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8
강철의 열제 58화
휘이이이.
나라의 기강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음을 탓하는 것인가?
홀로 서있는 열제 고진천의 모습은 쓸쓸할 따름이었다. 그보다는 약간의 허탈함도 비추고 있었다.
한손에 쥐여진 부루의 별칭 ‘단무지(端武智)’를 바닥으로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품속에서 자신이 적어온 연호를 보았다.
‘단무지(㫜務址)’
밝을 단(㫜)에 힘쓸 무(務), 터 지(址)…….
뜻은 달랐지만 진천의 귓가에 들려오던 휘가람의 목소리가 떠나가질 않았다.
‘단순(單純) 무지(無知).’
며칠간의 진천의 고생이 물거품으로 끝나버린 순간이었다.
가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멀었다.
* * *
가우리 백성들의 일과는 항상 같았다.
새벽이면 호수 주변을 달리는 병사들의 고함소리, 논밭을 일구러 나가는 노인들과 아낙들의 모습…….
노예들은 이외에 모든 노동에 투입이 되었다. 하지만 핍박당한다는 정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동작업에 동원되고 먹고 기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한쪽은 점점 능동적으로 변해 갔으며 한쪽은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약육강식의 세계처럼 굳이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그 구분선은 점점 진해져만 갔다.
“개자식!”
퍼억!
“으어억!”
한 명은 욕설을 내뱉으면서 개 패듯이 패고 있었고, 한 명은 땅 위를 뒹굴며 개 맞듯 맞고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에 말리는 사람은 하나 없고, 보는 이들의 시선은 점차 싸늘해져만 갔다.
“무슨 일이냐!”
탁탁탁탁!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달려오자 바닥에서 맞고만 있던 남자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갔다.
“사, 살려주…….”
“닥쳐, 이 새꺄!”
퍼어억!
“어억!”
그러나 사내의 발길질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고, 다가오는 병사들의 발걸음은 급해져만 갔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것이었다.
뿌드득!
“크흐어어.”
“죽어!”
거친 뼈 소리가 울리고 바동거리던 사내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들거리자,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으며 입가에 거품을 베어 문 남자가 이내 늘어져 버리고, 병사들은 그때서야 도착을 하며 여전히 발길질을 해대던 남자를 떼어낼 수 있었다.
“죽었군.”
“후욱 후욱.”
한 병사가 고개를 저으며 난감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병사에게 붙들려 있던 사내가 비로소 자신이 행한 사실을 인지한 듯, 얼굴이 파랗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여기 이것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간다. 모두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야. 가자구.”
“가자.”
일만이 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해서 사고가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살인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병사에 의해 끌려가는 사내와 그 뒤를 따르는 십여 명의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처음으로 생긴 살인의 해결 방향은 그들에게 앞으로 실질적인 법의 기준이 될 것이다.
낮은 담이 둘러쳐진 관청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번일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만이라 하지만 밀도가 높은 탓에 작은 사건은 금방 알려져 갔다. 거기에 처음 생긴 살인은 이들의 이목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름!”
“하일론 입니다.”
“병과와 소속은!”
“부월수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은 인원의 부족함으로 인해 병과만이 나뉘어져 있었다. 죽은 남자는 노예로서 이 사내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였으나, 짧은 기간의 훈련만으로 손쉽게 죽여 버린 것을 보아 그 훈련이 얼마나 고되고 강도가 높은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왜 죽였나?”
“…….”
왜 죽였느냐는 물음에 하일론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끌려오던 아까와는 달리 많이 당당해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기에 담담한 모습을 유지하며 처분을 바라는 것 같았다.
“열제 폐하 납시오!”
사람들의 몸이 파도를 타듯 땅으로 가라앉아 가면서 고진천의 모습이 보였다. 심문을 하던 장수가 의자에서 달려 나가 부복하며 외쳤다.
“만천의 지존이자 만인과 만물을 포용하시는 열제 폐하께 신 양무전, 예를 올리옵나이다.”
저벅저벅.
부복한 양무전의 옆을 지나는 진천의 뒤로는 을지부루와 우루형제가 있었고, 그 뒤를 대무덕과 연휘가람이 따랐다. 그리고 뒤늦게 제라르와 리셀이 달려와 시립했다.
천천히 의자에 앉은 진천이 주변을 쭉 둘러보고는, 입을 열어 낮은 음색을 뱉었다.
