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82
59화 빛의 기둥은 솟구쳐 오르고……
“시작합니다!”
사방에서 마법사들이 경고음을 냈다.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두 입을 다물고 중심에 선 리셀을 바라보았다.
리셀 역시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이제 시작이다.
리셀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지는 동시에 입술이 열렸다.
“오움 살라 움 타아…….”
마력의 진언이 시작되고 천천히 그의 손이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주변의 마법사들이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런 리셀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셀의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마법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드드드드!
천천히 들어 올려진 손동작과는 달리 강렬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동작인 마나 드레인이었다.
우우웅!
동시에 리셀의 심장 어림에서 ∞의 형태로 은은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빛은 심장에 만들어져 있는 서클이 외부의 마나와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대륙 유일한 무한의 서클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오오오오!
얼마나 많은 마력이 몰려오는지 그 압력이 살갗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깊은 물 속에 들어간 것처럼 묵직한 압력이 사방으로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허, 대단하네.”
제라르가 혀를 찼다. 다른 인원들도 동의하는지 긴장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마법진이 일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 *
“셋이라.”
계웅삼은 자신을 막아선 소울아머 유저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법 강하다지만 상대 못할 이유가 없다. 웅삼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어이없는 놈이군.”
소울아머 유저가 셋이나 지키고 있음에도 그대로 달려드는 웅삼의 모습에 헤이먼 던벨 자작이 피식 웃었다. 다른 두 명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소울아머 유저가 아님에도 달려드는 모습이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마중이라도 나가듯 풀 마누어 자작이 달려 나갔다.
“숨겨둔 소울아머 유저나 데리고 오려무나!”
자존심 상한다는 듯 소울포스를 끌어 올린 풀 자작이 롱소드를 뿌렸다. 그 순간 눈앞의 세계가 이질적으로 갈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이를 악물며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쩌엉!
“욱!”
굉음이 울려 퍼지며 풀 자작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 나갔다. 두 발을 디디었던 바닥에 두 개의 고랑이 패었다.
“이, 이럴 수가!”
풀 자작은 순간 흐릿해진 롱소드의 소울포스를 보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아 롱소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면 그의 목 위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까지 손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충격이 남아 있었다.
“조심하게!”
뒤편에서 울려온 경고성에 풀 자작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를 조롱이라도 하듯 웅삼이 다가와 장도를 뿌리며 말했다.
“감이 좋은데?”
카캉! 카카캉!
“네, 네놈은 누구냐!”
연신 그의 롱소드 위를 두들겨 대는 공격에 이를 악물며 물었다. 롱소드에 드리워진 소울포스가 눈에 띄게 흐려졌다. 심지어 롱소드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놀람도 잠시 자신의 허벅지가 뜨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웅삼의 장도가 그의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작은 상처였지만, 그의 균형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순간을 웅삼은 놓치지 않았다.
쾌에엑!
목젖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장도를 보며 풀 자작은 자신의 자만심에 한탄하며 눈을 감았다.
퍼엉!
그때 폭음이 울렸다.
그 폭음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달아 울려왔다.
퍼펑! 퍼퍼펑!
“괜찮은가!”
“헤이먼 자작님…….”
어느새 다가왔는지 헤이먼 자작이 그를 부축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코튼 자작이 역시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견제 자세를 굳히며 있었다.
“괜찮습니다.”
대답을 한 풀 자작이 시선을 돌리자 연달아 날아오는 불의 새를 막아내며 물러서고 있는 웅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시선을 뒤로 돌리자 술법 전단이 연달아 술법을 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건만 오히려 그들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다.
“놈은 소울아머 유저는 아니지만 그 이상이오.”
풀 자작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롱소드를 내밀어 보였다. 그 롱소드에는 거미줄 같은 실금이 여기저기 가 있는 것이 건들기라도 하면 깨어질 것 같았다.
콰칭!
아니, 깨어졌다. 소울포스를 거두자마자 유리처럼 깨어져 버렸던 것이다.
“으음.”
검이 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가끔 부러질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휘거나 이빨이 나가는 정도다. 그런데 지금 그의 롱소드는 마치 유리처럼 깨어져 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소울포스로 보호된 무기를 이 지경으로…….”
