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19
96화 급변하는 전황
가우리군의 병력 운용을 보고 뛰쳐나온 터그람 왕국의 그루더스 자작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그루더스 자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들이 이동을 하다가 대열이 늘어지는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기회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적들의 의도를 사전에 막아내는 것처럼 큰 성과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때 술법사 하나가 달려와 독려 중인 그루더스 자작에게 외쳤다.
“자작님! 본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적들의 움직임에 동요치 말고 신중히 대처하라고 하셨습니다!”
“으음. 알았다.”
하지만 독려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부관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본진의 연락대로라면…….”
그루더스 자작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위치를 고수하라는 명령이라면 모를까 신중히 대처하라는 명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후위를 차단당하느니 저 병력을 각개 격파를 할 수 있다면 적들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된다.”
“예…….”
부관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저것 보아라! 우리가 움직이자 놈들이 재빨리 대열을 갖추려 하지 않느냐!”
“아!”
“돌격하라!”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듯 그루더스 자작이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듬성듬성 난 갈대밭을 가르며 터그람 왕국의 병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고윈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한번 잘라 먹어볼까?”
적병들이 다가오자 고윈이 다시금 적색 깃발을 올렸다. 그러자 듬성듬성 모인 병력들이 방패를 바닥에 찍으며 방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방어를 선택한 이들처럼 보였다.
그러자 적들이 더욱 기세를 올리며 달려왔다. 하지만 터그람 왕국병들이 갈대밭의 중심지를 지나기 시작하자 고윈이 화살을 쏘아 올렸다.
삐이이이이!
명적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 신호를 받은 가우리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패 뒤에서 궁수들이 몸을 일으키며 화살을 쏘아 올렸다.
미리 궁시를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그냥 화살이 아니었다.
시뻘건 불길을 머리에 매단 불화살이었던 것이다.
불화살이 솟구치자 그루더스 자작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 부근이 전체가 갈대밭이라면 타격이 꽤 있었을 법했다. 하지만 이곳은 듬성듬성 갈대가 나 있어 발 빠르게만 움직인다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갈대밭을 지나는 병사들이 불화살을 보고는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갈대밭의 병사들은 일제히 이탈 후 돌격한다. 정신 차려라. 이곳 전체가 갈대밭인 건 아니다! 침착하게 대처하라!”
그루더스 자작의 외침에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들이 병사들을 이끌며 움직임을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이미 불화살은 갈대밭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적당히 마른 덕인지 불길이 화악 하고 번졌다. 하지만 터그람 왕국 병사들은 빠르게 갈대밭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들기 시작하는 가우리의 병력이었다.
와아아아아!
“놈들이 달려옵니다!”
“뭐?”
부관의 보고가 아니어도 이미 함성을 들어 알 수 있었다. 방패를 바닥에 박은 채 방어전을 펼칠 줄 알았던 적병이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순간 그루더스 자작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런 빌어먹을!”
어설피 나뉘었다고 생각한 병력이었다. 충분히 각개 격파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갈대밭의 불길을 피해 병사들이 나뉘자 이젠 반대가 되었다.
흩어졌다고 생각했던 적병은 아군 무리를 삼면으로 덮쳐오고 있었다. 반면 아군들은 불길을 피하기 위해 진형이 여러 개로 나뉘다 못해 병사들이 횡대가 아닌 종대로 몰려 버렸다.
이렇게 되면 이쪽의 병력 수와는 상관없이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의도치 않은 축차 투입, 축차 소모.
“다, 당했다!”
그루더스 자작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갈대밭을 탈출하느라 대열이 흐트러진 병력과 기존 병력이 뒤섞이며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 위로 가우리군이 덮쳐들었다.
고윈이 이끄는 매의 군단 중 최정예 병력이었다. 보병 중 최고의 기동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병사들이었다.
전투는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일부 병력의 뒤편은 불길이었다.
그런 이들의 앞에는 방패를 앞세운 창병이 굳히는 형태의 전투를 걸어왔다. 그리고 일부 병사들은 빠져나가는 형태가 되어버린 터그람 왕국군을 일제히 삼면에서 들이쳤다.
그러자 길게 종대로 늘어진 터그람 왕국의 병력이 이리 잘리고 저리 잘려 더욱 잘게 나뉘었다.
그리고 하나씩 소멸해 나갔다.
“철저히 당했다…….”
그루더스 자작이 허탈한 음성으로 적들을 바라보았다. 어설퍼 보이던 적병이 지금 이 순간 한 몸이라도 된 듯 일사불란하게 몰아쳐 왔다.
이제는 정말 살기 위해서 뚫기 시작하였다.
* * *
대무덕을 뒤따르며 전장을 살피던 바사 공왕은 문득 고개를 들어 보았다. 하늘을 떠다니며 전장 상황을 보고해 주는 가우리군의 마법사가 바로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술법에는 저런 게 없을까?’
사실은 있기는 하다. 다만 활용 기반이 낮았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바사 공왕은 입맛을 다시며 왠지 참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술법이란 게 정착화된 지는 오십여 년 정도였다. 그 전에는 중구난방으로 난립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또 그 속에서 술법의 효용이 점차 강조되다 보니 술법의 발전이 빠르게 이어졌던 것이다.
