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24
101화 내 이름을 기억하라
“소울포스를 끌어 올리기 전이라고 해도 이건…….”
제라르의 공격을 받은 터그람 왕국 소울아머 유저 그리피언 자작은 이를 악물었다. 저릿한 것이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무기를 놓칠 뻔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동료들 역시 다르지 않은 듯 팔을 비틀며 충격을 해소하고 있었다.
“예상 이상의 강자다. 긴장해야겠어.”
하지만 그리피언 자작은 제라르를 바라보며 승기는 이쪽에 있다고 판단했다. 여전히 흥분 상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대체 대륙의 십인은 뭐지?’
도통 알 수 없는 위명이었다. 또 다른 대륙이라는 말에 서쪽에 있는 대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땅은 넓지만, 문명이 있는 국가라기보다는 황무지에 가까운 대지에 존재하는 소수 부족들이 거의 다였다. 이런 강자들이 있을 리는 없었다.
있었다면 시에라 제국에서 수십 년간 이렇게 왕국들을 병탄하기 위해 맘 놓고 정복 전쟁을 할 리가 없었다. 그 황무지뿐인 대륙과 인접한 곳이 바로 시에라 제국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무지뿐이라지만 가끔 상인들이 용병들을 동원하여 그 지역을 돌기도 했다. 살기에 좋지는 않지만 나름 돈이 될 만한 것들이 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뱃길을 이용해 종종 오가는 곳이었다.
이런 강자들이 존재하는 국가가 있었다면 소문이 나도 벌써 났을 것이다.
‘설마 또 다른 대륙이라도 찾아낸 것인가?’
하지만 그것도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다른 대륙 운운하면서 대화가 통하는 게 더 웃겼다.
만약 그들이 모르는 대륙이라면 대화가 통할 리가 있겠는가.
부아아악!
그때 좌우에서 소울포스를 끌어 올리는 진동음이 울려왔다. 지금은 고민을 할 때가 아니라는 듯 두 동료가 천천히 소울포스를 끌어 올리며 적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피언 자작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오, 힘은 좋은데? 이거 하난 인정해 주지. 그런데 그게 다인가 본데?”
적이 흥분할수록 이쪽이 나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고맙게도 적은 이쪽이 말 한 마디 한 마디 하면 할수록 알아서 발끈해 주고 있었다.
제대로 힘을 끌어 올린 세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콰아앙!
“나! 힘! 좋지!”
콰콰쾅!
“크윽!”
“그런데 우라질!”
콰쾅!
“쓸데가 없다아아아!”
연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제라르는 그리피언 자작의 말대로 흥분했다. 아니, 흥분의 도가 넘어 광분한 상황이었다.
제라르가 휘두르는 검격을 막을 때마다 소울아머 유저들은 온몸이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울포스를 잔뜩 끌어 올렸음에도 힘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일격 일격이 강렬했다.
이 정도로 강한 공격이라면 틈이 생길 법도 한데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트, 틈이 보이질…….”
상대를 흥분시킨 이유가 바로 그 틈을 만들어내기 위함인데 이건 상대가 광분하기만 했지 도무지 틈이 생겨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한 차례 공격을 뿌려낸 제라르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피식 웃었다.
“나 이거야 원. 바보들이냐?”
“크윽!”
“흥분시켜서 틈을 보고 하는 건 어디 엇비슷한 놈들끼리나 통하는 방법이지.”
제라르의 비아냥거림에 그리피언 자작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리피언 자작을 향해 제라르가 말을 이었다.
“어디 어설프게 끌어 올린 실력에 마법 갑주 하나 입었다고 니들이 엄청 강해진 것 같지?”
“소울아머는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무나 입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이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실력 같냐?”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검에 어리던 기운이 거칠어지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뇌전과 같은 기운이 쭈욱 뻗어 올라 롱소드의 수배는 더 길어졌다.
“어, 어억!”
“소, 소울포스?”
순간 소울아머 유저들이 경악했다.
그들뿐 아니라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모두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나 이거야 원 참. 우리 동네에선 이 짓 하는 걸 바보 취급해서 안 하려 했더니…….”
아마 이 자리에 진천이나 우루 등이 있었다면 쓰잘머리 없는 힘을 과시한다고 혹은 횃불 대용이라고 놀려대었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리피언 자작과 그의 동료들은 달랐다.
“어, 어떻게…….”
“진짜 소울포스다.”
검의 형상을 이루는 힘을 느끼며 그들은 경악했다.
경지에 오른 자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최고의 기술이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야기다.
소울아머를 입으면 소울포스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랜 수련으로 만들어낸 소울포스와 진짜는 그 차이가 크다고 했다.
물론 옛 검사들의 투덜거림이라고 치부되는 시대지만 정작 눈으로 보고 그 힘을 느낀 지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때 한 소울아머 유저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저, 검! 저거다!”
“아!”
“초기 소울아머가 검 형태를 띠었다 했어!”
순간 혼란이 잦아들었다.
소울아머의 초기 형태는 갑주가 아닌 병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격과 방어를 상호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소울아머였다.
그들의 외침에 제라르가 혀를 차며 발밑에 떨어져 있는 검 하나를 툭 차올려 반대편 손에 잡았다.
그리고 그 검에도 똑같은 검광이 솟구쳤다.
“그럼 이것도네? 아니면 이거?”
제라르가 마치 장난치듯 주변에 떨어진 무기들을 번갈아가며 잡아채어 검광을 뽑아내었다.
“소울아먼지 뭔지 참 흔하다. 그치?”
