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31
4화 잿빛 하늘 아래에……
“…….”
뭔가를 구하긴 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 대신 몰래카메라냐는 이상한 말만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주변을 볼 필요도 없었다. 공기만으로도 이곳이 다른 곳이라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텁텁하고 답답했으며 청량감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공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계웅삼…….”
저절로 이가 갈렸다.
웅삼이 놈의 마지막 표정이 뇌리에 새겨지듯 남아 있었다. 분명 놈이 무슨 짓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라는 쪽에 웅삼이 목숨을 걸 거다.
왜?
놈이 무슨 짓을 했을 게 분명했고 난 놈의 멱을 딸 거니까.
고로 놈의 무죄에 놈의 목을 건 거다.
어쨌든 난 덮쳐 오던 철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미동도 없는 것이 죽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잘려진 곳에서 불똥이 조금씩 튀기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그래, 죽은 놈도 다시 보자.
콰직!
확인 사살도 할 겸 난 발을 들어 놈의 머리통을 뭉개 버렸다.
깡통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확 뭉개져 버렸다. 꽤나 단단한 껍질을 가진 놈이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여인을 보았다.
“흐음.”
여인이라기에는 조금 앳된 느낌이었다.
을지랑 비슷한 또래 정도 되어 보였다. 뭐 이 정도면 애도 서넛쯤은 있을 만한 나이이기는 하다.
난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손을 들어올렸다.
역시 정신을 잃은 데에는 싸대기가 명약이다.
“꺄아아아!”
“음?”
그때 내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여인의 동료인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달려오는데 그 복장이…… 반쯤 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것을 입고 어찌 몸을 방어한단 말인가.
보기엔 좋았다.
“언니! 세인이 언니!”
“세인아! 정신 차려!”
빨간 머리, 노란 머리가 달려와 내 품에 안긴 여인을 거둬 가며 눈물을 터트렸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찌 이런 싸움에 끼어들었을까 하는 어이없는 마음이 들었다.
“빠, 빨리 의사를 불러!”
“뭐해!”
“어떤 새끼가 지금 카메라 돌리냐! 상황 파악 안 되냐!”
갑자기 사방이 소란스러워진다.
뭐지 이 상황…….
이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별다른 살기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공성병기 같은 것을 설치해 놓은 이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누구는 어깨에 뭔가를 걸치고 있었고 누구는 투석기 같은 곳에 올라가 있었다.
“오호.”
여긴 사람을 쏘아 올리는 건가?
성벽을 넘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 판단되었다. 나중에 웅삼이나 우루를 쏘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가 꽤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메카닉 나이트 담당한 새끼 어떤 놈이야! 이게 왜 갑자기 자빠져!”
황익찬 감독은 미칠 지경이었다.
자칫 촬영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감독님 사촌 동생이…….”
“뭐!”
황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친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크악! 삼천만 원이나 든 메카닉 나이트가!”
“저 망할 놈의 자식!”
사람이 다칠 뻔했는데 메카닉 나이트 망가졌다고 징징거리는 조카를 보며 황 감독은 열불이 차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외상은 없습니다! 그저 놀라서 잠시 혼절했을 뿐입니다.”
“다, 다행이다.”
장르가 판타지 액션이기에 항상 촬영장에는 의사가 있었다. 그 의사가 별 문제없을 것이라고 대답하자, 황 감독은 가까스로 마음이 놓였다.
인명 사고를 피한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런데…….”
일단 사고는 피했으니 마음이 놓이긴 했는데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빛이 터져 나오며 메카닉 나이트와 세인 사이에 사람이 나타나고, 또 그 사람이 뭔가를 휘둘러 메카닉 나이트를 잘라 버리기까지 했으니 얼떨떨한 게 당연했다.
그때 촬영 필름을 돌려 보던 카메라 감독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칼?”
“뭐가?”
황 감독의 질문에도 카메라 감독은 멍한 표정을 한 채 잘려 나동그라진 메카닉 나이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걸 칼로 잘랐다고?”
카메라 감독의 말에 황 감독은 자신의 자리에 놓인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곳에서는 초 저속으로 재생된 영상이 플레이 되고 있었다.
그 사내가 휘두른 뭔가는 칼이 분명했다.
아주 느린 영상인데도 확인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휘두른 장면은 느린 화면으로도 잡히지 않았지만, 처음 뽑을 때와 마지막 천천히 집어넣을 때 칼이 보인 것이었다.
“저놈 자식!”
이 황당한 사실을 본 황 감독이 자신의 조카를 노려보았다.
‘저놈 어디서 이딴 걸 사 가지고!’
분명 메카닉 나이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싸구려를 재료로 썼다든지 말이다.
“이, 일단 가 봐야겠군.”
황 감독은 서둘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허어엉! 아저씨, 고마워요! 엉엉엉!”
“…….”
금발 꼬맹이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우어어엉!”