코튼 자작이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헤이먼 자작이 굳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쩌면 놈들에게 소울아머 유저가 여럿 있지는 않을 것 같소.”
헤이먼 자작이 바라보는 곳으로 두 사람이 시선을 옮겼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술법으로 만들어낸 불의 새를 쳐내는 웅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술법으로 가한 공격을 저렇게 쳐낼 수 있는 이는 소울아머 유저나 완전 무장한 기사들뿐이다.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마치 물을 베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즉, 포스를 다루는 이들만이 저렇게 쳐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 웅삼을 향해 수십 명의 술법사가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견제 따위는 우습다는 듯 모조리 쳐내고 있지 않은가.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헤이먼 자작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음성을 내뱉었다.
“합공해야겠군.”
“아무래도…….”
“예.”
헤이먼 자작의 말에 나머지 두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다.
무기를 바꾸어 든 풀 자작과 나머지 두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천천히 소울포스를 끌어 올리며 웅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웅삼이 멈추어 서자 별동대는 그대로 돌파력을 잃고 난전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래도 터그람 왕국의 일반 병사들로 그들을 어찌하기에는 실력 차가 컸다.
하지만 상대하는 적들의 숫자가 컸고 저들은 처음부터 실력 차를 예상했는지 병사들을 밀어 넣으면서 중간중간 기사들로 하여금 살수를 펼치게 하였다.
“빌어먹을!”
이실라 론 카말 공녀가 이를 악물며 날카롭게 날아드는 적 기사의 롱소드를 쳐내었다.
차앙!
“네년, 계집이구나!”
그녀의 음성을 들었는지 터그람 왕국 기사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계집인데 보태준 거 있냐!”
“흐흐, 계집은 자빠뜨려야 맛인데.”
상대방은 그녀의 대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실라 공녀의 성미를 슬슬 긁어대었다. 그러자 이실라 공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가리에 똥 물었냐? 말하는데 뭔 구린내가 이렇게 나!”
“뭐?”
“똥개가 니 주둥이에 대가리 디밀겠다. 맛난 냄새 난다고.”
“크윽!”
열이 오른 터그람 왕국 기사가 얼굴을 붉히자 이실라 공녀가 몇 마디 덧붙였다.
“아님, 네가 사람의 탈을 쓴 똥개라서 똥 처먹었을 수도 있겠네! 안 그래?”
“이런 미친년!”
화가 오른 탓에 동작이 커져 버렸고, 그 틈을 이실라 공녀는 놓치지 않았다.
콰득!
이실라 공녀의 롱소드가 터그람 왕국 기사의 목젖을 꿰뚫었다.
“컥!”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목을 꿰뚫은 롱소드를 부여잡으며 눈을 부릅뜬 터그람 왕국 기사에게 다가간 이실라 공녀가 서늘한 음성으로 조용히 그에게 한마디 남겼다.
“어떻게 알았대? 내 별명이 미친년인 거.”
순간 그 기사의 동공이 더욱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여기사는 많지만 그중 미친년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는 단 한 명이었다.
푸왁!
단번에 뽑혀 나가는 롱소드의 날과 뿌려지는 피를 보며 터그람 왕국의 기사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설마 이들은…….’
퍼억!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발길질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격한 것을 느끼고는 확신했다.
‘맞구나, 전장의 미친년 이실라…….’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도 되는 듯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숨을 거두었다.
“확, 씨. 거기를 난도질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이 정도만 한다.”
도끼눈을 뜨고 숨을 거둔 기사에게서 시선을 뗀 이실라 공녀가 웅삼을 향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후우, 술법사들을 저렇게 많이 끌어모아 활용하다니…….”
웅삼은 세 명의 소울아머 유저와 싸우면서도 사방으로 날아드는 술법사들의 공격을 막으며 고전하고 있었다.
다시 주변을 보았다.
거칠게 밀어붙이는 카말 공국의 별동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겠다며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최대한 많은 수를 살려서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실라 공녀가 안타까운 음성을 흘렸다.
“나쁘지 않아.”
