 발언이 있자 콰이어 공작을 비롯한 신성제국 측 인물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무덕의 말 자체는 맞지만, 그것을 어찌 맞다고 하겠는가?
아니 맞다 해도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나라가 와도 감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한 역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무덕, 우리도 앉지.”
“예, 소신이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뭐, 틀린 말도 아닌데.”
앉으란 말도 없었는데 의자를 슥 꺼내 엉덩이를 붙이는 진천과 무덕의 대화를 들은 신성제국 측 인사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그런 이들을 구원해 준 것은 바로 밀리오르 황제이다.
“그만하고 않게나, 슈엥. 삼현자 분들과 나머지 분들도 전부 착석 하시게들.”
다행히 밀리오르 황제의 표정에는 노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인물들이 신선해 보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저 소개하지, 이 친구는…….”
진천이 고개를 돌리며 남은 한 명을 지목했다. 그러나 왠지 그 인물을 바라보는 순간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가 피고는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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