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2
25화 벗고 덤비는 놈들 그리고……
“으음.”
퍼스트 엔터 전창걸 대표의 얼굴 위로 수심이 내려앉았다.
방금 전 강찬성 피디와 잠시 통화를 했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제작 발표회에 대한 내용과 대본 리딩 일정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의 표정 위로 수심이 내려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세인이 맡은 역할을 하려던 이가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적인 원한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한 것인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아! 그 역할은 원래 정해지지 않았던 거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네. 고진천, 그 친구 덕이 좀 크기는 했지만, 세인이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판단해서 넣은 거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트위니의 유안이라는 애는 좀 서구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고민하던 차였거든.”
“유안이요?”
“그래. 응? 알았다! 전 대표 나 좀 가봐야 해서 이만 끊자고.”
“아, 예.”
트위니의 리더 유안.
유명하기도 했지만 전 대표 역시 잘 아는 아이였다. 바로 그가 이전에 몸을 담았던 NS엔터 소속의 걸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전 대표의 뇌리로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전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우 그 자식이 아무리 싸가지 없지만, 아닐 거다.”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NS엔터의 창립 멤버였었다. 마찬가지로 NS엔터 대표와 아직까지 가끔이나마 안부를 주고받는 상황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지?”
어제 일로 세인은 물론 판도라 멤버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고진천이 미리 알아채서 쫓아내긴 했다.
“활을 쏘다니…….”
전 대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먼 거릴 쏘아서 맞춘다는 것도 놀랍긴 했지만 자칫 잘못 했으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 않은가. 화살이 꿰뚫은 렌즈만 떠올리면 지금도 섬뜩했다.
“어쨌든 오늘은 분위기 전환이라도 좀 해야겠군.”
작은 사무실인 만큼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쉬웠다. 이럴 때는 사기 진작을 해줘야 했다.
자켓을 걸쳐 입으며 전 대표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뷔페로 가자.”
퍼스트 엔터의 회식은 진천 이전과 진천 이후로 나뉜다.
다채롭던 회식 메뉴는 진천이 옴으로써 고기뷔페 혹은 그냥 뷔페로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도 오랜 단골이던 식당에게서 처음으로 원망을 듣기도 했다. 진천은 그야말로 일당백이었기 때문이다.
“소문 안 난 곳으로 가야겠다…….”
팔아주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스윽, 슥. 스윽, 슥.
시퍼런 칼날이 숫돌 위를 오가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꿀꺽. 꼴깍.
그 소리를 들으며 이승배와 박노문은 한쪽 구석에서 연심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진천은 환두대도를 다듬는 데에 열중했다.
‘활을 쏴서 사람 잡았다며?’
‘사람은 아니고 카메라를 잡았죠.’
‘그거나 이거나.’
승배와 박 노인은 이 무시무시한 동거인 덕분에 가끔은 숨도 쉬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덜컥!
“어헉!”
“컥! 시, 심장이!”
“아저씨! 할아버지! 회식이래요!”
경고 없이 문을 열어젖힌 이는 바로 레이니였다. 덕분에 승배는 사레가 걸렸고 박 영감은 심장이 멈출 뻔했다.
“왜들 그래요? 어? 진천 아저씨 칼 갈아요?”
“음.”
“어서들 나오세요. 회식이라니까요!”
레이니의 말에 진천이 질문을 던졌다.
“고긴가?”
“오늘은 그냥 뷔페라던데요? 거기도 고기는 있겠죠.”
“나쁘지 않군.”
고개를 끄덕인 진천이 손질을 끝낸 환두대도를 도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허리에 있는 검대에 찼다.
“아저씨 추리닝에 칼 차는 건 아니라고 봐요.”
“…….”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형님.”
“그, 그래. 밥 먹으러 가는데 칼 차는 사람이 어딨다고.”
레이니가 핀잔을 주었고 승배와 박 영감이 열심히 말렸다. 하지만 이틀 전 일이 걸렸던 진천은 고민 끝에 환두대도를 내려놓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대응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의 사람들은 허약했다.
“가지.”
“아저씨 나무하러 가요?”
“…….”
진천은 허리춤에 꽂아 넣던 손도끼마저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죄, 죄송합니다.”
전 대표는 넋을 잃고 있는 음식점 주인에게 카드를 내밀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뒤로는 진천이 포만감 넘치는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퍼스트 엔터 식구들이 마치 일행이 아닌 양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넋을 놓아버린 주인을 대신하여 종업원이 계산을 마치고 난 뒤 일행은 뷔페식당을 나설 수 있었다. 전 대표는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이곳 역시 다시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네?”
“그런데 사람이 좀 많은걸?”
승용차에 사내 넷이 옹기종기 앉아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여긴 안 돼, 방범 카메라도 있고.”
“그런가?”
“차량 블랙박스도 피해야 한다.”
“알아, 내가 바보냐?”
사내들은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주시했다.
“전 잠시 액션 스쿨 가봐야 해서요.”
승배가 말하자 박 영감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이 저녁에?”
“예, 우리도 대책 회의란 걸 해야 해서…….”
대책 회의를 말하며 승배가 진천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 모습만으로도 대충 어떤 대책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가? 그럼 박노문 씨가 진천 씨와 함께 애들 데리고 들어가지. 나머지는 퇴근들 하고.”
“대표님은요?”
세인이 묻자 전 대표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미팅이 있어서 가봐야겠다.”
“네, 그럼 알아서 들어갈게요.”
“좋은데?”
승용차 안에서 밖을 지켜보던 사내 중 하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 듯 몇몇 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보로 움직이려는 듯 중년이라기보다는 노인에 가까운 사내 하나와 건장한 사내 하나, 그리고 여자 셋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형님, 나갈까요?”
