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96
73화 몸에 좋은 거
빡!
제라르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날아오른 웅삼의 발바닥의 그의 면상을 가격했다.
“커억!”
창졸지간에 기습을 당한 제라르의 신형이 막사를 뚫고 날아갔고, 웅삼이 인상을 잔뜩 쓴 채 중얼거렸다.
“어디다 초를 쳐.”
“기습이냐!”
어느새 자세를 잡은 제라르가 롱소드를 뽑아 들며 광분했다. 안 그래도 한동안 쥐어 터지기만 하던 웅삼이었다. 제라르가 도발하자 마찬가지로 웅삼은 장도를 뽑아 들며 뛰어나갔다.
콰콰콰쾅!
순식간에 십여 합이 오갔다.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고, 주변의 나무들이 그들이 싸우는 여파에 마치 갈대 잘리듯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
“마,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실라 공녀가 벌떡 일어서며 놀란 음성을 터뜨렸다. 잠깐이지만 웅삼이 상대하는 남자 역시 상상 이상의 강자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소울아머를 걸치지도 않았는데 그와 비슷한 현상이 금발의 사내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
“저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혼인까지 하실 필요는 없소. 왜 그런 선택까지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자신을 위로해 주듯 말하는 무덕을 보며 이실라 공녀는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이 부족해서 안 된다는 느낌도 아니고 정말로 걱정해서 해주는 말 같았다.
‘확실히 이상해.’
뭔가 자꾸만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분명 이곳에 온 이들 중 네 명을 빼고는 모두가 웅삼의 아래로 보였다. 지금 웅삼과 투닥거리는 이 빼고.
게다가 이들은 전부가 가우리의 최고위층이었다.
그런데 마치 그를 대하는 대우는…… 내놓은 자식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처음에야 그가 무슨 실수를 저질러 이곳으로 날아오게 되어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갈수록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이게 명분이 될 수도 있을 법합니다.”
무덕이 마나석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이실라 공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지 잘 모르겠다는 시선이었다.
그때 뒤따라 들어온 별동대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는 아까 가우리 인원들에게 이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을 했던 이였다.
“정력석입니다.”
“아!”
정력석이라 하자, 이실라 공녀가 알은체를 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공왕궁의 별채 하나가 이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쯤은 들은 바 있었고, 그곳에 실제로 가보았었다. 시커먼 외벽은 하렘치고는 칙칙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었다.
“…….”
순간 이실라 공녀의 눈길이 가느다래지며 이곳에 있는 이들을 훑어보았다. 마치 짐승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안쓰럽다는 시선이 섞여 있었다.
명백한 오해가 담긴 눈길이었다. 그러자 무덕이 당황하며 항변을 했다.
“이래 봬도 늦둥이까지 본 사람이외다!”
“내래 새벽에서 황혼까지라 불립네다!”
우루 역시 벌게진 얼굴로 외쳤고, 그 뒤를 이어 두표와 기율이 한마디씩 보탰다.
“킁, 부실해 보입니까?”
“마른 장작이 더 잘 탄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몽류화가 턱 끝을 고고하게 들어 올리며 한마디 했다.
“훗, 동내 과부들이 나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으적!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루의 주먹이 류화의 면상을 짓이겼다.
그는 너무 나갔다. 나라 망신이었다.
몇몇 병사들이 쓰러진 류화를 끌고 나갈 때 한숨을 쉰 리셀이 천천히 설명을 했다.
“이곳에서는 남자에게 좋다는 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쪽에서는 달리 쓰임이 있습니다.”
리셀의 말에 이실라 공녀가 귀를 기울였다.
이들이 아무렴 하체가 부실해서 이것을 탐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무언가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실라 공녀가 물었다.
“어떤 쓰임이지요?”
“마법을 활용하는 데 있어 보조제로 사용이 됩니다.”
“마법이요?!”
그날의 경이는 아직도 그녀의 기억 속에 생생했다.
마치 천신이 강림하듯 빛과 함께 나타난 가우리의 전사들.
그리고 수많은 술법사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불의 비 등등…….
술법과는 또 다른 힘.
그 거대한 힘을 쓰는 데 있어 필요한 물건이라면 중요할 것이라는 느낌이 확 와 닿았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게 필요합니다.”
“희귀한가 보군요.”
이실라 공녀의 말에 리셀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흐음.”
이실라 공녀가 돌을 주시했다. 굳이 왜 이런 사실을 밝히느냐에 대한 고민 같았다.
