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06
83화 웅삼에게 있어 전장이란……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바사 공왕이 물러섬과 동시에 터그람 왕국과 카말 공국이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거리를 물렸다.
터그람 왕국 입장에서는 바사 공왕도 놓쳤고, 무엇보다 술법사들로 구성된 전단 중 하나가 괴멸을 당했으며 하나는 괴멸까지는 아니지만 반파가 되었다.
특히 이들이 심각히 여긴 것은 바로 중앙의 술법전단의 피해다.
계웅삼이 날뛴 곳이야 방패병과 기사들이 무너져 그런 것이라 쳐도 중앙은 달랐다.
오래 준비된 술법전단과 카말 공국의 급조된 술법전단의 대결이었음에도 불과하고 실력으로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심지어 적들의 술법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법이다.
그렇기에 전멸을 면치 못한 날개 쪽 술법전단보다는 중앙에 위치한 술법전단의 상황을 더 심각하게 여긴 것이다.
반면 카말 공국 입장에서는 적 술법전단에 의해 입은 피해가 너무 컸다.
대열을 허물기 위해 달려갔던 기마대가 손도 못 쓰고 술법전단의 재물이 되었다. 거기에 그 술법전단을 상대하러 소울아머 유저들을 이끌고 갔다가 소울아머 유저 한 명을 잃었다.
물론 상대방도 소울아머 유저 한 명이 목숨을 내놓았지만, 소울아머 유저의 수가 적은 카말 공국이 더 큰 손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바사 공왕을 따라갔던 소울아머 유저들이 포스의 고갈로 더 이상은 참전이 어렵게 되었다. 물론 바사 공왕도 세 명에게 공격을 당해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장에 나서더라도 소울아머를 입고 참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울아머를 운용한다 해도 잠깐이다.
반면 터그람 왕국은 소울아머 유저의 희생이 있다 하지만, 나머지 소울아머 유저들은 여력이 남았다.
그들은 술법전단의 지원을 받아 체력을 충분히 비축하며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 가까이 차이가 나던 소울아머 유저들의 전력 차가 이제는 세 배에 가까워져 버렸다.
전사한 소울아머 유저를 포함하여 열셋 중 다섯이 이탈했다.
그러면 남은 인원은 여덟 명이다. 적들도 한 명이 죽었지만 살아 돌아간 다섯 명이 모두 다시 투입이 가능했다.
스물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터그람 왕국의 소울아머 유저들의 수에는 변동이 없다는 의미였다.
핵심 전력에서 차이가 생겨 버렸다.
그렇다고 병사들의 수가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웅삼의 존재가 카말 공국에는 힘이 되었다. 그 한 명으로도 소울아머 대여섯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결과가 이미 별동대의 탈출 과정에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적들은 웅삼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기습으로 소울아머 유저 한 명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그가 상대한 것은 일반적인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술법전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소울아머 유저라면 가능했다.
터그람 왕국은 한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늘은 것으로 생각할 게 뻔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사 공왕과 중앙이 아닌 반대편 날개 쪽이었다.
그쪽은 계속 전투가 이어졌다면 완전히 무너졌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터그람 왕국의 술법전단에 완전 유린을 당한 것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그쪽에도 여섯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배치되어 있었다.
반면 카말 공국 쪽에선 두 명의 소울아머 유저뿐이었다.
압도적인 화력 차에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병력을 물릴 때 소울아머 유저와 술법전단의 공격을 막은 게 다였다.
바사 공왕이 적진을 살피며 한숨을 내쉬었다.
“놈들이 병력을 물릴 생각이 없군.”
“그런 듯합니다.”
지금 가우리와 별동대, 그리고 소수지만 병력 일부가 복귀하고 있었다. 하루 반나절이면 그들도 합류할 수 있어 기대를 해보았지만, 터그람 왕국은 그 시간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뒤로 물린 병력을 정돈하고 있는 게 정렬이 끝나면 바로 치고 들어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에 카말 공국 쪽은 날개 쪽 병력이 괴멸 상태이기에 정돈을 하는 것보다는 병력 자체를 후위에 있던 이들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바사 공왕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에 가우리의 마법사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 술법전단으로 보이는 이들은 총 네 개 무리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중 중앙의 술법전단은 다른 전단에 비해 수가 배 가까이 늘어 있습니다. 생존자들과 다른 무리가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우.”