아직도 가문 혹은 개인을 기반으로 한 술법들은 폐쇄적으로 전수되고 있었다. 그런 고정 관념 때문에 터그람 왕국의 술법전단과 같은 형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륙에서 술법사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부분은 소울아머에 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전쟁을 보면서, 또 터그람 왕국의 술법사들의 운용법을 보며 바사 공왕은 많은 것을 느꼈다.
“이보게!”
말을 달리던 바사 공왕의 외침에 날아가고 있던 마법사가 시선을 내렸다.
“저 말입니까?”
“나 좀 잡고 날아올라 줄 수 있겠는가? 전장 상황을 직접 살피고 싶네.”
바사 공왕의 뜬금없는 요청에 마법사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전장은 카말 공국의 전장이었다.
바사 공왕이 직접 보고 싶다면 보여주는 게 좋았다.
또 한 가지.
지금 전장에서 가우리군이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면 앞으로 전후 협상에서 유리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마법사가 잠시 내려앉았다가 떠올랐다.
다시 떠오른 마법사의 품에는 바사 공왕이 상기된 얼굴로 안겨 있었다.
종종 전장에서 이런 경우가 있어 마법전단 소속 마법사들의 몸에는 고정 고리가 달려 있었다. 상기되었던 바사 공왕의 표정은 고도가 높아지는 것과 비례하여 빠르게 굳어지고 있었다.
높이가 두려워진 것 때문은 아니었다.
“으으음.”
밀리고 있던 전황이 확 뒤집혔기 때문이다.
우선 적 술법전단은 완전히 발이 묶였다.
가우리군의 마법전단에 의해 공세를 주고받고 있는 곳은 점차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쑥대밭이 되는 쪽은 이쪽이 아니라 터그람 왕국 쪽이었다.
게다가 반대편의 경우는 더했다.
“아…… 저건 대체……?”
바사 공왕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대한 수룡이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놀란 바사 공왕에게 마법사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놀렸다.
“연 장군이 불러낸 신수 같은 겁니다. 드래곤과 같은 존재라 합니다.”
“무슨 드래곤이 지렁…… 큼.”
차마 지렁이라고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위용이 보통이 아니었다.
“불 거인들이…….”
술법사들의 불 거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위력이 있었다.
고위 술법사라면야 홀로도 불러낼 수 있지만 보통은 여럿이 모여 불러내는 존재다. 그만큼 위력에 있어서는 대단했다.
물론 불러내는 데 쓰는 심력에 비하면 그 운용 시간이 짧은 편이라 자주 쓰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 이유 말고도 술법사들의 정신력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도 있었다. 여럿이 힘을 써서 불러내는 방법 자체가 불 거인들의 약점이라면 약점이었다.
그런 불 거인이 지렁이 같다고 한 수룡의 아가리에 으깨어지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으깨진다기보다는 집어삼켜져 거대한 수증기를 남긴 채 소멸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저, 저!”
중앙을 뚫어낸 일단의 병력이 계속 파고들고 있었다.
병진 중 가장 두꺼운 부분이 바로 중앙이다.
잘못 파고들다가 추진력을 잃게 된다면 그대로 포위되어 죽기 십상인 곳이었다. 그래서 기사단이나 기병을 운용할 때는 좌우 측면을 노린다.
그런데 그런 상식을 깡그리 무시하고 중앙을 돌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모한 돌진을 하는 이는 바로 계웅삼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한쪽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우회 병력을 돌파한 병력 일부가 후회를 하던 중에 적병을 향해 화공을 쓴 것이었다.
“허!”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병력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하늘 위에서 보니 마치 뭔가가 연상되었다.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 같구나.”
바사 공왕의 중얼거림에 마법사가 웃으며 대꾸했다.
“비슷하게 맞히셨습니다. 매의 군단에서 고르고 골라온 정예병들이옵니다.”
“아!”
정말 그 말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가 사냥감을 짓밟아 나가고 있었다.
“벌써 걸려들었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에 대무덕이 히죽 웃더니 화살이 남은 전통을 뒤적거렸다. 그러고는 돌을 매단 화살을 활에 가지고 가서 쟀다.
무덕뿐만이 아니었다.
일제히 화살을 재는 것이 일제사를 노리는 모습과 같았다.
“어디 한번 쏘아볼까나?”
대무덕이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그 뒤를 화살들이 날아올랐다.
그렇게 화살을 쏘아 올린 묵갑귀마대가 더욱 빠르게 질주해 나갔다.
“적들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날아오자 터그람 왕국의 방패병들이 전면으로 나와 방패를 땅에 고정했다.
“창수 대기하라!”
“장창수!”
화살을 날린 뒤 더욱 속도를 높이는 것이 이쪽에서 화살을 막느라 신경을 쓸 때 들이닥치겠다는 의미였다.
터그람 왕국 병사들은 그에 대비를 해야 했다.
터텅! 터터텅!
화살들이 날아가 방패 위를 두들겼다. 하지만 화살들은 정면의 방패수를 노린 것들이 아니었다. 대다수가 그들의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 탓인지 장창수 몇몇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자빠졌다. 하지만 제때 대비한 덕인지 죽어 나자빠지는 이들은 소수였다.
“후우.”
장창수 하나가 화살을 맞고 쓰러진 동료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며 땀을 훔쳤다.
동료가 다친 것은 안타깝지만 자신은 살아남았고 또 이후에 밀어닥칠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그때 그 병사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화살 끝에 뭔가가…….”
“돌?”
화살촉 부근에 작은 돌멩이가 매달려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었다. 그 돌이 갑자기 밝은 빛을 뿌렸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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