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44
17화 모르는 게 때로는 약이다
옥상 위로 올라온 진천은 조금 전 엘리베이터라는 기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재미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담당은 웅삼이를 시키면 되겠군.”
진천은 되돌아가면 웅삼이를 이용해서 이와 유사한 기물을 운용할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그것을 끌어올렸다 내렸다 시키는 것이다.
벌도 주고 일석이조의 효과다.
옥상은 탁 트인 게 시야가 꽤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공기가 메케한 것이 숨을 쉴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옥탑방이란 곳도 나쁘지는 않았다.
이승배의 인도로 들어선 진천은 이리저리 고개를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세 명이 기거할 만한 공간은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짐을 다 풀지 않았는지 포장된 짐들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천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이것, 종이인가?”
“예? 박스요? 예, 왜요?”
“…….”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면서 종이로 보이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많은 종류였다.
이토록 많은 종류의 종이가 있고 또 사람들이 쉽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천으로 하여금 또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
진천은 승배를 보았다. 아무리 봐도 궁상맞아 보이는 게 잘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럼에도 물건을 싸는 데 종이를 쓴다는 것은 가격이 그리 높지 않다는 의미였다.
가격이 높지 않다는 것은 많이 생산되고 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벽에도 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거기에 오돌토돌한 무늬까지…….
꽤나 상업이 발전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또 한 가지 진천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아 그거요? 전에 전지훈련 갔을 때 찍은 건데 풍경 죽이지요?”
“…….”
“그린 게 아닌가?”
진천의 말에 승배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승배는 진천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다른 사람은 미쳤겠거니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만약 자신이 아까 진천의 실력을 보지 않았다면 그도 진천을 미친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미쳤다고 하기에는 눈빛이 너무 온전하다.
어딘가 강박증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망상에 사는 모습도 아니었다. 대신 지금까지 오면서 의외로 조심성이 많았고, 또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설마!’
순간 승배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돌았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간첩이라니. 요즘 북한에도 있을 건 다 있다는데.’
물론 풍족하지 않아 일부에게만 나누어지고 있고 상당수는 부족한 물자에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첩쯤 되는 이를 보내는데 이런 교육을 안 하고 보냈을 리는 없었다.
그때 다시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탈북자?’
“뭐가 궁금한가.”
“아, 아닙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천에게 승배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아니라고 봤다. 탈북 할 정도로 못 먹고 산 것 같지는 않았다. 충분한 영양의 공급 없이 그런 신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잘 먹고 잘산 이가 탈북을 했을 리도 없었고, 또 그렇다면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이렇게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손을 좀 씻어야겠군.”
“아, 저기가 화장실입니다.”
“화장실이라…….”
승배가 진천에게 화장실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화장실에는 양변기와 서서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었다.
“일 보도록.”
“아, 예.”
진천을 화장실로 안내해 준 승배는 짐을 풀다가 뭔가가 퍼뜩 생각났다.
“사진도 모르고 엘리베이터도 모르는 것 같던데…….”
순간 옛날에 양변기를 처음 본 사람들이 그게 우물인 줄 알고 물을 떠다 마셨다느니 하는 농담이 기억났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그게 농담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승배는 얼른 화장실로 다시 달려갔다.
“저, 물은…….”
“뭔가?”
“아, 아하하 아닙니다. 괜한 생각을 했나 봅니다. 혹시나 저기다가 손을 씻기라도 했을까 봐서요. 노, 농담입니다.”
진천은 세면대에 정상적으로 손을 씻고 있었다. 승배는 어색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진천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걱정 말도록.”
“아, 예.”
마음을 쓸어 담은 승배가 다시 되돌아갔다.
승배가 되돌아가자 진천이 뭔가 골몰히 생각했다.
“내가 질문이 많았군. 조용히 지내려면 최대한 이곳의 생활에 익숙한 듯 해야겠어.”
진천이 생각하기에 이곳은 생소해도 너무 생소했다.
모든 문물이 그가 있던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모자람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이곳의 무력 수준을 파악하기 전에는 아무래도 조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박 영감이 안절부절못하며 화장실로 들어왔다.
“아이쿠, 물을 너무 마셨더니.”
쪼르르르.
터엉!
“어, 어이쿠!”
짐을 풀던 승배는 갑자기 화장실에서 울려온 둔탁한 소리와 비명에 놀라 헐레벌떡 달려갔다.
“뭐, 뭡니까?”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자 진천이 박 영감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박 영감은 진천의 억센 손아귀에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사색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볼일 보던 중이었던 탓에 바지와 속옷까지 무릎에 걸쳐 있던 것이다.
승배는 서슬 퍼런 표정을 짓고 있는 진천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봐라.”
진천이 고갯짓을 하며 변기를 가리켰다.
“예?”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한다면…….
