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98
강철의 열제 498화
콰콰콰콰쾅!
본진에서 상황을 살피러 날아온 신성제국의 마법사는 눈앞에서 펼쳐진 참상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뒤를 따르던 수레들이 전면에 등장했을 때에는 이미 방향을 틀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다.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가는 기마.
그것도 사만이라는 수를 자랑하는 이 기마의 행렬은 마음만으로 방향을 틀 수가 없었다.
하나가 방향을 튼다 하더라도 그 옆에서 달려오는 누군가에게 짓밟혀 사라질 것이 뻔했다.
결국 뻔히 불구덩이인 줄 알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신성제국 기마들의 운명이었다.
“피…….”
피보라가 분다.
수십 미르 위에 떠 있는 그에게까지 붉은 핏방울들이 안개처럼 피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신성제국의 자랑스러운 기마들이 수레들과 부딪히며 귀를 찢는 굉음을 만들어 내었다.
무엇이든 뚫을 것 같은 기세는 붉은 피보라와 함께 사그라졌다.
주인을 잃은 말은 창날에 꿰뚫린 채로 구슬픈 울음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었지만, 기사들은 마지막 숨을 내뱉을 시간조차 없었다.
“이런 참상이…….”
수레 역시 멀쩡할 수는 없었다.
기사와 전마가 달려드는 그 속도와 힘이 얼마나 엄청난가?
수레의 창날에 그대로 관통되어 대롱대롱 달려 있는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하늘로 떠오른 팔다리가 시간을 잊은 듯 하늘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튼튼한 수레라도 그 힘을 이겨 내고 버틸 수는 없다.
수레는 약 일만여 대…….
그중 절반이 조금 넘는 수가 격돌과 함께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제국의 기마 역시 얼추 첫 격돌에 사분지 일에 가까운 기마들이 허무하게 소멸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일만에 가까운 기마가 순식간에 소멸된 이 결과는 아마도 전쟁사에도 다시없을 것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요행은 여기까지, 아직도 제국에 남은 기마의 숫자는 삼만여.
중간에 수레와 인간과 말의 육편으로 이루어진 장애물 덕에 기마 특유의 돌파력은 사라진 상황이다.
이제는 기사 개개인의 무위가 난전을 지배할 시간이었다.
“빠,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처참한 광경을 뒤로하고 바쁘게 날아가는 마법사의 머릿속에는 샤이완 공작의 분노가 어른거렸다.
그러나 이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우웅.
데안 백작의 귓가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사들의 함성도, 방금 전까지 지축을 뒤흔들어 대던 말들의 발굽 소리도, 그 어떠한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똑. 똑. 똑.
그런 그를 세상으로 이끌어 낸 것은 그의 얼굴을 두드리는 물방울들이었다.
우와아아아아!
히히힝!
“으어억…….”
순간 눈이 트이고 귀가 트이자, 들려온 것은 말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누군가의 신음 소리였다. 낙마의 충격에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정신을 놓았어야 했던 데안 백작은 정신을 되찾자마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으윽…….”
갑주를 입은 상태에서 몸이 튕겨 나갔던 덕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다행히 어딘가 심하게 부러진 곳은 없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데안 백작의 시선에 주변 상황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크흑. 이, 이게…….”
사방에 펼쳐진 참상이 지금 그에게 신체적 충격을 해소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짙은 패배감을 불러 일으켰다.
사방에 반쯤 부서진 수레와 말과 기사가 함께 짓뭉개져서 그 형체를 알아차리기 힘든 고깃덩어리까지. 그가 지금껏 겪어 왔던 전쟁터는 차라리 천국일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세먼 남작! 어디 있나! 부관!”
데안 백작은 서둘러 자신의 부관을 소리 높여 찾았다.
돌입 직전, 적의 창날이 달린 수레에 당할 위험에 처한 자신을 몸을 던져 밀쳐 내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부관을 찾을 수 있었다.
“……세먼 자네가 날 살리고, 또 깨워 준 건가…….”
