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84
61화 아군인가 적인가
빛으로 휘감겼던 리셀의 마지막 영창에 따라 마법진에서 시작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더욱 강하게 발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바우우우웅!
“우웃!”
마법진 주변에 있던 이들이 강렬한 빛에 잠시 시선을 가렸다. 그리고 빛이 사라짐을 느끼자 하나둘씩 가렸던 손을 내리고, 시선을 옮겨 마법진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레비언 고윈이 말을 꺼내다 말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어어…….”
중앙에 누가 봐도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리셀이 양팔을 하늘로 든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툭 건든다면 바로 자빠질 것만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고윈이 서둘러 리셀의 주변을 살폈다. 마법진 안에 있던 이들도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다못해 짱돌 하나까지도 그대로였다.
당황하기는 대무덕이 더했다. 분명 마법을 쓴 것 같은데 모두가 그 자리에 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울절, 이게 어떻게 된 일…….”
무덕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화아악!
리셀의 온몸이 빛에 휘감기더니 그대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엇! 울절! 울절!”
“리, 리셀 님!”
“이, 이런!”
모두가 당황하여 리셀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 * *
“…….”
계웅삼이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이 안 된 헤이먼 던벨 자작 역시 조심스럽게 웅삼이 바라보는 하늘과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방금 전에 빛이 원을 만들어내더니 무언가가 그려졌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빛으로 만들어졌던 이상한 원과 문양들은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코튼 콜 자작 역시 웅삼과 주변을 번갈아 주시하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뿐이 아니라 모두가 전투를 멈추고 긴장된 표정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그 덕에 잠시 숨을 돌린 별동대도 조심스럽게 대열을 갖추며 모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터그람 왕국군도 조심스럽게 포위 대형을 유지하며 다시 재정비를 하였다. 그때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아무 일도 안 벌어지잖아?”
“그, 그러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기폭제가 된 듯 다시 이목은 전장으로 되돌아왔다. 파인 자작이 어느새 대열을 정비한 별동대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해졌다.
이제 남은 적은 이백이 조금 넘는 수였다.
물론 바닥에 쓰러진 터그람 왕국군의 수는 죽여 없앤 적군의 배가 넘었지만 그들의 대부분이 일반 병사임을 감안했을 때 결코 손해는 아니라 생각했다.
어차피 이들은 주력도 아니었다. 단순 보충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정신 차리고 공겨어…….”
화아악!
그때 진동음과 함께 하늘에서 빛줄기가 쏘아져 내려왔다. 동시에 그것을 가장 먼저 목격한 헤이먼 자작이 외쳤다.
“피해라!”
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웅삼을 에워싸고 있던 이들은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워하며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웅삼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빛줄기가 곤두박질치며 내리꽂혔다.
확!
굉음은 없었다. 다만 불이 한 번에 꺼지는 듯한 소리만이 울려올 뿐.
“응?”
“헛!”
“뭐, 뭐야?”
사방에서 놀란 음성이 연이어 나왔다.
“사, 사람?”
“노인네잖아?”
빛이 내리꽂혔던 곳에는 노인 한 명이 허공으로 팔을 들어 올린 채 부들거리고 있었다.
헤이먼 자작이 허탈한 음성을 흘렸다.
“웬 영감이…….”
뭔가 위협적인 것에 잔뜩 긴장했던 자신의 모습이 바보가 되는 느낌이었다.
“허어 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뱉는 이를 본 웅삼의 눈이 커졌다.
그가 아는 이였기 때문이다.
“울절?”
웅삼의 부름에 리셀이 반응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러고는 웅삼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계, 계 장군?”
“으하하하!”
웅삼이 살았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리셀이 나타난 이상, 저기 밖에서 사람 귀찮게 만들며 불덩이를 날려대는 놈들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의기양양해진 웅삼이 손가락으로 소울아머 유저들과 술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울절 저놈들 몽땅 날려주십시오!”
순간 안도하던 헤이먼 자작과 터그람 왕국군은 웅삼의 호기 있는 외침에 일제히 움찔했다. 그 대단한 이적을 생각했을 때 저 노인에게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서! 시간이 없…….”
털푸덕!
웅삼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온 소리와 움찔했던 터그람 왕국군과 헤이먼 자작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울절?”
웅삼이 뒤를 돌아보자 팔을 들어 올린 채로 엎어져 버린 리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귓가에 천둥과 같은 헤이먼 자작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노인부터 주살하라!”
