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36
12화 타이탄 일족
“대전에서 난동을 부렸다지?”
마주 선 이에게서 나온 질문은 전혀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게 뭐야…….”
계웅삼이 움찔했다. 충격적인 장면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타난 이들을 본 웅삼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익숙한 실루엣.
남들 위로 자랄 때 마치 좌우로만 자라난 것 같은 떡 벌어진 덩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리부리한 눈매까지 그가 아는 이들과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은 머리 색깔이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이 아닌 갈색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잠시 충격을 받았던 웅삼이 혀를 차며 말했다.
“허, 누가 보면 그 양반들 친족인 줄 알겠네…….”
을지우루와 을지부루.
이들은 그들과 판박이였다.
물론 가우리에도 드워프가 있었지만, 그들은 우루나 부루에 비해 결정적으로 머리 하나 크기의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보여주는 단단함에는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느낌상 그 드워프들이 숙련된 장인의 탄탄함이 느껴졌다면 이들은 전사로서의 탄탄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들을 보고 웅삼이 반가웠던 것은 그들의 무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를 들고 있었다.
물론 부루가 쓰던 그것보다는 작았지만, 이들의 것도 충분히 컸다. 부루와 다른 점은 도끼와 별도로 몸통을 다 가릴 만한 크기의 둥근 방패를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답이 없군.”
부리부리한 눈이 자신에게 향하자 웅삼은 몸이 저절로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랜 시달림이 몸에 밴 탓이었다.
“이실라 공녀를 구해준 은인이자 가우리라는 곳의 귀족이지.”
바사 론 카말 공왕이 친절하게 소개를 해주자 타다르 백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실라 공녀를 구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오.”
커다란 음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웅삼은 여전히 다소 어색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지요.”
“하나 대전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들었소이다.”
조금 말을 섞자 이제야 좀 익숙해진 웅삼이 편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요.”
이런저런 일이라 언급하면서 웅삼의 표정은 다시 변했다.
그 역시 여기서 밀릴 생각은 없었다.
“서로 간의 잘잘못을 떠나 순수하게 그대와 겨루고 싶소. 허락해 주시겠소?”
거친 음성과는 달리 예의 바른 모습에 웅삼은 쓴웃음을 지었다.
외모는 비슷했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였다면 도끼부터 날렸을 것이다. 이성보다 빠른 행동력 때문에 종종 진천에게 끌려가고는 했었다.
웅삼이 옆구리에 달린 장도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이 자리에 나온 이상 피할 생각은 없소이다.”
웅삼의 대답을 들은 타다르 백작이 바사 공왕을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다.
“신이 먼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리 하시게, 아우님.”
“그럼…….”
바사 공왕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타다르 백작이 몸을 푸는 듯 도끼를 휘두르며 방패를 쥐고 연무장 한가운데로 나섰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웅삼이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준비되었소이까?”
타다르가 걸걸한 음성으로 웅삼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천천히 장도를 뽑았다.
스르르릉.
차가운 금속음이 울리며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검신이 드러났다.
잘 손질된 은빛의 검신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으음.”
타이탄 족이 전사의 일족이라 불리지만 그 역시 드워프의 한 갈래였다.
물론 일반 드워프들에 비해 전투 쪽으로 발전한 탓에 장인으로서의 솜씨는 부족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드워프는 드워프인 것이다.
그 눈썰미가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
타다르 백작은 웅삼이 꺼내든 장도를 보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쉬람 후작이 야만인 운운했다는 소리도 전해 들었지만 그가 지금 뽑아든 장도와 더불어 몸에 걸치고 있는 갑주는 결코 야만인 소리를 듣는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도로 발전한 형태의 무구였다.
타다르 백작이 그를 살피고 있는 사이 웅삼이 장도를 내보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준비가 됐다는 의미.
타다르 백작은 그에게 방패가 없는 것이 걸려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였다.
“방패가 없다면 내어 드리리다.”
“방패라면 여기 이것을 씁니다.”
웅삼은 왼팔에 달린 작은 완갑을 들어 보였다.
방패라 부르기에는 작은 크기의 보호구였다.
웅삼의 대답에 타다르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를 경시하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소울아머를 입은 검호를 맨몸으로 격파했다는 소문이 아니더라도, 지금 풍겨 나오는 기세를 보면 웅삼이 충분히 이 자리에 설 만한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시작들 하시게.”
바사 공왕의 말이 떨어지자 연무장은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소울아머를 입은 이를 단신으로 격파했다는 웅삼의 무위가 진짜일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그런 그와 공국의 절대적 강자 중 하나인 타다르 백작의 승부 역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작은 타다르 백작이었다.
