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1
24화 찜찜한 일
“그, 그렇게 아무 곳에나 쏘면 안 됩니다!”
고진천이 창밖 동산을 향해 연달아 활을 쏘아 보내자 육의찬이 기겁을 하며 만류했다. 인적이 드물긴 하지만 가끔 할머니들이 올라가서 나물을 캐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진천은 서너 대의 화살을 쏘아 보냈던 것이다. 의찬이 만류하러 달려오자 진천은 말없이 그에게 활을 넘기곤 밖으로 나갔다.
“무, 무슨 일이지?”
진천이 밖으로 나가자 의찬과 승배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없었지만 진천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따라가 보죠?”
승배의 말에 의찬이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따라나섰다. 하지만 금방 문 앞을 나섰던 것 같은 진천은 벌써 동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뛰어온 둘은 숨을 거칠게 쉬면서도 뭔가 싶어 따라 올랐다.
“호, 혹시 사냥이라도 하신 건…….”
“동네 동산에 그런 게 어딨냐? 있다면 참새나 비둘긴데.”
승배의 말에 의찬이 핀잔을 주었다.
조금 더 동산을 오르니 진천이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는 모습에 둘이 서둘러 다가갔다.
“이, 이건?”
“카메라?”
진천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렌즈가 관통된 카메라였다. 꽤 비싸 보이는 렌즈였는데 그 가운데를 화살이 관통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둘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사, 사람을 쏜 거야?’
만약 관통된 것이 렌즈가 아니라면 아마 둘은 화살을 부여잡고 피를 철철 흘리며 원통하다는 시선을 보이며 헐떡거리는 사람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사, 사람에게 쏘시면…….”
“잠깐.”
승배가 당황하여 말을 하는 도중 의찬이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왜, 왜요?”
“카메라만 있잖아.”
“예?”
“사람이 없어.”
의찬의 말에 승배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진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도망갔다.”
“도망요?”
“그래.”
진천의 말에 둘은 그가 일부러 이곳을 향해 활을 쏘았음을 알 수 있었다. 목숨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을 맞닥뜨린 사람이 항의하기보단 도망을 갔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물론 난데없이 화살이 날아오면 분명 십중팔구는 도망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리 사진을 찍기 좋은 풍광이 아니었다.
“혹시 이쪽을 찍고 있었습니까?”
순간 진천은 찍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약해 보이는데 이것으로 무엇을 찍는다?’
진천은 카메라를 들고 옆에 나무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봐도 그런 도구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승배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볼 수 있나요?”
승배의 말에 진천은 말없이 카메라를 넘겨주었다.
다행히 화살은 렌즈만 관통했을 뿐 본체까지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렌즈 크기가 긴 덕이었다.
“이건…….”
카메라를 받아 든 승배가 살짝 놀라자 의찬도 덩달아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왜? 뭐 이상하냐?”
“이거 엄청 비싼 건데요?”
“…….”
“풀 프레임에다가 캬! 렌즈도 비싼 거고, 소형차값이네요.”
순간 의찬이 손을 들어 올렸다.
물론 승배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보다 승배가 조금 더 빨랐다. 카메라 뒤의 LCD창을 켠 것이다.
“…….”
화살이 박히기 직전에 셔터를 눌렀는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절로 저려왔다.
승배는 다음 사진을 넘겼다. 그렇게 사진을 넘기기 시작하자 의찬이 손을 천천히 내렸다. 반면에 그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서울 액션 스쿨의 사진이 가득했던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 세인을 집중적으로 찍은 모습이었다.
“사생팬인가?”
승배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의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은데. 우리도 있잖냐.”
사생팬이라면 세인만 찍어야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를 담고 있었고 그중에는 진천의 모습도 찍혀 있었다. 진천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사진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이엔 대륙 역시 영상을 담는 마법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그보다 더 사실감 있게 보여졌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을 담는 행위를 찍는다고 표현한다는 걸 눈치챘다.