“모두 일어나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열제 폐하의 명이시니라!”
“열제 폐하 뜻에 따르겠나이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천이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죄진 놈은 말고!”
“아, 알겠습니다, 열제 폐하!”
“…….”
무지한 탓인지 아니면 진천의 명령에 충실한 탓인지 꿇어 앉혀졌던 하일론까지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간 하일론을 본 진천은 손을 내밀어 심의 내용과 증언 내용을 읽어 보았다. 이런 일까지 열제가 나설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천은 무리들을 이끌고 직접 나온 것이다.
“흐으음.”
“…….”
진천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오자 하일론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작은 나라지만 한 나라의 제왕이었다. 자신 하나가 죽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갑자기 집에 있을 부인과 아이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
“저…… 만천의, 그 하늘이신…….”
“안되는 것 하지 말고 묻는 거나 잘 대답하라.”
“히익! 예!”
일반 병사가 열제에 대한 경배를 알 리가 없었고, 진천 또한 그런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하일론은 등 뒤에 흐르는 땀방울을 느끼며 다음에 나올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인 이유!”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하일론은 진천의 질문에 술술 읊어대기 시작했다.
“휴, 삭신이야.”
하일론은 훈련을 마치고는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날따라 훈련의 강도가 높았던 탓에 하일론의 몸과 마음은 지치고 또 짜증도 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조금씩 칭찬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쩍 자신감이 몸에 붙기 시작했다.
“쯧, 저런다고 얼마나 한다고 그러나…….”
“쉿! 조용하라고.”
하일론은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지?”
하일론이 혼잣말을 하며 바라보자, 두 명의 사내들이 아무 일도 아닌 듯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하일론은 입맛을 한번 다신 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몇 발자국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게 되었다.
“젠장, 거들먹거리긴. 저러다 토벌대 오면 가장 먼저 뒤져나갈 것인데.”
“이 친구야, 듣겠어.”
“쳇.”
그들의 대화를 이미 들어버린 하일론의 눈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그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니 말리는 사람과 툴툴거리는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신들.”
“흠, 흠흠.”
“카악 퉤엣.”
하일론의 음성이 낮게 깔리어 가자 말리던 남자는 헛기침을 하며 슬슬 피하고 있었으나, 툴툴거리던 남자는 보란 듯이 가래침을 옆으로 뱉어냈다. 얼핏 보기에도 하이론 보다 머리 하나는 큰 모습이었다.
하일론은 천천히 걸음을 그들에게로 옮겨나갔다. 그들의 복장은 하일론의 병사 복장과는 달리 통일된 복장이었는데, 바로 노예를 뜻하는 복장이었다.
안 그래도 노예를 보는 일반 백성들의 눈길이 차가워져가는 시점에 좀 말라 보이는 하일론에게 걸린 것이다.
“지금 뭐라고 했나?”
“병사님은 가던 길이나 가시죠.”
하일론의 말에 사내는 허리를 펴 보이며 위압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네놈, 지금 한 소리 다시 지껄여 봐라.”
“이놈 저놈 하지 마쇼. 아무리 노예라지만.”
“뭐!”
“그리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칼 들고 뛰어다닌다고 뭐가 났답니까? 어차피 병사님이나 나나 도망쳐 화전민이 된 건데, 같은 처지에 너무 그러지 맙시다.”
퍼어억!
단 일격으로 인해 하일론의 분노는 주먹에 담기어 폭발해 나갔고, 그 사내는 첫 방에 쓰러져 죽을 때까지 맞았던 것이다.
“…….”
“그래서 죽였습니다. 어디 제가 그놈이랑 같습니까요. 아니 저희들이 왜 그 고생을 하는데요. 흑흑, 그냥 제 목숨만 거두어 주시고 저희 가족들은 살려 주십시오. 으흐흑…….”
“어느 안전이라고!”
“그만.”
하일론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근위무장들이 호통을 치려 나서는 것을 고진천이 제지했다.
“처음이군.”
낮지만 또렷한 음성이 바람을 타고 숨을 죽인 사람들의 귓가로 흘러들어갔다.
“이곳에서 다툼으로 인해 사람이 죽은 건, 처음이라지?”
“예.”
진천의 나직한 음성에 심의를 주도하던 장수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진천의 말투는 더욱 사람들의 혼란을 불러왔고 내려질 판결에 대한 예상을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다.”
