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28
4화 범인의 정체는 밝혀졌다
“끄으윽…….”
“뭐, 용감해서 좋긴 한데…….”
자신의 일격에 몸통이 반쯤 잘린 채 무너져 내리는 적을 보며 계웅삼은 입맛을 다셨다.
“쓰읍.”
웅삼은 방금 전 쓰러진 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적이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도주한 자도 없었다.
그들은 수장이 죽었음에도 끝까지 덤벼들다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그 와중에 공녀 일행도 힘을 내서 분전을 했지만 적들 역시 악착같이 덤비는 바람에 더 피해를 입어 열이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휘리릭!
웅삼은 장도에 맺힌 피를 뿌려내고 적병의 시체에서 옷을 잘라 도 날을 닦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거 참…….”
웅삼은 아직 장도를 집어넣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덤벼드는 적은 처리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쪽이 아군인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공녀 일행 역시 적들이 모두 쓰러졌음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임시로 상처를 동여맨 카마쉬가 공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대표로 질문을 던졌다.
잔뜩 긴장한 채 어정쩡하게 무기를 들고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빈손이었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카마쉬 님!”
빈손으로 다가가는 카마쉬를 보자 수하 중 하나가 걱정 섞인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어차피 상대도 안 되는데 칼 붙들고 뭐하냐? 겨누려면 제대로 겨누든지, 쯧.”
카마쉬라 불린 사내가 뒤돌아보며 인상을 썼다.
그의 말대로 공녀와 남은 기사들은 웅삼에게 무기를 겨누지도, 그렇다고 적의가 없음을 알리듯 거두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때 이실라 공녀가 검을 닦고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 집에 집어넣었다. 주변의 기사들은 아직도 어찌해야 하는지 상황 판단이 안 되는지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이실라 공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해? 정리 안 할 거야?”
“고, 공녀님!”
“내가 할까?”
이실라 공녀가 인상을 쓰며 팔을 걷어붙이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기사들도 정신을 차리며 하나둘씩 무기를 집어넣고, 동료들의 시신을 거두기 시작했다.
몇몇은 쓰러진 적들 중 살아 있는 이가 있나 확인했다.
자신들과 싸우던 이들 중 몇몇이 가느다랗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웅삼과 맞붙었던 상대 중 살아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죽은 것이다.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잠시 말을 흐리던 웅삼이 뭔가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없네.”
웅삼은 편히 말을 놓았다.
언뜻 보기에는 카마쉬보다 웅삼이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웅삼은 당당하게 행동했다.
마치 ‘늬들 내가 살려준 거 알지?’라는 듯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질문 드린 것에 대해서는 아직 대답이…….”
“가우리.”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다시 상기시키던 카마쉬의 귓가로 공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우리?”
“그래, 가우리라는 곳에서 왔대.”
“맞소이다.”
웅삼이 공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명입니까?”
카마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웅삼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자 이번에도 대답은 공녀에게서 나왔다.
“아니, 국명 같아. 저 사람…… 아니, 은인이라고 해야겠지. 어쨌든 그랬어. 대 가우리라고 말이야. 보통 가문명이나 지명에 ‘대’라는 말은 안 쓰잖아.”
그녀의 대답에 웅삼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카마쉬는 그런 웅삼의 미소를 보고 그녀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물론 그 미소가 왠지 찜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곳에 오길 잘했어…….’
계웅삼은 흡족했다.
난데없이 칼질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 눈앞의 여인이 마음에 꼭 들었다.
‘원래 남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이성으로서 느껴진다는 것 아니겠어?’
공녀는 웅삼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시선에 대해 웅삼은 확신했다.
자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라고 말이다.
판단은 빨랐고 그에 대한 대응은 더 빨랐다. 웅삼은 가슴을 좀 더 펴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살며시 시선을 빗겨 내리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휘가람 그 양반의 이 표정은 그야말로 필살기였지.’
이거다! 이거였다!
연휘가람이 살짝 고개를 치켜든 표정으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을 때면 지나던 여인들이 휘청거리며 우수수 쓰러져 내렸다.
웅삼은 그 모습을 완벽 재현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먹힐 것이다!’
이실라 공녀는 웅삼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슬쩍 쳐드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가리 쳐들고 뭐하는 거지? 느끼하게.’