처음 웅삼에게 풀 자작이 당할 뻔한 모습을 보고 기겁했던 파인 자작도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다. 웅삼에게 소울아머 유저 셋과 술법 전단이 묶였지만 반대로 적들의 돌파도 저지되었다.
분전을 펼치는 모습에 아군의 희생이 점차 커졌지만, 그 또한 예상했던 바였다.
전체적으로 적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강하다 하지만 수에 밀리는 그들에게는 정해진 수순이라고 봐야 했다. 무엇보다 적들의 무장은 약했다.
가벼운 가죽 갑옷 위주의 무장은 치고 빠지는 식의 전투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이런 난전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엄청난 놈이군.”
소울아머 유저 셋이나 붙어 있음에도 아직 자잘한 상처 이외에는 입지 않고 싸우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셀 남작이 그렇게 당한 것도 이해는 갔다.
술법 전단이 없었다면 소울아머 유저 셋으로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대체 어디서 떨어진 놈이지? 소울아머 유저도 아니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강력함이었다.
저 정도나 되니 삼황자 진형에서 그 많은 소울아머 유저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누가 예상했겠는가.
그때 한쪽에서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응?”
시선을 돌려보니 세 명의 적이 아군을 학살하다시피 하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진행 방향은 바로 소울아머 유저들과 술법 전단에 묶여 있는 이가 있는 곳이었다.
“합류하면 곤란하지.”
파인 자작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호위 기사들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이십여 명의 기사 중 열다섯가량이 일제히 말을 몰아 달려갔다. 그들이라면 충분할 것이다.
“지겨운 놈들. 여기서 끝내자.”
파인 자작은 기분이 좋았다. 제국의 삼황자도, 이황자도 어쩌지 못한 적을 자신이 잡게 되니 말이다.
“빌어먹을. 자꾸 앵앵거리는 게 영…….”
답답함에 웅삼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소울아머 유저들을 상대할 만하다고 했지만, 방심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게다가 술법사들이 날리는 것들은 그가 조금의 틈을 보이거나 또는 공격할라치면 어김없이 날아들었다.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웅삼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단번에 뚫고 나가려 했건만 이제는 완전히 적과 뒤섞여 버렸다. 이 상황에서 선택할 만한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이실라 공녀만을 구해서 탈출하든가 아니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실라 공녀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그가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 것인데 적들은 아주 작정하고 시간을 끌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만하지도 않고 또 무리하지도 않았다.
아주 더러운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별동대원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도 어렵다.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지만 적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결국 힘이 빠지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렇게 한둘씩 쓰러지다 보면 결과는 전멸이다.
“빌어먹을…….”
웅삼의 얼굴 위로 어두운 빛이 드리워졌다.
이대로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이쯤에서 무언가 해야 전자든 후자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래, 해보자꾸나.”
웅삼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 * *
콰우우우우우!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리셀과 밝게 빛나는 마법진을 중심으로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 기세가 워낙 대단했기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과 장수들은 이미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드드득!
순간 몰아닥치던 폭풍이 멈추었다. 마치 폭풍의 눈 안으로 들어온 것과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찾아온 것은 고요.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리셀이 나직하게 외쳤다.
“공간의 법칙을 뒤틀지어니…….”
나직한 영창이 끝나자 마법진에 머물던 빛이 일제히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콰콰콰콰콰!
거대한 빛줄기가 마치 폭포가 역류하는 것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 가운데 리셀은 끌어모았던 마나를 아낌없이 내뿜었다.
빛의 기둥은 마치 하늘을 꿰뚫기라도 하듯 하늘로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빛이…….”
대무덕이 살짝 놀란 눈을 했다.
마법진에서 빛의 알갱이들이 흘러나와 그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그들의 몸도 빛에 조금씩 물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열제이시여, 곧 소신이 가옵니다.”
무덕이 두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끝까지 뚫어버리겠다는 치솟은 빛의 기둥을 보며 그의 몸은 천천히 빛으로 휘감겨져 갔다.
리셀이 다시금 외쳤다.
“이곳에 실현될지어다! 워프!”
후와아아악!
사방이 빛으로 휩싸였다.
빛의 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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