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23
강철의 열제 523화
제197장 전투의 끝
팔뚝을 타고 붉은 핏물이 흐른다.
또옥. 똑.
“크으으으.”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소리.
그 짐승의 안면에 박힌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일렁였다.
“개새끼간? 어서 으르렁 거리는 기야.”
을지우루.
그가 한손에는 활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화살을 들고 있었다.
반면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이는 바로 루키아 후작이었다.
무언가가 거칠게 후벼 판 듯 그의 어깨에는 한 움큼의 살덩어리가 비어있었다. 그 위로 길을 잃어버린 핏물들이 끊임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타아!”
웅크리고 있던 루키아 후작이 자신의 롱소드를 우루가 있는 곳을 향해 뿌렸다.
허연 냉기가 롱소드를 뿌린 방향으로 빠르게 내리꽂혔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을 우루는 이미 몸을 피한지 오래. 그러나 루키아 역시 그가 맞으리라고 생각하고 한 공격이 아니었다.
거리.
우루와 그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기습이었다.
궁사와 검사.
루키아에게는 지금 우루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치명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성벽도 무너트릴 거력을 담은 롱소드가 휘둘러졌을 때 튕겨나갔어야 할 화살이 회전하며 뱀처럼 기어 올라와 그의 어깨를 뜯어가 버렸다. 그리고 옆구리의 갑주와 허벅지의 갑주 또한 더 이상 몸을 보호하는 용도로는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쩡!
“크윽!”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자신이 달려 나간 방향으로 언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이 달려들었다.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 개의 점.
퍽! 퍼퍽! 퍼억!
“크아아아악!”
한 마리 짐승 같던 루키아 후작이 무너져 내렸다.
한발은 그의 허벅지에 박혔고, 한발은 롱소드를 잡은 오른팔에 그리고 마지막 한발은 옆구리에 주먹만한 구멍을 만들고 사라졌다.
“쿨럭.”
붉었던 동공이 되돌아왔다.
털썩.
굽힐 줄 모르던 루키아 후작의 무릎이 무너지며 땅위로 무릎을 꿇었다. 어깨는 힘없이 쳐졌고, 고개는 물먹은 솜처럼 쳐졌다.
“크으으으.”
세대의 화살을 날려 보낸 우루가 천천히 활을 내렸다.
“이 날을 그토록 기다렸는데 말이디.”
쓸쓸한 음성을 내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내래 마음의 한구석이 여전히 뻥 뚫려있어야.”
복수는 허망하다고 그랬는가?
천천히 좁혀지지 않던 거리가 루키아 후작이 무너짐으로 해서 처음으로 좁혀졌다.
“크허억! 우욱!”
루키아 후작의 몸이 수축이 되며 핏물이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구멍 뚫린 옆구리에서 솟구친 핏물이 위를 타고 역류하였나 보다.
우루는 자신의 앞에서 부르르 떨며 핏물을 게워내는 루키아 후작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하길 바랐건만, 잔뜩 품은 독기와는 반대로 지금의 모습은 너무도 꼴사나웠다.
“끄으으으…….”
활에 또 하나의 화살이 재어졌다.
그 화살은 루키아의 정수리를 향했다.
“저승에 가거든 부루에게 한 번 더 뒈지라우.”
“큭큭큭큭!”
미친 듯이 울려오는 루키아 후작의 기괴한 웃음소리와 쉼 없이 들썩이는 어깨.
“썅!”
콰직!
몸을 뒤로 튕기며 날린 화살이 활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부러져 나갔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냉기.
우루의 화살을 잘라내며, 그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 루키아의 눈동자에는 붉은 광체가 되돌아와 있었다.
그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우루의 코앞에서 속삭였다.
“드디어 잡았다.”
* * *
은빛물결.
황가를 수호하는 근위기사단의 선두에 선 샤이완 공작의 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바삐 움직인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신성제국의 황제 샤우 환 밀리오르의 앞이었다.
“폐하…….”
“…….”
고개 숙인 샤이완 공작.
그 앞에 거대한 마차위에 놓은 화려한 의자에 앉은 밀리오르 황제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붉디붉은 포도주를 담은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렇게 한잔 또 한잔이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비어버린 잔이 그 쓰임새를 다했다.
