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40
13화 진천 가르침을 내리다
날렵한 다리가 미트 위로 날아가 박힌다.
뻐억!
가느다랗게 보이지만 오밀조밀한 근육은 탄력이 있었다. 미트로 연신 틀어박히는 그녀의 발차기는 마치 채찍과 같이 날아들었다.
송가은은 발차기를 하면서 미트를 붙잡고 있는 사내를 흘깃 바라보았다. 어설피 잡는 듯했는데 흔들림이 없다.
그 사내의 눈빛이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듯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발차기 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살피는 듯했다. 하지만 뭔가 마뜩잖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한가요?”
가은은 나름 깔끔한 발차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의 표정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질문에 고진천은 고개를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이걸 왜 하는 거지?”
“그야 연습하기 위해서지요.”
“이렇게 해서는 더는 늘 것 같지 않군.”
진천의 말에 가은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 그의 몸을 봤을 때 뭔가 운동으로 상당히 다져진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단지 트레이닝으로 만든 근육과 무술 등으로 다져진 근육은 그 모양새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가은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늘 수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에 진천은 들고 있던 미트를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차보도록.”
“네?”
“아까 그 발길질. 해보란 말이다.”
“…….”
미트를 던지고 맨몸으로 그녀의 발길질을 받겠다는 의미였다. 진천의 말에 가은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나름 운동 좀 했다고 자부하는 그녀의 발길질을 맨몸으로 대하겠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갑니다.”
가은은 이를 악물고 발차기를 날렸다.
쉬익! 투웅!
“엇!”
그녀의 발차기는 매서운 기세와는 달리 허무하게 튕겨 나왔다.
진천은 제자리에서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서 있는 듯했음에도 약간의 동작만으로 그녀의 발차기를 퉁겨낸 것이다.
“다시.”
무덤덤한 음성이 들려오자 가은이 다시 발길질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투웅!
이번에는 차고도 오히려 균형이 흐트러졌다. 당황한 그녀에게 진천이 다시 말했다.
“계속.”
그의 말에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차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로우킥부터 시작해서 그가 틈을 보이는 모든 곳에 발차기를 연신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진천은 제자리에 있었음에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연신 발길질을 하던 그녀가 먼저 지쳐 떨어져 나갔다.
“허억! 허억!”
허리를 숙이며 숨을 골랐다.
가쁜 숨이 연신 토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진천이 입을 열었다.
“익숙하지 않군.”
“허억! 헉, 뭐, 뭐가 익숙지 않다는 말이에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땀방울이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사람을 치는 것.”
“네?”
가은이 반문하자 진천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누군가를 제압하는 것이 목적인데 여태 저런 것만 찬 모양이야.”
진천이 턱 끝으로 바닥에 놓인 미트를 가리켰다.
“그야…….”
예전에 선수로 활동할 때에야 자주 스파링을 했었지만 이제 선수가 아닌 이상 스파링을 자주 할 기회가 적었다.
또 하더라도 보호 장구를 다 차고 하는 만큼 익숙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제야 진천이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치는 방법을 배우려면 사람을 치면서 배워야지. 저런 가죽 부대는 움직이지 않지만 사람은 움직이니까. 저런 것을 치기 위해 무예를 익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 하하…….”
그녀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요즘 누가 대련을 하더라도 사람을 상대로 자주 할 수 있겠는가.
약간 토라진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잘 치는데요. 보여주셔야…….”
후와악!
순간 눈앞에 커다란 주먹이 와 있었다. 이어 머릿결이 좌우로 흩날렸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어…….”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상태를 인지했다.
뭔지 모르지만 뭔가 싸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하며 그녀의 몸의 제어를 풀어버린 것이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와 흠뻑 적셨다.
“어딜 어떻게 쳐서 제압하느냐에 대한 고민과 훈련이 없으면 의미 없는 몸부림일 뿐. 이런 것 역시 사람을 직접 두들겨 가면서 익혀야 한다. 저런 것은 처음에 익힐 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무의미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되지.”
“……예.”
가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진천이 다시 말했다.
“발길질, 주먹질, 그것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목적을 잃은 수련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진천이 다시 말했다.
“그럼 다시 차보도록.”
“예!”
육의찬 감독과 이야기를 마친 강찬성 피디가 사무실을 나섰다.
“여하간 그 부분은 육 감독이 잘 알아서 하겠지.”
“하핫! 믿고 맡기십시오.”
그때 그들의 귓가에 뭔가 가죽 북을 연신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쩌억! 쩍!
“이건 무슨 소리지?”
강 피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가 유난히 찰진 게 익숙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의찬도 마찬가지였다.
미트 소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소리에 이끌려 이 층 난간에 서서 내려다보았다.
“송 작가? 허어…….”
송가은이 연신 발차기를 하고 있었고, 한 사내가 그 발차기를 몸으로 받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패는 줄 알 정도였다. 그 주변으로 연습을 하던 서울 액션 스쿨 소속 배우들과 판도라의 일행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거긴 근육이다. 두들겨 봐야 답이 없어.”
“급소를 쳐라. 그렇게 차서 상대가 죽을 리가 없잖은가.”
간간히 울려오는 사내의 음성에 강 피디가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왜 죽여?”
“왜 비어 있는 낭심은 차지 않는 건가. 그곳이야말로 제대로 차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위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은의 발이 낭심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물론 이것은 손으로 막았다.
