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499
강철의 열제 499화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할 기마들이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멀리 떨어진 샤이완 공작의 눈에도 똑똑히 들어왔다. 기마의 전진은 이미 멈추어진 지 오래였다.
보병일지라도 4만이라는 병력이 멈추었다가 뒤로 물러서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찌 그 많은 병력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겠는가?
하물며 기마다. 달리던 병력이 멈추고 싶다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멀리에서도 상당수의 병력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서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혼란을 뚫고 기마들을 관통한 수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법 전단을 대기시켜라!”
“마법 전단을 말입니까? 각 군단에 배속된 두 개 전단을 제외하면 지금 남은 전단이라고는 예비 전단들이 다입니다.”
샤이완 공작의 말에 부관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지금 3개 전단은 적 수장을 공략하러 자리를 빠져나간 후였고, 일개 전단과 삼현자는 황제를 철두철미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두 개 전단은 콰이어 공작과 루키아 후작에게 배속되어 있는 것이 다였다.
그들을 빼면 예비 전단이라 불리는 이들뿐이었다.
사실 남은 마법사들은 전단이라고 하기에 무색한 이들이었다. 그저 연구만 하던 마법사들까지 종군시킨 것이다.
물론 그들도 공격 마법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비대의 개념이었다.
“저기 달려오는 수레들을 요격하는 것이라면 충분하다.”
“아, 알겠습니다.”
기마대에 대한 지원이 목적이 아니라, 기마대를 뚫고 달려오는 나머지 적의 마차들을 요격하려는 것임을 알고 부관이 빠르게 움직였다.
부관이 생각해도 일반 보병들에게는 기마 이상으로 위협적이었다.
잠시 후, 명령을 전달 받은 마법사들이 무수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와아아아!”
“마법사님들이다!”
마법사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일부 병사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병사들의 환호와는 반대로 샤이완 공작의 인상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단지 마법사들이 떠오른 것일 뿐인데, 그것만으로 환호할 정도로 병사들이 지금 상황에 무언가 의지할 만한 것을 찾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기가 곤두박질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각 참모들은 달려오는 수레에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
명령을 내리며 환호하던 병사들을 바라보던 샤이완 공작의 목소리가 일순 멈추었다.
“공작 각하, 무슨 일이시온지?”
심상치 않은 샤이완 공작의 모습에 귀족들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초인의 오감은 범인과 다르지 않은가?
“무언가 들리지 않는가?”
“네?”
저마다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귀를 기울였을까 혼란을 타고 이질적인 소음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차 커지고 잦아지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익숙한 소리는 아니지만 대충 어떠한 소리인지는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오 오오! 꾸이이!
“모, 몬스터?”
* * *
끄워어어어!
“별로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니군.”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몬스터들의 흉성에 루키아 후작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역시 레간쟈 산맥을 관통해 나갈 때 몬스터들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였는가.
“후, 후작 각하! 이건 설마?”
“레간쟈 산맥에서 여기까지 끌고 온 건가.”
루키아 후작의 말에 자신들의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기사들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개전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토록 많은 변수가 생기는가?
기사들의 표정이 굳는 것도 당연했다.
점점 크게 울려오는 소리로 보아 그 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문제는 이 소리가 적의 진영이나 다른 지역이 아니라 지금 아군의 기마들이 있는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저 괴상한 마차에?”
누군가의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기마들을 관통하고 나타난 마차들로 향했다.
전면에 창을 잔뜩 꽂은 마차들.
“발? 저 수레들, 말이 끄는 게 아니야!”
눈이 좋은 기사 몇몇이 마차들의 바퀴 아래쪽을 바라본 것이다. 사방이 막힌 마차의 아래 부분에는 두꺼운 다리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철저하게 이용해 먹겠군.”
루키아 후작의 표현에 기사들의 얼굴은 동시에 구겨져 버렸다.
기사들로 이루어진 4만의 기마를 멈추게 한 것도 모자라 그 안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옴으로써 이차적인 피해를 입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예비대인가?”
그때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마법사들을 본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약간의 허탈함마저 섞여 있었다.
개전 초기인데 벌써 예비로 남겨 두었던 마법 전단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저 수레들이 그대로 치고 들어오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맞이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또 다른 함성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큭, 선공인가?”
눈앞에 끝없이 늘어선 4국 동맹 보병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걸음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방패병들에게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라 이르라.”
4국 동맹의 움직임이 보이자 루키아 후작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평소라면 벌써 방패를 준비하느냐고 하겠지만, 이미 을지우루에게서 충격적인 경험을 한 터라 말을 타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와라.”
다짐하듯 말하는 루키아 후작의 눈에 일순간 붉은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 * *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에 터져 나간 수레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의 흉성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또다시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 나왔다.
콰콰쾅! 콰쾅!
그러는 가운데에 뒤쪽에서는 연휘가람과 신성제국의 마법 전단이 어울리며 만들어 내는 폭발음들이 요란스레 울려왔다.
“효과가 좋군.”
이 모든 일을 뒤로하며 달리는 고진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시선은 지금 전방이 아닌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보통 검차라는 병기는 전방에 창이나 끝을 자른 대나무 등의 날카로운 것을 꽂아 놓고 그 뒤에서 병사들이 밀며 앞으로 전진 하는 형태의 병기다.
물론 효용은 있지만 동시에 병사들의 희생 또한 막대한 병기였다. 그렇다고 말을 집어넣어 달리게 할 정도로 말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떠오른 것은 바로 몬스터들의 존재였다.
