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09
강철의 열제 509화
‘왜 안 뽑는 거지?’
백광이 작렬하는 롱소드가 마주 튕겨오는 가우리의 검수의 목젖을 향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적의 무기는 뽑히지 않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내지른 무기에 목을 들이대는 것과 같은 상황.
‘왜?’
백광이 검수의 목에 닿는 순간, 케니클 후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빼내었다.
서걱!
케니클 후작의 백광이 서린 검은 허무하게도 마주 달려오던 검수의 목을 가르며 지나갔다.
터덕 턱, 턱.
그렇게 교차한 둘.
케니클 후작의 뒤쪽으로 두어 걸음 더 걸어간 가우리의 검수에게서 짧은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아, 아깝…….”
하지만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목이 기울어지며 붉은 선이 생겨났다. 그렇게 반쯤 갈라진 가우리 검수의 목에 흐르던 동맥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푸확!
털썩.
“…….”
피가 뿜어지는 소리 그리고 힘없이 쓰러지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울려왔다.
하지만 케니클 후작의 얼굴 표정은 승자의 것이 아니었다.
주르륵.
볼을 타고 흐르는 끈적끈적하고 뜨듯한 액체.
케니클 후작은 천천히 롱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볼을 타고 흐르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손으로 닦아서 눈앞으로 가져왔다.
피였다.
“피…….”
케니클 후작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미지근한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목이 반쯤 잘려져 쓰러진 가우리의 검수의 손에는 어느새 뽑혀진 무기가 쥐여져 있었다.
만약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자와 함께 바닥을 뒹굴고 있을 것이다. 분명 자신의 검이 목에 파고들고 나서 검이 뽑혀져 나왔다.
처음부터 함께 죽기 위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손잡이만 남은 채 내장이 섞인 피를 게워내며 피식거리는 가우리의 두 검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꺼져가는 생명이었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아쉽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이런 미친…….”
케니클 후작은 자신의 이빨이 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앞선 두 명이 자신과 부딪히며 검속을 죽이고, 뒤따른 이가 목을 내주면서까지 피할 수 있는 거리를 최대한 뺏고 일격을 가하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이 이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역시!”
“우와아아아!”
순식간에 기사들을 애먹이던 세 명이 바닥에 쓰러지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환호성은 잦아들었다.
케니클 후작의 볼에 흐르는 피를 본 것이다.
“대체 이렇게 지독한 놈들이 몇이나 더 있는 거지?”
질린 얼굴로 그가 다른 방향을 살폈다.
물론 다음에는 통하지 않을 기습이었다. 하지만,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상대의 독하디 독한 일면을 본 것이다.
“후, 후작 각하!”
케니클 후작의 뒤로 달려온 마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일선을 포기하라는 샤이완 공작 각하의 명령이옵니다.”
“크윽.”
볼에 새겨진 검상이 더 아파왔다.
결국 소수의 적을 빨리 정리하지 못한 덕에 일선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변할 것은 없다.
어차피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나 마법사의 표정은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표정이었다.
“다른 말이 또 있는가?”
“우회한 부, 북부군단이 대패했사옵니다.”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볼의 상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후작 각하!”
“돌아가 보면 알겠지. 기사들은 모두 물러난다.”
충격을 빠르게 가다듬은 케니클 후작이 몸을 돌리며 자신의 말 위에 올랐다.
아직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모두 복귀…….”
드드드! 드드드!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말 위에 오른 채 복귀명령을 내리려던 케니클 후작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려졌다.
“이, 이건 뭐야!”
공기의 진동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였지만, 마치 누군가가 뒤흔들어 대는 듯한 느낌이 분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건 아까와 같은…….”
“아니야 아까와는 차원이 달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대규모 마나유동을 느꼈던 기사들이 놀란 눈으로 지금의 진동에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케니클 후작의 옆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아아…….”
마법사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릉!
마침내 땅마저 자잘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던 전장이 갑자기 일어난 이 괴사에 갑자기 조용해졌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후퇴도 잊은 채 멈추어선 케니클 후작이 이를 악물고 거대한 힘의 진동이 울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진동은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제190장 전설의 재림
드드드! 드드드!
“슈엥, 아니, 뮤 대법사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
우루의 화살이 날아오던 순간에도, 느닷없이 나타난 가우리의 비밀병기의 등장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밀리오르 황제에게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황제 폐하를 지켜라!”
그러나 밀리오르 황제의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뮤 대법사를 비롯한 탈로스와 미케인 대법사가 그의 주변으로 다가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주변을 창백하게 질린 마법사들이 둘러싸고 불안에 가득한 눈동자로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모릅니다!”
“무어라!”
뮤 대법사의 대답에 밀리오르 황제가 다시 분노에 찬 음성을 토해내었다.
공기가 진동하고 땅이 진동하는 이 마당에 대륙 최고의 현자라는 이들이 모른다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리오르 황제는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정말 그들이 알리라고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밀리오르 황제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악다구니를 지른 것이었다.
뮤 대법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무언가 차원이 다른 마나의 집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아까의 마나파동은 무언가 마법이 이루어 진 뒤에 일어난 것이었지만, 지금의 것은 그것과 달랐다.
마치 마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로…… 대마법사란 말인가…….”