더없이 처참한 심정이 데안 백작의 얼굴을 뒤덮었다. 촘촘히 박힌 창날에 온몸이 그대로 박혀 버린 부관의 처참한 몸을 본 데안 백작은 자신의 얼굴을 적셔 주었던 물방울이 바로 부관이 흘린 피라는 것을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백작님!”
“백작님이 무사하시다!”
정신을 차린 자신을 발견했는지 뒤쪽에서 기사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그리고 데안 백작의 안전을 확인한 기사들이 어디선가 주인을 잃은 말을 끌고 와 대령했다.
“말에 오르시지요.”
말을 하는 기사들의 얼굴에도 참담한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들 역시 이런 참상은 상상도 못 했음이 분명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데안 백작이 말고삐를 쥐고선 다시 한 번 자신의 부관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저 창날에 온몸이 꿰뚫려 매달려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리라.
그의 온몸에서 흘러나온 붉고 푸른 피가 내를 이루고 있었다.
“푸른색?”
붉어야 할 피에 푸른색이 섞여 있었다.
터억.
의혹에 찬 표정을 지을 시간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의 양쪽 발목을 잡아 왔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내린 그의 눈동자에 그려진 것은 갈색의 털이 난 거대한 두 개의 손이었다. 그리고 귀에 울려온 것은 본능을 건드리는 마수의 포효.
“그워어어엉!”
포효를 듣는 순간 데안 백작이 몸이 양쪽으로 찢겨졌다. 그와 동시에 생기를 잃어 가는 데안 백작의 입가에는 의혹만이 남았다.
‘왜? 왜…… 저것이 여기에…….’
하지만 그 의혹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워어어어엉!
꾸이이이익! 꾸익!
잔해를 떨치고 일어선 것은 바로 몬스터들이었다.
깊은 산맥이나 인간의 발자취가 닿지 않는 오지에서나 볼 수 있다던 그 몬스터가 지금 전장 한복판에서 잔해를 헤치며 나타난 것이다.
“이, 이게 뭐야!”
기사들은 마치 개처럼 엎드려 있다가 일어선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를 보며 당황하면서도 의혹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무려 4미르가 넘어가는 거대함.
칼조차 들어갈 것 같지 않은 탄탄한 근육.
“그워어어어엉!”
“설마 미노타우르스?”
이 거대한 괴수가 주는 위용에 기사들은 창백하게 질리면서도 의혹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뿔 없는 미노타우르스가 있었나…….”
평소라면 농담이라 치부될 이야기가 한 기사의 입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연이어 울려오는 흉성 속에 신성제국의 기사단은 또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위험해!”
으적!
“꾸이이이!”
“죽어라!”
수레의 잔해를 휘둘러 동료 기사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오크를 향해 기사가 말을 몰아갔다.
하지만 그도 뒤쪽에서 미노타우르스가 던진 마차 바퀴에 의해 튕겨 나동그라졌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잔해를 헤치고 일어선 다른 오크의 한 끼 식사로 변해 버렸다.
기사들보다 더 혼란에 빠진 것은 바로 말들이었다. 아무리 전투에 적합하도록 훈련이 된 말들이라 하더라도 본능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마수들의 흉성이 울리자 마치 그 자리에 발이 묶인 것처럼 나아가지 않고 멈춰 버린 것이다. 대륙의 전마들이 이런 몬스터들을 얼마나 접해 봤겠는가?
당연히 오크나 미노타우르스의 괴성에 말들은 겁에 질려 기사들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평소 기사들의 실력이라면 오크들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통제를 벗어난 지금 기사들에게 말이 오히려 방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말이 앞발을 들어 올려 발광을 하면서 기사들은 하나둘씩 낙마를 하였고, 그나마 말에서 뛰어내린 기사들은 균형을 잡기도 전에 덮쳐든 오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렇게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버렸다.
“꾸이익!”
“그워어엉!”
잔해를 헤치며 나타난 몬스터들의 눈빛에는 광기가 맴돌았고, 그 입에는 침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 침착하게 대응하라! 몬스터의 밥이 되고 싶느냐!”