“와아아아아!”
웅삼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리셀을 향해 달려갔다. 일단 그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젠장!”
바라던 원군 대신 짐짝 하나가 왔다.
* * *
대무덕과 을지우루 등은 당황하여 리셀이 있던 자리로 뛰어갔다.
그 주변에는 마법사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무덕의 호통에 마법사들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모, 모르겠습니다!”
“자네들이 모르겠다면 대체 어쩌자는…….”
“이, 이거이…….”
순간 우루에게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무덕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돌리니 우루의 몸이 빛으로 휩싸이기 시작한 것이다.
“엇!”
놀라는 것과 동시에 우루의 몸을 빛이 휘감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리셀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마법진 안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순차적으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무덕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건가?”
한 마법사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빨리 죽여!”
불안 요소는 빨리 제거해야 했다. 헤이먼 자작과 소울아머 유저들은 거세게 몰아쳤다. 웅삼은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또 리셀을 보호해 냈다. 하지만 상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화아악!
또 하나의 빛이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은 상황이어서인지 당황하는 모습은 없었다. 대신 살기 어린 외침을 터뜨렸다.
“두고 보지 말고 처리해!”
병력을 지휘하던 파인 자작의 명령에 기사들이 빛이 떨어진 곳으로 몰려갔다. 빛이 사라지고 난 곳에는 어리둥절한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이 새끼 죽여 버려!”
“지금 새끼라 한 거이간?”
빛이 사라지며 나타난 것은 바로 을지우루였다.
우루의 주변으로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터그람 왕국의 기사와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기사 하나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외쳤다.
“대가릴 잘라 더 짤막하게 만들어주지!”
“…….”
순간 우루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런 그를 향해 터그람 왕국의 기사가 롱소드를 휘둘렀다.
덥썩!
“허엇!”
하지만 그 롱소드는 우루의 손아귀에 그대로 잡혀 버렸다. 날아드는 칼을 그대로 잡아버린 것이다. 놀란 터그람 왕국의 기사가 롱소드를 빼내려는 순간 그의 안면으로 우루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와직!
“커억!”
순간 기사의 안면 가리개가 날아가며 얼굴이 뭉개졌다.
이어 그의 이가 피와 함께 허공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루가 한 손에 든 활대로 그의 목을 후려치자 목이 직각으로 꺾였다.
절명한 것이다.
동시에 우루가 정통에서 화살 세 대를 시위에 걸며 몸을 돌리는 동시에 당겨 쏘았다.
퍼퍼퍽!
지근거리였지만 우루에게서 쏘아진 화살은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달려들던 병사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세 명이 나자빠지는 순간 우루가 외쳤다.
“열제이시여! 신 우루 여기에 왔나이다!”
우루의 포효가 울려 퍼지며 달려들던 터그람 왕국의 병사들이 움찔했다. 그의 외침에 반가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구해주러 오셨군요!”
우루의 얼굴이 굳어지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천천히 고개가 돌아갔다.
“…….”
그곳에는 만신창이가 된 채 리셀을 보호하고 있던 웅삼이 있었다.
“구라쟁이?”
“으하하하! 오실 줄 알았습니다!”
웅삼이 반기는 순간 우루가 시위에 화살을 재서 날렸다.
쾌애액!
째앵!
“억! 왜 그러십니까!”
“아가리 닥치라우. 오늘이 제삿날이니까네.”
광분한 우루가 포위한 터그람 왕국군을 뒤로하고 웅삼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터그람 왕국군이 멍한 표정을 하였다. 그중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 아군인가?”
그때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빛의 기둥이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유성우의 향연과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를 보며 이실라 론 카말 공녀와 구르, 그리고 바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도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웅삼이 갑자기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이에게 공격을 받자 절망을 느꼈다.
“일단 이때 합류해야겠습니다!”
“그래!”
이실라 공녀와 바르, 그리고 구르가 웅삼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이내 몇몇 터그람 왕국의 기사들이 가로막아 섰다.
“합!”
이실라 공녀가 짧은 기합성과 함께 돌진을 했다.
콰앙!
그녀의 가녀려 보이는 몸집이 기사들과 충돌하는 순간 기사들이 일제히 튕겨 나가며 길이 만들어졌다.
“먼저 가!”