제라르의 행동에 세 소울아머 유저들의 안색은 점차 창백해졌다. 입술을 깨문 그리피언 자작이 가슴의 소울스톤의 봉인을 해제했다.
콰콰콰콰!
순식간에 소울포스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그리피언 자작!”
“빌어먹을!”
다른 한 동료는 당황하여 그리피언 자작을 불렀지만 다른 하나는 마찬가지로 봉인을 풀었다.
“자, 자네들, 어찌 이런 선택을!”
하지만 폭주를 선택한 두 소울아머 유저들은 동료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라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간을 끌수록 폭주를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달려오는 소울아머 유저들의 모습을 본 제라르의 얼굴 위를 감돌던 흥분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싹 가셨다.
처음부터 흥분 따윈 없었다.
“그래. 목숨을 걸어야지.”
제라르의 입가에 차디찬 미소가 걸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롱소드에 솟구쳐 올라 있던 검광이 마치 마른 천이 물기를 흡수하듯 쭈욱 빨려 들어갔다. 롱소드 위로 은은한 백광이 감돌며 번갯불이 튀었다.
제라르가 롱소드를 휘둘렀다.
콰쾅!
달려들던 소울아머 유저의 공격을 튕겨냄과 동시에 다른 공격 하나는 그대로 흘려내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엇!”
그때까지 동료가 폭주하는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던 소울아머 유저가 뒤늦게 소울아머의 봉인을 풀어갔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늦은 감이 있었다.
콰드득!
제라르의 롱소드가 그의 가슴팍을 가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크억!”
한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떠억 하니 벌린 소울아머 유저의 가슴팍에서 롱소드를 뽑아내며 제라르가 충고 한마디를 남겼다.
“겁쟁이가 제일 먼저 죽는 법이야.”
무너져 내리는 소울아머 유저를 뒤로하고 몸을 돌린 제라르에게 두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생애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달려들었다.
“자, 와라!”
두 발을 땅에 디딘 제라르가 롱소드를 두 손으로 고쳐 잡으며 외쳤다.
두 명의 소울아머가 뿜어내는 섬광이 그의 온몸을 집어 삼켜왔다.
콰콰콱!
한 명의 소울아머 유저가 포스가 담긴 검을 그대로 내리눌렀다. 제라르의 움직임을 막기 위함이었다. 반사적으로 흘리려 했지만 롱소드를 움직여 흘리지 못하도록 밀어붙였다.
“허?”
제라르가 혀를 찼다. 나름 검술이 뛰어났다. 그사이 그리피언 자작이 그의 옆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제라르가 맞닿아 있는 롱소드를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내리누르며 다가오는 찰나.
그 찰나의 틈.
제라르가 강력하게 발을 구르며 당겼던 롱소드를 도로 밀어 쳤다.
콰앙! 우직!
발 구름 소리와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손바닥 하나의 간격을 이용해 날린 일격이었다. 롱소드가 아닌 손잡이를 이용한 타격이었다.
그 한 방에 맞붙어 있던 소울아머 유저의 가슴팍이 함몰되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흐아아아!”
그때 그리피언 자작이 롱소드를 제라르의 옆구리로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제라르가 빠르게 뻗었던 팔을 회수하며 팔꿈치를 뒤로 당겼다.
태앵!
팔꿈치에 대었던 보호대가 태앵 하니 끊어져 날았다. 그러나 옆구리를 노리던 롱소드 역시 팔꿈치에 의해 틀어졌다.
“이런 거지 같은!”
그리피언 자작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포스를 담은 롱소드가 고작 팔꿈치 보호대 하나만을 잘라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팔꿈치로 롱소드의 방향을 틀어냈다는 것 역시 믿지 못할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팔꿈치를 당겼던 방향으로 상체를 돌리며 반대쪽 손에 들린 롱소드를 휘두르는 제라르를 보며 이 상황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빛이 번뜩였다.
서걱!
“하아.”
뭔가 스치는 소리에 그리피언 자작은 허무한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진짜 실력이란 거지.”
무표정한 제라르의 말. 그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제라르에게 그리피언 자작이 입을 열었다.
“대륙의 십인이라 했는가.”
“뭐, 한때는.”
“그 대륙에는 그대와 같은 강자가 많은가 보군.”
“많았지.”
“지금은 다 없다는 말인가?”
그리피언 자작의 질문에 제라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우리 위 양반들이 다 잡아 죽였지.”
“우리……?”
“가우리. 여기에 온 카말의 동맹군.”
“그게 사실이면…… 무시무시하군. 시에라 제국도 만만히 보지 못하겠어.”
그리피언 자작의 중얼거림에 제라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그러면 곤란할 거야. 시에라 제국은 모르지만 우리 동네에선 제국 하나가 작살이 났으니까.”
“우리가 약한 게 아니었군.”
“그래. 우리가 강한 거야. 나름 나쁘지 않았던 승부였네, 친구.”
제라르가 미소를 지으며 그리피언 자작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러자 그 충격에 그때까지 붙어 있던 그리피언 자작의 머리가 떨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푸슈슉!
“아……. 미안, 잘라놓고 까먹었었어.”
툭, 데구루루.
제라르의 사과를 받아줄 이의 머리는 이미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이거 참. 정말 미안하네.”
제라르가 뒷머리를 긁었다.
푸슉, 푸슉.
* * *
불 거인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방을 자욱하게 만드는 수증기만이 안개처럼 떠다닐 뿐이었다.
그나마도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수룡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아, 아아…….”
술법사들이 넋을 잃었다.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술법사들이 한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술법사들은 절망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절감한 것이었다. 물론 불 거인이 술법의 최고봉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술법사들로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의 눈앞으로 수룡이 아가리를 벌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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