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41
17화 이실라의 배다른 형제
퍼엉!
타다르 백작과 대화 중이던 이실라 공녀는 연무장에서 울려오는 폭음에 놀란 눈을 했다.
“응? 뭐가 터졌나?”
“그러게 말이다.”
타다르 백작도 대답을 하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연무장 방향을 바라보았다.
퍼퍼펑!
또다시 연달아 울려 퍼진 폭음에 타다르 백작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보자꾸나!”
“예!”
둘의 발걸음이 연무장을 향해 바쁘게 움직여 나갔다.
연무장에 도착하니 폭음을 듣고 왔는지 여러 명이 이미 달려와 있었다. 그중에는 공왕성을 경비하는 경비대와 친위기사단도 있었는데,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뭔가!”
타다르 백작이 달려오며 외치자 이실라 공녀의 직속 수하인 카마쉬 마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련이었답니다.”
“대련? 대련을 누가 어떻게 했기에…….”
타다르 백작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카마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계웅삼 님입니다.”
“설마?”
웅삼의 이름이 거론되자 이실라 공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아까 바르와 구르에게 대련이나 하러 가자며 끌고 가던 그의 모습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다급해진 것은 타다르 백작이었다.
기사들을 뚫고 들어가자 익숙한 두 명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누구냐, 네 녀석들은…….”
얼음처럼 굳은 채 질문을 던지고 있는 타다르 백작의 곁으로 이실라 공녀가 다가왔다. 그녀 역시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망가지긴 했지만…… 숙부님 조카들 같은데요.”
“…….”
도끼는 자루가 잘린 채 뒹굴고 있었고, 튼튼해 보이던 활대는 반으로 동강나 있었다.
무엇보다 둘의 몰골은 거지가 뭔가를 훔치다 걸려 죽도록 맞으면 이렇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놀라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들의 귓속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바르와 구르의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우으…… 우리는…… 가…… 아닙니다.”
“아니라…… 구요.”
“뭔가를 말하고 있어요!”
이실라 공녀가 깜짝 놀라 외쳤지만 그보다 빨리 타다르 백작이 그들에게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뭐냐! 어서 말해라!”
“저, 저는…….”
“그래!”
“우루란 사람이 아닙…….”
“전 부루가…… 아니라 바르…….”
“…….”
타다르 백작은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 오랜만에 추억이 솟구치네 그냥. 흐흐흐.”
숙소로 돌아가는 계웅삼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 *
“더헉!”
갑자기 을지우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낮잠을 주무시다 말고?”
식은땀을 철철 흘리는 우루의 모습을 본 부여기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우루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웅삼이.”
“예?”
“웅삼이에게 죽도록 맞는 꿈을 꿨디.”
“네?”
“그것도 부루랑.”
“…….”
우루의 말에 기율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개꿈입니다.”
“이 모든 게 웅삼이 아새끼 때문인기야.”
우루가 이를 빠드득 갈며 힘차게 일어섰다.
그리고 기율을 한 번 보더니, 한쪽에서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던 삼두표와 동네 아낙들에게 작업을 걸고 있던 몽류화까지 둘러보며 말했다.
“이럴 땐 딴 생각을 하면 안 되디.”
“가끔은 다른 생각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기율이 먼저 대답했다.
“킁, 장군님은 휴식이 필요하신 겁니다. 정말로요.”
두표도 진심이라는 듯 큰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제가 봤을 때는 이만 집으로 가서 쉬시는 게 좋습니다. 아니면 생활의 활력을 위해 이쁜 과부 한 명과 만남이라도 주선해 드릴까요?”
류화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우루가 그 셋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 오라우. 몸 좀 풀어야 되디 않갔어?”
그 말을 끝으로 우루가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삼인방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따랐다.
퍼펑! 콰앙! 콰콰쾅!
“뭐지?”
연휘가람이 묵갑귀마대의 연무장 방향에서 울려오는 폭음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마침 대부를 등에 진 아빌런이 연무장에서부터 피난 오듯 달려왔다.
“아빌런.”
“예! 옙!”
“저게 뭔지 아는가?”
