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0
강철의 열제 60화
제17장 해적 왕 제라르 전설의 시작
“…….”
“왜 말이 없나?”
“…….”
“반항이냐?”
고진천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는 여전히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라르는 대답도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묵묵히 라기 보단 실의에 빠져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드디어 바다로 내몰릴 때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다.
“아닙니다, 열제 폐하. 제가 어찌 감히! 반항 같은 것을 하겠습니까!”
“……반항이군.”
“…….”
평소와는 다르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진천이 바로 정의를 내렸다.
제라르로써는 환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깨지고 작살났다 하더라도 자신은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실력과 명성을 겸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군을 잘못 만난 탓에 생전 안 해보던 해적질까지 하게 되었으니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이유였다.
“제라르.”
“예, 열제 폐하.”
“넌 네가 하는 일이 단순한 해적질이라 생각 하는가?”
“예?”
진천이 윽박지를 줄 알았던 제라르로서는 담담한 음성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라본 고진천은 열좌에 앉아 있으면서도 팔짱을 끼고 가슴을 편 모습이 언뜻 거만 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어울리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의 입에서 난데없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오니 제라르로써는 한 번 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평소 복잡한 것을 싫어하던 진천의 언행도 간단함의 극치였다. 그러나 문제는, 가끔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하는 것이 그였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허나 일만이 넘는 백성들을 생각 하라.”
“…….”
“이곳은 모든 물자가 자급자족이다. 물론 화전민일 때와는 달리 안전을 보장 받고 먹는 것 또한 풍족하다. 그러나 이것을 지켜 나가는 것은 힘이다. 그 누가 우리 가우리를 보고 나라라 인정 하겠는가.”
진천이 스스로 현실을 인정하는 말에 제라르는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제라르가 생각하더라도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도시가 건설 되어 있다면, 자신이라도 당장 군대를 동원할 것이다.
일만이 넘는 인원이라면 엄청난 재산인 것이다. 노예로서의 가치도 있고, 지금처럼 전란의 징조가 보이는 상황에서는 화살받이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내 누누이 말했지만, 지금 이곳을 중심으로 나라를 잡은 것은 외침이 용이치가 않고 또한 식수원과 식량의 재배 등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아직은 철광을 개발한다고 뚱땅거릴 때가 아니다, 제라르!”
“예.”
진천의 음성이 올라갔다.
“네가 하는 일은 타인에겐 약탈일 것이다. 허나 그것 또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물자 수송 아니더냐! 지금은 그들의 입장이나 생각할 때가 아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법!”
“예!”
제라르는 자신도 모르게 진천의 말에 동조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지 진천의 말에 대답하는 제라르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넌 차후 전란에 휩쓸릴 때 일만이 넘는 백성들이 돌이나 나무 몽둥이로 저항 하다 죽어 나가는 것을 볼 참이더냐!”
“아닙니다!”
“넌 나의 신하다!”
“예!”
제전에는 마치 두 사람 만이 있는 듯 목소리가 크고 거칠게 울려가며 오가고 있었다.
“나의 뜻에 따르겠느냐!”
“예!”
“나라의 장수는 명예를 우선시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백성의 생명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다!”
“예!”
“가라! 그리고 대양을 누벼라!”
진천의 마지막 말에 제라르는 눈을 빛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열좌 앞으로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만천(萬天)의 지존이자 만인(萬人)과 만물(萬物)을 포용하시는 열제 폐하께 신 대사자(大使者) 제라르, 성심성의껏 명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맹세 하옵니다.”
“음.”
“만천의 지존이자 만인과 만물을 포용하시는 열제 폐하의 뜻대로 이루시길!”
제라르의 외침이 흘러나가자 진천의 양옆에 시립해 있던 두 명의 근위무장들도 제라르의 외침에 뒤따라 감격에 목이 매여 소리 높게 외쳤다.
제라르는 자신의 외침이 울려 퍼진 제전을 뒤로 한 채 제전을 힘찬 걸음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진천은 제전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어주었다.
“조금 띄워주면 알아서 갈거라더니만…….”
“…….”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해적질은 해적질이지.”
“…….”
“자네들도 말을 안했는데 잘들 맞춰주었군 그래.”