만약 휘가람이 마음먹고 나섰으면 이렇게 이야기가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이들은 이 귀한 마나석을 그저 건축 자재로밖에 활용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가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는 잘 모를 것이다.
솔직히 이게 좀 필요하니 구해달라고만 해도 무방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가우리에 도움을 받았으니 그 성품상 어떻게 해서든 구해주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하지 않은 이유는 카말 공국을 도울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독점을 노린 것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나왔으니 독점을 주어라.
이게 원하는 바였다. 물론 상황을 이용해 후려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거래는 오래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차라리 이쪽에서 대충 필요성을 설명하고 제대로 된 공급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고민을 하던 이실라 공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정력에 좋다는 물건을 받는 대신 싸워주겠다는 건 말이 안 되겠지요?”
“허허허.”
비록 설명은 안 했지만 이실라 공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제대로 짚었다. 또 한 가지.
이실라 공녀는 지금 이 자리를 단순 마나석의 거래가 아닌 전쟁에 참여하는 쪽으로 은근슬쩍 말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은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
“이것은 진짜지만, 그 정력석이라 불리는 것이 진짜 마나석인지 말입니다.”
“예?”
이실라 공녀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리셀을 바라보았다.
이미 확인하고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확인을 한다는 말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마나석과 같은 성질의 것들이 정력석이라 불리는 것인지, 아니면 유사한 모든 것을 그리 부르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
이실라 공녀는 이해함과 동시에 실망이 깃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비슷한 것들을 모두 정력석이라 부르고 그중에 마나석이 극히 일부라면, 그것은 이들이 굳이 힘쓸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단 확인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빠르면 더 좋겠지요.”
“으음.”
대체 이걸 어떻게 증명한단 말인가.
이실라 공녀는 고민에 빠졌다. 공왕성으로 끌고 가면 되기는 하지만, 그 전에 대회전에서 자칫 큰 피해를 입거나 패한다면 이 거래는 무의미해진다.
그렇다고 일단 싸워달라는 건 아예 말이 안 통할 것이 분명했다. 그럴 것이면 굳이 왜 확인을 하는 것이 빠르면 좋다는 말을 하겠는가.
그때 옆에서 증인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던 별동대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근에 폐허가 된 버크 영지가 있습니다.”
“음…….”
전쟁 초기에 무너지면서 상당수의 영지민이 포로로 잡히고 일부만이 겨우 탈주를 한 곳이 바로 버크 영지였다. 물론 성을 지키던 이들의 상당수가 전사한 비운의 영지이기도했다.
“아마 그곳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영지가 혹시 마나석 산지요?”
리셀이 묻자 별동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만 이게 비싸긴 해도 어느 정도의 재력만 있으면 깔 수 있는 것이기에 영지 정도 되면 이것을 사용한 집이 어느 정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확인이 쉽겠군.”
“그러면 그곳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하지요. 어차피 버크 영지라면 우리가 지나쳐야 할 지역 중 하나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일단 확인을 먼저 하기로 합의한 이실라 공녀는 정력석이 정말로 이들이 원하는 것이기를 빌었다. 사실 공국으로써는 이들에게 줄 만한 것이 없다.
그렇게 전쟁을 해댔는데 재화가 풍족할 리 없었다.
타이탄 일족이 소수 만들어내는 병장기가 우수하다고 각광을 받지만 장인에 가까운 일반 드워프족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드워프족을 국가의 구성원으로 두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들의 장비는 상당히 우수했다.
물론 그 부분은 이실라 공녀의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이실라 공녀가 일어서 살짝 허리를 숙였다. 더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빨 꽉 깨물어라!”
쩍!
“커억! 이런 구라쟁이 이 깨물라 하고 배를 치다니!”
……이 난동을 일단 잠재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 * *
“쯧, 왜 그러셨습니까.”
“뭐가?”
약을 발라주고 있는 부여기율의 질문에 필리언 제라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쓸데없는 소릴 하셔서 맞았잖습니까.”
“맞긴 누가!”
동시에 기율을 비롯한 삼두표와 몽류화가 그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걸 꼭 말해야 하느냐는 시선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류화가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상처는 뭡니까.”
“긁힌 거다!”
“두 번 긁히면 팔 떨어지겠습니다.”
류화가 피식거리며 대답하자 제라르가 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막 반격에 나서려 하는 순간이었단 말이다!”
