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598
75화 전초전
“그쪽 좀 뒤져봐!”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진 상황이었지만, 정력석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별동대 대원 사반의 지휘에 별동대원들과 가우리의 무인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며 폐허를 뒤졌다.
심지어 있어도 당장 쓸 곳이 없는 필리언 제라르까지 몸소 나서 마스터라 불리는 강자의 위용을 폐허를 뒤지는 일로 떨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초조함과 기대감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리셀 시아론과 마법사와…… 대무덕이 있었다.
그때 무덕의 뒤로 다가온 을지우루가 헛기침을 터뜨리며 물었다.
“효과가 그리 좋습네까?”
“큼, 그게 무슨 말인가.”
무덕이 헛기침을 하며 말하자 우루가 은근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에이 알면서 와 그러십네까?’라는 표정이었다.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구먼.”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리는 무덕을 보며 우루는 눈을 빛내며 잔해를 치우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기왕이면 쏟아졌으면 좋겠습네다.”
그래야 자신에게 순서가 돌아온다는 듯…….
그때였다.
“우워어어어!”
제라르가 기함을 토하며 무너진 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별동대원인 사반이 들여다보며 외쳤다.
“차, 찾았습니다!”
“크워어억!”
그 외침과 동시에 제라르가 들어 올린 벽을 넘겨 버렸다.
콰아아앙!
거대한 벽이 넘어가며 먼지를 풀풀 일으켰다. 먼지가 다 가라앉지도 않았건만 리셀과 마법사들이 바삐 다가왔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마법으로 만들어낸 광구가 떠 있었다.
“어디 보세나!”
리셀이 달려와 사반이 가리키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바닥의 일부가 깨져 나가 있었고, 그 안으로 검은 돌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아…….”
순간 리셀의 말문이 막혔다.
손을 바르르 떠는 그를 보며 무덕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가? 맞는가?”
“이, 이렇게 높은 순도라니…….”
순간 무덕을 비롯한 가우리인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이것을 찾아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제라르가 대소를 터뜨렸다.
“음화하하핫!”
“나머지도 깨보자고! 어서!”
삼두표와 부여기율, 몽류화 등이 달려와 가진 바 무위를 뽐내며 바닥을 작살내 갔다. 그러자 점차 드러나는 검은빛의 향연.
리셀이 환한 얼굴로 외쳤다.
“맞습니다! 전부 마나석입니다!”
“정력석을 찾았다!”
“드디어 정력석이!”
“우하하하!”
“…….”
리셀의 외침에 일행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리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는 마나석이라는 이름보다 정력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가우리인들이었다.
“크음, 전 잠시 화장실을…….”
함께 즐거움을 만끽하던 제라르는 뿌듯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둔탁한 손길이 그를 잡는 것을 느꼈다.
“니 보라우.”
우루였다.
“예?”
“시작부터 장난질이간?”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팔목을 잡힌 제라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우루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네 손바닥 안에 정력석 하나가 붙어 있다는 걸 내 전 재산이랑 손모가지를 걸디. 넌 뭘 걸 거이간?”
“…….”
결국 제라르는 쥐고 있던 마나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놓아야만 했다.
* * *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대지 위의 곳곳에 불길이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생에 대한 미련을 잡고 있는 듯 병장기를 쥔 채 대지 위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미련과는 달리 대지 위에 새로운 양분이 될 뿐이었다.
그 사이로 병사들이 오갔다.
“지독한 놈들.”
“그러게 말이야.”
“우리도 피해가 꽤 컸다며?”
“뭐, 나야 뒤쪽에 있어서 모르지. 그래도 일단 저쪽이 먼저 물러갔으니 이긴 거 아닌가?”
“그렇겠지?”
“아마도.”
터그람 왕국 병사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그렇게 전장을 돌아다니며 병장기를 수거했다.
반대편에서는 마찬가지로 카말 공국의 병사들이 병장기를 수거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피해 상황은 다 집계되었는가?”
