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4
강철의 열제 64화
노래는 노래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술잔대신 커다란 항아리가 사람들의 손을 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신병들도 어느새 이 무리에 섞여들었고 부루와 우루와 세 드워프는 각자 술동이를 끌어안고 춤추고 있었다.
이러한 음주가무에 가장 먼저 어울린 것도 드워프였다. 아마 그들의 낙천적인 성향이 가우리 사람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리라.
“크아아! 좋다!”
“휘! 그거 내오라 해라!”
“지금 말입니까?”
술판이 벌어지고 술들이 들어가자 다시 옛날로 돌아간 듯 진천이 휘가람을 불렀다. 휘가람도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달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다가 진천에게 예절은 다 잊고 옛날처럼 대답했다.
잠시 후 몇 개의 나무통이 들려나오자 부루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던 갈링 스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저것은!”
진천의 명에 의해 들려온 것은 갈링 스톤이 몸을 날려가며 지키려 했던 맥주였다.
“내 맥주어억!”
풀썩.
“돌댕이 오디가네!”
들려나온 맥주 통을 향해 마치 야차처럼 몸을 날리던 갈링 스톤의 행동은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 부루에 의하여 저지 되었다. 볼썽사납게 엎어진 갈링 스톤은 땅바닥을 헤집으며 맥주를 향한 열망을 표출했다.
“…….”
“맥주우~.”
“……내가 취해 헛것이 보이는 것이냐, 아니면 이놈이 취하다 못해 실성한 게냐.”
코가 벌게진 상태로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꼴을 본 진천이 혀를 차며 물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갈링 스톤의 발목을 잡고 있던 부루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술 처먹고 이거이 먼 주사네!”
“맥주우~!”
“고조 미틴 놈에겐 매가 약이디.”
“헉!”
부루의 음성에 정신이 되돌아온 것을 느낀 갈링 스톤이 벌떡 일어나며 항변을 하기 시작했다.
“저걸 만들기 위해 저희가 얼마나 고련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먹음직스럽게 익으니까 몽땅 배에 실어가고, 이렇게 꿍쳐놓고서 이제야 풀어 놓으니 제가 환장 안하게 생겼습니까!”
“…….”
부루를 향해 열변을 토하는 갈링 스톤을 바라보는 남은 두 드워프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갈링 스톤의 마음이나 화인 스톤이나 머윈 스톤의 마음은 비슷하였으나, 지난 기간 동안 반복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입 밖으로 뛰쳐나오는 말을 가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링 스톤이 누군가?
드워프 마을의 마지막 반항아라고도 불렸던 드워프였다. 갈링 스톤의 뛰어난 실험정신은 드워프 마을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누구도 생각 못했을 삼단변신 갑옷이나 마갑과 합체할 수 있는 합체갑옷, 건틀렛이 날아가는 갑옷 등…….(물론 삼단 변신은 조작 시간이 길어 변신도중에 맞아 죽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고, 마갑과 합체 가능한 갑옷은 입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건틀렛이 날아가는 갑옷은 건틀렛이 날아가며 팔까지 날아갈 뻔한 경우가 있어 실용화는커녕 죽기직전까지 맞으며 자라왔다.)
그런 갈링 스톤이었기에 그의 도전 정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기래, 돌댕이 놈들 덕에 보리 구경을 한동안 못했었디.”
움찔.
“난 보리밥 좋아 한다.”
움찔~!
부루의 음산한 음성에 갈링 스톤의 몸이 민감하게 반응 했다. 그리고 부루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한 진천의 음성이 나오자 살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내래 그거이 사라져서 한동안 도둑 찾느라 고생한 거 생각 하면…….”
갈링 스톤이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탓하는 도중 화인 스톤의 은근한 중재가 들어왔다.
“저……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술 한 잔 하시는 게…….”
“기래 술 한 잔 해야디.”
순간 누그러지는 듯한 부루의 음성에 갈링 스톤은 화인 스톤의 도움에 고마워하며 은근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갈링 스톤은 부루의 얼굴에서 지옥을 읽어낼 수 있었다.
“고조 돼지를 잡을 때도 술 한 잔 들이키고 하는 거이디. 안기래?”
딸그랑.
머윈 스톤의 손에서 떨어진 주석잔 소리가 유난히 맑게 울렸다. 그러나 구원은 있었다.
“그만. 부루 한 잔 받아라.”
