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42
15화 후폭풍
판도라 멤버 세 명은 할 말을 잊은 듯 고진천을 바라보았다.
액션에 문외한인 그녀들이 보기에도 진천의 움직임은 정말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
“와!”
“하아…….”
세인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고 레이니는 입을 떡 벌린 채 탄성을 흘렸다. 제이는 뭘 생각하는지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레이니가 눈을 흘겼다.
“얼굴이 왜 빨개?”
레이니의 질문에 제이가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난 거친 남자를 좋아하잖니.”
“킥!”
제이의 직설적인 대답에 레이니가 장난스런 웃음을 흘렸다. 그때까지도 세인은 멍하니 진천을 바라볼 뿐이었다.
“세인 언니?”
“응? 아! 왜?”
레이니가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모습에 레이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언니도 거친 남자가 좋은 거야?”
“…….”
“어머? 세인이도 그러니?”
제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세인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짠가 봐! 얼굴이 빨개!”
“야!”
세인은 결국 벌게진 얼굴로 레이니에게 소리를 쳤다. 그녀의 과격한 반응에 오히려 장난을 걸던 레이니는 물론, 제이까지 기묘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그치?”
“잠깐 저기.”
순간 세인이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세인을 놀리던 레이니와 제이가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다. 육의찬 감독과 강찬성 피디가 그녀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판도라라고 했지?”
“네! 안녕하세요!”
강 피디의 말에 셋이 동시에 인사를 하며 대답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개성도 있고. 요즘은 다들 예쁜데 개성이 없는 편이거든.”
“감사합니다.”
세인이 허리를 숙이며 다시 인사를 했다. 그때 강 피디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 친구 퍼스트 엔터 소속이라지?”
“아, 예.”
이미 진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기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기에 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좀 있지만, 솔직히 탐이 나는군.”
강 피디가 진천을 바라보며 솔직한 마음을 내비췄다. 그러자 의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런 의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안 그런가? 저 정도면 확실한 한 방감이야. 신선하면서도 딱 포스도 있고 말이지.”
“아, 예.”
“연기력이 문젠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엉뚱하게 진천이 주인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 전창걸 대표에게 나 좀 보자고 전해. 그리고…… 뭐, 하는 김에 이 친구들도 함께 테스트해 보지.”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강 피디는 판도라를 보며 그녀들에게도 함께 보자는 말을 했다. 어차피 목적은 테스트라도 제대로 받자였기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말의 뉘앙스가 마치 진천이 아니면 판도라도 볼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분명 지금 강 피디는 진천에게 강렬한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의찬이 보기에도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흉내만 낸 그런 마초가 아니라 정말 야성이 느껴지는 진짜배기 말이다.
일단 육체 자체도 액션이라는 특성에 맞는 완벽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분위기 역시 남달랐다.
흔히 말하는 카리스마, 그게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진천은 그냥 도와준 이에 불과했다. 만약 젊은 사람이라면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으려 하겠지만, 진천이라는 이는 솔직히 감이 안 잡혔다.
아무리 봐도 부족함이라든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긴 했지만, 몸에 배인 행동거지를 보면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한 사람 같았다.
이건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봐왔던 의찬의 감이었다.
“여하간 시간 좀 빨리 잡아보자고.”
“아,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어이, 송 작가! 그만 정신 차리고 가자고!”
강 피디가 외치자 그때까지도 진천을 멍하게 바라보던 송가은이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예!”
“가자고!”
“아, 예! 샤워 좀 하고 나올게요!”
“저 친구 아주 넋이 나갔군.”
강 피디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의찬을 바라보았다.
“그럼 대신 연락 좀 부탁하자고. 그리고 아까 사무실에서 논의한 거 그대로 가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가은과 강 피디가 액션스쿨을 떠났다. 멀어져 가는 차를 본 의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참…….”
뒤돌아보니 판도라 멤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감독님, 잘된 건가요?”
레이니가 잘 이해가 안 가는 듯 묻자 의찬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다. 일단 원하던 부분은 얻었는데…….”
말끝을 흐린 의찬이 체육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끝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진천이 있었다.
“……아무래도 창걸 형님이 저 양반을 잡아야 할 것 같다.”
* * *
“야! 의찬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전창걸 대표가 밝은 얼굴로 육의찬 감독을 얼싸안았다.
“고맙다!”
물론 단순 카메라 테스트지만 오디션이 아니라 직접 피디가 언급했다는 것은 꽤 큰 메리트다.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의찬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형님, 일단 좀 놓고 이야기합시다.”
