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43
19화 한 잔 술에 고향을 그리다
웅삼은 자신을 바라보는 바사 공왕의 눈길을 의식하곤 그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그를 잠시 바라본 웅삼이 입을 열었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꼭 손톱에 긁힌 것처럼…….”
“타다르으으으!”
갑자기 바사 공왕이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자 바르와 구르가 움찔했다. 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저,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도…….”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내 바르와 구르가 머리를 땅에 박고 양팔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다리도 한짝 들어라.”
바사 공왕의 명령에 다리도 한쪽 들어 올렸다. 이어서 둘의 끙끙거리는 신음이 조금씩 커져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사 공왕은 시선을 거두며 잠시 끊어졌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장가는 갔는가?”
바사 공왕의 질문에 웅삼의 눈이 반짝거렸다. 자세를 고쳐 잡은 웅삼이 진중하게 대답했다.
“무에 뜻을 둔 몸이라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오!”
웅삼의 말에 바사 공왕이 감탄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바사 공왕은 감탄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잘 하면 낚을 수 있을지도…….’
동시에 웅삼 역시 한 가지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여기라면 장가를 갈 수 있을지도…….’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리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흘려냈다.
“허허헛!”
“하하핫!”
이것도 교감이라면 교감일 수 있었다.
잠시 웃음을 나누던 중 바사 공왕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혹시 혼인에 뜻을 두지 않은 것은…….”
바사 공왕의 걱정 어린 음성에 웅삼이 재빨리 대답했다.
“무라는 것이 오르다 보면 단순한 실전과 수련만으로는 더 이상 늘지 않을 때가 있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삶을 단련해야겠다고 말입니다.”
“오호!”
웅삼의 말에 바사 공왕이 감탄을 했다. 그의 감탄성을 못 들은 척 웅삼이 말을 이었다.
“혼인 또한 그 범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라는 지키고 살아왔지만 정작 내 가정을 이루고 지켜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이 역시 무로 가는 길에 있어서 거쳐야 할 깨달음의 관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군. 하나 무의 정진을 위해서 혼인을 한다는 건 조금…….”
바사 공왕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도 딸 가진 부모다. 마음에 걸리는 게 당연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사나이란 무릇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법입니다. 적을 맞아 치열하게 싸우듯 사랑하는 임이 나타나면 이 한 목숨 다할 때까지 불타올라야 합니다!”
“맞네! 그걸세!”
“그렇습니다!”
이상한 일로 활활 타오르는 두 사람을 보며 머리를 박고 있던 바르와 구르는 동시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공왕이 딸 팔아먹으려 한다!’
둘의 몸이 움찔거리자 그 기척을 느낀 바사 공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성인 몸통만 한 바위를 집어다가 그들의 등 위에 하나씩 얹어주었다.
터억!
“컥!”
턱!
“어흑!”
둘의 입에서 순차적으로 더 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바사 공왕이 점잖게 타일렀다.
“이것도 수련이다.”
“좋군요. 저도 종종 이런 종류의 수련을 쌓았…….”
실실 웃으며 말을 거들던 웅삼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바사 공왕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온 것이다.
말이 수련이지 이건 문제아들에게 주로 주어지는 벌칙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사 공왕은 재빨리 말을 받아주었다.
“큼, 뭐 이런 수련 나쁘지 않지. 허헛.”
“그, 그렇죠.”
웅삼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오해할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윗선의 오해로 인해 자신에게 고난이 조금 주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굳이 이 자리에서 언급할 내용은 아니었다. 다행히 바사 공왕이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어쨌든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다음에 이야기하세.”
“예.”
“그리고…….”
바사 공왕이 끙끙거리는 바르와 구르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대련뿐 아니라 조금 더 신경 써줄 수 있겠는가?”
“저 둘 말입니까?”
“그래. 적어도 눈먼 칼에는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세.”
바사 공왕의 진심에 웅삼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
대답 대신 무언가 사연 있는 시선을 보내는 웅삼을 보며 바사 공왕은 대답을 기다렸다.
웅삼의 시선이 유독 바르에게 닿아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요. 적어도…….”
‘다시는……’ 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킨 웅삼이 바사 공왕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믿음이 느껴지는 대답에 바사 공왕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바르와 구르는 돌덩어리를 내려놓고 앉아, 멀어져 가는 바사 공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바사 공왕이 자신들을 그토록 생각해 준다는 것에 감동을 먹은 표정이었다.
나란히 앉은 그들에게 다가간 웅삼이 그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누가 그만하라 그러디?”
둘은 다시 머리를 박고 한 발을 올렸다. 아까와 다른 점은 그들의 등 위에 이번엔 두 개의 바위가 올라갔다는 것뿐이었다.