그리팔 파샤 후작의 질문에 참모진 중 하나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약 팔백여 명이 전사하고 천오백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이중 오백여 명 정도는 간단한 치료 후에 투입이 가능합니다만, 한 사백여 명 정도는 최소 일주일에서 보름간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천오백여 명의 부상자 중 구백여 명은 하루 이틀에서 일주일 혹은 보름간의 치료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그리팔 후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오백여 명의 부상자 중에서 구백을 제외한 나머지는 방도가 없거나 치료한다 해도 전장에 투입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카말 쪽은 어떤가?”
“그쪽은 약 이천여 명의 사상자가 생긴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으음.”
단순 숫자로 피해 정도를 파악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터그람 왕국 쪽이 약간이나마 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체 병력수를 생각했을 때에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게다가 오늘의 전투는 전초전 성격이 강했다. 이 전초전에서 먼저 병력을 돌린 것은 바로 카말 공국이었다. 피해는 약간 더 입었지만 결론적으로 터그람 왕국이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입니다.”
“맞습니다.”
“그건 그렇지.”
비슷한 병력 소모가 있었을 때 다급해지는 것은 카말 공국이었다. 병력의 규모는 터그람 왕국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보급대까지 포함한 인원이지만 오만에 달했고, 반면에 카말 공국은 삼만 명에 약간 못 미치는 병력이었다. 그 두 무리 중 오늘 전초전 격으로 붙은 병력이 양측 합쳐 일만여 명.
이런 소모전은 카말 공국 입장에서도 좋지 않았다. 근소한 우위라 해도 이런 피해가 계속된다면 승리의 추는 급격히 터그람 왕국 측으로 기울기 때문이었다.
오만과 삼만은 그래도 해볼 만하지만, 각기 비슷한 병력이 이탈하게 된다면?
사만과 이만 혹은 삼만과 일만은 그 느껴지는 강도가 다르다.
두 배가 나지 않는 병력 차와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병력 차가 나는 것은 승리의 확률이 차이가 난다.
게다가 공성전도 아닌 평원에서의 전투였다.
“나쁘지 않아.”
그리팔 후작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이거 분위기가 영 가라앉아서…….”
타다르 백작이 피곤한 얼굴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타다르 백작에게 바사 공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졌다.
“병력 피해는 집계되었나?”
“총 육백여 명이 죽고 천이백 정도가 다쳤습니다. 그나마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를 맞춰 그들을 뒤로 빼낸 덕에 부상자 중 절반 이상이 간단한 치료 후에 복귀가 가능합니다.”
“그런가.”
바사 공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다르 백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덕에 대열이 흐트러져 밀렸지만 말입니다.”
“으음.”
사상자는 적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일단 먼저 전장을 이탈한 것은 이쪽이었다.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지만 힘의 약세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예병들로만 구성했을 줄이야.”
“놈들도 사기를 더 끌어올리려는 판단 같습니다.”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머릿수에서 앞서는 터그람 왕국에서 정예병과 신병 혹은 보급 병력을 섞어 전초전을 치를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이후 아낀 정예병을 승부를 가르는 회전에 투입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터그람 왕국은 전초전에서부터 강하게 나왔다. 물론 이쪽도 그 이상의 정예병이었기에 적들의 피해를 더 높일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다.
“병사들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나?”
“대충 우리가 먼저 병력을 물린 이유는 다들 알지만, 그래도 일단 한발을 뺐다는 점에서 약간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우려했던 부분이…….”
“유기적이지 못한 지휘 체계 말이군.”
“예, 예상은 했지만, 더 큰 병력들끼리 붙게 된다면 전술의 운용에 있어 단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우.”
타다르 백작의 대답에 바사 공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대규모 병력이 맞붙는 회전의 경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운용을 하는 편이 많다. 병력이 많았을 때 승부의 무게가 기울기 시작하면 그 가속도는 엄청나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전술 운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디 지형을 이용하기도 애매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유리한 지형을 선택하려다가는 국토가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힘을 빼놓은 적들이 조금씩 회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적은 수가 큰 수를 이기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하되 좀 더 노련하면서도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물론 전술의 변화가 상황에 따라 손발처럼 움직여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카말 공국은 모자람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팔이 확실히 운용을 잘하긴 합니다.”
“그 망할 놈은 영웅 전기 타령만 빼면 우수한 인재기는 하지. 시에라 제국을 한두 번 물 먹인 게 아니니까.”
“예.”
“지휘관들을 잘 다독이게.”