“기래도 버르장머리가…….”
“지난 일은 잊어라.”
진천의 목소리가 갈링 스톤을 비롯한 두 드워프들에게는 마치 불 속에서 울려 퍼지는 불꽃 신의 음성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진천은 못마땅해 하는 부루에게 방금 꺼내온 맥주를 따라 주고 다시 드워프들에게 다가왔다.
“자, 한 잔씩 받아라.”
“예.”
그들은 진천이 주는 맥주를 공손히 받았다. 물론 인간에게 허리를 굽히는 종족은 아니었지만 반복 학습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이미 이들의 뇌리에는 ‘고진천 > 을지 형제 > 드워프’ 이런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다. 그들의 잔에 맥주를 따라준 진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보리술 맛이 좋더구나. 이전에 보리를 훔. 쳐. 다 술을 만든 것이나, 이. 상. 한 철로 만든 수의를 병사들에게 입히려고 했던 행동들도 다 용서될 정도로군.”
“…….”
술잔을 받은 드워프들은 이것이 협박인지 위로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는가. 바다에서 식수가 중요하고 또 너희들이 만든 것이 유용하니, 어쩔 수 없이 실어가게 된 것을 이해하라. 대신.”
“……?”
진천의 도닥거림 끝에 나온 ‘대신’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주목을 했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미안한 감이 있어 오늘 마실 맥주를 서너 통 빼놓은 거니 너무 야박하다 하지 말고, 오늘은 이것으로 마시고 다음부터는 너희가 마음껏 맥주를 만들도록 하라. 이제부터는 어디 숨어서 몰래 만들 필요는 없다. 이것은 열제의 명이다.”
“오오오!”
성질 급한 갈링 스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다른 두 드워프도 옆에서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진천을 향해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마시자!”
“우와아!”
어린 아이마냥 즐거워하는 진천과 세 드워프들을 보던 부루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한쪽에서 웃고 있는 휘가람에게 다가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저리 관대한 말을 합네까?”
“크큭, 이번만 항해를 나갈게 아니잖나.”
“…….”
결국 드워프들을 우려먹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것이다. 이런 속셈도 모른 채 드워프들은 조금씩 착취(?)당해 가고 있었다.
“제라르!”
“예!”
고진천이 병사들의 숲을 헤치고 걸어 나오며 제라르를 부르자 병사들과 어울리던 제라르가 대답을 하며 달려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보고 선단장이 같이 따라 나와 있었다.
“장 선단장도 있군. 자, 한 잔씩 더 받아라.”
“황공하옵니다.”
“저도.”
보고가 잔을 내밀며 황송하다는 듯이 진천이 주는 술을 받고, 그 옆의 제라르도 약간 건방진 어법을 구사하며 술잔을 내밀었다. 제라르는 평소에 통역 팔찌를 거의 사용을 안 해도 될 정도로 단어를 습득했지만, 약간의 언어적 미숙함을 무기로 은근히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진천은 내색 하지 않고 술을 따라준 뒤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두 사람에게 당부 하겠다.”
“예.”
진천이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자 서로 동시에 입을 맞추듯 대답했다. 진천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지만 말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
“한 명의 병사도 죽지 않도록. 위험하면 몸을 피해라. 지금은 나라의 사정 때문에 이렇게 보내지만, 이것이 너희들의 할 일의 전부는 아니다.”
진천의 당부의 말에 두 사람은 취기를 순간에 날려 버렸다.
“장 선단장. 제라르.”
“예, 열제 폐하.”
“예.”
보고와 제라르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부름에 응하자 진천은 그들의 잔에 주먹을 가져갔다.
똑.
“헙!”
진천의 쥐여진 주먹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보고의 잔속으로 들어갔다. 힘을 주어 피를 짜낸 것이다. 보고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이것은 제라르도 마찬 가지였다. 진천의 주먹이 제라르의 잔으로 옮겨가 같은 행동을 했다.
“비릿한 한 방울의 피지만 난 너희들과 같이한다. 내가 가우리이며 너희가 가우리이다. 저기 병사들 하나하나가 가우리이다. 명심해라. 우리들의 제국이 주는 이름을.”
“예!”
“명심해라. 너희들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돌아오는 날 부여해 줄 것이니.”
“예!”
“명심해라. 너희가 가는 길은 단순한 해적질이 아님을.”
둘의 뇌리에 틀어박히는 진천의 음성.
