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0
23화 육의찬 감독의 투지
“…….”
의찬은 시체처럼 늘어져 벽면에 기대어 있는 소속 액션 배우들을 보며 심각한 고민을 했다. 아니, 자책을 했다.
‘내가 미쳤지.’
그러고 나선 다시 고민을 이어갔다.
‘빠질까?’
왠지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면에 늘어져 있는 소속 배우들은 멍한 표정으로 한마디로 혼을 빼놓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때 한 명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
흐리멍덩하던 동공에 빛이 돌아오며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당했던 승배였다.
그때 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의찬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승배에게로…….
“가, 감독님!”
의찬의 귓가로 소속 배우의 애잔한 외침이 흘러들어 왔지만, 그는 한 귀로 흘리며 승배에게 다가갔다.
원래 이번 차례는 의찬이었던 것이다.
“괜찮냐!”
승배가 의찬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감독님도 죽으셨군요.”
마치 해탈이라도 한 듯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에 의찬은 등골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배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내세라는 게 있는가 봅니다. 이렇게 또다시 감독님을 만나다니.”
“정신 차려라, 너 살아 있다.”
“네?”
“대체 다들 뭔 일이기에 정신을 놓은 거야? 겨드랑이나 옆구리에 칼 지나갔다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사, 산 겁니까?”
“그래, 일단은…….”
승배의 질문에 의찬은 고개를 돌려 아직 넋을 놓고 있는 소속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그를 보며 질문을 했다.
“대체 뭐냐. 물론 진검이라는 게…… 너?”
의찬은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승배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입에 걸린 미소와는 달리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게 더 섬뜩했다.
질문을 하다만 의찬에게 승배가 웃음 섞인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말 아세요?”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 상황에서 이 말은 곧 그 찰나의 시간 속에서 지나온 세월을 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 안다만…….”
“정말 그렇더군요.”
“…….”
“살아 있다는 게 참 소중하네요.”
“…….”
그 이야기를 듣는 의찬은 섬뜩함과 동시에 여러 개의 눈길을 동시에 느꼈다.
“깨, 깨어났냐?”
승배의 옆으로 늘어져 있던 소속 배우들이 일제히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승배의 말을 경청하면서.
공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나도 그거 봤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 역시 난 빠져야…….”
“끄아아아아아아!”
“더헙!”
순간 길고긴 비명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모골 송연한 비명이었다.
의찬이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 대신 나간 액션 배우가 목을 부여잡고 눈알을 까뒤집고 있었다.
그리고 진천의 검은 그의 목 언저리에 놓여 있었다.
털썩.
그가 마치 끈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무너져 내렸다. 의찬은 다시 진천이 만들어낸 지옥행의 대기열을 바라보았다.
“…….”
세인이 커다란 눈을 그렁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만 남은 것이다.
‘미안하다.’
의찬은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건 아니었다. 굳이 해선 안 될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귓가에 고저없는 음성이 날아들었다.
“다음.”
“……그, 그게.”
“안 오면 내가 갈까?”
“일단 다음 순서로…….”
“가, 감독님!”
세인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평소 차분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세인은 예외.”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런 도움이 안 될 테니까.”
“그, 그럼 저도…….”
“불가.”
진천의 단호한 대답에 의찬의 얼굴이 빠르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진천의 음성이 이어졌다.
“필요에 의해서 한다 했을 때 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작된 이상 아무도 마음대로 빠질 수는 없다. 있다면…….”
말끝을 흐린 진천이 대답 대신 환두대도를 길게 늘어뜨렸다.
마치 ‘죽은 다음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의찬은 그때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소속 배우들은 불신 어린 시선을, 그리고 세인은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쯤 되자 의찬도 마음을 새로이 먹었다.
‘나도 도합 이십 단이 넘는다. 액션이라 하지만 이십오 년을 수련한 몸이란 말이지.’
의찬이 굳게 마음을 먹으며 자신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외쳤다.
“날 여물지 않은 정신력을 가진 이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하지.”
진천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의찬이 눈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빨랐고, 거셌으며 가진 능력 이상을 뽑아내었다. 단지 마음가짐 하나를 바꾸었는데 말이다.
‘그래! 결코 그냥 쓰러지지 않는다!’
의찬은 그날 세 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이게 다 강인한 정신력 때문이었다.
“허어억!”
“가, 감독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그, 그만!”
“끝났습니다. 감독님 정신 차리세요.”
의찬은 땀으로 온몸이 젖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탁 내쉬며 말했다.
“사, 살았구나.”
“대단하십니다. 우린 한 번 만에 정신 줄을 놨는데.”
“역시 감독님이십니다.”
다들 앞다투어 칭찬을 했지만 표정은 달랐다.
‘빼더니 잘됐다’ 혹은 ‘꼴좋다’ 내지는 ‘잊지 않을 거예요’ 등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물론 맨 마지막은 세인의 감정을 담은 시선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진천이 활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괜찮군. 이곳에 이리 뛰어난 활이 있을 줄이야.”