이를 악 물은 뮤 대법사의 입에서 인정하기 싫은 말이 흘러나왔다.
“리셀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찾아!”
뮤 대법사의 일갈에 미케인과 탈로스 대법사의 눈이 하늘을 살피기 시작했다.
* * *
드드드! 드드드!
거대한 진동음이 울려오자 단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던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생각 할 겨를이 없을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이게 대체…….”
마법 전단원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빈틈을 노릴 만도 하였지만, 연휘가람은 굳이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만 그 역시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다만 그들과 다른 것은 그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디어 시작인 건가.”
고대의 마법을 재현하겠다는 리셀의 당당한 선언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바로 지금 그 결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후우.”
담담하게 미소를 지은 휘가람이 자신을 둘러싼 마법전단을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마법은 솔직히 자신이라 하더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 증거로 갑주라고 불릴만한 것은 이미 걸레와 같이 너덜거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마법이 스쳐지나간 곳에는 자잘한 상처들로 흉하게 변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마법사들을 상대하며 써 왔던, 투척 무기들도 없어 주변의 돌을 이용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순간 사방을 조여 오는 힘이 느껴졌다.
“이런.”
꽈드득!
“이때다!”
“홀드!”
“홀드!”
세상의 마나가 미칠 듯이 날뛰는 이 경이적인 순간에도 한눈을 파는 이가 있었나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휘가람에게로 한 마법사가 홀드를 펼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휘가람이 미처 떨쳐 내기도 전에 겹겹이 둘러쳐지고 있었다.
주변을 포위한 마법사들이 연신 홀드를 외치고 있던 것이다.
“합!”
파아앙!
휘가람이 기합성과 함께 떨쳐내기가 무섭게 다시 조여 왔다.
“이런 단단히 걸렸군.”
“스톤 월!”
그그긍!
그르르릉!
자신의 실수에 너털웃음을 흘리는 휘가람의 주변으로 홀드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바위벽을 일제히 뽑아 올리며 그를 가두었다.
“준비하라!”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마법사들이 일제히 공격마법을 외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가진바 최강의 마법을 쏟아 붓겠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삼 개 전단에 달하는 인원이 일개 개인을 상대로 고전을 하며 오분지 일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죽어 나자빠지지 않았는가?
그것도 그들이 원하던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한 마법을 사용하는 이를 상대로 말이다.
“가우리의 공작 정도 되는 이라 하였지.”
대외적인 행사를 맡았던 휘가람의 정체는 금방 알아 낼 수 있었다.
다만, 일개 문관으로 알았던 그가 근원을 알 수 없는 마법을 이용하는 강자라는 사실에 더해 일반 기사를 능가하는 무력을 겸비한 자라는 것은 수하 마법사들의 희생을 통해서야 알아낸 사실이다.
“그래도 마검사라니…….”
삼 개 전단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적진에 대법사가 존재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그저 농담처럼 이론으로만 존재한다는 마검사가 등장했으니 얼마나 놀랐으랴?
그들 입장에서는 꿩 대신 닭이라고,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였던 것이다.
“살려둘 필요 없다! 일제히 공격하라!”
화아악!
“방심의 대가가 참으로 화끈하군.”
사방이 막혀 버렸지만, 그를 향해 다가오는 강렬한 힘은 느끼고도 남았다.
아니 느끼지 않아도 바로 머리 위에 뚫린 공간으로도 커다란 화염구가 내리 꽂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防)!”
휘가람의 손에 뽑혀진 노란종이가 짧은 외침과 동시에 스스로 불타오르며 푸르스름한 방패로 변했다. 동시에 그 위로 화염구가 날아와 부딪혔다.
콰콰쾅!
“욱!”
콰쾅! 쾅!
연신 내리꽂히는 화염구에 휘가람은 연신 부적을 뽑아내며 방어의 술을 펼쳐내었다. 계속 마법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반쯤 허물어진 돌벽 따위가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었다.
“이 와중에도 발을 묶어 놓다니…….”
일부는 아직도 홀드를 시전하고 있는지 공격을 당하기 시작한 지금도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하게 봉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스럭.
“이런…….”
여유를 잃지 않던 휘가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끝없이 나와도 모자랄 부적이 이제는 한 장만 남은 것이다. 그마저도 다시 날아온 공격마법을 막아내며 다 써버렸다.
“정말 죽겠군.”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부적을 보며 씁쓸한 음성을 흘렸다.
이어 반쯤 허물어진 돌 벽 사이로 날아드는 수많은 화염덩어리들을 보며 그답지 않게 짧은 욕설을 내뱉었다.
“훗, 누구 말마따나 우라질인 건가.”
콰콰콰콰쾅!
더 이상 푸른 방패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휘가람의 머리 위로 수십 여 개의 화염덩어리가 격렬한 폭발음을 만들어내었다.
* * *
“조, 조금만 더!”
우우우웅!
사방이 진동하고 있는 가운데 남겨진 4국 동맹의 마법사들은 거대한 바위들이 쌓인 마법진에 마력을 줄기차게 주입하고 있었다.
마법진을 타고 흐르는 빛이 마치 불길처럼 날름거리며 휘감는 가운데 점차 마법진이 있는 곳이 미칠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드!
“더 힘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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