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
강철의 열제 6화
제3장 장신 드워프
“크우오오오!”
“사라야! 어서 마을로가!”
“베론 아저씨!”
“어서!”
5미르(m)에 육박하는 거구가 괴성을 지르자, 베론이라는 사내가 사라라고 부른 여자아이를 떠밀며 외쳤다. 상대적으로 하위 먹이사슬에 속하는 보통의 인간으로선 이 상황에서는 도망만이 최선책인 것이다.
사냥을 하다 마주친 듯 활을 들고 있던 베론은 나물을 캐던 사라를 뒤로 하고 미약하나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항을 했다.
툭!
“끄오오오오!”
“제길, 화살이 먹힐 리가 없지.”
쏘아낸 화살도 오거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뿐이었다. 이런 화살에 쉽게 뚫린다면 오거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으워어어어억!”
“아, 아저씨!”
베론의 저항마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자, 공포에 사로잡힌 사라는 더 이상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오거의 피어는 충분히 그녀의 감각을 마비시키고도 남았다. 하지만 베론이 계속해서 쏘는 화살은 오거의 두꺼운 가죽표면에만 흠을 낼 뿐이었다.
쿵쿵쿵쿵.
“사라야! 제발 도망가!”
육중한 몸이 어색할 정도로 빠른 발놀림으로 달려오는 오거를 보며 베론이 다시 한번 외쳤지만, 두려움은 사라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 아저씨, 바, 발이 안 떨어져요. 흑흑.”
차앙!
“제길, 빌어먹을 오거야! 이리로 와라!”
베론은 활을 다시 맨 후 칼을 빼들고는 소리를 지르며 필사적으로 오거의 눈길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오거는 이미 사라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야아!”
“우워어어어!”
결국 그가 칼을 들고 오거를 향해 달려들자, 그때서야 오거는 베론을 향해 육중한 팔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오거의 팔은 빨랐지만 사냥으로 단련된 베론은 바닥을 구르며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크워어어어!”
“끼야아아아악!”
오거의 흉성과 함께 찢어질 듯한 사라의 비명이 울렸다. 멀어진 베론은 이미 위험이 안 된다는 듯, 사라의 머리통을 향해 오거가 쥐어짤 듯이 손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안돼!”
퍼억!
베론은 절규했지만 그의 목소리에 답한 것은 가죽 북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퓨ㅤㅍㅠㄱ~!
퍼퍼퍼퍽!
“끄오오오!”
“뭐, 뭐지!”
“머하네? 멍청히 있디 말고, 날래 애미나이부터 끌어 내라우!”
베론의 귀로 오거의 몸에 날아와 순식간에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린 화살 소리를 따라 알 수 없는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본 것은 검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장신 드워프였다.
후우웅!
퍼억!
“크오오!”
“애새끼래 가죽이 뭐 이래 질기네!”
바람을 가르며 휘두른 대부가 오거의 어깨를 가르고 박혔다. 오거의 괴성이 이어졌지만, 부루는 도끼를 뽑아내고는 아래에서 위로 한 바퀴 돌며 대부를 그어 올렸다.
“갈라지라우!”
서걱!
“크우우우우…….”
쿠쿠쿵.
부루가 휘두른 대부는 오거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 머리를 뚫고 나왔다. 몸이 반으로 갈라져 버린 오거는 더 이상의 괴성을 지르지 못한 채 양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부루는 도끼에 묻은 녹색 피를 털어내며 한쪽에서 떨고 있는 사라와 베론을 바라보았다.
“고조 에미나이래 괘않네?”
“…….”
구해줬음에도 말이 없는 그들을 보며 부루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행동에 잠시 화를 누그러뜨린 부루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벙어리네?”
“대, 대룬 부루. 날레르 이르네 부루.(죄, 죄송합니다. 대지의 일족께 감사드립니다.)”
부루의 귀로 들려온 것은 알 수 없는 소리였고, 베론과 사라의 눈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서 있는 태양 빛에 탄 장신 드워프였다.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부루의 입에서 의혹에 찬 질문이 나왔다.
“내 이름은 어케 아네?”