쨍그랑.
샤이완 공작의 발밑에 떨어져 내린 유리잔이 깨어지며 유리파편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었다.
“일단 병력을 뒤로 물리어 다시 정비를 해야 할 듯하옵니다.”
“…….”
여전히 대답은 없다.
“폐하…….”
슈엥 공작이 밀리오르 황제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도망치란 말인가?”
전방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밀리오르 황제의 입이 열렸다. 너무도 노골적인 음성에 샤이완 공작이 말문을 닫았다.
“적은 준비를 충분히 해왔었고 우리는 준비가 모자랐음이옵니다.”
조개처럼 입을 다문 샤이완 공작 대신 슈엥 공작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었을 뿐이다.
“난전에서조차 밀리는 건가?”
그제야 밀리오르 황제의 시선이 고개를 숙인 샤이완 공작을 향해 움직였다.
“솔직히 지금 전황을 자세히 살피기 어려운 점이 있사옵니다. 콰이어 공작이나 케니클 후작등과 연락이 되지 않는 점도 있고, 적들의 의도가 황제폐하께 있음이 명확해진 상황이오니…….”
말을 하는 샤이완 공작의 뒤로 검은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 수가 줄었던 이들이 다시금 불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아군의 진영과 적군의 진영이 이제는 구분되어지지 않았다.
콰콰콰콰콰!
커다란 진동이 황제의 뒤쪽에서 울려나왔다.
마법사들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모두가 밀리오르 황제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의심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 자체를 누가 생각했는가?
“물러서야 합니다. 지금은 기세가 높아 저들이 저리 달려들 뿐이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 있사옵니다. 저들이 목표로 한 황제 폐하가 이곳에서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적들의 동요 또한 끌어 낼 수 있사옵니다. 이것은 그저 후퇴가 아닌 작전이옵니다.”
샤이완 공작의 말에 밀리오르 황제가 침묵에 빠졌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저들은 이 일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붇고 있었다.
또한 지금까지 신성제국과 제국연합과의 전쟁 사이에서 충분한 이득을 취하며 기다려 온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이곳은 엄연한 제국의 심장부다.
“샤이완 공작.”
“예, 폐하.”
밀리오르 황제가 그를 향해 고저 없는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 전투가 끝나면 그대는 더 이상 제국의 공작이 아님을 미리 말하지.”
샤이완 공작의 뒤에 늘어선 근위기사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동요가 일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샤이완 공작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알겠사옵니다.”
“다음에 이루어질 전투에서 부터는 일개 병사로 최선두에서 똥통에 처박힌 신성제국의 명예를 다시 세우도록.”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의 과오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어 반드시 대 신성제국의 대륙통일의 초석이 되겠사옵니다.”
수도군단의 총 사령관이자 한 나라의 공작에서 일개 병사로 지위가 추락하는 불명예 임에도 샤이완 공작은 고개를 숙이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미 예상했을 것이다.
“아울러, 북부군단의 콰이어 공작 역시 후작으로 그 직위를 한 단계 내릴 것이니, 돌아오면 전해 주도록 하게 슈엥.”
“알겠습니다.”
슈엥 공작을 향해 콰이어 공작의 작위 강등을 명하고는 밀리오르 황제가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오늘은 악몽을 꿀 것 같군.”
밀리오르 황제의 눈이 감겼다.
“황제 폐하를 모셔라!”
샤이완 공작의 명령에 근위 기사단들이 마차의 좌우로 빠르게 다가가 섰다. 이어 시종들이 황제의 마차를 끄는 말들을 이끌고 천천히 방향을 틀어갔다.
그때 후방에서 난데없는 함성 소리가 울려 퍼져왔다.
와아아아아!
의자에 몸을 기대며 몸을 묻었던 밀리오르 황제조차 감았던 눈을 부릅뜰 정도의 함성이었다. 그 함성은 그들의 전진기지에서 울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뒤쪽으로 치우쳐 내린 전진기지에서 저런 함성을 내지를 병사가 있을 리 없다.
그것을 떠나 있더라도 병사를 부른 적 또한 없었다.
멀리서 수만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보이지 말아야 할 깃발들이 보였다.
삼족오를 비롯한 4국 동맹의 깃발들이었다.