“후웁!”
콰앙!
타다르 백작이 땅을 박차자 단단하게 다져진 연무장 바닥이 움푹 패여 나갔다.
부와아악!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거칠게 울려왔다.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파공음이었다.
마치 일격에 두 쪽이라도 내려는 듯 수직으로 내리그어지는 도끼질을 보면서도 웅삼은 장도를 늘어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위, 위험한 거 아니야?”
모두 걱정스런 눈빛을 보일 때 웅삼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동시에 강렬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쩌엉!
“으음!”
타다르 백작의 입에서 놀란 기색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산이라도 갈라 버릴 듯했던 일격이 막혔다. 아니, 막힌 것을 떠나 내리그어졌던 도끼가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마찬가지로 늘어트려져 있던 웅삼의 장도도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타다르 백작의 일격을 웅삼이 올려쳐 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이실라 론 카말 공녀가 입을 떡 벌렸다.
웅삼의 전투를 보았던 그녀로서는 그가 빠른 속도로 공격을 피한 뒤, 반격을 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면으로 공격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웅삼의 장도는 타다르 백작의 묵직한 대부와는 달리 한 뼘도 안 되는 두께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진 것이었다. 게다가 타다르 백작이 거력의 소유자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타다르가 휘두른 도끼의 위력이 발휘되기 직전에 빗겨 쳐올린 것이다.”
“아, 어쩐지…….”
그녀의 의문을 해소해 준 이는 바로 바사 공왕이었다.
바사 공왕의 말에 이실라 공녀는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설명을 해준 바사 공왕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빗겨 쳤다지만, 분명 힘으로 타다르의 공격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야…….’
바사 공왕의 표정은 좀 더 신중해졌다.
한편 타다르 백작은 도끼를 타고 올라 손을 찌르르 울리는 충격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단순히 속도만으로 쳐낸 것이 아니군!’
빠른 속도로 힘을 이겨낸 일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힘도 겸비했다는 의미였다.
그때 웅삼이 한 걸음 물러서며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다르긴 하군.”
이번 그의 공격에서 웅삼은 부루의 일격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분명 힘은 강력했지만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담는 부루의 일격에는 못 미쳤다.
그는 방패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낸다는 의미였다.
반면에 타다르 백작은 도끼가 튕겨 오르는 동시에 방패를 가져와 몸통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럼 받았으니 돌려줘야지.”
웅삼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동시에 하늘로 올라갔던 그의 장도가 은빛 궤적을 둥글게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반 바퀴를 돈 시점에서 그 궤적이 사라졌다.
콰앙!
“웃!”
콰쾅! 쾅! 쾅!
웅삼이 춤을 추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춤사위 속에서 쏘아져 나온 은빛의 빛줄기는 타다르 백작의 방패를 거세게 두들겼다. 그 빛이 방패에 와 닿을 때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타다르 백작은 빙글빙글 돌며 방어에 열중했다. 웅삼은 마치 몸을 반 바퀴씩 돌리며 좌우로 맴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 동작 자체만으로 봤을 때에는 빈틈이 커 보였다.
하지만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 빈틈을 노릴 수가 없었다.
일단 공격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분명 상대는 하나인데 공격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도끼가 중병기인 덕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방어만 하다가 끝낼 수 없지.’
고민은 짧았지만 행동은 빨랐다.
콰콰콱!
단단했던 방패가 너덜거리며 불똥을 튕기고 있었지만, 타다르 백작은 방패가 가진 방어력을 믿고 전진해 나갔다. 방패가 가진 이점을 믿고 밀어붙인 것이다.
순간 타다르 백작의 눈이 빛났다.
“우라차!”
채앵!
그가 방패를 휘둘러 웅삼의 장도를 쳐낸 것이었다.
웅삼의 한쪽 팔이 살짝 들려진 틈을 타 그가 자신의 도끼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발?”
쩌억!
도끼보다 빠르게 날아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웅삼의 발이었다. 장도가 튕기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서 발로 타다르의 얼굴을 후려 찬 것이었다.
“어억!”
웅삼의 발길질에 맞은 타다르 백작의 볼살이 맞은 방향으로 쏠렸다. 하지만 그의 도끼는 웅삼을 향해 휘둘러졌다.
부와악!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발로 타다르 백작의 얼굴을 걷어찬 웅삼의 몸이 가로지르는 도끼를 타고 넘듯 붕 떠 있었다.
의외의 일격을 당했지만, 상대가 허공에 뜬 이상 더는 피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타다르 백작이 몸을 한 바퀴 돌려서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전진해 나갔다.