“뚜껑을 올리지 않아서…….”
소변기 뚜껑을 올리지 않고 볼일을 본 듯했다. 분명 눈살을 찌푸릴만한 일이지만 진천의 행동은 과했다.
“이놈, 우물에다가 일을 보더군.”
“…….”
진천이 자신의 양 손바닥을 보며 부르르 떨었다. 이는 악물고 있었고, 두 눈은 부릅떠졌다. 거기에 두 눈썹은 하늘을 향해 치켜 올려져 있어 마치 악귀와 같은 형상이었다.
“그, 그래도 새 물이니 많이 더럽진 않을 겁니다. 나름 정수된 물 일거거든요.”
“내가 변기 물에 손을…….”
“그…….”
“우물이 아니라 변기라니…….”
“저기…….”
까드득.
승배는 이 가는 소리가 이토록 두렵고 소름끼치는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 박 영감이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승배가 박 영감을 돌아보니 그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위로의 말 따윈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승배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며 한마디 던졌다.
“그, 그래도 드시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하하…….”
애써 웃음을 흘리며 물러서는 승배였다.
그들이 나가고 변기를 바라본 진천이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으음.”
여전히 불쾌한 시선, 하지만 조심스럽게 승배가 있던 화장실 입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군.”
아마 승배가 마지막에 한 말 때문인 것 같았다. 진천이 다시 중얼거렸다.
“이것을 마신 것은 들키지 않았으니…….”
진천은 왠지 속이 메슥거리는지 인상을 살짝 쓰곤 다시 손을 씻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물을 틀어서 말이다.
* * *
전창걸 대표는 후회하고 있었다.
“후우.”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계산서가 들려 있었다. 일층에 있는 기사 식당에 한 달 단위로 계산하기로 하고 식비를 계산하는데 마침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문제는 어제저녁과 오늘 아침 식비의 일부분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칠 인분을 먹지.”
제육덮밥 구 인분. 불고기 덮밥 십 인분. 이 두 내역은 바로 위층의 박 영감과 진천 그리고 승배의 식사 내용이었다.
물론 따로 시킨 공깃밥 네다섯 개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계산서가 잘못된 듯하여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둘은 정상적으로 먹고 진천이 나머질 다 먹었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해맑게 웃으며.
물론 전 대표는 아주머니의 미소를 받으며 함께 웃을 수 없었다.
“한 끼에 이 정도면 대체…….”
전 대표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저 누일 거처와 식사만 있으면 될 뿐.”
진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밥값으로 망하는 최초의 기획사가 될지도 몰라.”
전 대표는 이를 악물었다. 먹인 만큼 뽑아내리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돌렸다.
* * *
“어, 송 작가 왔네?”
“아, 예.”
강찬성 피디가 웃으며 송가은 작가를 맞이했다.
“오늘따라 더 예쁜 거 같은데.”
“아, 아하하하!”
그의 인사말에 가은은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신경 쓰기는 했다. 물론 유난히 꾸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평소에 워낙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카메라 테스트잖아요.”
“그저 조연 테스트하는데 뭘 직접 와.”
강 피디가 슬쩍 핀잔을 주자 가은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는 감독님은요. 살짝 들뜨셨는데요?”
“티 나?”
“예.”
“푸하하!”
가은의 말에 강 피디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던 촬영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가 오는데 그래? 카메라도 이렇게나 많이 동원하고 말이야.”
일반적인 카메라 테스트와는 달랐다. 동원된 카메라 수도 한두 대가 아니다.
당연히 촬영 감독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신인들요.”
“신인?”
신인이 오는데 저런 들뜬 표정이라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요즘 뜨는 애들이야?”
계속해서 질문을 해오는 촬영 감독에게 조연출을 맡은 이은찬 피디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아닌데, 말로 설명은 못하겠네요.”
이 피디의 대답에 촬영 감독이 그를 가자미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 피디는 아나 봐.”
“안다기보다는…….”
이 피디가 말끝을 흐렸다. 왠지 여운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봤지요.”
“뭘? 신인?”
“영상이요.”
“젠장 사람 궁금하게 만들고…….”
그의 투덜거림에 이 피디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영상을 떠올렸다.
만약 강 피디가 그 영상의 출처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실제 무인들이 결투를 벌이는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일반 캠코더로도 느껴지는 공포와 전율.
그리고 압도감.
그것을 본 이상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보시면 압니다.”
“뭐, 보면 알겠지. 쯧, 기왕이면 예쁜 애들이면 좋은데.”
“아, 그러고 보니 걸그룹도 온다네요.”
“오! 그래?”
그제야 희희낙락한 촬영 감독이었다.
그렇게 테스트를 위해 사람들이 분주한 가운데 방송국으로 퍼스트 엔터의 차량이 천천히 진입해 들어왔다.
(18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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