죽을상을 하고 끙끙거리는 둘을 보고 웅삼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니들 나이에는 완전 무장하고 마갑까지 씌운 말을 등에 짊어지고 뛰어다녔어. 앙!”
“……끙.”
“큭!”
둘은 처음으로 바사 공왕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 * *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몰골의 무장 하나가 결박되어 있었다. 쇠로 만들어졌을 갑주는 마치 폐기처분된 고물처럼 이리저리 찌그러진 채였고, 온몸에는 마치 고슴도치를 연상시키듯 화살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되고도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에게 다가간 이는 그의 모습과 반대로 반짝거리는 광채가 눈이 부실 만큼 잘 손질된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는 바로 터그람 왕국의 카말 원정대 총사령관인 그리팔 파샤 후작이었다.
“티그람 자작인가?”
“쿨럭…….”
티그람 자작이냐는 질문에 사내는 대답 대신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겉으로만 상태가 안 좋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피를 토해낸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며 입을 열었다.
“큭큭, 알면서 묻기는 별…….”
뒷말은 생략했지만 굳이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당장 죽을 것처럼 휘청거리면서도 피에 물든 이를 드러내며 낄낄거리는 것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주변의 귀족들과 기사들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보다 못한 귀족 하나가 나섰다.
“놈! 네놈은 예의도 모르더냐!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지만 엄연히 후작 각하이시다.”
귀족의 외침에 티그람 자작이 한쪽으로 침을 뱉어내곤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카악, 퉤! 살다 살다 별 거지 같은 소릴 다 듣는구나.”
“무어라!”
“그 입 다물어라, 확 좌우로 찢어서 하나로 연결해 버리기 전에. 책상에서 전쟁하는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이질이더냐!”
움찔!
당장 죽을 것 같은 모습 어디에서 힘이 솟았는지 티그람 자작이 거침없는 일갈을 내지르자, 앞으로 나섰던 귀족이 순간 움찔했다.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티그람 자작이 말을 이었다.
“동맹 뒤통수나 치는 놈들이 대우받기를 원하는 게 웃기는 거 아닌가? 안 그런가, 그리팔 후작?”
“크흐음.”
그리팔 후작은 티그람 자작의 거침없는 언사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참모로 따라온 귀족들과 기사들이 또 발끈했지만, 그는 한 손을 들어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만하라. 아무리 적장이지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관대한 말에 귀족들과 기사들이 감탄 어린 시선을 보내며 한마디씩 했다.
“역시 그리팔 후작님은 대인이십니다.”
“그릇이 다르십니다!”
이어지는 칭찬에 그리팔 후작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들을 제지했다.
“그만들 하게. 본관에게 금칠을 할 필요는 없네.”
“…….”
그리팔 후작이 다시 근엄한 표정으로 티그람 자작을 내려다보았다. 티그람 자작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그대의 무용에 감탄…….”
“차라리 접시 물에 코 박고 뒈지는 게 낫지. 저딴 소리나 듣고 있으려니 원…….”
“……감탄을.”
“세상 참 관대해졌어. 저딴 놈들이 숨을 쉬고 있으니 말이야. 끄응, 온몸이 욱신거리네. 아까 죽어 나자빠졌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을…….”
“감탄을…….”
“그래, 계속 감탄해라. 멍청하게 병력 운용하다가 군량 홀랑 태워먹은 놈이 뭔 똥폼을 잔뜩 잡는지 원…….”
“……또, 똥?”
“젠장. 이름을 바꿨어야 해. 터그람 티그람 한 끗 차이니 이런 재수 없는 꼴을 당하지.”
“…….”
결국 그리팔 후작은 하고 싶었던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약간의 노기 어린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있다.”
그리팔 후작의 질문에 티그람 자작이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리팔 후작이 말했다.
“말하게. 내게 그 정도의 아량은 있으니 말일세.”
그리팔 후작의 말에 티그람 자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이 개새꺄. 똥물에서 자맥질하다가 물 먹어서 잠겨 뒈질 놈의 #$@#$@#$#**$& 하다가 뒤로 자빠져 거시기가 불능이 될 놈아!”
“…….”
세상에 존재하는 욕의 모든 종류를 다 들은 그리팔 후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은 티그람 자작이 다시 말했다.
“술이나 한잔 줘. 주겠지? 넌 관대하니까.”
티그람 자작이 히죽 웃었다. 그러자 여태까지 참고 있던 귀족들과 기사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떠들었다.
“후작 각하!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 없습니다!”
“명만 내리십시오! 당장에 목을…….”
“놈의 껍데기를 벗겨다가…….”
“…….”
사방에서 살벌함이 넘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리팔 후작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욕까지 배부르게 얻어 처먹었는데 그깟 술 한잔 못 주겠느냐. 세상에서의 마지막 술이니 한잔 가져다주거라.”
