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72
48화 술렁이는 제국
터그람 왕국의 왕 카이거 루 마이어스의 표정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인가!”
칼라일 론 마샤 공작이 비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카말 공국의 행색을 한 일단의 병력이 시에라 제국 삼황자 진영을 휘저었다고 합니다.”
“카말 공국 놈들이 왜!”
난데없이 카말 공국이 시에라 제국의 삼황자 진영을 휘젓고 다닌다는 말에 카이거 왕은 벌게진 얼굴로 소리를 쳤다. 말 그대로 난데없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 병력이 카말 공국으로 위장한 우리 왕국의 병사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미친 소리!”
콰앙!
카이거 왕이 탁자를 두들기며 노성을 터뜨렸다.
벌게진 얼굴로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애초에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우리가 왜 한다는 말인가!”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합니다. 이황자 쪽에서는 우리가 카말 공국을 제대로 접수하지 못하자 삼황자 쪽을 건드려 카말 공국의 접경 지역 병력을 빼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항의가 왔습니다.”
“이런 개 같은!”
와장창!
급기야 카이거 왕이 탁자를 뒤집어 엎어버렸다. 탁자가 뒤집히면서 그 위에 있던 찻잔과 찻주전자가 나뒹굴었다.
벌떡 일어선 카이거 왕이 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해라! 이건 분명 카말 공국 놈들의 음모라고! 우리가 그런 계책을 짰다면 오히려 그쪽에 알리고 수를 썼을 것이라고 말이다!”
“일단 그렇게 대응을 했습니다만…….”
“무어가 문젠가!”
“삼황자 진영의 피해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피해가 적지 않다는 말에 카이거 왕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카말 공국 놈들이 만약 꼼수를 썼다 해도 그 전력은 뻔한 상황. 그런데 적지 않은 피해라니?”
카이거 왕의 질문에 칼라일 공작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정찰 요새 하나와 보급 기지 하나가 전소됐고, 그 와중에 소울아머 유저가 여덟 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몇 명?”
“여덟 명이라 합니다. 그중 여섯 명은 추적 중 한자리에서 당한 것 같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기사단도 아니고 소울아머 유저다. 한두 명도 아닌 여섯 명이 한자리에서 당할 정도라면 동원된 병력의 수가 한둘이 아니어야 한다. 게다가 함정을 파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이상의 소울아머 유저를 동원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최소한 십여 명 이상.
“놈들의 수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는가.”
“추정치론 천여 명이라고 했습니다.”
“천 명?”
“허나 빠져나갈 때에는 그 반수 정도가 살아남았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
카이거 왕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오백으로 여섯 명의 소울아머 유저를 상대한다?
함정을 판다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게다가 쫓기는 도중에 그럴 여유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그 이상의 소울아머 유저가 동원되었다는 것인데 그건 더 말이 안 된다.
그 정도 숫자를 빼내면 당장에 전선에 불균형이 생긴다.
그때 뭔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놈들이 함정 등을 동원해 시간을 끄는 이유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보급선을 악착같이 끊는 등의 행동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분명 전투 중에도 적 소울아머 유저들에 대한 체크는 항상 하지 않는가. 놈들의 소울아머 유저 숫자가 그리 많을 리가 없어. 아무리 숨겨놓았던 병력이라고 해도 말이야.”
“그럼?”
카이거 왕이 서늘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전해라, 우리는 절대 아니라고. 이쪽에서 저들의 소울아머 유저의 수는 항상 확인하고 있다고 말이야. 이건 분명 함정이라고…….”
“함정이라면?”
“삼황자 측의 자작극일지도 모르지. 사실 소울아머 유저 여섯 명이 죽었니 마니 하지만 이황자 측이 시신을 확인한 것도 아닐 것 아닌가.”
“첩자들에 의한 정보이기는 할 겁니다.”
“실제 죽지 않은 것을 죽었다고 했을지도 몰라.”
카이거 왕의 설명에 칼라일 공작이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와 이황자 간의 밀약이…….”
“밀약이랄 것도 없지만 충분히 근거가 될 수 있지. 상식적으로 우리나 카말 공국이 그 정도 소울아머 유저들을 동원할 수 없으니 말이야.”
“대신 우리와 이황자의 숨겨놓은 전력이라면 가능하겠군요.”
“맞아, 그렇게 놈들이 핑계를 댈 수 있어. 빨리 연락해! 이황자 그 멍청한 놈에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칼라일 공작이 빠르게 카이거 왕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 카이거 왕이 밖을 향해 외쳤다.
“술법사를 불러서 점령군이 무슨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서신을 보내! 당장! 그리고 소울아머 유저가 몇이나 되는지 제대로 확인하라 해!”
* * *
프라임 론 아가드.
젊었을 때에는 질풍의 프라임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마스터 오브 나이트라 불리는 이.
시에라 제국 최강자를 꼽는다면 그 누구도 다른 이를 말하지 않고 프라임 공작을 말했다. 그리고 마스터 오브 나이트란 이름 그대로 모든 기사들의 추종을 받는 이가 바로 프라임 공작이었다.
그가 있음으로 인해 황자들의 내전이 발발했음에도 일정한 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내전이 끝날 때 즈음에는 제대로 단련된 정병이 수백만은 양성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황제와 함께 잠시 멈추었던 대륙 통일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전대 황제의 노림수였고 황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삼황자 진영에서 서신이 날아들었다. 삼황자가 직접 적어 보내온 서신이었다.
프라임 공작이 천천히 읽어 내리던 서신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프라임 공작의 말에 대답한 이는 바로 시에라 제국의 일황자인 리어 루 비에라였다. 외적으로도 전형적인 학자풍의 복색과 차분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부지기보단 유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어떤 것이 말입니까.”