제왕의 당부.
잔속에 퍼지는 제왕의 피는 그것이 진심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잔속의 술로 퍼져나가는 핏물처럼, 그들의 마음에도 가우리가 아로 새겨지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고진천은 병사들을 다시 한 번 눈에 새기며 서 있었다.
떠나야 할 병사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안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춤과 노래는 내일의 근심을 날려 버리고 있었다.
“훗.”
마음 한 쪽이 든든해짐을 느낀 진천이 연휘가람과 을지부루와 대무덕을 데리고 자리를 일어섰다.
“헛! 맥주 좀 더 드시지요!”
얼굴이 벌게진 갈링 스톤이 자리를 뜨려는 진천을 붙잡았다. 하지만 진천은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내저었다.
“되었다. 남은 맥주는 너희를 위해 준비한 것. 모두 먹어도 상관없으니 그동안의 고생을 이번 기회에 모두 푼다 생각 하도록.”
“감사합니다!”
감격한 듯 외쳐 부르는 갈링 스톤을 뒤로 하고 그들은 열제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천은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몇 개의 병을 꺼냈다.
“그건?”
“엘븐 퀸이라는 술이라더군.”
“오오오!”
오는 도중에 합류한 리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두 명이 먹다가 세 명이 죽어도 모른다는 술 중의 술이었다. 그리고 이 술은 엘프 중의 엘프인 하이 엘프만이 담근다는 명주이니 리셀의 입에서 탄성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드워프들은 자신들을 위해 맥주를 포기해 준 진천을 칭송하였고, 이들은 하이디아를 통해 얻어낸 ‘엘븐 퀸’이라는 명주를 음미했다. 이렇게 출정 전날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 * *
“…….”
푸른 하늘아래에 일렁이는 배의 선수에 올라선 제라르는 눈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의 움직임이 좀 지나치다 싶었지만 제라르의 신형은 마스터답게 몸의 균형을 잘 잡아가고 있었다.
“거참…….”
배의 난간 쪽으로 걸어간 제라르가 혀를 찼다. 배의 아래를 바라본 제라르의 눈동자 속에는 푸르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닷물이 아닌 푸르딩딩하고 더럽게 생긴 오크들이 배를 옮기고 있었다.
“뀌이이이익!”
“므우우우우우!”
레간쟈 산맥을 진동 시키는 오크와 미노타우르스의 기성은 공포라는 본능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쪽 끌어!”
“예!”
“므우우우우!”
그러나 그 속에 펼쳐진 광경은 어처구니없다 할 정도였다. 병사들이 미노타우르스의 코에 걸린 코뚜레를 이용해서 끌어가고 있었으며, 한쪽에선 쳐지는 오크에게 몽둥이찜질을 동원해가며 속도를 맞추었다.
“쩝,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이런 생각을 염두에도 안 두었을 건데. 거참, 생각의 차이인걸까…….”
제라르의 혼잣말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얼떨떨했다. 처음 보는 외모도 외모였지만 경악할 실력의 군사들, 드워프조차 바보 취급하는 인간 대장장이에, 상식을 깨는 말과 활……. 그보다도 상식을 깨는 제왕의 모습이었다.
물론 고진천이 평민 출신이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황족이라고 했다. 그의 모습, 행동 하나 하나가 대충이며 또한 체통을 잃어버리는 듯한 일들을 해도, 또한 그 모습이 더욱 자연스러웠다.
출정 전날에 보여준 파격과 핏물이 담긴 잔.
전장에 나가는 장수를 위해 보검 따위나 하사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그 어떤 황제나 왕 보다도 믿음이 갔다. 병사의 목숨을 숫자놀이 하듯 다루는 그 어떤 장수와도 달랐다. 굳이 자신이 원하면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진천이 더욱 인간다웠다.
제라르는 진천의 모습을 통해서 제왕의 모습은 일부러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천이라는 사내는 분명 어떤 부분에선 제왕치고는 쪼잔 하고 사람을 부려먹기도 했지만, 일을 행할 때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행하는 사람이었다.
제라르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푸른 바람을 한껏 머금으며 외쳤다.
“진군 속도를 올려라!”
“추웅!”
“부대 속보로오~!”
제라르의 명령에 배는 육지 위를 나아갔다. 물론 가축화된 오크와 미노타우르스의 비명 아닌 비명이 울려 퍼지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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