바사 공왕의 말에 타다르 백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접 안 하시고 말입니까?”
“전투가 벌어지기 전이야 내가 나서는 게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 최고 지휘관이 자주 보이는 것도 안 좋아.”
“하긴…… 그것도 그렇겠습니다.”
마치 병사들에게 힘을 쥐어짜 내려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힘들기 때문에 위무한다는 눈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때에는 다 노리는 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때다.
“음식 좀 풀게.”
“예.”
“그게 더 나을 거야, 가능하면 웃으라고.”
“그러지요.”
타다르 백작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앉은 바사 공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이거. 힘이라도 안 빼놨으면 큰코다칠 뻔했어.”
바사 공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매달렸다.
* * *
“마차로 한 대분은 더 되겠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다른 저택에서도 확인했습니다.”
마법사들이 잔뜩 쌓인 마나석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저들이 정력석으로 부르는 것은 외형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마나를 품고 있는 마나석이었던 것이다.
“마나석이 이렇게 많다니. 이 영지만 해도 엄청난 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근처에도 광산이 있었다더군요. 게다가 함량이 적은 광산은 아예 개발도 안 한다고 하니…….”
마법사들이 환한 얼굴로 말을 연이었다.
“어떤가?”
무덕의 질문에 리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술법이라는 게 주를 이루는 지역인지라 마나석의 쓰임이 별로 없습니다. 이곳의 술법지에 각인시킬 때 마나석 가루가 일부 섞여 들어가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것인가 보구먼.”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마나석도 언젠가는 바닥이 난다.
물론 마나석은 영구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재충전이 잦은 마나석은 점점 그 효율이 떨어진다. 효율이 떨어진다 함은 하루 이틀이면 차오르던 마나가 나중에는 일 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만 충전이 될 정도로 약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마나석을 무리하게 사용을 하면 결집도를 잃고 부스러지기도 한다. 마나석이 영구적이면서도 소모성으로도 쓰이는 일이기도 했다. 해서 일부 국가에서는 효율이 떨어진 마나석을 창고에 오래 묵혀두기도 한다.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회복 기간을 거치면 다시 처음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장 쓰기 바쁜 나라는 먼 일을 예상하며 보관하기도 힘들지만 말이다.
“그럼 하는 겁네까?”
옆에 있던 우루가 묻자 무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할 수 없지. 이 정도라면 울절이 하는 연구도 더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분명 필요합니다.”
리셀이 무덕의 말에 동조하자 다들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그때 휘가람이 나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안전을 염두해야 합니다. 얻는 것이 있다지만 우리의 전쟁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기럼 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우루가 말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존재감을 죽인 채 그들과 함께하던 웅삼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 기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갔습니다.”
기율이 가리킨 방향에는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달리는 웅삼의 뒷모습이 있었다.
“이실라 공녀!”
막사 문이 거칠게 젖혀지며 나타난 이는 바로 웅삼이었다.
“웅삼 님!”
“되었소!”
“아!”
되었다는 말은 곧 이들이 돕겠다는 의미였다. 순간 이실라 공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이실라 공녀에게 웅삼이 성큼성큼 다가가 거칠게 끌어안았다.
와락!
“우, 웅삼 님!”
“내 말했지 않소! 내 지켜 드리겠다고!”
“웅삼 님…….”
이실라 공녀는 웅삼의 단단하면서도 넓은 품에 안겨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웅삼 님이 대장군과 독대하셨다고 한 후 희망을 가지긴 했지만 정말…….”
“나만 믿으라 하지 않았소?”
독대했다, 분명. 물론 그냥 간 게 아니라 마나석을 통째로 몰고 가서 침대를 만들어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긴 했다.
늦둥이 어떠시냐고.
“고마워요.”
“대신 내가 부탁한 것은…….”
“당연한 것을요! 원활한 논의를 위해 앞으로 웅삼 님을 제 곁에 계시도록 해달라고 할게요.”
웅삼이 부끄러워하는 이실라 공녀를 다시 은근슬쩍 안으며 말했다.
“고맙소. 그렇게라도 해서 그대의 곁에 있고 싶었소. 그뿐이오.”
“알아요.”
물론, 우루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한 핑계도 되었다.
그게 조금은 더 큰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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