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48
24화 마음 가는 대로
적당히 살집이 오른 돼지 한 마리가 모닥불 위에서 고소한 향기를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그 향기에 이끌려 온 타다르 백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거 출정할 때 잡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타다르 백작의 질문에 돼지의 최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바사 론 카말 공왕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닥쳐라, 배신자여.”
“큼…… 아까 일은 집안일인 만큼 제가 피해 드린 겁니다.”
“이 위에 꼬치를 꿰서 올리기 전에 그 입 다물라!”
“…….”
바사 공왕의 일갈에 타다르 백작은 입을 다물었다. 어찌 되었든 그를 버리고 도망친 것은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둘을 말린 것은 돼지를 돌리고 있던 계웅삼이었다.
“에이. 먹는 것 앞에서 왜들 그러십니까.”
“……크윽!”
웅삼의 너스레에 바사 공왕이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참는 듯했다.
그때 타다르 백작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돼지를…….”
“미숙함이 불러온 참사라고나 할까요?”
웅삼의 말에 타다르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미숙함이 불러온 참사라니?”
그러자 웅삼이 구워지는 돼지를 한쪽에서 창백한 안색으로 바라보던 구르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며 대답했다.
“아, 이 친구에게 제 활을 쏴보라고 주었는데, 처음 쏘는 활이라 그게 잘못 날아갔지 뭡니까?”
“뭐어?”
타다르 백작이 구르를 보며 언성을 높였다. 반대로 구르는 타다르 백작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팍 숙였다.
물론 속으로 욕 한마디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지가 위치 다 잡아줘 놓고선!’
구르에게 죄가 있다면 시위를 놓은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양손은 거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타다르 백작의 놀란 음성과 달리 이어진 목소리는 온화했다.
“쯧, 조심하지.”
구르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보니, 타다르 백작의 시선이 돼지를 향하고 있었다. 침까지 삼키는 중이었다.
“그런데 술은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는 게 본격적으로 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넌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왔냐.”
그때까지 죽어나간 돼지에게 명복을 빌고 있던 바사 공왕이 타다르 백작을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타다르 백작이 살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에이. 그래도 형님 걱정하는 건 저뿐 아닙니까.”
“개뿔이…….”
“그래서 이실라가 뭐랍니까? 시집간답니까?”
타다르가 질문을 던지자 그 반응은 바사 공왕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왔다.
“예에! 시집이라뇨? 어디 결혼할 사람이 있었답니까? 카마쉬가 말하길 성격이 불같아서 아무도 안 데려갈…….”
순간 바사 공왕에게서 쏘아진 살기에 서둘러 말을 흐린 웅삼이 불안에 떠는 눈빛으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그게 아니라 성격이 직선적이라 아직 혼처가 없다고 들었는데요.”
“…….”
“…….”
바사 공왕과 타다르 백작이 입을 다물고 웅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웅삼은 누가 봐도 이실라 공녀가 시집갈까 봐 불안한 시선이었다.
바사 공왕과 타다르 백작이 그를 보며 생각했다.
‘취향이 독특해.’
타다르 백작의 생각이었고…….
‘이놈! 알면서도 이런 반응이라니……. 이런 놈에게 딸을 줘도 되는 걸까?’
이건 바사 공왕의 고민이었다.
“큼큼.”
요상한 분위기를 깬 것은 바사 공왕의 헛기침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제 전장에 나아가야 할 아이인데.”
“뭐, 그렇지요.”
바사 공왕의 말에 웅삼이 시선을 돌리며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왠지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켰다는 듯 딴청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때 바사 공왕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고맙네.”
“뭐가 말입니까?”
“그냥 이것저것 말일세. 그래서 한 가지 더 부탁을 하고 싶네.”
바사 공왕이 부탁이라는 말을 하자 웅삼이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타다르 백작과 바르, 구르도 바사 공왕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되돌아갈 수 있는 배를 마련해 주겠네.”
“네?”
“형님?”
바사 공왕의 말에 웅삼이 놀란 눈을 하였고, 타다르 백작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물론 노잡이를 비롯한 인원들 역시 제공해 주겠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는 바사 공왕의 말에 웅삼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부탁이라고 하면서 꺼낸 말이 자신을 돌려보내 주겠다는 호의이지 않은가.