“이건 또…….”
하지만 전진하면서 도끼를 휘두르려던 타다르는 재빨리 방패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터터텅!
동시에 울리는 타격음들.
타탁!
그 타격에 밀리듯 한두 걸음 뒷걸음질을 친 타다르가 멍한 표정으로 방패를 살폈다.
“손도끼?”
방패에는 웅삼이 허공에서 날려 보낸 손도끼 세 개가 박혀 있었다. 만약 막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타다르 백작의 온몸에 틀어박혔을 것이다.
그때 웅삼이 방패를 향해 달려왔다.
“이익!”
방패로 몸을 다시 가리는 순간, 그는 마치 거대한 공성병기로 몸을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떠어엉!
“크으윽!”
타다르의 두 발이 허공에 붕 뜬 채로 날았다.
그렇게 네댓 걸음의 거리를 날아가고도 모자라, 그 힘을 해소하지 못한 채 뒤로 대여섯 걸음을 더 물러났다.
“빌어먹을 상황이군.”
물러섰던 타다르가 방패를 내려다보았다.
방패에는 선명한 족적이 찍혀 있었다. 웅삼이 몸을 실어 발로 밀어 찬 것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릅니다.”
타다르 백작이 딱딱해진 표정으로 방패 너머를 바라보았다.
웅삼이 웃고 있었다.
“아…….”
이실라 공녀는 웅삼을 보며 넋이 나가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처음의 공방을 제외하고서는 타다르 백작이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타다르 백작이라면 소울아머를 입은 이도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전사였다. 그런 그를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강자와 싸우는 법을 아는 이다.”
바사 공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이실라 공녀가 고개를 돌려 바사 공왕을 바라보자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최소한 타다르 이상의 힘을 가진 이들과의 싸움 경험이 있다는 거다. 실전적인 움직임도 대단하지만 특히나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다.”
“그렇군요. 대단한 힘이에요.”
“아니, 대단한 것은 힘이 아니라 힘을 폭발시키는 시점인 것 같구나.”
“시점이라니요?”
바사 공왕이 웅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을 이어갔다.
“상대방의 힘이 최고조로 이르기 전에 자신이 낼 수 있는 강한 힘을 순간적으로 터트리는 거지. 상대방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끔 말이다.”
“하지만 힘이라면…….”
이실라 공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문을 제기하려 했지만, 바사 공왕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분명 힘은 타다르가 좀 더 우위에 있을 것이야. 하지만 타다르는 자신의 힘을 제대로 폭발시키지는 못하는 반면 저 웅삼이라는 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힘을 터뜨린다는 거지.”
“서, 설마…….”
바사 공왕의 설명을 듣던 이실라 공녀의 눈동자가 크게 변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지금 웅삼은 타다르 백작을 훨씬 압도하는 실력자라는 의미였다.
바사 공왕이 설명한 방법은 상수가 하수를 다스리는 법인 것이다.
터엉.
그때 타다르 백작이 전진하면서 웅삼의 공격을 방패로 흘려내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도끼를 휘둘러갔다. 꽤 깊이 들어간 탓에 그의 공격이 적중되는 듯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타앙!
웅삼이 장도를 쥔 손과는 다른 손으로 그 도끼를 튕겨낸 것이다.
정확히는 흘려내었다.
“어떻게?”
“과연……. 저런 식으로 쓰는구나.”
도끼를 튕겨낸 웅삼의 팔에는 처음에 그가 방패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보여줬던 완갑이 달려 있었다. 그 작은 면만으로 도끼의 진로를 틀어버린 것이었다.
거기서 웅삼은 검 손잡이로 타다르 백작의 쇄골을 찍어갔다.
콰앙!
검 손잡이는 쇄골 대신 타다르 백작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타다르 백작은 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으음.”
타다르 백작이 미간을 찌푸린 채 웅삼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흘렸다.
“후우. 이거 못 쓰겠군.”
방패를 힐끔 보니 이리저리 패여 제대로 공격을 흘리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할 수 없지.”
체념을 한 타다르 백작이 방패를 한쪽으로 내던졌다.
털그렁.
연무장 바닥 위에 고철로 변한 방패가 나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바사 공왕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려나 보구나.”
타다르 백작과 웅삼을 바라보는 바사 공왕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감돌았다.
방패를 던진 타다르 백작의 몸에서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실라 공녀가 그 빛을 보며 놀라 외쳤다.
“타다르 숙부가 소울아머를!”
가슴의 수정에서 시작된 푸른 기운이 타다르 백작의 몸 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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