* * *
신성제국의 후방에 나타나 당당히 존재감을 외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콰이어 공작의 북부군단을 패배로 몰아간 이들이었다. 그 선두에 하일론이 병사들을 이끌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겨오고 있었다.
“보았느냐! 저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우와아아아!”
하일론의 한마디에 병사들이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질렀다.
북부군단을 완벽하게 괴멸시키며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들이었다. 그들의 함성을 들으며 하일론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가자! 황제의 꽁무니에 불을 지르러!”
보무도 당당하게 하일론과 삼만여 병력이 천천히 신성제국의 후미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연휘가람의 은발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함성소리.
“하일론인가?”
우렁찬 함성소리가 울려오는 곳에서는 보란 듯 삼족오기와 로셀린, 하이안, 말린 왕국의 깃발들이 좌우로 힘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좋군.”
빙긋 미소를 머금은 휘가람이 천천히 엉덩이를 때며 일어섰다.
그의 엉덩이 밑에는 로브를 입은 체 사지가 꺽이고 비틀린 마법사들의 시신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기지개를 피며 좌우로 몸을 뒤튼 휘가람이 시선을 잠시 돌렸다.
그곳에는 여전히 삼현자와 힘을 겨루는 리셀이 있었다.
그곳을 보며 잠시 고민하듯 바라보던 휘가람이 픽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뭐, 끼어들기도 뭣하고…….”
리셀을 믿었다.
“그럼 마중을 나가볼까.”
걸음에 힘이 실렸다.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수많은 이의 피를 뿌리고 다녔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손에 묻힐 피였기에 기꺼이 묻히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아니 그보다 더한 당당함을 가진 사내를 맞이하러 휘가람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지존인 고진천을 맞이하러…….
* * *
을지우루의 활줄이 루키아 후작의 목을 휘감았다.
까드드득!
“크아아아!”
우루가 괴성을 지르며 활을 쥔 손을 뒤틀자, 루키아 후작의 목을 감은 활줄이 감기며 살을 파고들었다.
“큭!”
루키아 후작이 목을 감은 활줄을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이미 살속으로 파고들은 시위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로 올라가는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 올랐다.
팔을 허우적거리던 루키아가 갑자기 고통을 자초하며 목을 앞으로 밀었다. 뒤에서 시위로 목을 감아 당기는 우루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투학!
“크허어어!”
단단한 활줄이 뜯겨져 나갔다.
벌어진 틈 사이로 루키아 후작이 칼날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루키아 후작은 앞으로 튕겨 나갔고, 우루는 끊어진 활대를 붙잡은 채로 뒤로 튕겨 나갔다.
쿠당탕!
“크윽! 빌어먹을 아새끼!”
얼굴이 만신창이로 변한 우루의 온몸에 상처가 그득했다.
한번 거리를 좁힌 루키아 후작은 악착같이 더 달라붙었다. 떨어지면 자신의 패배임을 알고 있던 탓이다.
그랬기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던 것이다.
죽고도 남을 상처를 입고 그렇게 움직일 줄 몰랐던 우루로서는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그 능력이 특출하다 하더라도 검을 들고 평생 수련해온 루키아 후작을 쉽사리 상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지금 그는 무기조차 없지 않은가?
“큭. 기분이 어때.”
“더럽구만 기래.”
목을 매만지며 일어선 루키아 후작이 롱소드를 끌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붉은 눈동자가 생명을 담보로 태우는 촛불처럼 번뜩였다.
“전귀에 스스로 맡기다니 내래 방심했구만…….”
우루는 자신의 방심을 질책했다.
스스로 자신을 전귀에게 허락하며까지 싸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롱소드를 타고 퍼런 귀화가 일렁였다.
차갑던 그의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아니 차가운 것은 여전했지만 그 성질이 바뀐 것이다.
뼈까지 시린 죽음의 불꽃.
“저기 멋모르고 죽어 나자빠진 놈과 함께 손잡고 올라가라고. 형제상봉을 도와 줄 테니.”
우루가 고개를 돌려보니 부루의 대부 자루를 그러쥐고 엎어져 있는 아빌런의 시신이 보였다.
“간뎅이…….”
우루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다가오는 루키아 후작의 위협 따윈 신경쓰지 않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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