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6
29화 두 번째 목숨 값 그리고 다가오는 살수
“우와! 이게 바로 제주도 흑돼지로구나!”
“캬! 육질이 아주 그냥 탱글탱글하네!”
고진천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탓인지 다들 배들이 많이 고픈 상태였다. 해서 고기가 구워지기가 무섭게 입안으로 들어가는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날만큼은 진천 저리 가라였다.
“…….”
그들과 달리 입맛이 뚝 떨어진 이들이 있었다. 바로 광호와 그의 동생들이었다.
오늘은 복수를 하겠노라 동생들을 불렀지만, 그가 이렇게 일당들을 끌고 나올 줄이야. 물론 숫자로는 광호 쪽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숫자는 오로지 진천만을 위한 숫자였다.
그가 끌고 온 이들은 계산에 넣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동생들이 자신의 손짓을 보고 물러섰으니 망정이지, 목숨값이 더 늘었을 수도 있었다.
혹은 합장을 당했을지도…….
그렇게 한쪽에서 광호가 깨작거리고 있을 때 이승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더 시켜도 됩니까?”
그러자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날렸다.
“오늘은 내가 쏜다.”
“으히히!”
승배가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외쳤다.
“여기 사 인분요!”
“여기도요!”
“아줌마! 여기 소주 두 병요!”
승배가 시키자 다들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 주문이 한 번에 쏟아져 나갔다. 그와 반대로 광호의 안색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때 진천의 옆에 놓여 있는 긴 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애, 액션 연습하실 때 쓰는 칼입니까?”
애써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은 진천이 아닌 그의 옆에 있던 승배에게서 나왔다.
“저거 진짜예요.”
“진짜라니 그게 무슨?”
“진짜 칼.”
순간 광호는 자신의 몸이 토막 난 채로 묻히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승배는 고기를 입에 우겨넣으며 말했다.
“그게 우리 건 가검인데 저분은 진짜를 들고 다니시더라고요. 어차피 알 게 뭐냐라고 하시는데 뭐, 빼지만 않으면 모르긴 하겠죠.”
“그, 그렇겠죠?”
광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저걸로 사, 사람에게도 휘둘러 보셨습니까?”
광호의 질문에 모두가 고기를 집어 들던 동작을 멈추었다.
진짜 칼을 다른 이들이 들고 다니면 짚단 베기라도 하는가 보다 하겠지만, 그것을 들고 다니는 이가 진천이었다. 게다가 저건 베기용으로 보기에는 안 맞았다.
검날이 외날이면서도 곧은 게 독특했다. 사극에서 쓰는 검은 양날이거나 살짝 휘어진 환도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베었냐는 질문인가?”
진천이 슬쩍 광호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광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구는 원래 쓰기 위해 만들어진 법.”
에둘러 말했지만 당연한 말을 왜 했느냐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러자 진천을 어디 용병처럼 알고 있는 승배는 조심스럽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 몇이나…….”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광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답은 나왔다.
셀 수 없이 베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광호와는 달리 승배와 그의 동료들은 신기한 듯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야! 요즘 전쟁에서는 칼을 쓸 일이 없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난 쓸 일이 많았을 뿐.”
그런 엄청난 대화를 아무렇게나 주고받는 진천 일행과는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고픈 광호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던 승배는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서 고기를 먹는데 여태 통성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중에서 세인은 그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런데 저분들은 누굽니까?”
승배의 질문에 진천이 고기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물주.”
“네?”
물주란 말에 어안이 벙벙한 승배가 다시 반문하자 진천이 고기를 뒤집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 한마디 툭 던졌다.
“저번에 그놈들.”
“저번이라면…… 혹시 활로 쏴버린?”
“아니, 그다음.”
“아!”
승배와 진천의 대화에 몰래 귀를 기울이던 광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화, 활로 쏴?’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사진 작업을 위해 파견됐던 친구들이 머리통에 화살을 박을 뻔했다는 이야기. 천만다행으로 렌즈만 관통당하는 덕에 겨우 몸을 뺄 수 있었다는 말…….
그 말을 듣고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화살 타령이냐며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심지어 그깟 화살 잡아버리지 하며 동생들과 농담을 나누었었다.
그런데 그걸 쏜 이가 바로 진천이라는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
그때 갑자기 시선이 느껴졌다.
광호는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들었다. 진천의 주위로 액션 배우들이 눈에 살기를 띠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 무슨 액션 배우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액션 배우를 그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동생들 중에 액션 배우를 한다고 다니거나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름 무술의 유단자들이기에 제법 실력도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피부가 따갑게 느껴지는 살기는 죽음을 겪어본 이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광호는 이런 살기를 접해본 경험이 있었다.
