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74
50화 이 구역의 미친놈
뿌우우우우!
“강행 돌파 한다!”
“서둘러라! 불은 심하지 않다!”
사방에 불이 붙기는 했지만, 명령을 내리는 기사들의 말대로 불길은 충분히 뚫고 들어갈 만했다. 다만 숲이 습기를 머금은 탓에 연기가 심할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불에 타죽는 것보단 질식해 죽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탈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아악!”
“저런 멍청한!”
하지만 뚫을 만하다는 것이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병사가 동료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불길에 휩싸여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또 바닥에 뿌려진 기름이 몸에 묻어 불이 옮겨 붙는 경우도 생겨났다.
심지어 그 짧은 시간 동안 연기에 질식해 쓰러진 병사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상당수 병사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어 지켜보는 기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훅! 훅! 훅!”
젖은 천으로 코와 입을 막은 탓에 그냥 숨 쉬는 것도 곤란한 상황에서 달리기까지 하니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돼, 됐다!”
다행히 숲의 초입은 바람의 영향을 받아 불이 덜 붙어 있었다. 안전하다고 봐야 했다.
“사, 살았…….”
입과 코를 막았던 천을 떼어내며 안도의 숨을 쉬던 병사의 얼굴 위로 경악이 서렸다.
퍼퍼퍽! 퍼퍽!
가죽 갑옷 위를 두들기는 둔탁한 소리가 동시 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찢어지는 비명이 이어서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끄악!”
“화, 화살이다!”
“기, 기습이다!”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과 경고성이 연신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직 숲을 빠져나오지 못한 병사들의 아우성과 숲이 불에 타면서 나오는 소리가 섞여 뒤쪽에서 숲을 벗어나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앞 열에서 빠져나가 줘야 뒤쪽에서도 빠져나갈 것인데, 기습에 의해 병사들이 나가지 못하니 숲에서 연기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매복이라니!”
어쩌면 예상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었다. 기사들이 뒤이어 나오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계속 달려라! 아군이 통구이가 되는 걸 구경할 참이냐!”
“방패수 앞으로! 방패수들은 우선적으로 앞으로 이동한다!”
“궁수들은 나무에 엄폐해서 대응을…….”
콰아앙!
명령을 내리던 기사의 목소리가 폭음과 함께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놀란 병사들이 뒤돌아보니 기사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기둥이 불을 머금은 채 꽂혀 있었다.
“바, 발리스타?”
“이런 미친놈들! 야지에 발리스타를 끌고 다니다니!”
엄연히 발리스타는 공성 혹은 수성 병기다.
물론 일반적으로 대회전이나 전투에서 쓰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만 덩치에 비해 효율이 낮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생각도 못했는데 발리스타가 등장했으니 놀랄 만도 했다. 발리스타는 몸을 숨긴 나무도 박살을 내며 터그람 왕국군에게 암울하게 다가갔다.
그 수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몸을 숨기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계속 날아오는 화살들은 병사들이 정비를 마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와아아아!
앞쪽에서 울려오는 함성 소리에 그리팔 후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매복?”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숲을 빠져나가지 못해 질식하는 병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참모의 보고에 그리팔 후작이 이를 갈았다.
“일이 꼬이는군.”
“드미튼 백작!”
“예!”
그리팔 후작의 부름에 드미튼 포우 백작이 나서며 군례를 올렸다.
“그대가 길을 뚫어주어야겠네. 사전 정찰에도 잡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적의 수는 소수일 것이야.”
“알겠습니다.”
“제1군단 소속 기사단을 끌고 가게나.”
“예!”
명령을 받은 드미튼 백작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제1기사단 정렬하라!”
선봉을 이끌게 된 드미튼 백작이 앞으로 나서며 외치자 기사단들이 그의 뒤로 정렬했다.
“놈들은 소수다! 한 번에 치고 나가도록 한다!”
“예!”
짧고 굵은 대답이 울려 퍼졌다. 메케한 연기에 콜록거릴 만도 하건만 그들은 대열을 흩뜨리지 않았다. 사실 기사들의 경우 술법사의 도움을 받아 연기의 상당수를 걸러내고 있었다.
그 덕에 술법사들은 진땀을 빼며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전진하라!”
드미튼 백작이 소울아머를 장착하며 달려 나가자 그 뒤를 기사들이 일제히 따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홀랑 다 타버려라! 통구이가 되는 거다!”