결론은 더 들어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타다르 백작의 일족을 인도해 주게나.”
“형님!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전하!”
“전하,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바사 공왕의 발언에 타다르 백작은 물론 바르와 구르까지 벌떡 일어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시끄럽네. 귀 안 먹었으니 조용히 이야기들 하게.”
바사 공왕이 그들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타다르 백작은 여전히 일어선 채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만에 하나야. 잘되면 되돌아오면 그만 아닌가.”
바사 공왕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타다르 백작은 여전히 열이 받은 모습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타다르. 타이탄 일족이 왜 카말 공국과 함께하기로 했는지 이유를 잊은 게냐?”
“왜 모르겠습니까! 이곳이 우리에겐 울타리요, 함께 살아가야 할 터전임을 말입니다!”
타이탄 일족이 카말 공국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일족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옛날 타이탄 일족이 바다를 건넌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그래. 아는 놈이 그렇게 열을 내냐?”
“다르잖습니까! 우리는 선택을 한 것이지, 회피를 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새파란 놈들까지 다 전장에 밀어 넣을 셈이냐?”
“그건…….”
순간 타다르 백작의 말문이 닫혔다. 그때 바사 공왕이 다시 웅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부탁하는 것은 바로 이걸세. 비록 타이탄 일족이 우리와 함께한다지만 이건 인간의 탐욕이 부른 전쟁일세. 칼을 쥔 자가 아니라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보네.”
“…….”
웅삼은 묵묵히 바사 공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사 공왕이 그런 웅삼에게 부탁의 말을 이어나갔다.
“타이탄 일족과 같은 드워프들이 그대의 나라에 함께한다고 들었네.”
“예.”
“내 자네를 믿고 부탁하는 거네. 그곳에선 이곳과 같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 수 있겠지?”
“예.”
웅삼은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그의 이야기만을 듣고서 보낸다는 말은 그를 그만큼 믿는다는 말이었다. 오로지 웅삼의 말만으로도 의심치 않고 믿음을 보이는 것이다.
바사 공왕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 부탁하네. 타이탄 일족이 그쪽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네. 이게 내 부탁일세.”
“형님, 삶을 이어가야 할 것은 우리뿐이 아니잖습니까. 카말 공국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다르 백작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바사 공왕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 말했지? 터그람이 필요한 건 윗대가리뿐이라고. 백성의 삶이야 당장은 고달파지겠지만, 거기까지일세. 하지만 타이탄 일족은 어떤가. 아마 뼛골까지 뽑아먹으려 할 거야.”
“후우…….”
무어라 항변할 말을 잊은 타다르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타탁! 탁!
나무 타는 소리만이 간간히 울리고 아무도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바사 공왕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앉아 있었고, 타다르 백작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매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정작 대답을 해야 할 웅삼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거웠다.
마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련해 주겠다는데 대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 전쟁은 자신의 전쟁이 아니라고 이미 스스로 결론을 내렸고, 또 그가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도움을 주었다.
할 일은 다한 셈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뭔가가 걸렸다.
바다…….
이곳에 온 이유.
그리고 이곳에서 나라를 세웠음에도 다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순간 웅삼은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따악!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젠장, 역시 고민은 어울리지 않네.”
웅삼이 자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부탁…….”
말을 않던 웅삼이 갑자기 자해를 하듯 자신의 머리통을 두들기는 모습에 살짝 놀란 바사 공왕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고민을 털어낸 시선으로 바사 공왕을 마주 보며 웅삼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부탁……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웅삼의 대답에 바사 공왕의 마음이 한순간 묵직해졌다. 반면에 타다르 백작과 바르와 구르는 한결 편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바사 공왕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웅삼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노 저어서 일 년이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런 시간이 없습니다. 전 어차피 일 년이 지나면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실험에 쓰인 것이 그런 방식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 것인가.”
“예.”
바사 공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웅삼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대신 서신을 하나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신?”
“예. 제 이름으로 말입니다. 만약 그들이 떠야 할 때가 온다면 그들을 받아주라는 내용의 서신 말입니다.”
“아…….”