“아직. 저쪽 공원 주변에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형님이라 불린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기다릴 것을 주문했다. 소문을 내기 위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증인이 많으면 곤란해 질 수 있다. 오히려 덤터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켜보던 사내들 중 우두머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자.”
“아저씨는 대체 그 많은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요?”
“입 말고 들어갈 곳이 또 있나?”
신기하다는 듯 물어오는 레이니를 향해 진천은 불필요한 질문이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쳇!”
그때 레이니가 뒤를 돌아보았다. 세인이 축 처진 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 괜찮아?”
“안 괜찮아.”
세인은 진천에게 굴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승배나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을 체험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지옥을 체험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춤 연습을 해본 적도 있고, 노래 연습에 녹초가 되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차원이 달랐다.
뛰고 또 뛰고 휘두르고 온몸을 비틀고 사방으로 날아드는 칼에 혼절도 해보고…….
그녀는 연기를 하려 배우기 시작했지만, 진천은 그녀를 한 사람의 전사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진천에게 누굴 연기자가 아닌 무사로 만드는 거냐고 항의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딱 하나였다.
“칼 맞아 죽기 딱 좋으니 무사 따윈 생각하지 말도록.”
그렇게 말이다.
그때 한쪽에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걸그룹 아니야?”
“맞아! 판도라야!”
“실물이 훨 좋은데?”
건장한 사내 넷이 그녀들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에 축 처져 있던 세인도 그리고 촐랑거리던 레이니도 이빨의 고춧가루를 빼내던 제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누가 봐도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 대표가 수완이 있어 간간히 미디어를 통해 그녀들이 소개되었고 또 음악 프로에도 나간 적이 있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 무명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인사를 하자 사내들이 밝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야! 사인 한 장만 해줄래요?”
사내들이 다가와 호들갑을 떨자 판도라 멤버들은 들뜬 모습으로 대답했다.
“해드려야지요. 그런데 펜 있으세요?”
“있지요!”
당연하다는 듯 사내중 하나가 유성 펜 하나 꺼내어 주었다. 그러고는 노트를 내밀었다.
사실 무명은 아니라지만 이렇게 길거리에서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해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멤버들은 살짝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 영감은 그저 ‘얘들이 연예인은 연예인인갑다’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진천은 묵묵히 팔짱을 끼고 그들을 살피고 있었다.
“난 여기다 사인 좀 해줄래요?”
그중 한 남자가 갑자기 웃통을 들어 올리더니 몸을 들이대었다.
“여, 여기다가요?”
갑자기 웃통을 까는 바람에 세인과 레이니는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제이가 그녀들을 대신해 나섰다.
“어머, 몸 좋으시다! 가슴에 해드려요?”
“…….”
물러선 두 멤버 대신 제이가 눈웃음을 치며 유성펜을 들이대자 웃통을 깐 남자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 예, 여기다가 해주시면 됩니다.”
“이거 유성이라 안 지워질 거예요. 아시죠? 평생 간직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곤 제이가 일필휘지로 몸에다가 사인을 해 나갔다. 그것도 엄청 크게 사인을 남겼다. 그러자 잠시 놀랐던 레이니도 세인도 뒤따라 그의 몸에 멋들어진 흔적을 남겼다.
‘아, 안 놀라는데?’
‘제, 제길, 다른 방법을 써.’
몸이 버려진 사내는 눈빛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제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걸치며 말했다.
물론 아직 그는 웃통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 한 장 찍읍시다!”
“그럴까요?”
상의를 탈의한 남자가 팔을 걸쳤음에도 제이는 몸을 움츠리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이더니 찰싹 붙어서 한 손을 사내의 가슴에 떡 올려놓으며 고개를 약간 틀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누가 봐도 섹시한 모습. 그녀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자 세인과 레이니가 좌우로 팔짱을 끼듯 서며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 상태에서 제이가 입을 살짝 벌리며 말했다.
“안 찍어요?”
“…….”
거절할 줄 알았던 사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오자 혼란에 빠졌다.
“찌, 찍습니다.”
사내들 중 하나가 얼떨결에 스마트폰 셔터를 눌렀다.
그러자 그 사진을 확인하며 셋은 떠들썩한 모습을 보였다.
“꺄! 이거 대박 잘 나왔다!”
“우훗, 역시 난 이 컨셉이 맞아.”
“이거, 저희도 하나 가질게요, 기념으로.”
“아, 그…….”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들은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박 영감의 스마트폰으로 전달했다.
“그럼 앞으로도 우리 많이 지켜봐 주세요!”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
“그…….”
“아니, 이건…….”
사내들은 멍하니 인사를 해주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그녀들을 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웃통을 벗었던 남자가 제이가 쓰다듬었던 부분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나 쟤들 팬 할란다…….”
그때 형님이라 불렸던 사내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했다.
“정신 차려! 이대로 보낼 거야?”
“아, 그, 그렇지!”
그제야 사내들은 정신을 차렸다.
원래 계획은 무리한 요구를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었다. 보통 웃통을 까고 해달라고 하면 옷에다 해준다고 한다든 지 빼는 게 일반적인데 제이는 오히려 큼지막하게 사인을 남겼다.
그녀가 하니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로 따라 사인을 남겼고, 또 더 밀어붙이기 위해 웃통을 벗은 채로 팔을 둘렀더니…….
광팬 인증샷을 찍어주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몰랐다.
신인 여 그룹인 이들에게는 무관심보다 차라리 이런 적극적인 관심이 더 좋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적극적의 대명사인 제이가 있으므로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신을 차린 사내들이 뒤를 쫓기 시작했다.
(2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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