들뜬 자신과는 달리 약간 신중한 감이 있는 의찬의 말에 전 대표는 뭔가 있음을 직감하고 떨어졌다.
“뭐, 무리한 요구라도 있는 거냐? 강 피디는 그런 사람 아니잖냐.”
살짝 굳어진 표정의 전 대표에게 의찬이 피식 웃었다.
지금 전 대표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성적인 접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뭐냐? 설마…….”
살짝 풀어지려던 전 대표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그러고는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공사 건은 미안했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내가 동생 놈에게 한마디 했으니까…….”
“그건 다른 문제고요.”
“응?”
그것도 아니라고 하자 전 대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찬이 말했다.
“고진천.”
“혹시 그 양반이 뭔가 실수라도…….”
왠지 불안하긴 했지만, 나름 나쁜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나오자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 사람 누구요?”
“그, 글쎄.”
전 대표의 자신 없는 대답에 의찬이 한숨을 쉬었다.
“같이 좀 보잡디다.”
“응?”
의찬의 말에 전 대표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표정이었다.
“애들 보는 김에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보는 김에 애들도 테스트하는 거요.”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전 대표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뭐!”
“이제 이해가 되쇼?”
“이, 이런…… 뭐가 어떻게 된 거냐?”
“후우, 그럴 것 같아서 준비했소.”
예상대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전 대표를 본 의찬이 한숨을 쉬며 리모컨을 들어 올렸다. 텔레비전이 켜지면서 영상이 곧 플레이되었다. 그것은 아까 진천과 서울 액션 스쿨의 배우들의 동작을 담아놓은 동영상이었다.
영상을 담는 것은 이곳에서는 일상이었다. 보여지는 액션이다 보니 모니터링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영상이 뜨고 중심에 선 고진천의 모습이 들어왔다.
꿀꺽.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 대표의 목에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왔다. 화면 속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중압감과 긴장감 때문이었다.
잠시 후, 영상이 멈추자 의찬이 입을 열었다.
“이거 강 피디도 하나 카피해 갔습니다.”
“…….”
의찬의 말에 영상이 멈춘 텔레비전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던 전 대표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전 대표의 반응을 본 의찬이 쓴웃음을 지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들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의찬이 다시 말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래.”
“처음에 형님네 소속이라 한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 때문에 강 피디가 호의를 보인 거요.”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인 전 대표가 다시 멈춰 있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런 전 대표에게 의찬이 물었다.
“어쩔 거요?”
의찬의 질문에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전 대표가 입술을 떼었다.
“잡아야지.”
“아저씨 대박!”
레이니가 고진천에게 따라붙으며 쫑알거렸다. 그러자 진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박이 큰 게 무슨 의미냐.”
“아저씨 그건 재미없어요.”
“…….”
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진천에게 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힘드시지는 않으셨어요?”
“힘들었다.”
그의 대답에 세인은 물론 레이니와 제이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살 떨리는 기분이었는데 당사자는 어땠겠는가. 이어서 진천이 대답을 이었다.
“대충 치면 죽을 거 같아서 힘 조절 하기가 힘들더군.”
“…….”
진천의 대답에 셋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레이니가 콧잔등을 구기며 말했다.
“에에이, 아저씨 구라짱이다.”
순간 진천의 미간에 두 줄기 고랑이 깊게 파였다.
“날 그런 놈이랑 비교하지 마라.”
“엥? 무슨 비교를 했다고…….”
“있다, 그런 놈.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
순간 진천의 뇌리로 계웅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까지 와서 되도 않는 짓을 하게 되었는가.
물론 무를 바탕으로 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호기심이 들었기도 했지만 말이다.
병기의 형태도 대충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쪽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형태적 특성은 달라도 사람 잡는 것들의 모양은 거기서 거기였다.
사실 진천도 대충 눈치를 챘다.
뭔지는 모르지만 마치 국중대회인 동맹 같은 제천 행사 때 하던 가무극과 같은 게 있고, 이 집단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아저씨 나이 많죠?”
“……음.”
“몇 살이에요?”
레이니의 질문에 진천이 세인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저만한 부인이 있다.”
“엥? 아저씨, 결혼했어요?”
“그래, 지금은 없지만…….”
그렇게 대답한 진천이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심이 깃든 표정이었다.
이곳과 다른 세상에 있는 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진천을 두고 레이니가 속삭였다.
‘이 아저씨 돌싱인가 봐.’
“…….”
물론 그게 안 들릴 리는 없다. 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돌싱이 뭐지?’
찌푸려진 인상은 펴질 줄 몰랐다.
(1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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