카말 공국의 공왕 바사 론 카말은 활활 타는 숲을 보며 즐거운 듯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전염이 되었는지 병사들은 손이 부르트도록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타다르 백작이 걱정된다는 투로 말을 걸어오자 바사 공왕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왜? 아직 제대로 굽지도 않았는데.”
“적당히 구웠으면 빠져야지요.”
“아직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잖나.”
바사 공왕의 말에 타다르 백작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럼?”
“아무래도 기사단이 나서겠지?”
“그, 그렇습니다만.”
“걔들만 죽이고 가자, 깔끔하게.”
히죽 웃는 바사 공왕을 보며 타다르 백작은 한숨을 쉬며 뒤쪽에 도열해 있는 공국의 근위기사단에게 전투를 준비시켰다. 그때 숲 안쪽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돌격하라!”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리가 숲을 박차고 나왔다.
뜨거운 열기와 연기에 그을렸지만 한눈에 봐도 터그람 왕국의 정규 기사단이었다. 그 수도 이백여 명에 달했다.
반면 이쪽의 기사들은 백여 명 정도뿐이었고, 병사들도 천여 명이 전부였다. 그것도 대다수는 궁병이었다.
“모조리 도륙하리라!”
살기를 가득 담은 음성을 터뜨리며 가장 선두에 나선 이는 드미튼 포우 백작이었다.
“소, 소울아머 유저다!”
전신을 둘러싸고 명치께에서 빛을 발하는 복장을 보자마자 궁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화살은 소울아머를 뚫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바사 공왕이 뒤를 보며 말했다.
“장전된 거 있나!”
“예! 세 대가 준비 중입니다.”
“저놈에게 일점사.”
“…….”
바사 공왕의 말에 발리스타 운용병들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무식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또 궁금하기도 했다.
화살을 손쉽게 퉁겨내는 소울아머가 지근거리에서 직사로 발사하는 발리스타의 대형 화살을 맞고 버틸 수 있는지가 말이다.
앞쪽 궁수들의 대열이 쫙 갈라지며 사각을 내린 발리스타 석 대와 뒤늦게 장전을 마친 한 대까지 포함, 넉 대의 발리스타가 질주해 오는 드미튼 백작을 향해 대형 화살을 일제히 날렸다.
투투투퉁!
“이런 무식한!”
드미튼 백작은 궁수의 대열이 갈라지자 적 기사들이 몰려오는 줄로 착각하여 최단 거리로 달리고 있었다.
이쪽은 숲을 빠져나오면서 말을 버린 뒤 달리고 있었고, 적들은 말을 타고 있을 것이 뻔했다. 말을 탄 기사와 타지 않은 기사의 위력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길이 열리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바로 발리스타였다.
이미 지근거리까지 달려왔고 또 동시에 발사된 탓에 넉 대의 화살은 모두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만 봐도 오로지 그를 맞히기 위해 쏘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콰앙!
“크으!”
날아오는 발리스타 화살 중 세 개는 피했지만, 하나는 결국 피하지 못하고 소울포스를 끌어올려 검으로 막아내었다.
그러자 커다란 통나무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박살이 났다. 하지만 드미튼 백작도 뒤로 주르륵하고 밀려 나갔다.
그의 질주가 멈춘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쾅! 쾅!
“아악!”
“커억!”
“이런 빌어먹을 일이!”
드미튼 백작이 뒤를 돌아보자 비산하는 나무 조각들 사이로 그가 피해낸 발리스타의 대형 화살을 맞아 박살 난 기사들의 처참한 모습이 들어왔다.
그를 선두로 쐐기 형태의 진형을 편성한 탓에 피해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 시작이었다.
두두두! 두두두!
땅바닥이 울리며 앞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져 오기 시작했다.
“놈들!”
발리스타로 자신의 발길을 막은 것도 모자라 기사들의 대열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카말 공국의 기사들이 저마다 장창을 들어 올리고 말을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건?”
달려오던 카말 공국의 기사들을 본 순간 드미튼 백작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카말 공국 근위기사단의 복장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지만 드미튼 백작은 소울포스를 자신의 롱소드로 끌어 올리며 사나운 돌진을 해오는 근위기사단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저딴 발리스타 따위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더냐!”
성난 드미튼 백작이 다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상대하기 싫다는 듯 좌우로 쫙 갈라지며 그를 지나쳐 갔다.
원래부터 그들의 목표는 대열이 흐트러진 터그람 왕국의 기사들이라는 듯.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드미튼 백작이 롱소드를 휘두르자 그에게서 푸른 빛이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며 기사들을 훑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세 명의 기사가 말과 함께 토막이 나며 뒹굴었다.
