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64
40화 아! 불신의 늪
“우와아아…….”
열린 막사 문으로 기세등등하게 달려 들어오던 별동대의 병사들은 계웅삼과 그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시에라 제국의 기사를 보곤 함성을 집어삼켰다.
막사에서 잠을 자던 그대로 모조리 숨이 끊긴 듯 좌우로는 축 늘어진 시체들이 일어날 줄 모르고 있었고, 그나마 있던 기사는 방금 웅삼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뭘 봐? 구경할 거야? 나가서 한 놈이라도 더 털어야지.”
“아, 아 예!”
웅삼의 말에 병사들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때 밖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들이 울려왔다.
“여, 여기는 모두 시체뿐이야!”
“여기도 다 죽어 있어!”
“거긴 어때?”
문 앞에 서 있던 별동대원이 웅삼을 슬쩍 바라보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웅삼 님께서 다 처리하셨어.”
“허…….”
“어떻게!”
황당하다는 목소리들이 울려 나왔다. 그때 한 병사가 외쳤다.
“뭐해, 산 놈도 없는데 나가야지!”
“그, 그래!”
이어 바쁜 발걸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며 병사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열려진 문 안에서 스치듯 보였다.
물론 지나가던 병사들이 웅삼을 향해 존경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의 발라 좋네. 우리 애들도 저러면 얼마나 좋아. 하나같이 당연한 줄로만 알지.”
이곳에선 나름 잘 대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때 바쁜 발걸음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우, 웅삼 님!”
“뭐야?”
“소, 소울아머를 입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외침을 듣는 순간 웅삼의 몸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빌어먹을. 느닷없이 이게 뭐야?”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시에라 제국의 기사 투더란과 기사 베일이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이곳 지휘관은 나오지 않고 뭘 하는 거야! 지휘가 하나도 되지 않고 있잖아!”
투더란과 베일이 연달아 불만을 터뜨리자, 트로빈 보급 기지 소속 기사 알트란이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남작님께서는 암살당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휘부의 일부가 저들의 기습 전에 암살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몇 놈이 기어들어 왔기에 이따위인가!”
같은 기사의 신분이라지만 소울아머 유저와 일반 기사와는 넘기 힘든 신분의 벽이 있다. 기본적으로 소울아머를 운용하는 기사는 자작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당연히 일반 기사 신분으로서는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요새의 야간 경계까지 무력화시키고 침입한 것을 보면 상당수가 스며들었던 모양입니다. 심지어 일부 막사의 병사들은 자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젠장.”
알트란의 보고에 투더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치하고 있던 베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이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정말 카말 공국 놈들인 건가? 아니면 일설대로 터그람 놈들이 장난치는 건가.”
“카말 놈들 옷을 입고 있기는 한데……. 그놈들이 왜 우리 보급 기지를 털어?”
투더란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하였다.
그의 말에 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카말 공국군으로 위장한 터그람 왕국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위에서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이황자의 전력과 손을 잡았다는 예상이 진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일은 뭔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놈들 분명 카말 공국의 제식 검술을 쓰는 것 같지 않아?”
“빌어먹을. 카말이나 터그람이나 제식 검술은 거기서 거기인 것 모르냐? 어차피 같은 놈들이었잖아!”
투더란의 말은 맞았다.
터그람 왕국에서 분리된 것이 카말 공국이었다.
제식 검술 역시 터그람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분리된 시간이 백 년쯤 되었다면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겠지만, 갈라진 지 이십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베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거기서 거기지만 기질이 다르잖아. 같은 검술이라 하더라도 터그람 놈들은 소심한 쪽이고 카말 놈들 쪽은 막나가는 쪽이고 말이야.”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같은 검술이라 하더라도 터그람 왕국 쪽은 수비형으로 발전한 반면, 카말 공국 쪽은 공격 위주의 형태를 많이 띤다.
그런 면에서 지금 불청객들은 카말 공국의 옷을 입고 또 검술 역시 카말 공국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베일의 의문에 투더란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놈들이 그것까지 감안한 거겠지.”
“그럴 수도 있지만, 응?”
그때 베일의 시선에 뭔가가 잡혔다.
“저거…….”
투더란 역시 베일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단순히 덩치가 좋다고 했는데 체형이 뭔가 달랐다. 남들보다는 두 배는 옆으로 퍼진 듯한 체구에 키는 약간 작은 느낌.
옆으로만 자란 것 같다고나 할까?
“마치 카말의 타다르 백작이라는 괴물이 이끄는 놈들 같지 않아?”