열좌에서 중얼거리며 일어나는 진천의 뒤에 시립해 있던 두 명의 근위무장들은 한순간 얼어 버렸다. 자신들의 마음을 몰아치던 감격을 단 두 마디로 인해 떨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제라르가 멀어진 방향을 보며 왠지 애처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제라르의 첫 출전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모든 물자들의 비축이 시작되었다. 선단의 식량으로 쓰일 고기류를 우선적으로 훈제한 후 말려 육포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런 저런 준비가 들어갔지만, 그 준비로 인해 일부에서 불평이 튀어 나오는 것도 있었다.
“거참……. 어이 숙수, 고기 없나?”
“기율님, 그게 그러니까 우선적으로 나라에서 징발이 되어서 일단은 이렇게…….”
“내 참. 훈련을 하려면 먹는 게 부실하면 안 되는데.”
부여기율의 투덜거림에 훈련장에 식사를 가져왔던 숙수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의 기율의 위치는 도부수들을 총괄하여 훈련시키는 위치라 일개 숙수들보다는 훨씬 높은 위치인 것이었다.
“고조 닥치고 먹으라우!”
“아이쿠 장군님!”
한쪽에서 시찰을 하던 을지부루가 기율의 투덜거림을 들었는지 빽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기율과 함께 투덜대던 병사들도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들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율은 부루가 왔음에도 할 말이 있다는 듯 가슴을 쭉 펴고 서 있었다. 그 도전적인 모습에 혀를 차며 다가온 부루에게 기율은 병사들을 슬쩍 바라보고는 병사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벌써 일주일째 아닙니까.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고기를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훈련도 빡시게 하고 병사들의 몸도 만들지 않겠습니까.”
“항명이네?”
부루가 같잖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대꾸를 하자, 기율은 절대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어가며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절대 아닙니다. 다만 병사들의 훈련을 맡은 자로써, 그리고 열제 폐하께서 내려주신 대형(大兄)의 직책으로써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항명이 아닌 정당한 요청입니다. 훈련이 칼만 휘두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휘황찬란한 기율의 언변에 눌린 부루는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 기율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부루도 이대로는 있지 못하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오히려 호통을 쳤다.
“뭐이가 어드래? 니들이 호랭이네? 괴기만 찾게!”
“그럼 저희가 토낍니까? 풀만 먹이게!”
“헛.”
부루는 자신의 억지를 바로 반대논리로 제압한 기율을 보며 헛바람을 일으켰다.
‘아새끼, 언제 이리 큰 기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루의 말 한마디에 오락가락 하던 기율이 도부수들의 훈련을 전적으로 맡고나서 이렇게 변화되자, 세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에게도 구원의 손길은 있었다.
“훗, 요즘은 토끼도 밥을 지어먹나보지?”
“…….”
연휘가람이었다.
순간 막강한 논리의 적을 상대하게 된 기율은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러나 휘가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을 하다보면 풀뿌리만 먹기도 하고 또한 숲에서 생존을 위해 직접 잡아먹기도 하지. 잘 되었군. 을지 태대사자(太大使者), 안 그런가?”
“흘흘흘, 길티요.”
“…….”
부루의 기괴한 미소와 함께 기율은 자신의 뒤통수로 날아오는 휘하병사들의 원망의 화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날로 해서 가우리 군의 새로운 훈련과제인 ‘생존훈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도시 주변 숲의 네발 또는 배로 기어 다니는 것들의 씨가 마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응? 연락병이 온다!”
“그래? 어디…….”
감시탑에서 내려다보는 병사의 눈에 등에 연락병임을 알리는 깃발을 달고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오는 병사가 보였다. 깃발의 색으로 보아 고윈 남작 영지에 들어가 있는 계웅삼 일행의 소식을 가지고 오는 병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병사가 확인 절차를 거쳐 가지고 온 정보는 빠른 속도로 연휘가람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대내적인 대소사는 대무덕의 손에서 이루어지지만 대외적인 정보는 일단 휘가람의 손을 거치게 된다.
서찰을 살펴보던 휘가람의 눈에 흥미 있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읽었던 서찰을 천천히 접어든 휘가람의 발길이 고진천이 머무르는 열제전으로 점점 빠르게 옮겨지고 있었다.
“태대형(太大兄) 연휘가람, 입실을 청하옵니다!”
열제전 밖에서 들려오는 근위무장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고진천은 살짝 눈을 찌푸리곤 자리에 바로 앉으며 외쳤다.
“들라!”