소울아머 유저의 가공할 위력이었다.
“그냥 보내주고 나랑 놀자꾸나!”
두 번째 공격을 가하려던 드미튼 백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다르 백작인가?”
소울아머를 착용한 사내의 체형을 보자마자 타다르의 이름이 드미튼 백작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눈에 들어오는 좌우로 팍 퍼진 체형도 체형이지만 대부와 둥근 방패는 바로 타다르 백작을 절로 연상하게 만든 것이다.
말을 달려오던 타다르 백작이 말 등에서 몸을 날리며 대부를 세로로 내리찍었다.
콰아앙!
“크윽!”
미리 준비하지 못한 덕에 급하게 소울포스로 두른 방패가 쩌억 하고 갈라졌다.
드미튼 백작이 반쯤 쪼개진 방패를 보며 이를 갈았다.
“습격 따위나 하다니!”
“습격 따위나 당한 놈은 뭔가?”
타다르 백작이 히죽 웃으며 받아치자 드미튼 백작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네놈의 머리라면 손해는 아니지!”
순간 드미튼 백작의 신형이 빨랫줄마냥 쭈욱 늘어나며 바닥에 착지한 타다르 백작에게 날아갔다.
콰앙! 쾅! 쾅!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번의 공격이 타다르 백작을 두들겼다. 하지만 그는 능숙하게 방패로 튕겨내며 다시 대부를 휘둘렀다.
퍼엉!
“무식한 놈!”
드미튼 백작이 몸을 옆으로 이동시키며 치를 떨었다.
그의 대부가 땅바닥을 뒤집어엎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위력이 컸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나 워낙에 동작이 컸기 때문인가?
타다르 백작에게서 빈틈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드미튼 백작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핏줄기가 쫙 뿌려졌다.
롱소드를 휘둘러가던 드미튼 백작의 얼굴이 확 하고 일그러졌다. 방금 그 절삭음은 드미튼 백작이 타다르 백작을 벤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드미튼 백작이 피가 흘러나오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그러진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그의 귓가로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상체와 하체를 따로 나누어줄 생각이었는데, 조금 얕았군.”
“저, 전장의 미친놈!”
“…….”
“풉!”
바사 공왕의 얼굴은 드미튼 백작보다도 더 일그러져 있었고, 타다르 백작은 한 손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았다.
빠득!
바사 공왕이 구겨진 얼굴로 이를 갈며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기뻐해라. 가문 대대로 내려온…… 아니, 내려줄 내 검에 처음으로 난자당하는 첫 번째 소울아머 유저로 널 선택한 것을.”
“크윽!”
바사 공왕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드미튼 백작은 신음을 흘렸다. 타다르 백작만이라면 적당히 시간을 끌며 상대하다가 본진의 다른 소울아머 유저와 합공할 수 있었지만, 바사 공왕까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멀쩡한 몸으로도 모자랄 판에 상처까지 입은 상태 아닌가.
“걱정 마라. 네놈의 몸을 난자하는 것은 내 롱소드로도 충분하니까.”
“어디 붙어보자!”
드미튼 백작이 달려 나가며 소울포스를 뿌려 나갔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다시 타다르 백작의 대부에 막혀 버렸다.
콰앙!
“타다르 백작! 어찌 승부에 끼어든단 말인가!”
드미튼 백작은 당황하면서도 분노한 목소리를 뱉어내었다. 그때 그의 등이 화끈해졌다. 이어서 바사 공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대일이라고 안 했다. 난자만 내가 한다고 했지.”
등에서 솟구치는 핏줄기를 느끼며 드미튼 백작이 되돌아설 때 그를 반긴 것은 바사 공왕의 장담처럼 그의 온몸을 난자하기 위해 쏟아지는 검이었다.
퍼퍼퍽! 퍼퍽!
순식간에 그의 몸을 난자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끄륵!”
드미튼 백작이 무릎을 꿇으며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 비겁한…….”
충혈된 눈을 들어 올리며 억울한 시선을 보내자 바사 공왕이 어깨 위로 롱소드를 척 기대 올리며 말했다.
“미친놈에게 뭘 바라.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큭!”
털썩.
드미튼 백작이 엎어졌다. 사방으로 터그람 왕국 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건 했으니 정리하고 가자!”
바사 공왕과 타다르 백작이 소울포스를 끌어 올리며 달려 나갔다.
그리팔 후작이 숲을 나섰을 때에는 이미 사라져 가는 카말 공국 병사들의 뒤꽁무니만 볼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불에 타고 있는 발리스타 네 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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