베일의 질문에 투더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타이탄 일족!”
“맞아……. 타이탄 일족.”
대륙에서 드워프란 노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나마도 거의 소수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드워프이면서도 드워프와 다른 길을 걷는 일족이 있었으니 타이탄 일족이었다.
드워프다 아니다로 학계의 논란도 있었지만, 스스로가 드워프의 한 갈래라고 선언했다.
물론 그렇다고 드워프와 같은 섬세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워프 자체가 전사의 일족이기도 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타이탄 일족이야말로 타고난 전사들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예로 살아가는 드워프 일족과 비교한다면 손재주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인간의 야금 기술보다는 뛰어났다.
사실 그보다도 그들의 태생적 강력함과 폐쇄적인 드워프와 달리 개방적인 면은 많은 국가들로부터 구애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 그들은 이전에는 터그람 왕국의 일부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살아왔었고, 지금은 카말 공국을 대표하는 무력 집단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사실 시에라 제국이 제일 먼저 침공한 곳이 터그람 왕국이었던 것은 그들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카말 공국이 진정으로 독립하게 된 배경에는 타이탄 일족의 힘과 또 그들을 이용하지 않고 함께하려는 열린 사고를 가진 공국 귀족들 덕분이었다.
투더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정말 카말 공국이란 말인가?”
“모르겠어. 비슷한 놈들을 섞어놨을지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놈들을 잡아보면 답이 나올 거란 말이지.”
의문을 제기하긴 했지만 베일은 여전히 신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황은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소울아머를 입은 기사가 두 명이었다. 그들로서도 투더란과 베일의 등장이 의외였는지 처음 십여 명이 손도 못 쓰고 당한 이후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덕에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반전의 기회는 충분히 남았다.
숫자가 모자란 병사들과는 달리 자신 둘의 힘은 충분하고도 넘쳤으니 말이다.
“그래, 잡아 족쳐 보면 되겠지.”
투더란의 얼굴에 희열이 섞였다. 이곳에서 공을 세운다면 그로서도 앞날이 보장되리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그들은 숨겨진 전력이었다. 이곳 후방에 비밀리에 삼황자가 키워왔던 전력이 흩어져 있다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전방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으로 와 있던 것이다.
보급 물자의 이동과 함께 조금씩 합류하던 중인 것이다. 그때 막사 쪽을 등지고 있던 적들의 대열이 일제히 갈라졌다.
“뭐야? 소울아머가 뭐 이렇게 흔해. 내전 때문에 다 빠져나갔을 거라더니!”
한 사내가 긴 머리를 흩날리며 열린 길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경장갑 차림이었지만 여유를 부리며 걸어오는 것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하지만 곧 투더란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태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던 베일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걸친 옷은 아무리 봐도 소울아머가 아니었다.
전신을 가리는 갑주의 형태가 아닌 소울아머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전신을 가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소울아머의 힘을 전체적으로 흘려보내기 위해서는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울아머를 구동하는 소울스톤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일반 복장을 한 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끌겠다는 건가?”
투더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그런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내의 뒤로 타이탄 일족이라 의심했던 두 전사가 따라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 해도 소울아머는 소울아머로 상대해야 하는 법.
투더란과 베일은 조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 여유롭게 걸어 나오던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쫄래쫄래 따라와?”
“그, 그렇지만 저쪽은 둘이나…….”
“하나든 둘이든 뭐?”
“한 손 거들…….”
하지만 사내는 말을 잘랐다.
“걸리적거린다. 이 몸을 도우려면 니들은 멀었어.”
그 말에 그의 뒤를 따라 나오던 타이탄 일족이라 예상했던 이들이 걸음을 멈췄다.
“허…….”
투더란과 베일이 혀를 찼다.
정말 소울아머를 입은 기사 둘을 그가 홀로 상대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쳤구나.”
“왜 멀쩡한 사람을 음해하고 난리야? 앙! 내가 그것 때문에 처음부터 인생이 꼬여 평생 고생하는데!”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상대를 보고 투더란과 베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주변에 와 있던 알트란과 기사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알트란이 말했다.
“놈을 보니 지휘관쯤 되는 듯한데 일이 더 잘 풀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그래도 조심해야겠지. 뭔가 숨겨진 수가 있으니 저렇게 겁 없이 나서는 것 아닌가?”
