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36
9화 이어지는 인연
“…….”
자동차라는 것들이 쉴 새 없이 다닌다.
이곳에서 가장 탐이 나는 것이 바로 저것들이었다. 따로 밥을 주지 않아도 기름이란 것만 먹이면 알아서 잘 움직이니 말이다.
말 없는 마차와 같지 않은가.
가능하면 저런 것들을 좀 데려와 키워 보고픈 마음이 생긴다. 종류도 보니 작은 놈부터 큰 놈까지 다양했다.
저것들만 있다면 전쟁을 할 때의 보급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형태로 보아 길이 잘 닦이지 않은 곳에서는 어려울 것 같지만 길이야 차츰 닦으면 된다.
게다가 전쟁뿐 아니라 상업에서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보였다.
빠른 물산의 이동은 부를 이룩하는 데 필수이니 말이다.
“응?”
순간 재미있는 것이 지나갔다.
바퀴가 두 개짜리인 자동차가 지나간 것이다. 껍데기는 없지만 마치 말처럼 생긴 것이 큰 놈들 사이로 이리저리 지나가고 있으니 꽤 흥미로워 보였다.
저것 역시 탐이 난다.
건물과 자동차라는 것들을 보니 이곳 세상은 많은 것이 발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높은 건물을 제외하고서라도 지나는 사람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 인원이라면 꽤 많은 수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인구는 국력의 척도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때 눈에 익은 차가 지나간다.
“역시군.”
반쯤 열린 창에서 나를 알아보는 여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 주변에 거주하는 듯했다.
그 차가 지나가고 또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이 세상의 정보가 필요했다. 어제의 노숙인이라 불리는 하층민들에게서는 그리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다.
기거할 곳 없이 다니는 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한정적이기 마련이니 말이다.
“도움을 받는 게 좋을 터인데.”
이곳에서 그나마 인연이 생긴 이들이 어제의 그녀들이었기에 조금 아쉬웠다.
꼬르륵.
“출출하군.”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배가 고팠다.
“끼니를 때워야 하는데.”
아까 식사를 했던 곳은 하층민을 위한 구호소라고 했다. 그곳에서 다시 식사를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들과는 다른 행색이어서인지 눈치를 주는 이들이 많았다.
“사냥이라도 해야겠군.”
마침 좋은 사냥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삭막해 보이는 곳이긴 해도 영 사냥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 * *
“그 아저씨, 어제 그 옷 그대로 입고 있네?”
레이니가 창에서 시선을 떼며 말하자 제인이 피식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갑옷 같은 거에 선글라스는 영 이상하지 않니?”
“킥, 그러게.”
둘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세인은 사이드 미러에서 멀어져 가는 그를 보고 있었다.
“언니, 왜?”
그런 세인에게 레이니가 물었다.
“아니, 그냥. 좀 그래서.”
“왜? 식사도 대접하고 감사하다고 돈도 드렸다는데.”
“돈은 돈이잖니.”
“뭐, 그렇긴 한데…….”
그때 갑자기 차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억!”
차를 운전하던 로드 매니저 구빈관이 얼굴을 구기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빈관아, 왜 그래!”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전창걸 대표가 앞좌석을 보며 당황스런 음성을 내뱉었다.
“배, 배가!”
“일단 차 세워!”
순간 구빈관이 얼굴을 구긴 채 옆으로 차를 대었다. 그게 한계였는지 그는 차를 세우자마자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뭐야, 어디가 안 좋은 거냐!”
전창걸 대표가 외쳤지만 구빈관은 반복적으로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할 뿐이었다.
“배, 배가!”
세인이 전창걸 대표를 보며 외쳤다.
“병원!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아요?”
“이런 때에 갑자기…….”
전창걸 대표는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데려가기는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들을 액션 스쿨로 데려갈 사람이 없게 된다.
연예 기획사라 하지만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드 매니저도 구빈관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어, 어쩌지!”
“일단 병원부터 데려가야죠!”
세인이 재차 외쳤지만 전창걸 대표는 난감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밴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구빈관을 제외하면 전창걸 대표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벤을 끌고 병원으로 데려가면 좋겠지만 그리되면 이들더러 따로 가라고 해야 하는데, 햇병아리라지만 요즘 조금씩 얼굴을 알리고 있는 걸 그룹이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액션 스쿨은 다음에 가도 되잖아요!”
제이가 망설이는 전창걸 대표에게 다시 말을 붙였다. 그러자 전창걸 대표가 울상을 하고 대답했다.
“사실 오늘 액션 스쿨에 사극 쪽 담당하는 피디님이 오신다고 해서…… 일부러 잡은 거란 말이야.”
“예에!”
“눈도장 찍어야 하는데…….”
그제야 셋은 오늘 전창걸 대표가 그들을 억지로 끌고 나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제 같은 사고가 있었다면 하루라도 쉬게 해주었을 것인데 말이다.
따로 로비를 하기 힘든 영세 기획사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라도 피디들의 동선을 파악해서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일단 우리끼리라도 가 볼게요.”
“하지만…….”
전창걸 대표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왜 영세 기획사인데도 무리하게 벤을 뽑고 했겠는가.
바로 외적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소속 연예인들에게 안정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는 크다.
신뢰성이 생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그때 뒤쪽에서 굵직한 음성이 울려왔다.
“식사 안 했으면 같이하지?”
이 화급을 다투는 때에 식사라는 말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그 음성이 너무 익숙했기에, 다들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사냥을 좀 했는데.”