일단 구해준 이에게 그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어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 * *
“없습니다!”
“없어요!”
시종들이 진땀을 흘리며 나돌아 다니고 있었고, 그 가운데 리셀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뭐, 뭐가 잘못된 거였을꼬.”
“분명 열제께서 실험용 마나석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인가?”
비교적 침착한 모습의 연휘가람이 질문을 던지자 한쪽에서 울상을 짓고 있던 마법사가 대답을 했다.
“예……. 한번 보자고 하셔서……. 그, 그런데 그것은 이번 실험에는 쓰지 않는 순번의 마나석이었습니다. 진짭니다!”
“으음.”
연휘가람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거짓은 아닐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고진천의 성격상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저번에는 궁금하다고 마나석을 쪼개보기까지 했었다.
물론 리셀은 울었다.
마나석은 쪼개지면 똥값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치갔구만 기래.”
그때 을지우루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연휘가람이 서둘러 정찰 결과를 물었다.
“주변은?”
“아무 곳에도 없습네다.”
털썩!
주변 정찰을 나갔다 온 을지우루의 대답에 리셀이 멍한 표정을 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내가 열제 폐하를 날려 버리다니…….”
조금 전 실험 후에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 중 몇몇에게서, 가운데의 마법진이 발하는 빛 말고 작은 두 개의 기둥이 하늘로 치솟은 것을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종합해 보건대 그 두 빛이 고진천과 계웅삼 두 사람의 실종과 관계있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때 다급한 음성이 울려왔다.
“마, 마법진에 이상이 있습니다!”
“무엇이!”
마법진을 살피던 한 마법사의 외침에 리셀이 벌떡 일어서서 달려 나갔다.
마법사들을 헤치고 문제의 장소에 도착한 리셀이 마법사가 알려온 부분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던 중 리셀의 눈이 소눈깔마냥 커졌다.
“이, 이건?”
“여기 영역을 지정하는 마력 숫자와 순번을 지정하는 마력 숫자가 엉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역은 마법진 안쪽으로만 제한해야 하는데 마법진 주위까지 미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연이어 마법진의 오류들이 보고가 되자 리셀은 하늘이 빙빙 도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숫자 역시…….”
숫자가 잘못되었다는 보고에 뒤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마법사가 그것을 보곤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그 마법사는 진천에게 마나석을 넘겨줬다던 이였다.
“아, 아아아아아!”
그렇게 한 단어만 길게 뱉어낸 마법사는 모로 나자빠졌다.
얼굴은 경직되고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것이 강한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이 분명했다. 그 행동 하나만으로 마법사가 진천에게 넘겨준 마나석이 이 숫자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이게 자, 잘못되었을 리는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때 이 부분의 마법진을 담당했던 마법사가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여기 목책이…….”
그때 또 다른 음성이 울려왔다.
부여기율이었다.
“목책이 어케 됐다는 말이네?”
“이렇게…….”
우루의 말에 기율이 목책을 슬쩍 밀었다.
트트ㅤㅌㅡㅇ!
살짝 밀었음에도 목책의 일부가 힘없이 기울어졌다.
콰앙!
그러고는 뽀얀 먼지를 피워 올리며 자빠지는 것이었다.
자빠진 목책을 보며 우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가 있었다니! 경계를 어케 한 거간!”
이로써 외부의 침입이 있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실험은 그야말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인근에 출입이 가능한 것도 물론 그에 해당되는 이들뿐이었다.
이때 쪼그리고 앉아 목책을 살피던 기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응? 여기에 발자국이 있는데요?”
“목책에?”
우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기율이 바닥에 나자빠진 목책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여기.”
기율의 말에 모두가 몰려들었다.
목책의 일부를 가운데에 두고 둥그렇게 모여든 그들의 눈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이 보였다.
“…….”
“이거 뭐지요?”
이것 때문에 목책이 부서졌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침입을 하려면 목책을 넘을 수도 있고 이음새를 잘라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그냥 걷어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목책을 걷어차서 통째로 뜯겨 나가도록 만들 수 있는 이는 드물었다.
그때 우루가 열을 내며 말했다.
“기율이! 이걸 들고 다니며 전부 발을 대보라우! 언놈인지 맞춰보면 답이 나올 기야!”
“어느 세월에…….”
길길이 날뛰는 우루를 보던 기율이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탁 내쉬었다.