양심의 가책도 덜하고 고래로부터 소 떼 등을 이용하거나 하는 작전은 종종 있어 왔지 않은가?
다만 출발 전까지 조련사들의 억류와 마법적인 조치와 같은 번거로움이 필요했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것이었다. 아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의도는 훌륭하게 맞아떨어졌다.
“마법사들이…….”
적의 보병들을 향해 마지막 세 대째 화살을 날리던 부여기율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까만 점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판단이 좋군.”
진천이 말을 하는 사이에도 마법사들이 천천히 떠올라 몇몇씩 짝을 지어 퍼져 나갔다.
수레들을 요격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보였다.
“적진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합니다!”
적의 사거리에 들어온 지 꽤 되었지만 적 마법사들이 머리 위에 떠 있었던 탓에 여태까지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이었다. 거기에 이쪽의 공격 역시 무방비였던 적의 보병들과 궁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쪽에서 세 번째 화살이 날린 지금 반격이 시작되었다. 화살 공격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옆의 동료들이 기마대가 날린 화살에 맞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화살을 날리려 하는 것이다.
“그럼 슬슬 달려 볼까.”
진천의 음성을 들은 부여기율과 삼두표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기마, 전속력으로!”
차창!
대답 대신 흉갑에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뒤따르던 기마들이 지금까지 참았다는 듯이 바닥을 강하게 차며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 * *
“파이어 볼이 아닌 각자 타겟팅을 이용한 유도 마법들을 준비한다!”
달려오는 검차들을 막기 위해 떠오른 신성제국 마법 전단의 예비대들은 저마다 허공에 자리를 잡고, 울려오는 명령에 따라 수식을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마법이 발현되기도 전에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에 마법사들이 하나둘 수식을 멈추며 손을 내렸다.
인간과 말의 비명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몬스터들의 포효.
“설마 마차를 끈 것이 몬스터들이었다는 것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들이었기에 먼 거리였지만 빠르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캐스팅을 취소하고 각기 두 팀으로 나누어 하나는 유도 마법을 준비하고, 나머지 한 명은 바로 파이어 볼을 준비하도록 한다!”
“그러기에는 시간은 없고 다가오는 마차의 수는 너무 많습니다!”
지금 허공에 떠오른 마법사들은 백여 명 남짓.
공격 마법의 유도를 위해서는 운동 에너지도 움직일 마나도 적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그러한 유도 마법의 특성상 빗나가는 확률이 적은 반면에 그 위력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창검만을 달고 달려온 것이라면 유도 마법으로 전복시키면 그만이지만, 그 안에 저런 몬스터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 검차당 두세 마리만 된다 해도 얼추 사천에서 육천 마리가량.
그런 흉포한 놈들이 기마대의 등 뒤와 병사들의 앞에 뿌려진다?
그러면 당연히 혼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마차를 전복시키고 바로 파괴력이 강한 파이어 볼을 날리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시간과 마나.
파괴력과 비례하여 마법을 운용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공격에 쓰이는 마나의 양 역시 급격하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비 마법 전단을 맡은 노마법사의 눈에 갈등이 서렸다.
하지만 고민을 오래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검차들은 쉴 새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뒤는…… 동료 전단에게 맡긴다. 모두 준비하도록!”
그들의 뒤에 남은 마법 전단을 믿고 최선을 다해 막는 수밖에 없다. 지금 아슬아슬해도 이천여 마리를 상대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전복이 된 검차에서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올 오륙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합창을 하듯이 영창해 오던 마법사들의 주문이 멈추어지고, 하늘에서 하얀빛의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그 뒤를 이어 불덩어리들이 하얀 꼬리를 만들어 내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저지하라! 실패한 목표는 다시 공격할 생각을 하지 말고, 다음 목표를 선택하도록 해라!”
노마법사의 외침에 예비 마법 전단이라는 이름도 무색할 정도로 마법사들은 빠른 속도로 수인들을 맺어 가며 이차, 삼차 공격에 매진해 나갔다.
콰콰쾅! 트트특!
운이 좋은 경우에는 하나의 검차가 엎어지며 그 뒤를 따르던 것들이 뒤엉켜 자빠지기도 하였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의 파이어 볼만 있더라도 충분히 타격이 되었다.
침착한 대처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그들의 뒤로 빠져나간 검차가 없었다. 그저 잔해들만이 앞에 수북하게 쌓여 나갔다.
콰쾅!
꾸이이익!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전복이 된 수레가 불덩어리가 되어 허공에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처박히자 안에 있던 오크 하나가 불에 휩싸인 상태로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왔다.
“그나마 한두 마리씩인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이천여 대의 수레에 최소 두세 마리 이상일 것이라 보았던 몬스터가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정도였으니 말이었다. 어쩌면 괜한 상상이었는지도 몰랐다.
저 많은 수레를 가득 채울 정도의 몬스터를 잡는 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물론 미노타우르스의 경우에는 한 마리로도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셈이다.
그 정도라면 뒤쪽에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할 터였다.
“우와아아아!”
희망적인 생각에 수식을 만들어 가던 마법사의 귓가로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방향은 바로 전방, 즉 4국 동맹이 있는 곳이었다.
“저, 저건?”
순간 놀란 한 마법사의 손에서 생성되던 불덩어리가 소멸되었다.
“무슨 일인가!”
동료 마법사가 나자빠진 검차에 떨어져야 할 불덩어리가 떨어지지 않자, 자신의 동료를 돌아본 것이다.
하지만 동료는 대답 없이 정면을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자연히 그 마법사의 시선도 동료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움직여졌다.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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