“예, 예. 알지요.”
제라르의 거센 반발에 기율은 마저 약을 바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건성이었다. 영혼 없는 위로였다.
그렇게 마저 치료를 받은 제라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거 진짤까?”
“뭐 말입니까?”
“정력석.”
“마나석요?”
“정력석!”
“…….”
다시 한 번 정력석을 강조하는 제라르를 보며 삼인방은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니들은 안 궁금하냐?”
“다 떠나서 쓸데도 없는 양반이 무슨…….”
촤앙!
다시금 롱소드가 뽑혀 나왔다.
“그 입 다물라! 안 그래도 열 뻗쳤는데 앙!”
제라르가 살기등등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삼인방이 천천히 각자 무기를 들었다.
“삼 대 일이겠죠?”
“…….”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삼인방을 보며 제라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음, 허리가…….”
“아까는 긁혔다면서요.”
“니들 각개격파 당할래?”
“……치사하게.”
제라르가 각개격파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셋은 투덜거리며 각자 무기를 거두어들였다. 그때 류화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거 효과가 있을 거랍니다.”
“뭐?”
“진짜?”
“정말?”
류화의 말에 제라르와 두표, 그리고 기율이 눈을 빛냈다.
“울절님께 여쭤보니 맞다고 하시네. 아니, 정확히는 정력뿐 아니라 신체 활성도도 높아진다더라고.”
“그래?”
“그런 좋은 게!”
제라르와 기율이 반색하였다. 그때 두표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선 왜 그런 게 안 알려졌지?”
“오지게 비싸잖냐. 주먹만 한 거 하나에 그 크기의 금덩이 다섯 개 가격이니까.”
“허, 그, 그렇게 비싸?”
“쯧, 사실은 더 비싸지.”
기율이 놀라 하는 모습과는 달리 제라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비쌉니까?”
“그래, 사실 마나석을 쓰는 게 마법사들만은 아니니까.”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기율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제라르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무인들이 수련할 때 패용하면 도움을 얻지. 체내의 마나를 활성화해서 경지를 올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관계로 고위 귀족가의 자제들이 사용하기도 하니까. 해서 실제로는 그 두 배는 줘야 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아!”
“그런데 그게 그거까지 좋아지는 건 줄은 몰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류화의 말에 제라르가 물었다.
“뭐가?”
“수련하면 몸 강해지고, 몸 강해지면 그것도 몸에 붙은 거니 같이 건강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효능이라고 생각지는 못하겠지요.”
“그럴지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력이니 뭐니 해도 신체적 건강과 연결이 되는 부분은 존재한다. 그런데 마나석은 워낙 귀하다 보니 그 효능을 미처 모를 수도 있었다.
“확인해 볼까?”
“뭘 말입니까?”
제라르의 말에 두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정력석의 효능!”
“킁! 그걸 어디서…….”
“우리가 보관하는 것 이상으로 안전한 게 어디 있겠어.”
“…….”
“안 그래?”
순간 제라르와 삼인방의 생각이 일치했다.
넷이 막사를 벗어났다.
“응? 어디 갔지?”
“그러게 말입니다. 중요한 거라 경계병도 많이 붙였었는데.”
목표물을 찾으러 어두워진 밤을 해매는 제라르와 삼인방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마나석을 보관한 마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주변으로 지나가는 검수 하나를 발견했다.
“야.”
“예!”
류화의 부름에 검수가 재빨리 달려왔다.
“너 여기 있던 마나석 어디 갔는지 아냐?”
“알죠?”
“어디다 놨는데?”
“좀 더 철저히 보관한다고 옮겼습니다.”
그의 대답에 제라르와 삼인방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디로.”
“대장군님 막사로요.”
“누구?”
“대무덕 장군님요.”
“…….”
순간 네 명은 할 말을 잃었다. 그때 검수가 한마디 더했다.
“몸에 좋은 건 소중한 거라면서 대장이 끌고 가서 넣어드리고 왔습니다요. 가져가니 좋은 생각했다며 대장 어깨까지 두드려 주던데요.”
“…….”
진실은 밝혀졌다.
검수들의 대장은 하나다, 바로 웅삼.
그가 무덕에게 뇌물로 바친 것이다. 마나석…… 아니, 정력석을.
“흠흠. 어디…….”
무덕은 이게 다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력석…… 아니 마나석을 쌓아 만든 침상 위로 몸을 누였다. 그러고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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