그녀가 롱소드를 고쳐 잡으며 외치자 바르와 구르가 그 틈을 비집고 웅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예!”
쾅! 쾅! 쾅!
“자, 잠깐만! 장군! 잠시만요!”
“닥치라우!”
살기등등한 우루의 공세를 막으며 웅삼이 쩔쩔맸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데다가 우루가 아군이라고 방심한 탓에 그가 하는 공격을 제대로 막지도 못하고 활대에 맞아 나뒹굴었다.
그때를 틈타 풀 자작이 리셀을 향해 롱소드를 날렸다.
상황 파악이 되지는 않았지만, 잠재된 위협을 줄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였다. 거무튀튀한 묵색 철봉 하나가 그의 롱소드를 가로막았다.
채앵!
“웃!”
갑작스러운 방해에 물러섰던 풀 자작에게 거대한 야수의 포효가 쏟아졌다.
“크아아앙!”
“어억! 이건 또 뭐야!”
거대한 송곳니를 자랑하는 맹수의 울음에 풀 자작은 놀란 눈을 하고 연신 물러섰다. 그때 묵색 봉의 주인이 그 맹수의 갈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냥이야, 쉿. 아무거나 먹으면 탈난다. 그나저나 이건 또 뭔 상황이래?”
“너, 넌 누구냐?”
풀 자작이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니 그 맹수 위에 거구의 사내가 묵색 철봉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그가 그를 내려다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삼두표.”
짧게 대답한 삼두표의 옆으로 두 사내가 나타나며 말했다.
“뭔가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상황 같기는 한데.”
“이거 아무래도 잘못된 거 같다.”
창을 든 몽류화와 쌍도끼를 뽑아 든 부여기율이 삼두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때 삼두표가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는 알겠구만.”
“뭔데?”
류화의 질문에 두표가 턱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 저 양반 제삿날이라는 거.”
기율과 류화의 시선이 동시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눈이 돌아간 우루의 살수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웅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세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네.”
“그런데 저건…….”
그때 기율이 입을 떡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몸집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류화 역시 같은 장면을 봤는지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부루 장군?”
“아새끼래 저항 말고 모가지 내밀라우!”
“이, 일단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라니까요!”
쾅! 쾅!
한 손에는 활대, 다른 한 손에는 그동안 열심히 갈고닦은 환두대도가 연신 웅삼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웅삼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버겁기만 했다.
웅삼은 지쳤고, 우루는 팔팔했다.
그때 우루를 향해 거대한 대부가 내려쳐졌다.
반사적으로 우루가 대부를 환두대도로 튕겨 내었다.
쩌엉!
“어떤 아새끼가 방해를…….”
순간 우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찬가지로 대부를 내려치던 이의 움직임도 멈추어 섰다.
우루의 입이 열렸다.
“뉘, 뉘기야!”
“어, 어?”
대부를 내려친 것은 다름 아닌 바르였다. 그리고 그 옆에 활을 들고 나타난 것은 바로 구르였다.
같은 체형에 비슷한 키. 피부만 약간 다를 뿐, 모든 게 닮았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파인 자작은 빛줄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불청객들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군인지 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둘째 치고 갑자기 빛줄기에서 사람이 나타나니 놀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시선에 늙수그레한 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위기로 보아 지휘관쯤으로 보이는 데에 반해 주변에 그를 호위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풍채는 좋았지만 나이가 많은 것이 만만해 보이기도 했다.
“저자를 사로잡아!”
파인 자작의 명령에 기사들과 병사들이 몰려갔다.
“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기사와 병사들을 물끄러미 쳐다본 노인이 도를 횡으로 휘둘렀다.
화아악!
“웃!”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음에도 바람이 파인 자작에게까지 불어닥쳤다. 단지 무기를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경악할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억!”
달려 나갔던 기사와 병사 십여 명이 그대로 허리가 양단이 되어 짚단처럼 우수수 쓰러져 버렸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노인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멈추더니 푸들푸들 떨었다.
그곳은 터그람 왕국의 소울아머 유저들이 웅삼을 잡아놓고 있던 곳이었다. 그곳을 보며 노인이 분노를 터뜨리며 달려 나갔다.
“네 이노오오옴! 계웅사아아아아암!”
콰콰콰콰콰!
그 노인이 달려 나가는 뒤로 땅거죽이 퍽퍽 파여 비산했다.
노인은 바로 대무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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