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03
강철의 열제 503화
그때 황제의 곁이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케니클 후작이 다가와 총지휘를 맡은 샤이완 공작의 기분을 풀어 주듯이 말을 건네었다.
“어쩔 수 없지요. 용병들을 전면으로 보내서 지금 기어 들어온 놈들을 정리하고 이쯤해서 콰이어 공작님의 북부군을 보내어 슬슬 전투의 마무리를…….”
“정찰대에서 적의 병력 일부가 우회하고 있는 모습을 포착하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케니클 후작이 말을 꺼내는 도중 달려온 전령 하나가 가져온 소식에 그의 표정이 구겨지는 동시에 샤이완 공작이 혀를 내쳤다.
“……이런.”
“허허…….”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엔 자신들보다 한 발 빠른 적의 대응이었다.
원래는 오른쪽으로 돌아간 루키아 후작의 병력의 방비에 적들이 신경을 쓸 때 즈음 콰이어 공작의 병력이 반대로 돌아가 마지막 일격을 노린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적들이 한발 먼저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적군의 우회 병력을 맞이하러 나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콰이어 공작에게 준비하라 하게나. 그리고 일단 용병들을 보내서 병사들을 돕게 하고 자네는 기사들을 이끌고 가서 그 뒤를 지원하게나.”
“알겠습니다.”
샤이완 공작의 명령에 케니클 후작은 구겨졌던 얼굴을 펴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4국동맹의 입장에서 우회 병력을 빼면 본진의 병력이 더욱 줄어들 것인데…….”
케니클 후작이 자리를 뜨고 다시 전방을 살피는 샤이완 공작의 얼굴에는 의문이 감돌았다.
작전도 작전이지만, 전장에 병력을 투입하고 빼는 시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아무리 작전이 좋다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지휘관의 판단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작전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주도권을 내어 주게 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 4국 동맹의 고윈의 병력 투입 시기 자체는 이쪽 입장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절묘했다. 하지만, 시기가 절묘했지 투입하는 선택자체가 절묘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대군이라지만 상대적으로 병력이 적은 4국동맹이 우회를 위해 또다시 병력을 나눈다?
거기에 전면전을 걸어오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미 루키아 후작을 막으로 나선 병력이 전멸당한 시점에서 고윈의 선택은 샤이완 공작으로 하여금 의아하게 만들었다.
“루키아 후작을 막아선 부대완 달리 이번엔 승리라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건가? 아니면 차라리 선수를 쳐서 시간이라도 끄는 게 났다고 판단한 건가…….”
고윈의 의도를 짚어보는 샤이완 공작의 표정에는 여유가 묻어있었다. 그의 시선으로 빠르게 이동을 시작하는 용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중앙의 타격도 의외였지만, 어차피 고립된 병력이니 문제없을 것이야.”
블라미르가 친히 조련한 저들이라면 난전에도 익숙하고 전열을 무너트린 소수의 4국 동맹 병력정도는 금방 정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도 될 만 했다.
“그나저나…….”
샤이완 공작의 시선이 다시금 고진천이 파고든 방향으로 향했다. 그쪽으로 용병왕의 깃발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블라미르가 직접 나선 것이다.
“으음…….”
진천의 무위를 짧게나마 경험해 본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소수의 병력일지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믿는 수밖에…….”
블라미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시간은 끌어 주리라.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기병의 특성상 돌파력이 떨어져 포위라도 된다면 일반 병사들에게도 몰살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소수로는 한계가 있다.
블라미르라면 그들의 돌파력을 충분히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 * *
“히, 히익! 도망쳐!”
“밀지 말라고!”
아비규환.
양떼의 무리에 뛰어든 사자의 모습이 이러할까?
창병의 숲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고진천과 묵갑귀마대의 앞을 제대로 막아서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지금 전장은 도망치려는 병사들과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기사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앙!
“저게…….”
뒤늦게 나타난 코요 블라미르의 앞에 화려한 갑주를 한 사내가 포효하며 그의 앞을 막아선 기사를 말과 함께 절단 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그 사내가 전장에 도착한 블라미르를 힐끔 쳐다보았다.
찌릿!
‘크흣!’
블라미르는 순간 등줄기를 간질이는 듯한 자극을 받았다.
살기도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본능을 간질거리며 등줄기를 타고 흘렀던 것이다.
“저자가 가우리의 열제?”
말로 들었을 때는 믿지 못했었다.
다들 제국연합의 강자들과 한바탕 하고 난 뒤라 지쳤기 때문에 기습을 당한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어쩌면 자신의 그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강했다.
“나, 용병왕 코요 블라미르가 왔다!”
블라미르의 외침에 병사들의 눈동자에 화색이 돌았다.
그가 누구이던가?
대륙의 십인 중 일인이며 신성제국의 숨겨진 초인이 아니던가?
“와아아아!”
순간 병사들의 함성이 사방을 뒤덮었다.
높아진 병사들의 사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블라미르가 진천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상징인 성인 하나의 크기는 될법한 붉은색 거도를 천천히 진천에게 겨누었다.
진천에 대한 도발.
순간 살기들이 몰아쳐 왔다.
파파파팟!
“ㅤㅋㅡㅅ!”
블라미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졌다.
살기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핏줄이 급격하게 팽창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과 진천의 사이에 존재하던 병사들이 갑자기 머리통을 붙잡고 거품을 물고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단지 살기만으로 수십이 넘어가는 병사들이 죽어 나자빠진 것이다.
“크윽! 이게 무슨…….”
블라미르를 따라왔던 기사들도 엄청난 살기에 잔뜩 신음성들을 흘렸다. 하지만 선두의 블라미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진천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단지 가야 할 곳을 찾는지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그 대신 그의 뒤를 따라온 사천여의 기마가 일순 그들을 향해 살기를 쏘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한 몸처럼.