함께는 가지 못하지만, 대비는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에 바사 공왕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때 타다르 백작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그럼 그대는 어찌할 생각이오?”
이곳에 온 지 벌써 한 달이다.
계산대로라면 앞으로 열한 달의 시간이 더 있어야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타다르 백작의 말에 웅삼이 눈앞의 고기를 뜯어내어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밥값은 하렵니다. 이리저리 고민했는데, 역시 전 머리로 움직이기보다 가슴으로 움직이는 게 편하더군요.”
순간 바사 공왕과 타다르 백작의 눈빛에 의혹이 들었다.
밥값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웅삼이 다시 말했다.
“저 친구들 가르치려면 좀 걸리겠더군요. 어디 가서 눈먼 칼 안 맞게 하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타다르 백작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뭐 조만간 떠야 한다니 따라다니며 앞가림할 수 있도록 가르쳐 볼 생각입니다. 뭐 괜찮으시다면 말입니다.”
순간 바사 공왕의 눈이 확 하고 커졌다.
마찬가지로 타다르 백작 역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떡 벌렸다.
“괜찮겠습니까?”
“그, 그게…….”
바사 공왕이 뜻밖의 대답에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이실라 공녀 일행이 이끌 별동대의 가장 큰 문제는 강자의 부재였다.
이미 알려진 이들은 이 작전에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실라 공녀 역시 외부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기는 했다.
소울아머를 쓸 수 있는 정도의 강자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이쪽에서 소울아머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무장이 빠져나간다면 그것은 바로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저번의 터그람 왕국처럼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를 내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쪽엔 그런 무장이 아직 없었고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터그람 왕국은 꽤 이전부터 비밀리에 이번 일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웅삼과 같은 강자가 나선다면 전체적인 그림이 바뀔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돌려서 말했지만, 지금 웅삼은 그들의 전쟁에 손을 거들겠다는 의미였다.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바사 공왕이 잘 익은 돼지를 뜯어 들며 대답했다.
“이 돼지가 정말 비싼 놈이구만.”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마찬가지로 웅삼도 한입 베어 물며 대답했다.
“일국의 왕께서 기른 놈인데 쌀 수가 있겠습니까?”
웅삼의 너스레에 바사 공왕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네.”
바사 공왕의 말에 웅삼도 웃으며 대꾸했다.
“정말 맛있는데요? 기왕이면 술도 함께하면 좋지 않을까요?”
“내 공왕성의 술 창고를 다 털지! 타다르!”
바사 공왕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타다르 백작을 불렀다.
“예!”
타다르 백작 역시 기분 좋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술 가져와!”
“…….”
순간 타다르 백작의 얼굴이 미소를 지은 상태로 굳어졌다. 그런 타다르 백작에게 바사 공왕이 인상을 쓰며 닦달했다.
“뭐해? 모처럼 스승과 제자 간의 술자리를 열어주는데! 내가 가리?”
“……젠장. 옛날에 형 아우 하자고 할 때 나이순으로 하는 건데.”
“실력순으로 하자던 놈이 말이 많아. 그리고 인종이 다르잖아! 니네 일족에서 나이 오륙십은 애잖냐!”
“간다고요!”
바사 공왕의 일갈에 타다르 백작이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웅삼은 술을 가지러 가는 타다르 백작과 바사 공왕을 바라보면서 왜 이렇게 이들에게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고진천과 을지부루, 우루 형제들의 모습을 이들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일 년 뒤에 되돌아간다는 확신은 없었다.
이전에 간략하게 행한 시험에서는 문제가 없었다고 들었지만, 웅삼이 싸지른 뒤에 손을 댔기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한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는 것.
왠지 마음이 가는 이들이었다. 물론 이실라 공녀 역시 마음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절대 여자에 홀려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남자들의 뜨거운 우정을 위해서 그러는 거다.’
웅삼은 다짐했다.
그때 바사 공왕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자네 뭘 헤실거리며 웃는가?”
“아, 아하하! 그저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해서 웃었습니다.”
“…….”
바사 공왕은 왠지 어딘가 부족한 이가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웅삼을 보며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속으로 응원했다.
‘이실라! 자빠트려라! 반드시!’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 남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바사 공왕이었다.
# 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