베일이 그래도 조심하라는 언급을 하자 알트란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러더니 알트란이 좌우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이 저 사내를 덮치는 순간 소울아머를 입은 두 기사가 적들을 도륙하며 전황을 뒤집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세를 잡은 이들이 일제히 정면에 다가와 있는 사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제 좀 할 맛 나는구나.”
계웅삼이 달려오는 적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촤앙!
동시에 그의 허리춤에 있던 장도가 짧은 소음을 내며 정면으로 뿌려져 나갔다.
서걱! 서걱!
뽑혀지는 소리와 거의 비슷하게 울려 퍼진 절삭음에 정면으로 달려들던 병사 두 명이 배를 움켜쥐며 고꾸라졌다. 그때에는 이미 웅삼이 그 둘의 사이를 지나치며 몸을 빙글 돌리고 있었다.
“조심해!”
순간적으로 두 명이 당하자 알트란이 경고음을 울렸다.
하지만 몸을 빙글 돌린 웅삼에게서 손도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쾌래랙!
순차적으로 뿌려진 도끼가 주변으로 달려들던 병사와 기사를 두들겼다.
퍼퍽! 퍼퍼퍽!
“크억!”
“컥!”
비명을 지른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일부는 머리에 맞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튕겨져 자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빠르다!”
알트란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손도끼를 뿌린 웅삼이 벌써부터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길게 찔러진 장도에 병사 하나가 배를 꿰뚫리며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전광석화처럼 뽑아 장도의 손잡이로 뒤쪽에서 달려들던 이의 안면을 부쉈다.
퍼억!
“크어억!”
웅삼은 박살 난 안면을 붙잡고 무릎 꿇는 병사를 뒤로하고 다시 횡으로 장도를 휘둘렀다.
뒤쪽에서 달려들던 기사의 머리가 허무하게 솟구쳤다.
순식간이었다.
열다섯이나 되는 숫자가 쓰러지는 것은 말이다.
“소, 소울아머를 입은 거 아냐?”
한 기사가 비명 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곧 위기가 찾아왔다. 웅삼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기사가 달려드는 웅삼을 향해 방패를 들어 밀어붙였다. 하지만 기사는 허무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방패의 면을 바닥 삼아 웅삼이 옆으로 빙글 돌아갔기 때문이다. 동시에 웅삼이 장도를 역수로 잡아 자신의 옆구리 방향으로 찔러 넣었다.
“크어억!”
등허리를 꿰뚫은 장도의 끝이 기사의 가슴팍에서 튀어나왔다. 동료의 몸을 관통한 사이 달려들려던 기사 역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퍼억!
또다시 손도끼가 날아와 박혔다.
몸을 관통당한 기사와 손도끼에 심장이 박살 난 기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스르륵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트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 도 안 돼.”
“나와라.”
이미 전의를 잃은 알트란 앞으로 얼굴이 살짝 굳은 투더란과 베일이 나섰다.
베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한 수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예상을 벗어난 강함이었다.
알트란과 보급 기지의 기사들이 병사들을 동원하면 제압하거나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들이 적에게 달려들기도 전에 스무 명에 가까운 이들을 참살해 버린 것이다. 뭘 어떻게 공수를 교대하고 한 것이 아니라 물 흐르는 것과 같은 움직임으로 일방적인 학살을 한 것이다.
“저놈의 움직임이면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투더란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자, 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저놈을 제압해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으니 최대한 합공하는 수밖에.”
“젠장, 저딴 놈들 상대로 우리 둘이…….”
소울아머를 입은 자신들이라면 둘 중 하나라도 충분하지만, 작정하고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이쪽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상대를 제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상대방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간 없다. 빨리 와라. 이 형이 살살 해줄게.”
“저놈이!”
투더란이 발끈하자 베일이 말렸다.
“놈이 시간 끌기 위한 수작이야. 말려들지 마.”
그때 상대방 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안 끌어!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앙!”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그러자 베일이 실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어쭙잖은 놈들에게나 통할 잔머리 쓰지 마라. 네놈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웅삼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에이씨, 사람 말을 안 믿어…….”
이젠 지겨울 정도다. 진심을 믿지 않는 인간들 덕에 오명도 얻어봤고, 시달려도 봤다.
솔직히 그가 하는 건 남들도 다 하는 정도다.
막말로 우루나 부루 역시 사고 치고 이리저리 거짓말을 하다 걸린 게 한두 번인가?
문제는 웅삼이 하면 불륜이고 그들이 하면 순수한 사랑이다.
까드득!
이를 간 웅삼이 신중한 표정으로 좌우로 조금씩 포위하듯 벌어지는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불신자들의 말로를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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