“이거 찜찜한데요.”
의찬의 말에 승배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자 진천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냥 맞춰 버릴 걸 그랬군.”
“…….”
왠지 ‘내가 실수한 듯해’라는 느낌의 말에 승배와 의찬은 조금 전 죽음을 경험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등줄기가 시원해졌다. 의찬이 말했다.
“다음에라도 이런 일이 있으면 사람을 맞추시면 안 됩니다.”
“불편한 곳이야.”
“…….”
진천의 중얼거림에 둘은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위험한 남자라는 것을 말이다.
“하여튼 이거 어떤 놈인지 다음에는 꼭 잡아야겠어.”
의찬이 다시 정리를 하고 나서자 승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몰래 살피고 있다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어떠한 의도든 말이다.
사진은 계속 넘어갔다. 역시나 계속해서 서울 액션 스쿨의 사진들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장소가 바뀌었다.
소속사 건물을 나오는 세인과 진천의 모습 등이 나온 것이다.
아주 작정을 하고 찍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또다시 사진의 장소가 바뀌었다.
“헛!”
승배의 동공이 흔들렸다.
마찬가지로 의찬 역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천은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설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들!”
승배가 열을 냈다. 의찬 역시 승배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천이 그들을 대신하듯 말문을 열었다.
“기특하군.”
“그렇죠?”
“허허헛!”
이번 장면은 바닷가에서 몰래 촬영한 듯한 비키니를 입은 여인들의 사진이 잔뜩 있었다. 그렇게 잠시 그들은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끝까지 사진을 넘겨 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진을 다 본 승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물론 진천을 바라보며 말을 꺼낸 것이다.
“이것…….”
카메라를 가리키며 진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저 가져도 돼요?”
“…….”
결국 승배는 카메라를 얻는 대신 의찬으로부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았다.
* * *
“뭐? 활을 맞아? 지금 조선 시대냐!”
“그, 그게 까딱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니까요!”
“차라리 그냥 맞고 개값 받아내지 그랬냐? 앙!”
날아드는 화살에 혼비백산해서 도주를 선택한 사내 둘은 험악한 말을 쏟아내는 장주호 부장 앞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에이씨. 뭐 좀 꼬투리 잡을 만한 것 좀 가져오라니까, 장비나 잊어버리고.”
“지, 지금이라도 찾아올까요?”
“니네가 했다고 광고라도 하게?”
“죄송합니다.”
다시금 죄인마냥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장 부장이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둘 월급에서 깐다.”
“어헉!”
“그, 그거 비싼 건데…….”
“비싸니까 깐다는 거다. 껌값이면 내가 내고 말지.”
“…….”
장 부장의 말에 둘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그렇다 치고 뭐 좀 건진 거 있냐?”
“그다지 꼬투리를 잡을 만한 건 없습니다. 세인이라는 애나 판도라 멤버들은 다들 별다를 게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흉 될 것이 없습니다.”
수하의 말에 장 부장은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말했다.
“걔 누구냐, 색기 넘치는 애. 뭔가 있을 만하지 않아?”
“제이 말입니까?”
“그래, 성형 같은 거든.”
“요즘 성형은 사건 축에도 안 끼잖습니까. 그리고…….”
“그리고?”
수하가 말을 흐리자 장 부장이 뒷말이 궁금한 듯 말했다.
“그리고……. 걔는 아예 성형외과 의원 광고를 찍었습니다. 아주 수술 전후 사진까지 달아놓고요. 정말 잘 빠졌다고 자랑하면서…….”
“……여하간 요즘은.”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만만한 놈들 좀 붙여서 사고 하나 쳐볼까요?”
“때가 어느 땐데.”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지만, 수하들은 다시 강조하며 말했다.
“때가 지나도 그게 직방이잖습니까. 폭력에 얽힌 걸 그룹! 대충 엮어서 경찰에 가면 그걸로 고민 끝입니다. 맞든 때렸든 그 기사만 나오면 신생 걸그룹 입장에선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요?”