몇몇 고참 기사들과 각 기사단장들의 외침에 기사들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져 갔다.
몬스터들은 기사들이 정돈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온몸으로 칼을 받으면서도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몬스터라 하더라도 너무 저돌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전장을 지휘하던 이들의 입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부상자는 포기한다!”
여기저기서 명령이 떨어지자 몬스터들과 엉켜 싸우던 기사들이 하나둘씩 뒤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몬스터에 갇힌 기사들도 적지 않았으나, 오래지 않아 몬스터들의 손아귀에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빌어먹을…….”
물러나는 기사들의 눈에는 당황과 분노, 그리고 공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물러난 뒤에 바라보니 더욱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붉고 푸른 피가 얼룩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이미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변한 기사들과 말들이 시뻘건 고깃덩이로 변해 연신 몬스터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 무기를 단 마차에 말 대신 저것들을 이용해 돌격시킨 모양입니다. 그것도 며칠은 굶겨서…….”
기사들이 물러서자 조금 전까지 죽자 사자 덤벼들던 몬스터들이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기사의 말대로 몬스터들은 지금 눈앞에 놓인 말과 인간의 고기를 먹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단지 으르렁거림으로써 수많은 기사들을 위협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신성제국의 기사들의 사기는 이미 크게 꺾여 버렸다.
동료의 시신이 몬스터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는 그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 심정이겠는가.
“우와아아아!”
그 순간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함성과 함께 4국 동맹의 기사들이 신성제국 기사들의 양 옆구리를 무너트리며 달려들었다.
급격한 후퇴로 인해 신성제국 기사들의 진형은 이미 망가진 상황이었다. 만 단위가 넘어가는 기마의 병력이 물러선다고 물러서지는가?
물러서는 만큼 아직도 뒤쪽은 기사들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 순간을 4국 동맹이 파고들은 것이다.
사전에 속력을 내지 못해 전속력이 아님에도 4국 동맹의 돌파는 위력적이었다.
밀려오는 함성 속에 바이칼 공작의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헬리오스 바이칼이다! 누구든지 받아 주마!”
제185장 육지 위를 달리는 터틀 드래곤
바이칼 공작이 이끄는 4국 동맹의 기마들이 신성제국 기마들의 양 옆구리를 파고들기 시작하자, 지켜만 보던 고윈의 입에서 모두가 기다리던 명령이 떨어져 내렸다.
“전군, 속도를 높여라!”
“와아아아아아아!”
마법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고윈의 음성에 병사들은 함성으로 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병사들의 발걸음과 심장 소리에 보조를 맞추듯 북소리가 더욱 빠르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둥둥둥! 둥둥둥!
병사들의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벽돌이 천천히 분리되어 나가는 것과 같았다.
“제 이 진 앞으로 나서라!”
고윈의 명령과 함께 초대형 지휘 마차 위에 타고 있는 기수들이 각자 푸른색과 하얀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자 투구에 푸른 술과 하얀 술을 두른 병력이 일제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보로 이동하라!”
고윈이 외치자 이번엔 갈색 기가 끼어들며 빠르게 휘둘러졌다. 그러자 북소리가 일정하게 변하며 아까 빠르게 움직여 나가던 병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좋군.”
자신의 한마디에 빠르게 움직여 주는 병력들을 본 고윈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빠져나간 검차들의 수효는 어찌 되느냐!”
“약 일만여 대 중에 이천여 대 정도입니다.”
수십만이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에 달랑 이천여 대라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한 둑도 작은 균열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나머지 검차들을 다 내보내고, 계웅삼 장군에게도 출진 명령을 전하게.”
“알겠습니다.”
고윈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관이 기수에게 신호를 내렸다.
이어 회색 깃발이 올라가고 그 뒤를 이어 적색의 깃발이 올라가 휘둘러졌다.
* * *
“무어라? 전차가 아니라 앞에 창을 매달은 마차라고?”
현장을 살피고 온 마법사의 설명에 샤이완 공작이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내 상황이 쉽게 돌아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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