프라임 공작의 말에 리어 일황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베란이 큰 피해를 입은 사실 말입니다.”
“으음.”
“아무리 리베란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이런 어설픈 거짓을 가지고 지연시키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리어 일황자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삼황자가 밀리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패색이 짙은 것은 아니었다. 각자 숨겨놓은 전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리어 일황자의 말에 프라임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이었다.
“그렇습니까?”
리어 일황자는 덤덤하게 되물었다.
그라면 충분히 알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황제가 없는 상황에서 제국의 일인자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황제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국의 모든 기사들에게 스승이라 불리는 것이다.
또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그에게 손을 대는 권력자는 없었다. 그는 시에라 제국의 또 다른 황제였기 때문이다.
검의 황제.
“이미 감찰대를 파견해 놓았습니다. 삼황자 진영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지요.”
“그랬군요.”
“사실 전혀 짐작도 못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대응이 조금 늦었습니다.”
그의 대답에 리어 일황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긴 국경지역이라면 이번 내전에선 변방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마일로가 신병기라도 만들어낸 걸까요?”
리어 일황자의 질문에 프라임 공작은 잠시 입을 닫았다. 숙고하는 모습이었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그의 입이 열렸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삼황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제국의 복이겠지요.”
“그렇군요. 하나 금단의 술법이라면…….”
리어 일황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프라임 공작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또한 연구의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하나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런 준비를 하려면 적지 않은 자금과 술법사들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이전에도 지금도 없으니 말입니다.”
“제삼자가 제공했을 경우의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리어 일황자의 질문에 프라임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배제하지 못하겠군요.”
“그런데 터그람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잡았다기보다는 상호 간의 묵인이옵니다.”
프라임 공작의 대답에 리어 일황자가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아시고 계셨습니까?”
“예, 상호 간의 묵인하에 마일로 이황자께서 국경의 병력을 바꾸어 친 것이지요. 터그람 왕국도 마찬가지로 국경의 병력을 뺄 수 있는 여지를 가졌고 말입니다.”
프라임 공작의 대답에 리어 일황자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찌…….”
내전의 룰을 어긴 것이 된다.
외세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되고, 국경에서의 분쟁도 불가하다. 마일로 이황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긴 것이다.
프라임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야 터그람 왕국이 카말 공국으로 쳐들어갈 것 아니겠습니까.”
“아…….”
내전을 통해 정병을 양성하고 또 군수 물자 생산과 관련된 상업이 활성화한다고 해도 좋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 자체가 많은 재화가 소모되고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다시금 대륙 통일을 위한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좋다고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시에라 제국이 노리고 있는 삼국이 내전 기간에 체력을 비축하게 되면 추후 이어질 정복전쟁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프라임 공작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눈을 감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되겠습니다. 걸리지 않았다면 좋은 선택이지만 이렇게 노출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
“일단은 확인을 해보아야겠습니다. 터그람 왕국과의 문제까지 말입니다.”
프라임 공작이 일어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리어 일황자가 침을 삼켰다. 기사도의 전형이라 불리는 프라임 공작의 진면목을 일부 엿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도 심계가 깊고 강한 정복욕을 가진 이는 바로 프라임 공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뭐? 감찰단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마일로 루 비에라 이황자의 반문에 시미르 콜린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런 빌어먹을! 왜! 우리가 아니라고 했잖은가!”
“그것이 터그람 왕국과 손을 잡은 정황이 있다고…….”
“젠장!”
마일로 이황자가 이를 갈았다.
별일 아니라 생각했었고 또 고소까지 머금었던 마일로 이황자였다. 그런데 이런 비수로 돌아오게 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터그람 놈들은 뭐라던가?”
“그쪽에서 카말 공국 쪽을 확인했는데 카말 공국은 그럴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겠지.”
마일로 이황자가 이를 갈았다.
“그런데 그쪽에선 삼황자 쪽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리베란을?”
“자작극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자작극?”
마일로 이황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소울아머 여섯이 오백도 안 되는 병력에게 당할 리도 없고, 또 같은 소울아머 유저들이 동원되었다 하면 최소한 그 이상의 숫자가 동원되어야 하는데 터그람 왕국도 카말 공국도 그렇게 하기에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긴 단지 해치우는 게 아니라 적진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못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지.”
“그리고 의문은 또 있습니다.”
“뭔가?”
시미르 백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적들이 어떻게 여섯 명이나 되는 소울아머 유저가 공격할 줄 알고 그 이상의 소울아머 유저들을 동원했겠냐는 말입니다.”
“으음.”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단지 이리저리 들쑤시는 것뿐이라면 소울아머 유저가 그리 많이 동원될 이유가 없다.
“그 내용을 들어 전달하도록 하시오. 자칫 이대로 가면 일이 심각해질 수 있단 말이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측 소울아머 유저들을 동원해서라도 놈들을 잡으시오. 반드시!”
“알겠습니다.”
“그리고 터그람에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 * *
“그동안 쫓겨 다니느라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참 평화롭네요.”
아직 시에라 제국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실라 론 카말 공녀의 표정은 밝았다.
예상대로 이황자 진영은 무주공산에 가까웠다.
처음 투입될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병사들의 대부분은 노예나 농노 등을 징집한 징집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가지고 들쑤셔 봐야 중구난방일 뿐이다. 또 지휘관 역시 정복 전쟁을 통해 단련된 이들은 없는지 정석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터그람과의 접경 지역을 통과하면 될 거예요.”
이실라 공녀의 이어진 말에 계웅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일단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지요.”
“예.”
이실라 공녀가 자리를 뜨자 웅삼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쯤 되면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쉽단 말이지.”
왠지 잘 풀리니 더 걱정이 되는 웅삼이었다.
# 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