연휘가람의 질문에 아빌런이 연무장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우루 장군께서 개꿈 꿨다고 세 분 장군님들 데리고 몸 풀고 계십니다.”
“개꿈?”
느닷없는 개꿈타령에 휘가람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빌런이 몇 마디 덧붙였다.
“꿈에서 계 장군이 나타나 우루 장군님을 팼다던데…….”
“이젠 하다하다 별…….”
휘가람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다 문득 아빌런의 조급한 모습을 보고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디 가는가?”
“저…….”
휘가람의 질문에 아빌런이 주저하였다. 그러자 휘가람이 다독여 주며 다시 물었다.
“괜찮으니 말하게.”
“드잡이질 끝나면 다음 차례는 저잖습니까.”
“……그렇군.”
“그럼 전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시간이 길어질수록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빌런과 마찬가지로 무장들이 대피 중인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였다.
“가보게.”
“가, 감사합니다!”
허리를 확 꺾으며 휘가람이 생명의 은인인 양 인사를 올린 아빌런은 다시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휘가람이 한숨을 쉬었다.
“쯧, 웅삼이가 없으니 애꿎은 녀석들만 몸살을 앓는군.”
보통 우루의 화풀이 대상은 계웅삼이 도맡아왔다.
물론 웅삼이가 종종 맞을 짓을 했기 때문이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우루도 동급이다.
“뭐…… 이 일의 원흉은 폐하이시니 할 말은 없지만.”
이번 상황의 시작은 고진천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고생들 했어야. 너무 편히 지낸 거 아이네? 몸들이 예전만 못하지 않네. 종종 붙어 보자우.”
을지우루가 뭔가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무장을 나가자 삼두표와 부여기율 그리고 몽류화가 꿈틀거리며 한마디씩 쏟아내었다.
“끄응.”
“종종이라니…….”
“내, 내 얼굴이…… 얼굴이…….”
그동안 쌓인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세 사람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한숨을 탁 쉰 기율이 몸을 일으키자 옆에 있던 두표가 부탁을 해왔다.
“내 엉덩이에 화살 좀 뽑아주라.”
“못…… 피했냐?”
“킁, 궁둥이엔 눈이 없잖냐…….”
“내 얼굴이 생채기가…….”
몸을 일으킨 삼인방이 일제히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계웅삼 개새끼!”
그러고선 연무장을 나서며 외쳤다.
마찬가지로 세 명이 내뱉은 말은 똑같았다.
“우리 밑으로 집합!”
* * *
“역시 사람은 종종 풀며 살아야 해. 게다가 이런 걸 뭐라더라? 대리만족? 맞아! 프흐흐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계웅삼이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침을 삼켰다.
“몸을 좀 움직였으니 만찬을 즐겨야지.”
웅삼이 그만의 사냥터로 몸을 날렸다.
* * *
다음날 바사 론 카말 공왕의 부름을 받은 타다르 백작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사 공왕이 넋 나간 사람처럼 돼지우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쭈쭈가 사라졌다.”
“…….”
“뽀꾸, 삐꾸에 이어 쭈쭈까지 사라졌단 말이다!”
바사 공왕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군요.”
한창 출정 준비 중이던 타다르 백작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말만으로는 왜 자신을 이 뒤뜰로 불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아야겠네.”
“누굴 말입니까.”
“내 새끼를 채간 놈.”
타다르 백작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막말로 형님 새끼가 이실라 말고 또 있습니까?”
퍼억!
막말을 한 대가는 응징이었다.
밤이 깊었다.
세상이 잠들어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던 병사도, 화창한 날씨 속에서 지저귀던 새도, 나무 위를 오가던 다람쥐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뒤뜰에서 바사 공왕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던 돼지새끼들도 잠들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습니까?”
“쉿!”
“…….”
한쪽 눈가에 멍이 든 타다르 백작이 말을 걸었다가 바사 론 카말 공왕에게 제지당했다.
다들 자는 시간에 둘은 뒤뜰 옆에 있는 수풀에 숨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바사 공왕은 자발적이라는 것이고 타다르 백작은 타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내 자식 같은 놈들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잡아야 해!”