공중을 통해 정찰을 한 마법사의 보고에 바사 공왕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전투에서 확인한 적 술법전단은 총 세 무리였다. 그중 하나는 괴멸시키고 하나는 반파를 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런데 줄기는커녕 적들은 더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술법전단 역시 예비대가 존재했던 것 같았다.
“그나마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타다르 백작이 위안 삼아 이야기했다.
조금 전 전투에서도 갑자기 양 날개 쪽에서 술법전단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크게 당해 버렸다.
물론 알아도 술법사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모자란 카말 공국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난해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알면서 당하는 게 더 열 받아.”
“……쩝.”
바사 공왕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하자 타다르 백작이 입맛을 다셨다. 그때였다. 이실라 공녀가 밝은 표정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
“가우리군을 곧 소환해 올 거예요!”
순간 바사 공왕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소환? 소환이라면!”
마법진을 다 그린 리셀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나마 소강상태라도 되니 다행이네.”
“그럼 가우리 본진의 병력을 끌어오는 겁니까?”
웅삼의 질문에 리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네.”
“그럼…….”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는 웅삼을 보며 리셀이 안쓰럽다는 시선을 보내며 대답했다.
“일단 원정대를 불러오고 난 뒤에 시도해야 하네. 마나석도 다 원정대에 있으니 말이야.”
“끄응.”
웅삼의 얼굴이 바로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그때 리셀이 다시 말했다.
“그런데 계 장군.”
“예.”
“혹시 계 장군 위로는 열제 폐하만이 계시다는 말을 했는가?”
순간 웅삼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 그게 무슨…….”
“아까 타다르 백작이던가 하는 이가 계 장군의 윗사람이라고 하니 황제 폐하가 직접 오셨냐는 둥의 질문을 하더군.”
리셀의 말에 웅삼이 눈에 뜨이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누, 누구에게 말입니까?”
“대무덕 대장군부터 다 있는 곳에서 말이네. 마법 통신을 할 때 말이네.”
“…….”
리셀은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석화마법이라도 맞은 듯 뻣뻣하게 굳어져 가는 웅삼을 볼 수 있었다.
* * *
“급보이옵니다!”
“뭔가?”
병력을 살피는 고윈에게 병사 하나가 달려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정대가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옵니다.”
“준비는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인가.”
“전투가 소강상태이나 곧 다시 개전할지도 모른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장 상황을 살피기도 어렵겠군.”
고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착 후 전장 상황을 살필 시간쯤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고에 의하면 도착하자마자 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시키면 해야지, 감당할 수 있으니 하자는 거겠지.”
고윈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 * *
“이 정도로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그 이상한 능력을 가진 술법사는 일부밖에 되지 않을 거네. 만약 더 있었다면 다른 곳도 대응을 했을 것이야.”
그리팔 파샤 후작의 말에 참모진이 공감했다.
“맞습니다, 바사 공왕이 직접 나설 일도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아직도 그 술법사들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리팔 후작의 말에 각 술법전단을 맡은 술법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말대로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응은 가능하리라 봅니다.”
술법전단의 수는 압도적이다.
거기에 터그람 왕국 쪽에서 보유한 소울아머 유저들의 수도 적지 않다. 수틀리면 소울아머 유저들을 밀어 넣고 힘으로 해결해도 될 숫자였다.
“정비는 다 되었는가?”
“병력 보충은 끝났습니다.”
“적들은?”
“적들도 얼추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술법전단 하나가 괴멸되고 하나가 반파되었지만, 일반 병사들의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구멍 난 편제에 메우기만 하면 되었다.
반면에 카말 공국군은 한쪽 날개가 완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일부 가지고 안 된다. 전체 병력을 교체해야 한다. 군진을 정돈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팔 후작이 천천히 말을 몰아가며 말했다.
“더 시간을 줄 필요는 없지.”
“그럼 진군을 명하겠습니다.”
참모의 답에 그리팔 후작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게나. 끝을 내야지.”
뿌우우웅! 뿌우우!
“벌써!”
바사 공왕의 얼굴 위로 다급함이 어렸다.
아직 병력의 교체가 다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적진에서 뿔 고동 소리가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움직입니다!”