부루는 중간에 두 글자만 자기 멋대로 해석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부루와 화살을 날렸던 10여 명의 병사가 베론과 사라를 둘러싸며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베론과 사라 역시 자신들을 구해준 장신의 드워프와 정규군으로 보이는 병사들을 보며 혼란에 싸였다. 어디까지나 베론과 사라는 국가로부터 도망친 인간들의 집단인 화전민이었던 것이다.
“베, 베사메 무쳐!(토, 토벌군 병사!)”
“베사메 무쳐? 베론 아제 무사메오.(토벌군 병사? 베론 아저씨 무서워요.)”
베론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드워프는 둘째 치더라도 분명 갑옷을 차려입은 십여 명의 병사들은 훈련이 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 레간자 산맥에 이런 병사들이 올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자신들과 같은 화전민들을 잡아가기 위한 토벌대 외에는 생각할 것이 없었다.
“뭐라네? 뭘 무쳐? 와떠네? 내가 잡아먹네?”
갑자기 소리를 크게 내며 떨어대는 남자와 여자아이를 보며 부루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라의 금발에 하얀 피부는 부루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서쪽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어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 중 문득 뒤에서 떨고 있는 여자아이의 무릎을 보곤 당황했다. 길게 찢어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피나잖네. 애새끼, 날래 비기라우!”
화악!
“제바다 니 이드런느 가메니 마이네오.(제발 이 아이만은 건들지 말아주시오.)”
“고치는데 떠들디 말고 있으라우.”
사라를 보호하려는 듯이 떠들어 대는 사내를 밀쳐낸 부루가 얼굴이 벌게져 소리쳤다. 부루의 힘이 강했는지 한쪽으로 처박힌 남자는 절망에 물든 눈빛을 보냈다.
상처를 살핀 부루가 뒤의 병사에게 소리쳤다.
“누구 천이랑 약초 좀 개져오라우.”
“아앗!”
“여기 있습니다, 장군.”
부루가 다친 다리를 살피자 그때서야 아픔을 느낀 사라가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부루는 병사에게서 넘겨받은 약을 서둘러 바르고 천을 감싸며 슬쩍 얼굴을 봤다.
‘애미나이래 살결이 소젖 같이 희구만 기래.’
갑자기 천 감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부루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고죠 얼굴도 조막만 하고, 머리카락은 노란거이 귀엽구만 기래.’
사라도 자신의 다리를 치료하는 손길에 약간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부루의 얼굴을 살폈다. 천으로 상처를 다 감싸자 사라가 작은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가뫼 부루.(감사합니다.)”
“됴아. 괘안을 끼야. 인나 보라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부루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치료를 마치고 일어났다.
“아앗.”
“니런!”
그러나 다친 다리가 아픈지 사라가 일어나다 다시 주저앉아 버리자, 부루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을 했다. 그러면서 양옆으로 고개를 저으며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 대가써. 업히라우.”
“에?”
“날래 업히라우. 이러다 고죠 밤세가써.”
“헤에!”
넓은 부루의 등을 보면서 사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업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분명 나쁜 사람…… 아니 나쁜 드워프가 아닌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베론은 일단 안심을 했으나 드워프가 선선히 사라를 업고 가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드워프는 자존심이 강한 종족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저렇게까지 호의를 주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이었다.
“진지로 가자우.”
“장군, 차라리 제가 업겠습니다.”
“…….”
사라를 업고 일어난 부루에게 충성심 높은 병사가 달려와 황송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변의 병사들도 자신의 장군이 허름한 여자아이를 업은 것이 죄송스러운 표정들이었다. 병사들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마음에 부루가 손사래를 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괘안에. 가자우.”
“장군! 제발 그러지 마시고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괘안태도 기러네. 기율이 넌 내 대부나 들고 따라오라우.”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관이 이런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부여기율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장군, 그래도…….”
“디지고 싶네?”
“…….”
순간적으로 폭사 되는 살기에 기율은 순간 섬뜩함을 느꼈고, 경험 많은 한 병사가 잽싸게 구령을 붙였다.
“출발!”
부루는 그 소리와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사라를 등에 업고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연휘가람의 음성이 명상에 빠져 있는 고진천의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부루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주민으로 보이는 남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나가보지.”