“형님 자식들도 잡아먹습니까?”
퍽!
반대편 눈까지 멍이 든 타다르 백작은 소리 죽여 울었다.
찌룩 찌룩 찌룩.
귀뚜라미 소리가 유난히 구슬프게 울려오는 밤이었다.
* * *
며칠 후 보고를 하러 타다르 백작을 찾은 이실라 론 카말 공녀의 표정에 걱정이 깃들었다.
“숙부, 좀 쉬면서 일을 하셔야지요.”
“……차라리 일을 하고 싶다.”
“네?”
눈을 말똥말똥 뜨며 뭔 소리냐는 듯 바라보는 이실라 공녀의 얼굴 위로 바사 공왕의 얼굴이 겹쳐졌다.
인상을 확 구긴 타다르 백작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런 게 있다. 네 배다른 형제들을 탓해야지.”
“……아버지가 바람피웠어요?”
이실라 공녀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전달되어져 왔다.
“응?”
“이 양반이!”
타앙!
이실라 공녀가 서류를 타다르 백작의 집무실 탁자 위에 내리치듯 놓더니 씩씩거리며 되돌아 나갔다.
그쯤 되자 화들짝 놀란 타다르 백작이 그녀를 불렀다.
“아니, 잠깐…….”
쾅!
타다르 백작의 목소리는 강렬한 소음을 내며 닫힌 집무실 문에 의하여 차단되어 버렸다.
“…….”
타다르 백작은 말없이 무구를 챙기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을 열며 외쳤다.
“투르! 순찰이다!”
타다르 백작의 외침에 부관인 투르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백작님, 오늘 순찰은 예정에 없는데요?”
“시끄러! 긴급사항이야! 빨리 움직여!”
“예…….”
투르는 방금 전 이실라 공녀가 씩씩거리며 나간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음을 직감했다.
“오늘은 진영에서 숙식한다! 가자!”
“……예.”
확실했다.
잠시 후, 공왕의 집무실.
와장창!
무언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바사 론 카말 공왕의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오해다! 오해야!”
“뭐가 오해예요! 타다르 숙부가 한 말을 들었는데!”
이실라 론 카말 공녀의 뾰족한 음성에 바사 공왕이 울분에 찬 외침을 터뜨렸다.
“타다르으으으!”
“시끄러워요! 차라리 후궁을 들이지 그랬어요! 누가 뭐라고 그러기나 해요! 예? 뜬금없이 배다른 형제가 뭐예요!”
“그, 그게 오해라니까! 배다른 형제는 바로 뒤뜰의 돼지들을 말하는 거라고!”
“…….”
순간 이실라 공녀가 검을 휘두르다 말고 멈칫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리라 생각한 바사 공왕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제 숨 좀 돌리고…….”
“차라리 사람을 덮치지 그랬어요?”
뭔가 쌔한 느낌이 바사 공왕을 덮쳤다.
그의 눈에 검을 들어 올리는 이실라 공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실라 공녀의 눈동자에서는 오로지 흰자위만이 반들거릴 뿐이었다.
한마디로 눈깔이 돌아간 것이다.
“응?”
“캬아아악!”
“우와악!”
괴성을 터뜨린 이실라 공녀의 검이 춤을 췄고 그 검을 피해 바사 공왕이 춤을 췄다.
그러면서 다시금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
“타아다아르으으으으!”
“이랴아! 달려! 전속으로 벗어난다!”
타다르 백작이 공왕성을 벗어나 전속력으로 말을 몰자 그 뒤를 부관 투르와 타이탄 일족의 전사들이 툴툴거리며 뒤따랐다.
“뭔 일이랍니까?”
타이탄 일족 전사의 질문에 투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모르지.”
“또 입이 방정인 거 아닙니까?”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닌 듯 이유를 짐작해 내는 질문에 투르는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그렇겠지.”
“며칠 공왕성에는 얼씬도 못하겠네요.”
“아마도…….”
전사들의 질문에 기약 없는 대답을 해준 투르가 한숨을 쉬고는 멀어져 가는 타다르 백작의 뒤꽁무니를 열심히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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