고진천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방금 잡은 듯한 비둘기 몇 마리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이놈들 꽤 굼뜨더군.”
“…….”
그때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레이니가 물었다.
“아저씨, 비둘기도 먹어요?”
“먹으면 안 되는 놈들인가?”
모두 할 말을 잊었다.
“그, 그럼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라.”
택시를 잡아타고 구빈관을 밀어 넣은 전창걸 대표는 고진천을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서 있었다.
“세인아…….”
“빨리요! 어제도 도와주신 분이잖아요!”
“그, 그게.”
“곧 송장 하나 치우겠군.”
“어헉!”
진천의 말에 시선을 돌린 전 대표의 눈에 눈을 까뒤집기 시작하는 구빈관의 모습이 보였다.
전 대표가 황급히 택시에 오르며 외쳤다.
“니들이 잘 좀 보살펴라! 도착하면 전화하고!”
“예!”
메이크업을 하는 정수연이 걱정 말라는 듯 대답했다.
그들은 밴 앞에서 걱정이 담긴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았다. 세인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별일 없어야 하는데…….”
그때 레이니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진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이거 운전할 줄 알아요?”
“운전할 줄 아는 이는 알지.”
“지금 바쁜데 이제 와서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들이 밴을 두고 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진천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전창걸 대표가 이 차로 그녀들을 데려갈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고 진천은 문제없다고 대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진천이 한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저기 저 노인이 큰 놈도 몰아봤다더군.”
“네?”
그때 그녀들이 진천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원 벤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이 든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얼마 전까지는 마을버스를 몰긴 했었는데…….”
박노문은 갑자기 밴 앞으로 자신을 끌고 온 고진천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전날 술판을 벌이면서 그가 이전에 살아온 삶에 대한 넋두리를 했던 기억이 났다. 화물차부터 마을버스까지 차란 차는 다 몰아봤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가 노숙을 하기 시작한 지는 보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살던 그가 그나마 조금 모은 돈을 사기당하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 버린 것이었다.
부인과는 사별한 지 오래고 자식들은 모두 해외에 있었다. 일단 자식들에게 연락은 해놓았지만 차마 노숙을 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럼 됐군. 운전해라. 돈은 주마.”
“어, 어이쿠. 그러면야…….”
박 노인은 대답을 하면서도 눈치를 보았다.
정확히는 진천의 뒤에 서 있는 여인들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밴의 주인은 그녀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좀 부탁드릴게요. 운전하던 오빠가 갑자기 병원을 가서요.”
“아, 알겠네.”
세인의 대답에 박 노인이 운전석으로 가려 했다. 그때 제이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잠깐, 옷이라도 좀 바꿔 입어야겠어. 수연아, 거기서 티셔츠랑 바지 좀 사와. 두 벌.”
“예!”
제이의 말에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정수연이 길옆의 가게로 갔다.
“두 벌?”
두 벌이라는 말에 레이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저씨도 옷은 갈아입어야 하잖아.”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진천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겠네.”
잠시 후 수연이 옷 두 벌을 사왔다.
잠시 후 차 안에서 진천과 박 노인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박 노인은 셔츠와 바지를 갈아입으니 노숙자의 티가 덜 나는 듯했다. 그동안 공원 화장실에서 잘 씻고 지냈는지 묵은 냄새도 없는 편이었다.
문제는 진천이었다.
투둑!
“이거 안 되겠군.”
진천이 인상을 쓰며 자신이 입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청바지는 움직일 때마다 뜯어지는 소리가 울렸고, 티는 커다란 것을 샀음에도 마치 쫄티를 입은 것처럼 팽팽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진천을 보며 제이가 입을 떡 벌렸다.
“근육이…….”
그녀뿐 아니라 세인과 레이니 그리고 수연까지도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헬스로 다져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몸이 아니라 살색으로 된 갑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몸짱이니 뭐니 하는 수식어보다는 압도적이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신체였다.
그때 멍하니 있던 제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 안 되겠다. 이 아저씬 그냥 그거 입어야겠어.”
“이상하잖아!”
“연기자라고 하면 되지 뭐.”
제이의 말에 반발을 했던 레이니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런가?”
“바쁘니 어서 타! 아저씨는 뒤에서 다시 갈아입으세요.”
제이가 서둘러 차 문을 열며 말하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그러지.”
잠시 후 바쁜 그들을 태운 차량이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 * *
서울 액션 스쿨의 대표 육의찬 감독이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놀라 외쳤다.
“예? 급성 맹장이요? 그럼 오늘 애들 안 옵니까?”
[그건 아니고 일단 사람을 좀 구해서 보냈어.]“그래요?”
퍼스트 엔터의 전창걸 대표와는 평소 형님 아우 하던 터라 의찬은 방송국 피디가 무술 감독 계약 때문에 자신을 만나러 오는 때에 맞추어 넌지시 연락을 주었던 것이다.
나름 눈도장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터라 그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 일단 내가 다시 그쪽으로 갈 테니까 네가 좀 잘 해줘라.]“에이, 형님도. 걱정 마쇼.”
그때 통화를 끊으려던 의찬의 귓가로 걱정 섞인 음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아참! 같이 간 사람 중에…….]“예.”
[아, 아니다. 별일 없겠지.]“아, 예. 끊겠습니다. 형님도 일 마치고 오세요.”
[그래, 알았다.]전화를 끊은 의찬은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다. 마침 차가 들어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왔나 보구나.”
의찬은 그녀들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1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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