으드득.
“찰스.”
이빨을 강하게 깨 물은 블라미르가 자신의 제자이자 수하인 찰스를 불렀다.
“네, 대장!”
“지금 샤이완 공작에게 달려가서 우리들로서는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아니, 시간을 끄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고 보고하고 증원을 부탁하도록.”
블라미르의 말에 찰스라 불린 용병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대장,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분명 적들에게서 압박감은 있었지만, 블라미르가 이렇게 반응할 줄이야.
“당장!”
“예, 대장!”
블라미르의 일갈에 찰스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 없이 달렸다. 하지만 찰스나 기사들이 모르는 것 하나.
지금 그들이 받고 있는 살기나 압박감은 블라미르가 먼저 막아섰기에 그 정도라는 사실.
그때 주변을 살피던 진천의 시선이 천천히 블라미르를 향해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뿐,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존재는 진천의 안중에도 없었다.
“빌어먹을! 생각이 잘못된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나…….”
이제야 샤이완 공작과 그들이 받았던 충격이 이해가 가는 블라미르였다.
* * *
4국 동맹 진영에서 빠져나온 약 사만여 병력이 신속하게 우회하고 있는 가운데 마법사 하나가 바쁘게 날아들었다.
“신성제국 쪽에서 약 오만여 병력이 움직였습니다!”
“그런가?”
“하일론 장군, 그럼 이동 경로를…….”
그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사의 보고에 부관이 하일론에게 의사를 물어왔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답변을 내 주지 않고 마법사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병력을 이끄는 이를 봤는가?”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북부군단의 깃발로 보아 콰이어 공작이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헛!”
“이런…….”
로셀린과 말린 왕국 출신의 기사들과 귀족들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일론 역시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한 듯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우리가 먼저 나오지 않았다면, 저들이 먼저 우회해서 우리의 옆구리를 치고 나왔을 것이오.”
고윈에게 언급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적의 대응이 빠른 이유는 처음부터 우회를 준비하던 병력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병력을 아무나 이끌겠는가?
콰이어 공작의 북부군 깃발이 그의 출전을 간접적으로나마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신성제국 북부의 야만인들과의 전투로 단련된 북부군이야말로 우회 병력으로서 최고의 선택 아니겠는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하일론의 표정이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일론의 말에 로셀린과 말린의 귀족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되물어 왔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기대감이 서린 표정이기도 했다.
“우린 북부의 야만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야만인들을 우습게 볼 수도…….”
하일론의 자신만만한 말에 로셀린 출신 귀족이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흐렸다.
소규모로 떠돌아다니는 유목 생활을 주로 하기에 뭉치기가 어려울 뿐이지 야만인들은 거의 전부가 말과 한 몸이 되어 생활한다. 때문에 이들은 보병이 없다.
즉, 거의 모두가 기병인 것이다. 거의가 기병에 가까운 야만인들의 전투력을 쉽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일론은 이들의 걱정을 알고 있는지,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 타고 싸우는 건 북부의 야만인들이 났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그와 다르지 않습니까?”
“아!”
이제야 하일론의 말을 이해한 듯, 귀족들의 표정이 펴졌다. 그리고 그들의 뇌리에 하일론의 지난 전쟁에서 지금까지 불려온 무명을 기억해 내었다.
철벽의 하일론.
모두가 막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북 로셀린과 신성제국의 대군을 막아내며 수성전에서의 불패 신화를 만들어낸 사내였다.
“그럼 움직여 볼까?”
하일론의 말이 다시 움직이며 4국 동맹군이 빠르게 움직여갔다.
* * *
“적들의 움직임이 빨라져?”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 아무래도 적들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콰이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병력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우리 진영을 노린 상태였으니 당연하겠지. 그래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던가?”
콰이어 공작의 질문에 정찰을 다녀온 마법사가 보고를 이어나갔다.
“수도와 초원지대 외곽을 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콰이어 공작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언가를 생각 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공작 각하께서 이끄는 북부군임을 짐작한 모양입니다.”
참모의 말에 콰이어 공작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대 깃발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렇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 멀쩡히 달려 있는 깃발을 보고 그런 것도 모르면 바보지. 참 그러고 보니 적군의 장수가 누구던가?”
“그게…….”
콰이어 공작의 질문에 마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4개 국가의 깃발이 전부 뒤섞여서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던 마법사가 말을 이어나가자 콰이어 공작이 방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며 약간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우리가 바보가 되고 말았네?”
“그게 우리 탓입니까? 무명조차 없는 중소왕국 머저리들 탓이지요.”
콰이어 공작이 말에 참모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거들자 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으하! 으하하핫! 맞아! 내 탓이 아니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콰이어 공작이 적군이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군.”
“그렇군요. 기동력에서 우리에 비해 딸리는 것을 알고 좀 험한 지형을 방패로 삼으려는 모양입니다. 그쪽에는 완만한 구릉들도 있고, 나직하지만 움푹 파인 돌산도 있으니…….”
“잠깐! 적병을 잘만 몰면 도망도 못 가게 만들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참모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입을 열자, 콰이어 공작의 시선이 자연히 돌아갔다.
“초원지대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아닙니다. 지금 적들이 돌아가고 있는 방향해서 조금 더 몰면 나직한 돌산이 있습니다. 그 뒤는 낮지만 충분한 높이의 절벽이 존재하기에 적들을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놈들은 오도 가도 못 할 겁니다.”
“오호라!”
참모의 말에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지금 유리한 곳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무덤을 찾아간 것이옵니다.”
“으하하! 좋아! 무덤을 만들어 주지! 귀관이 병력 편성을 해서 적들을 목적된 지점으로 몰아갈 수 있도록 움직이게!”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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