심지어 얼굴을 내 허리에 문지른다.
갑주에…… 꼬맹이의 콧물이 묻었다. 사람 구해 주고 봉변을 당하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반쯤 벌거벗은 빨간 머리 여자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음.”
자꾸 시선이 다른 데로 가는 건 본능인가 보다.
“아…… 그러다 뚫어지겠어요.”
빨간 머리 여자가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손으로 몸을 가렸다.
이곳은 눈으로도 무언가를 뚫을 수 있는 능력자가 있는가 보다.
“저, 가, 감사합니다. 황익찬이라고 합니다만…….”
헐레벌떡 달려온 중년 사내가 종이 쪼가리를 내밀며 말했다.
사례인가?
일단 받으며 대답했다.
“고진천이다.”
“아, 예.”
그러고 보니 이곳 이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머리가 검었다. 일부 머리가 노릇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 생김은 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난 서둘러 손가락에서 통역 아이템을 뽑았다.
이곳, 어쩌면 내가 온 곳과 비슷한 지역일지도 몰랐다.
“그게 #$@% 해#$@니다.”
“…….”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충 중간 중간 몇 단어는 내가 아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군.”
“네?”
“이곳이 아니야.”
아쉬웠다.
“$#군.”
“네?”
“이$#이 #$야.”
“이거 참…….”
황 감독은 난감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제이, 중국어 할 줄 알지?”
황 감독의 질문에 붉은 머리를 한 여인이 대답했다. 그녀가 제이였다.
“중국어는 아니에요.”
“아냐? 뭐 비스무리한 거 같은데?”
“중국말 아니에요. 그리고 조금 전에는 한국말을 하셨어요.”
“그래?”
황 감독은 제이의 말에 반색을 하며 다시 그를 보았다.
“저 고진천 씨?”
“말해라.”
“그…….”
황 감독은 잠시 불쾌해지려 했다.
자신의 나이가 이제 오십이다.
그런데 반말로 꼬박꼬박 말하는 것이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사십이 안 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내뱉지는 않았다.
얼굴에 보이는 자잘한 상처들과 그의 허리에 매달린 칼들…… 그리고 손도끼?
‘이 인간 위험한 인간이다!’
그의 생존 본능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음.”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신 건지 좀…….”
황 감독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고진천이라 말한 사내가 얼굴을, 정확히는 미간을 찌푸렸다.
“웅삼이 때문에.”
“예?”
“놈……. 돌아가면 사지를 작살내 주마.”
“…….”
황 감독은 ‘어린 놈이!’ 하면서 따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 남자.
위험한 남자가 맞았다.
“그, 어쨌든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안내하도록.”
“예…….”
황 감독은 왠지 모르지만 이 남자의 하대가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느낌이라면 이 사내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직인가?’
어느 조직 보스가 무인 코스프레라도 한 것일지 모른다는 황당한 생각을 하며 그를 안내했다.
“음.”
나름 대접은 나쁘지 않았다.
이상한 퍼런 물이 달달하긴 했지만 맛도 나쁘지 않았다.
“가볍군.”
물을 담은 통이 상당히 가벼웠다. 안이 비치는 것이 유리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또 달랐다.
팅팅.
손가락으로 튕겨 보니 딱딱하지 않고 탄력이 있었다.
푸욱!
조금 힘주어 찌르니 손가락에 뚫려 버린다. 그다지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런.”
콸콸콸!
뚫린 구멍으로 퍼런 물이 새어 나왔다.
‘이 아저씨! 손가락으로 쿡 찌르니 게토레이 병이 뚫렸어!’
옆에서 음료수를 주었던 조명 보조가 놀란 눈으로 고진천을 바라보았다.
그때 진천이 뚫려 버린 음료수 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 비싼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럼 문제없군.”
“…….”
문제는 없는데 신기할 뿐이었다.
조명 보조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게토레이 병을 힘차게 찔렀다.
우둑!
“커억!”
손가락이 뒤로 꺾였다. 골절을 당한 것이다.
“아아악! 내 손가락!”
“쟤는 또 왜 그래?”
“손가락이 꺾였답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황 감독은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있는 진천을 슬쩍 바라보며 다시 촬영 감독을 다그쳤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빛에서.”
“그게 말이 돼?”
“봐! 이 양반아!”
촬영 감독이 보여준 카메라 영상에는 황금색 빛이 사라지며 나타난 진천의 모습만이 담겨져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미쳐 버리겠다.”
“내 말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더 잘 어울리는 영상이다.”
“아서라. 저 양반 아무리 봐도 이거 같아.”
황 감독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촬영 감독을 말렸다.
“주, 주먹?”
“그러니 조심해. 딱 보면 견적 나오잖냐.”
“끄응.”
촬영 감독은 황 감독과 함께 진천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허억!”
“헉!”
둘은 보았다.
진천이 주먹을 말아 쥐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말이다.
(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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