“정직해. 기본적으로 몸은 위험한 급소를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어 있지. 차려면 상대가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차야지.”
계속해서 가르침이 흘러나왔다.
강 피디가 자세히 보니 몸을 마치 샌드백처럼 대주는 이의 얼굴은 평안하기 그지없는 데 반해, 반대로 공격을 하는 가은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온몸에 땀이 번들거리고 있어 멀리서 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올 정도였다.
강 피디가 시선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누구야 저 친구?”
“아, 저 그…… 저기 판도라와 같은 회사 소속입니다.”
“그래? 난 육 감독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요즘 액션 추세가 과장된 것보다는 실전처럼 간결하고 파괴력 있는 쪽으로 흐르잖아.”
“예, 그렇죠.”
“그래서 영입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그…… 아마 이번 뮤직비디오 때문에 판도라를 트레이닝하기 위해 받아들인 사람일 겁니다.”
물론 아니다. 그러나 강 피디가 호감을 가진 이상 그렇게 설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둘러말했다.
“그래? 대표가 누군데?”
“전창걸 대표라고 새로 새운 기획사입니다. 퍼스트 엔터라고…….”
“전창걸이? 혹시 이전에 NS엔터에 실장으로 있던?”
“예, 독립했지요.”
그 말에 강 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애? 보통 뮤직비디오를 찍더라도 대충 대역 쓰거나 동작만 만들어 쓰는데 그 친구 마인드가 좋은가 봐? 내가 봐도 대충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인데?”
“아, 예. 사실 저기 마루 박살 낸 것도 저 사람이 해놓은 겁니다. 워낙에 실전파라 마룻바닥이 버티질 못한 거지요.”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까 박살 난 바닥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의찬이다.
“히야? 이건 뭐, 기인열전에 나가야 하는 사람 아니야? 그런데 육 감독도 잘 아는 사람인가 봐?”
“아, 하하. 예, 뭐…….”
“역시 이래서 서울 액션 스쿨이 마음에 들어. 알아서 트렌드를 앞서 나가잖아. 사실 이번 우리 사극도 이전과는 달리 좀 화려하다기보단 처절하고 실감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데…….”
“감사합니다.”
그때 강 피디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오늘 알고 온 건가?”
“예?”
“쟤들.”
강 피디가 히죽 웃으며 판도라 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아, 아니 그건…….”
그러자 의찬이 고개를 돌리며 아니라고 하려 했지만, 강 피디의 말이 더 빨랐다.
“괜찮아. 그렇다고 따라붙으며 로비하는 게 아니잖아. 뭐, 저런 친구 데려다 놓고 연습 시키는 거 보면 나름 기회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인 것 같고.”
“하하하! 그, 그렇지요!”
의찬은 오지 말라고 한 게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강 피디의 착각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기왕 도움받은 거 전창걸 대표에게 진천과 끈을 계속 잡아놓으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친구 포스가 장난 아닌데? 나이는 어떻게 되나? 한 서른 후반으로 보이긴 하는데.”
“그게, 저보다 많습니다.”
“그래? 동안이네? 그런데 다른 것 좀 볼 수 있을까?”
“어떤…….”
“뭐, 사극이니 액션 같은 것 좀 보고 싶어서 말이야. 검술이라든지 그런 거. 지금 가르치는 거 보니 허투루 하는 것 같진 않은데 기왕이면 선생 실력을 좀 보면 더 좋을 거 같아서.”
“그…… 알겠습니다.”
왠지 이게 판도라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자신 소속 배우는 아니었지만 전 대표와의 관계상 도울 수 있는 건 돕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려울 때 자신의 집까지 팔아서 도움을 줬던 게 전 대표였다.
“그럼 일단 준비시켜 보겠습니다.”
의찬의 이야기를 들은 판도라 일행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네에?”
“일단 너희가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기회라고 본다.”
“하지만…….”
세인과 제이 그리고 레이니의 시선이 일제히 진천을 향해 돌아갔다. 진천은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좀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의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뭘 해주면 되는 건데.”
“일단 강 피디님께는 이 친구들을 가르치는 분이라고 해놨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
“예……. 그런데 강 피디님이 병기술을 좀 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러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순간 진천의 표정이 약간 불편하게 변했다.
자세히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쪽 사람들이야 일상다반사지만 말이다.
“밥도 얻어먹고 했으니 해주지.”
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쉽게 나왔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잘 부탁드려요!”
세인과 레이니 그리고 제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쉬운 것은 그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것을 다룰 줄 아십니까?”
“손에 잡히는 것.”
“그, 그렇습니까? 그럼 일단 우리 애들하고 가볍게 좀 해보시지요. 문제는 합을 좀 맞춰야 하는데…….”
“합을 맞춘다?”
의찬의 말에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의찬이 대답했다.
“일종의 약속 대련 같은 건데. 다치는 것도 방지하고 또…….”
진천이 의찬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귀찮군. 그냥 알아서 덤비라고 해.”
“그, 그러면 부상이…….”
“살살 하지.”
의찬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걱정의 대상은 자신들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범상치 않음을 말이다.
진천이 환두대도를 가지고 가려 하자 의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참 그거 날 안 잡힌 거 맞지요?”
왠지 불안했다.
“당연히.”
진천의 대답에 의찬의 얼굴이 펴지려 했다. 하지만 곧 구겨져 버렸다.
“잘 벼려놓았지.”
“…….”
역시 위험한 인간이었다. 왠지 하지 말아야 할 부탁을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1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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