생각 외로 빨리 발견했다고 생각한 진천은 지휘 막사를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가 보니 부루가 금발의 좀 어려 보이는 여자를 업고 있었다.
“다녀왔습네다.”
“음, 이 여인이 여기 주민인가 보군.”
“길티요.”
그러면서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 진천을 보고는 휘가람이 슬쩍 웃으며 한쪽의 남자를 가리켰다.
“저 옆에 남자도 같이 발견되었습니다.”
“…….”
“흠흠.”
그때서야 한쪽의 남자가 눈에 들어온 진천이었다. 그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지면서 옆의 휘가람을 쏘아 보았다. 그리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내가 설마 몰랐다고 생각하나?”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뻔뻔하게 나오는 휘가람에게서 시선을 거둔 진천이 여전히 무게 있는 모습으로 다가갔다.
“다쳤군. 이 여자와 남자를 내 지휘 막사로 데려가고 음식을 내어 와라.”
“네, 장군.”
진천은 명령을 내리고는 등을 돌려 몇 발자국을 걷다가 멈추어 섰다. 진천이 멈추자 그 뒤를 따라가던 휘가람이 이상한 듯 질문을 던졌다.
“안 들어가십니까?”
“휘.”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진천이 입을 열었다.
“네.”
“순찰 돌 시간 되었다. 나대신 돌도록.”
뚜벅 뚜벅.
결국 따라오는 휘가람을 원천 봉쇄하고 들어가 버리는 진천이었다.
“장군 데려왔습네다!”
“들라 해라.”
눈을 말똥말똥 굴리고 있는 사라와 그 옆에서 그녀를 열심히 간호 해 주는 부루가 있었고, 한쪽에는 있는 듯 없는 듯 관심 밖에 소외되어진 남자, 베론이 있었다.
우루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진천의 허가가 떨어지자, 우루가 곧 한 명의 젊은 장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고조 제 수하 부장 입네다만, 이 친구가 대진국(로마) 말부터 시작해서 천하에 모르는 말이 없답네다.”
“그런가.”
“네, 넵, 대장군! 부모님이 상인이어서 일찍이 서장도 다니시고 무역을 다니는 서방인들 말을 잘 아십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배워서 잘 압니다.”
하늘 같은 지위에 있는 진천의 앞이어서인지 그는 뻣뻣이 굳은 채로 크게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진천은 한쪽을 가리키며 통역을 하라고 명했다.
“말을 걸어보도록.”
“예!”
잠시 후 호흡을 가다듬은 부장이 사라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헬로우.”
“……?”
“흠흠, 이건 아닌가 보군. 에…… 봉쥬르 마담.”
“……?”
“으음. 그렇다면 본 죠르노.”
“……?”
“크음.”
진천의 아미가 꿈틀거리며 불편한 음성이 들려오자 통역에 열중하는 젊은 장수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변명하듯이 진천에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하, 한꺼번에 말해보면 그중 하나 나오겠죠. 부에노스 디아스? 봉 디아? 쌀라마리꿈? 쿠텐 모르겐, 짜오 안, 그리고…….”
“우루.”
“네.”
열심히 떠들어대는 부장의 음성은 점차 떨려왔고, 진천이 우루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뭘 말입네까?”
“너나, 부루나…… 전투 빼고는 믿을 게 없다는 사실.”
“…….”
잠시 후 정적이 흘렀고 통역을 위해 들어왔던 병사는 우루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화되어가자 점차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옆에서 구경하던 부루가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뭐네? 구라쟁이 아니네! 우루 너 오데가서 을지성 쓴다 하디 말라우. 챙피해서 원.”
결국 부루에게 마저 빈정거림을 당한 우루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후 병사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나갔다.
덥썩!
“때려 치라우! 구라쟁이.”
“우, 우루 장군님! 기, 기회를!”
끌려 나가는 부장은 사색이 되어 외쳤지만, 우루는 조용히 묵살하고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닥치라우. 마갑 두 개 매고 진영 백 바퀴 도는 거부터 우리 시작해 보자우.”
“니 하오! 노랑머리 아가씨 제발 대답 좀! 오하이오 고자이마쓰으으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외치는 부장의 음성이 막사를 벗어나서도 울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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