“저, 혹시…….”
그때 한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목책을 살피고 있는 리셀에게 질문을 해왔다.
“무언가?”
“아까 그 마법진이 변형된 곳에서 지린내가 좀…… 뭔지는 모르지만 이게 단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가 보지.”
리셀이 다시 몸을 돌려 마법진으로 향했다.
물론 그의 뒤를 따라 일행들도 다시 우르르 몰려갔다.
그때까지 마법진을 살피던 마법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역 부분과 순번 부분이 고쳐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다시 쓴 것입니다.”
이미 분석을 끝낸 마법사의 보고에 리셀이 침중한 표정으로 그것을 살폈다. 이 부분에 손을 댄 흔적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아까 자신이 확인했을 때에는 문제없었다고 했던 마법사가 다시금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이, 이럴 수가…… 저, 절대 제가 고친 게 아닙니다!”
그때 우루가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 이거이 오줌으로 그리거나 고치는 겁네까?”
“그럴 리가 있겠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리셀을 보곤 우루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여기만…….”
과연 보고대로 마력 숫자와 영역 숫자가 적혀진 곳에서는 누가 맡아봐도 확신할 수 있는 진한 오줌 냄새가 나고 있었다.
“큼.”
우루가 이 부분을 담당했다던 마법사를 슬쩍 흘겨보자 반응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전 절대로 싸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즘 나이가 들었는지 오줌을 싸도 찔끔찔끔 흘리는 정돕니다! 진짭니다! 어흐흐흑!”
아까 그 마법사가 울상을 짓더니 다시금 결백을 주장하며 항변했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우루가 리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마법으로 살필 수는 있겠습네까?”
“흔적은 살필 수 있지만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네. 대지의 마법 중에 일부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있다고는 들었네만 그 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소실된 영역이라…….”
“후우.”
그때 휘가람이 한숨을 푹 쉬며 한걸음 나섰다.
“제가 해보지요.”
“예?”
휘가람이 나서자 리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마법과 다른 학문인 주술을 쓰는 것을 알고 있는 리셀은 내심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방법이 있으니 나섰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휘가람이 쓰는 것은 주술이 아니었다.
바로 정령화였다.
휘류우우우!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어디선가 습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동시에 휘가람의 은발이 하늘하늘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그의 발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정신을 집중하던 휘가람이 씁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오줌 가지고 이 짓을 할 줄이야…….”
“…….”
자조 섞인 휘가람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아무도 위로의 말을 건네주지 못했다.
스스스!
그때 오줌이 뿌려졌을 곳으로 보이는 데서 수분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그동안 날이 습한 덕에 완전히 말라 버리지 않았습니다.”
휘가람이 안도의 숨을 쉴 때 즈음에는 수분들이 꽤 뭉쳐져 있었다. 그 수분들은 스스로가 오줌임을 증명하듯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기억을 펼쳐라!”
휘가람이 명령하자 노랗게 뭉쳐진 것이 마치 사람처럼 변했다. 하지만 워낙 작은 탓에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손바닥을 세워 놓은 크기의 사람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마법진 주변에 서서 오줌을 싸는 시늉을 했다.
“…….”
모두가 침묵했다.
“저거 혹시…….”
그때 기율이 오줌 인형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살짝 휘어 올라간 작대기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가우리에서 이렇게 생긴 병기를 쓰는 이들 중 이런 과감성 있는 사고를 저지를 만한 이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켜보는 동안 오줌을 싼 오줌 인형은 허리춤에서 휜 작대기를 꺼내 바닥에 뭔가를 그리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우루가 허연 이를 드러냈다.
“썅간나 아새끼래, 뼈째 갈아 마셔 버리갔어!”
* * *
“뭐, 뭐지!”
말을 타고 가던 계웅삼이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심지어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서 이미 축축할 정도로 젖어들어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실라 공녀의 수하 중 하나가 다가와 걱정 섞인 표정으로 묻자 웅삼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지만, 이마에까지 배어 나온 땀방울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뭔가 문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실라 공녀의 수하는 그가 타말과의 전투에서 뭔가 후유증이라도 얻은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담긴 한마디를 하고는 되돌아섰다.
멀어지는 이실라 공녀의 수하를 바라보며 웅삼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뭐가 이렇게 불안하지.”
웅삼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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