연이은 수하들의 말에 장 부장은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어, 나야.”
[예, 형님 오랜만입니다.]“일 좀 하나 하자.”
[누가 돈이라도 들고 뛰었습니까?]“그건 아닌데, 작업 하나만 해라.”
[뭡니까?]“찾아와라. 전화로 할 건 아니다.”
[예, 형님.]전화 통화를 마친 장 부장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나가봐. 그리고 카메라는 봐주마.”
“감사합니다!”
장 부장의 말에 둘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행여라도 생각이 바뀌는 것이 두려운지 서둘러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장 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에이, 사장님께 깨지는 건 아닌지 몰라.”
* * *
육의찬의 연락을 받고 온 전창걸 대표는 카메라 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하고선 사진들을 살폈다. 그의 표정은 자연 어두워졌다.
“뭐 짐작 가는 거 없습니까?”
의찬의 질문에 전 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있을 리가 없지.”
그동안 별 트러블도 없었고, 문제가 될 일도 없었다.
“아니면 뭔가 누구 눈 밖에 난 일이라도…….”
“그런 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좀.”
순간 이전 소속사가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방해를 하려면 벌써 했지 이제 와서 이럴 리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전 회사와는 맞지 않아서 나왔을 뿐이지 나름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었다.
“여하간 좀 살펴보십시오. 아무래도 좀 찜찜하니까요.”
“그래, 알았다. 당분간은 좀 신경 써야겠다.”
“예.”
그때 전 대표가 궁금한 듯 다시 물었다.
“참 이거 어떻게 찾아냈냐? 잡기 어려웠을 건데.”
전 대표의 질문에 의찬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잡은 건 아닙니다.”
“그럼?”
“고진천 그 사람이…….”
“그래? 혹시 폭력에 얽히거나 그런 건 아니지?”
순간 전 대표는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진천이 폭력 같은 것에 엮이면 그 타격은 고스란히 세인에게 돌아온다.
“그게 뭐라고 해야 하나…….”
의찬이 말을 얼버무릴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레이니가 들어왔다.
“대표님 들었어요? 진천 아저씨가 활을 쏴서 스토커를 쫓아냈대요!”
“…….”
전 대표가 레이니의 말에 입을 떡 벌렸고, 의찬은 옆에서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주먹을 쓴 건 아니고, 그냥 활만 쏜 거라서…… 사람은 안 맞았습니다.”
그래도 의찬은 조금만 빗나갔으면 머리통을 꿰뚫었을 것이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전 대표가 뒷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그냥 찝쩍거리다가 진상만 피우면 되네요?”
“그래.”
“쩝, 반반한데.”
“새끼, 적당히만 해. 크게 사건 터지면 알지?”
아쉬워하는 사내에게 장주호 부장이 인상을 썼다.
“알겠습니다, 형님. 애들 용돈이나 넉넉히 쥐어주십쇼.”
“그래, 그건 걱정 말고, 적당히 시끄럽게 알지?”
“예, 그쪽 전문가 놈들 붙이겠습니다.”
“전문가는 무슨 자해공갈이나 하는 놈들은 빼라. 그놈들 어차피 조서 꾸미다 보면 오히려 나쁠 수 있다.”
“에이, 자해 공갈 하는 애들이라고 다 기록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놈들은 그런 것 없이 깨끗해요.”
“그래, 알았다. 고생해라.”
“예, 형님. 그리고 사장님께 안부 좀…….”
“그래. 알았다.”
장 부장의 말에 사내는 히죽 웃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장 부장이 한숨 덜은 듯 중얼거렸다.
“그래, 때론 이런 자잘한 게 더 쉬울 수도 있지.”
그가 책상 위의 사진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사진에는 판도라 멤버들이 마찬가지로 밝게 웃고 있었다.
(2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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