시위를 당겨보기도 하고 활대를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여태 봐왔던 다른 활들과도 달랐다. 그러면서도 익숙했다.
마치…….
“맥궁 같군.”
유사했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그보다 나아 보였다. 이곳의 병사들이 이런 것으로 무장했으리라 추측하니 이곳의 군사력이 꽤 높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날이 서지 않은 검이지만 이곳에서 쓰는 검들의 수준 또한 높았다. 주물이면서도 단단한 것이 대량 생산을 하더라도 그 질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단지 무기 하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쓸 만한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이곳의 무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무게감이라든지 그런 부분은 모자람이 있었다. 왠지 실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티가 난다고 할까?
하지만 그것 역시 미묘한 수준이었다.
이곳의 문물의 공통점은 많은 것을 일정한 크기로 다량 뽑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정신을 차린 의찬에게 질문했다.
“이것의 이름이 뭐지?”
“구, 국궁입니다.”
“흐음.”
문득 이놈을 한번 쏘아보고 싶었다.
“화살이 있나?”
“예, 그런데 그건 일반 스포츠용은 아닌데…….”
의찬은 진천의 질문에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보통 일반 동호회원들의 활쏘기용이 아니라 전통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낸 고급품이다.
당연히 시위의 장력이나 그런 부분에서 달랐다.
“쏴보고 싶군.”
진천의 말에 의찬은 고개를 돌려 승배를 바라보았다. 가져다주라는 의미였다.
검을 이 정도로 다루는 이라면 활도 그만큼 잘 다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활은 그 은밀성 때문에라도 아직까지 일부 특수 부대에서 활용하고 있었다.
승배가 사무실에서 화살통을 가져오자 진천이 화살 하나를 빼어 들었다.
“흐음.”
화살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진천이 시위에 걸었다.
“그, 그건 여기서 쏘시면 좀…….”
마치 당장 쏘려는 것처럼 보이자 의찬이 걱정스런 음성을 내뱉었다. 하지만 진천은 못 들은 것처럼 화살을 시위에 걸고 고개를 체육관 옆면에 크게 나 있는 창문 밖으로 돌렸다.
“뭐야? 죽는 연습하나?”
“휙휙하니 뒤지는 척하는 게 그러는가 본데?”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사내들이 키득거리며 말을 나누었다.
“저게 액션이면 나도 하겠다. 흐흐흐!”
“난 싫다. 액션보단 에로가 좋아. 프흐흐흐!”
“나도!”
둘은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어서 찍고 움직이자고.”
“그래.”
한 사내가 다시 카메라를 들어 서울 액션 스쿨 건물로 렌즈를 향했다.
“어?”
“왜? 누가 벗기라도 하디? 크크크!”
“아니겠지…….”
카메라를 들이대던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농지거리를 던지던 사내가 의문스런 눈초리로 물었다.
“뭐가?”
“아니, 이쪽을 본 거 같아서.”
“에이, 한 이백 미터밖에 안 떨어졌다지만, 나뭇가지로 가려져서 보기 힘들지.”
“뭐, 그렇기는 한데.”
“어서 찍고 오늘은 철수하자고. 어서 아까 말한 에로 한 편 찍으러 가야지.”
“프흐흐흐!”
동료의 농담에 사내는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활?”
그때 그의 뷰파인더 창에 아까 잠시 눈이 마주쳤던 것 같은 남자가 활에 화살을 끼워 넣는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이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 어?”
“왜 또?”
하지만 카메라를 든 사내는 대답 대신 ‘어, 어!’ 소리만 연신 뱉어낼 뿐이었다.
“엇!”
“왜?”
그때 짧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란 동료가 묻자 뷰파인더에서 시선을 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쪽을 보고 화살을 쐈는데…….”
씨이이잉! 텅!
순간 두 남자의 몸이 경직되었다.
바르르르!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둘의 시선이 그들의 옆에 있는 나무로 향했다.
“화, 화살?”
“서, 설마 저기서 쏜 거야?”
“에, 에에이 설마.”
사내가 카메라 렌즈를 다시 눈에 붙였다. 그러자 빈 활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간에 점 하나.
“응?”
그 점이 점점 커져왔다.
퍼억!
“크아아악!”
“어헉! 뭐, 뭐야!”
카메라 렌즈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고, 동시에 카메라를 들었던 사내가 뒤로 나뒹굴었다. 동시에 그의 바짓가랑이가 젖어들며 김이 피어올랐다.
“허억!”
“미, 미친 새끼! 화살을 쏜 거야?”
“도, 도망쳐야 해! 보고 쏜 거야!”
쉬이이익! 터엉!
“히에엑!”
두 사내는 패닉에 빠져 동산 아래로 뒹굴듯 미끄러지며 도주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화살에 박살이 난 카메라 한 대와 나무에 깊이 박힌 화살들의 흔적만이 남았다.
(2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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