“내 욕에 감명받았나 봐. 배까지 부르게.”
티그람 자작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지만 그리팔 후작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기사 하나가 병사들이나 쓰는 흙으로 빚은 그릇에 술을 담아왔다.
“자, 마셔라.”
“이러고 마실까? 니들은 술을 개처럼 코 박고 마시냐?”
티그람 자작이 묶여 있는 몸을 보이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그리팔 후작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풀어줘라.”
“하지만…….”
참모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티그람 자작이 부상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맹장이었다. 하지만 그리팔 후작이 다시 한 번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말하지 않도록 해주게.”
“예, 각하.”
그리팔 후작의 말에 참모들이 기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기사들이 다가가 티그람 자작의 묶인 팔을 풀어주었다. 물론 티그람 자작의 입은 그 순간에도 거칠게 나불거렸다.
“쯧, 한 번 말하면 알아들 처먹어야 총사령관 낯짝이 서지. 하는 꼴들 하곤. 웁, 웨엑! 크, 짭짤하군.”
그 와중에도 티그람 자작은 쿨럭거리며 한 움큼의 피를 쏟아내었다. 그런 티그람 자작을 보며 그리팔 후작이 눈썹을 찌푸리며 질문을 했다.
“네놈, 귀족은 맞냐?”
“날 때부터 귀족인 놈이 말을 이따구로 하겠는가?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놈이니 말본새가 이따구지.”
“…….”
그리팔 후작은 태생이 천한 놈이라 그런가 보다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던 와중에 티그람 자작은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카아! 시원하구나.”
티그람 자작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잔 술이 그만큼 절실했는지 그 표정은 다 죽어가는 이의 표정이라 할 수 없이 밝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구멍 뚫린 데가 많아 아까운 술이 다 새어나가는구나.”
술이라곤 말했지만 그의 상처에서는 연신 피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도 한계가 왔는지 핏기가 빠지며 안색이 점차 창백해졌다.
티그람 자작이 고개를 들어 그리팔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소이다.”
아까와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예의 바른 말에 그리팔 후작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고는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그대의 무용에 감탄을…….”
“정말 고맙소이다.”
“감탄을…….”
티그람 자작이 활짝 웃었다.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서 말이오.”
“감탄…… 응?”
순간 티그람 자작이 손에 든 그릇을 바닥에 내리쳐 깼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날려 그리팔 후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이의 몸동작이 아니었다.
“위, 위험합니다!”
놀란 참모와 기사들이 달려들며 경고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빠르게, 티그람 자작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그릇 조각이 그리팔 후작의 목 줄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써걱!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크윽!”
그리팔 후작이 뒤로 물러서며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금세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사이 뒤늦게 달려든 기사들의 칼날이 티그람 자작의 온몸에 박혀들었다.
하지만 티그람 자작의 시선은 오로지 그리팔 후작을 향하고 있었다. 온몸에 칼이 박혔음에도 그의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미소가 남겨져 있었다.
티그람 자작이 피가 울컥거리며 넘어오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술…… 잘 마셨…….”
티그람 자작은 말을 다 이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졌다. 엎어진 그의 고개가 천천히 태양이 지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하아…….”
떨어지는 태양을 보며 티그람 자작의 입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숨이 내쉬어졌다.
‘이쪽인가…….’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 그의 얼굴 위를 내려앉는 태양의 빛이 더욱 붉게 물들여 주었다.
‘내 고향이…….’
더 이상 티그람 자작은 움직이지 않았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의 주변은 그리팔 후작을 부축하는 기사들과 치료사를 부르는 귀족들로 분주했다.
* * *
바사 공왕과 타다르 백작, 그리고 이실라 공녀를 위시한 카말 공국의 무장들이 전장의 상황을 표기해 놓은 모형을 앞에 두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티그람 자작의 생사는 어찌 되었는가?”
주변의 전력을 모아 전선을 형성하고 있던 티그람 자작의 군대가 무너진 지 며칠이 지났다.
당시 들어온 보고는 티그람 자작이 성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잔여 병력을 이끌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일단 정찰대를 보냈으니 자세한 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바사 공왕의 표정은 더없이 무거웠다.
티그람 자작 역시 그가 아끼던 수하로서, 일개 병사부터 시작해 자작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이를 이런 전쟁에서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밖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티그람 자작과 관련된 소식이 왔습니다!”
“들라 하라!”
바사 공왕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렸다.
그의 앞에 온몸이 먼지투성이인 병사 하나가 달려와 부복했다. 전령이었다.
“티그람 자작은 어찌 되었는가!”
티그람 자작의 생사부터 확인하는 바사 공왕의 질문에 전령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대답했다.
“전사하셨습니다.”
“……그런가.”
바사 공왕은 눈을 감고는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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