진천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아마도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을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우리가 이곳에 가우리를 다시 이어가면서 처음 한 말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죽었다.”
“…….”
하일론의 등줄기에서 흐르던 땀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자신의 운명을 느꼈던 것인가?
“여기 있는 백성들에게 고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장에서나 허락된 행위이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고, 시비가 있으면 관청에 와서 가리면 된다. 허나 멋대로 죽이면 그에 해당하는 벌은 죽음뿐이다. 게다가, 제지하러 달려오는 병사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죽였음은 관을 무시하는 행위!”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졌다. 진천의 얼굴에는 이렇다할 표정이 나타나 있지 않았다. 마치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 나가듯이 말 할 뿐이었다.
“하일론!”
“예. 여, 열제 폐하.”
“후회하나?”
“흐읍, 욱욱욱.”
“후회하나?”
“후회 합니다. 우욱흑흑흑.”
오열하는 하일론을 바라보는 진천의 눈빛에는 그저 관조함 만이 담겨져 있었다.
“넌 네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아는가?”
“예. 같은 백성을……, 저 하나의 시기로 인하여 죽였습니다.”
“틀렸다.”
“…….”
대무덕은 진천의 입 꼬리가 묘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차후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천이 직접 몸소 나선 것이기도 했다.
“먼저, 너의 죄는 나라의 재산을 훼손한 것이다.”
“……!”
“열제 폐하!”
“조용.”
아니나 다를까 진천의 돌발 발언은 무덕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유도해 냈고, 휘가람의 고개가 마치 ‘어쩔 수 없군.’이라는 듯 저어가도록 만들었다. 물론 을지부루와 우루는 맹목적으로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진 않지만 사방에 술렁임이 일었다가 잠들었다.
“노예는 이미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가축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 병사로 훈련을 받고 있는 하일론이 개가 짖는다고 패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죽였다는 것이지.”
“…….”
하일론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진천이 자신에게 잘 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적용 기준이 모호한 것이다. 이점은 진천의 주위에 시립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겐 가축보단 가우리를 지키는 병사가 더욱 귀하다.”
“열제 폐하!”
“허나! 아무리 그 가축이 자유를 자기 손으로 내박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안위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하일론을 모욕하고, 나아가서는 그의 의지를 자신들의 쓰레기 같은 수동적인 것과 비교를 하였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아무리 개나 소보다도 힘을 못 쓰더라도, 또 전쟁이 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며 위험할 때 가장 먼저 버려질 존재라 할지라도, 일단은 인간이다.”
무덕의 제지에도 진천의 비꼼은 점점 더해갔다. 여유 있던 진천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지며 커다란 음성이 그의 목을 빠져나와 대기를 울렸다.
“판결한다! 이번 일을 일으킨 하일론은 앞으로 평생을 병사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징집해제 또한 없다. 한마디로 죽을 때까지 칼을 들어야 한다. 거기에 하나의 귀한 자원을 손실한 죄로 아내와 힘을 써 향후 5년 안에 5명의 아이를 더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부인과 나머지 아이들을 모조리 노예로 쓰겠다.”
“여, 열제 폐하!”
급기야 해괴망측한 판결을 내려버린 진천을 향해 무덕은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고, 부루와 우루는 자신들의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무엇인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단! 이 판결은 이번에 한 하며, 차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관청의 판결을 받아야 할 것이고, 그 때에는 백성을 능멸한 노예의 경우 최고 사형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즉! 죽여도 내가 죽인다. 알겠나!”
“열제 폐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 관청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 노예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그 또한 중죄이므로 일을 저지른 자는 지금과 같은 판결이 아닌 가족전체와 그 후대까지 전원 노예로 삼을 것이다.”
“열제 폐하, 뜻대로 하시옵소서!”
진천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혹, 차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와 같은 판결을 바라고 일을 저지를 자는 저질러 보도록. 손수 멱을 따줄 터이니.”
“여, 열제 폐하, 체통을!”
“가지.”
무덕의 화급한 음성에도 불구하고 진천은 ‘체통이 밥 먹여주나?’라고 말하듯이 무뚝뚝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리고 뒤에 남겨진 하일론은 지옥에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의 어깨를 짚어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니보라우. 오 년에 다섯이야. 오늘부터 힘 좀 쓰라우.”
우루였고,
“아새끼래 밤에 힘 죄다 쓰고 훈련할 때 비리비리하면 디지는기야.”
부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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