참모진의 외침에 바사 공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굳이 그들의 외침이 아니어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적들을 볼 수 있었다.
“어서 정돈을 마쳐라!”
“빨리 움직여!”
참모진의 명령에 전령들이 이리저리 달려 나갔다.
“사위는!”
이제는 대놓고 웅삼을 사위라 부르는 바사 공왕이었다. 그러자 참모진 중 하나가 대답했다.
“웅삼 경은 중앙의 선두 쪽으로 향했습니다.”
“뭐?”
가장 위험한 위치가 바로 그곳이다. 적들의 술법전단이 밀집된 곳이기도 했고 또 그게 아니더라도 선두 쪽은 가장 치열한 위치였다. 그런 곳을 다른 이도 아닌 웅삼이 갔다는 말에 바사 공왕은 가슴 한 곳이 뭉클해졌다.
웅삼은 카말 공국의 사람이 아니다.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야 탐이 나는 인재이기에 사위라고 부르지만 이 전쟁은 어떻게 보면 그에게 있어 불필요한 전쟁에 가까웠다.
물론 가우리가 이 전쟁에 힘을 보태고 받기로 한 것은 있지만, 사실 그건 굳이 카말 공국이 아니어도 가능했다. 만약 거래를 원했다면 카말 공국이 무너진 뒤 터그람 왕국과 해도 무방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딸이 아니라 나라도 시집가 주지.”
“…….”
감격에 찬 바사 공왕의 중얼거림에 참모진은 같은 말이라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허, 이런 급박하게 되었군.”
마법진 위로 가지고 온 마나석을 배치하던 리셀은 들려오는 뿔 고동 소리에 혀를 내둘렀다.
급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단지 원정대만 데려오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원정대가 오고 다시 가우리 본국에서 병력을 소환해 오려면 마법진의 규모가 달라야 했다.
두 번 일을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촉박했다.
“빨리 마무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원정대만 오더라도 큰 힘이 될게야. 지금 카말 공국은 소울아머인지 하는 무력을 상대할 능력이 없으니 말이야.”
“그렇습니다.”
가우리의 무장들만 와도 될 문제였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괴물이었다. 이곳뿐 아니라 지난 전쟁에서도 그 강력함은 증명되었다.
무장들뿐이 아니었다.
함께 온 이들도 가우리의 최정예였다. 그들이 온다면 적어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수적으로 모자람이 있지만 카말 공국의 병력도 강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이라는 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그런 믿음감이 있었다.
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빨리 움직이세나.”
“예, 울절님.”
마법진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리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계 장군은 어디로 갔는가?”
“힘을 보탠다고 갔습니다만.”
“…….”
마법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망간 것 같습니다.”
“후우.”
리셀이 한숨을 내쉬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웅삼은 정말 매를 버는 데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인간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실라 론 카말 공녀의 곁에 있던 카마쉬 마잘이 웅삼이 간 방향을 보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었다.
“아니야, 그를 믿어.”
이실라 공녀는 든든한 시선을 보내었다.
웅삼이 얼마나 강한지는 카마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동대와 함께하며 보인 그 강력한 무위는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걱정하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실라 공녀는 그 험로를 뚫으며 웅삼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었다.
“죄송할 지경입니다.”
카마쉬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웅삼이 간 위치는 그들이 갔어야만 하는 곳이다. 이실라 공녀와 수하들 말이다. 하지만 그녀를 대신해 웅삼이 간 것이다.
이실라 공녀는 보이지도 않는 웅삼을 보며 응원을 했다.
‘웅삼 님. 이 전쟁이 끝나면 웅삼 님만을 보겠습니다.’
이실라에게 있어 웅삼은 영웅이며 또 그녀를 수호해 주는 수호신이었다.
“역시 여기가 좋아.”
웅삼이 히죽 웃으며 적진을 바라보았다.
“여기라면 당장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그는 원정대 도착 직후를 떠올렸다. 반죽음 상태에서 또 맞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래서 스스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들과 푸닥거리를 하느니 터그람 왕국군에 혼자 돌격하는 게 났다고 생각하는 웅삼이었다.
“일단 여기서 공 좀 세우고 뭐라도 하면 쪼금은 봐주겠지?”
사고 친 것은 공으로 메우는 법이다.
그게 웅삼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여태 살아왔던 행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전장은 살기 위한 안전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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