진천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근위무장들은 알아들은 듯 크게 복명하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며 들어선 연휘가람을 바라보던 진천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
진천이 안으로 들어선 연휘가람을 향해 용무를 물었으나, 그에게서 되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휘가람은 문 앞에 멈춰서서 할 말을 잊은 듯이 입을 다물고 열제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크흠.”
“…….”
말없이 제전을 둘러보던 휘가람이 진천을 향해 시선을 고정 시키자, 그는 갑자기 고개를 슬쩍 돌리며 딴청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좀…… 치우셔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꺄하아! 휘 오뿌우.”
“…….”
바닥에는 을지의 장난감으로 보이는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진천은 방치하고 있었다. 물론 시녀들은 치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언가 언질이 좀 있었던 것 같았다. 거기에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을지의 행동반경은 두 살이라는 나이를 자랑 하듯이 상당히 넓었고, 또한 속도마저 빨랐다.
털푸덕.
“우에에에엥!”
“밖으로.”
“예에.”
기다가 무언가에 걸렸는지 엎어진 을지를 보고 진천이 조용히 명을 내리자, 그때서야 시녀들이 달려들어 달래며 밖으로 빠져 나갔다. 그리고 남은 한 시녀가 치우려 하자 진천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짓을 했다.
“나중에 치우도록.”
“예에.”
진천의 손짓에 허리를 숙이며 나가는 시녀를 슬쩍 바라본 휘가람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 생각입니다만, 역대 열제 폐하들의 열제전 중 이곳이 가장 쑥대밭일겁니다.”
“보고 할 거라도 있나?”
“…….”
휘가람은 자신의 잔소리에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대화의 방향을 트는 진천을 향해 아무 말 없이 연락병이 가져온 서신을 내밀었다.
“어디서 온 건가?”
“고윈 남작 영지에서 지급으로 전달된 것입니다.”
“음.”
사냥꾼의 집을 위장한 연락병들의 거처를 타고 순식간에 넘어온 서찰은 발송된 지 단 이틀 만에 도착하고 있었다.
진천은 천천히 서신을 펼쳐 보았다.
“흐음.”
“보시면 아시겠지만 배의 출항 준비를 앞당겨야 할 듯싶습니다.”
진천이 서신을 보며 묘한 숨을 내쉬자 휘가람이 넌지시 의견을 내비쳤다. 서신에는 웅삼이 자기 역할을 잘 하는 듯 전쟁 물자들의 이동에 대한 예상경로가 잘 정리 되어 있었다.
“고윈 남작의 영지에서는 이런 정보를 모으기가 쉽지 않을 텐데.”
“상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그를 따라다니는 용병들이 꽤 된답니다.”
“그렇군.”
휘가람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신을 계속 읽어 나갔다.
[그리해서 하이안 왕국에서의 ……(중략)…… 로 보입니다. 거기에 요즘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남 로셀린 왕국과 북 로셀린 왕국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전쟁의 불씨가 일어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좀 더 정확한 정보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다행히 고윈 남작의 눈에 들어 수도로 동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차후 수도에 도착 하면 좀 더 정확한 정세를 파악 하겠습니다. 여기에 저희들의 외모가 너무 눈에 띠는 관계로 다른 인원들의 투입이 요구 됩니다. 그리하여 연락망 구성을 체계화해 주실 것을 건의 드립니다.]
나머지 부분을 읽어본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한쪽으로 걸어가 지도를 들고 와서는 펼쳤다.
“음.”
진천이 말도 없이 지도를 살피자 휘가람이 무언가 눈치를 챈 듯이 입술에 미소를 그려냈다.
“리셀을 불러 오도록.”
“예, 열제 폐하.”
진천이 눈을 지도에서 떼지 않은 채로 명을 내리자 휘가람이 시녀를 불러 전했다.
잠시 후 리셀이 왔다는 외침과 함께 열제전으로 리셀이 들어왔다.
“만천의 지존이자 만인과 만물을 포용하시는 열제 폐하께 신 리셀이 경배 올리나이다.”
“이리로.”
진천이 손짓을 하며 리셀을 불렀다. 그 모습에 리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간편하게만 하는 그의 주군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무슨 일이시옵니까?”
“흐으음.”
리셀이 허리를 숙여 다가갔음에도 진천의 눈은 계속 지도를 향해 있었다.
“여기 로셀린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예.”
진천의 명령에 리셀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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