자신은 전국구 급의 주먹이라 알려져 있지만 정말로 유명한 주먹들은 이런 살기를 뿜을 줄 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말 사람을 자의로 해쳐 본 이들은 이런 살기를 뿜는다.
살기를 뿜던 승배가 외쳤다.
“아줌마! 여기 사 인분 더요!”
“저도요!”
“저도!”
“…….”
그들의 응징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한 시간 뒤.
“죄송합니다, 손님. 더 이상 고기는 없습니다. 준비된 게 다 떨어져서요.”
주인이 직접 와서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도 살짝 놀란 상태였다. 일주일에 고기를 두 번 받는데 오늘이 고기가 들어온 날이었다. 그런데 사흘 치 고기를 하루 만에 다 먹어치운 것이다.
그것도 열 명이 좀 넘는 남자가 말이다.
그 때문인지 주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쳇.”
승배와 일행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광호는 계산대 앞에서 하얗게 불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 * *
장주호 부장은 초조한 얼굴로 대표실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천성일이 골프채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다.
그가 알기로 성일은 골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끔 필드에 나가도 그가 치기보다는 비서가 치고 그는 옆에서 윗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다.
그가 골프채를 휘두르는 경우는 사람을 칠 때뿐이었다.
“왔냐?”
“예.”
“쫄지 말고 앉아봐. 이거 선물 들어온 거라 잠시 꺼내 본 거다.”
“아, 예.”
그래도 그의 근처에 골프채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장 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광호 말입니다.”
“그래, 걔가 왜.”
“독단적으로 아는 아우들을 끌어모아 치려고 했었나 봅니다.”
장 부장의 말에 성일은 웃으며 말했다.
“허, 그놈 참.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는데. 뭐, 뒷수습이야 알아서 하겠지만…….”
“시도에서 끝났다 합니다.”
“뭐?”
웃음이 멈추었다. 그러자 장 부장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게 열다섯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자가 일행을 끌고 왔다고 합니다. 모두 액션 스쿨 배우들이었고, 또 숫자도 비슷한 터라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끄응, 그랬나? 그걸 뭐하러 이야기하나?”
성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장 부장이 계속 설명을 해나갔다.
“그랬는데 식사 중 그의 직업을 알아냈나 봅니다.”
“식사?”
“아, 그게 좀…….”
식사를 할 만한 사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식사 운운하니 성일이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말끝을 흐린 장 부장이 어쩔 수 없이 설명을 했다. 자신도 이상한 느낌에 캐물었던 내용이다.
잠시 후 대표실에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
대소를 터뜨리는 성일 앞에서 장 부장이 어색하게 따라 웃고 있었다. 사실 일만 아니라면 두고두고 씹을 만한 안줏거리기는 했다.
“히야! 그거 물건인데!”
“그게 또 그자가 그럴 배짱이 있을 만한 게 그자의 정체가 아무래도 전쟁 용병 같았다 합니다.”
“뭐?”
전쟁 용병. 한국에서는 사실 생소한 말이었다.
물론 해외에는 한국의 특수 부대원들이 제대 후 민간 군사 기업 같은 곳에 들어가 용병으로 활동하곤 한다는 풍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주변에서 볼 만치 흔하지는 않았다.
“그자가 전쟁 용병이었다고?”
“예, 그리고 얼마 전에 그쪽에서 사진 작업 하던 중 화살이 날아와 애들이 쫓겨 왔다는 것 있잖습니까.”
“그래.”
“그때 사실은 꽤 위험했다고 합니다. 날아온 화살이 렌즈를 관통했었는데 자칫 얼굴에 화살이 박힐 뻔했다고 합니다.”
성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저번에 화살 운운했을 때 웃어재꼈는데 그 정도 일이었을 줄은 몰랐다.
“혹시…….”
“그자가 쏜 것이라 합니다. 거리도 꽤 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화살을 쐈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알고 쏜 것 같다고 합니다.”
“으음.”
편하게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달랐다. 그렇다면 어설픈 이들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광호가 주먹이 전국구 급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해 공갈이나 협박이 주업이다.
그들이 맡을 일의 범주를 벗어난 일인 것이다.
“이거 외주처로 돌려야겠는걸?”
“예, 사실 그래서 다른 쪽을 물색했습니다.”
성일이 먼저 일의 방식을 달리 해야겠다는 말을 하자 장 부장이 마음을 살짝 놓으며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거? 동남아 애들 아니야?”
“아무래도 거친 애들이 맞지 않겠습니까? 또 누가 시켰는지 신경 쓰는 애들도 아니고, 우리가 노출될 일도 없고 말입니다.”
“흐으음.”
성일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장 부장이 한마디 더했다.
“제가 들어본 결과 고진천이라는 자가 무술 쪽으로 좀 대단해서 세인이를 꽂아준 것이라 합니다. 덩달아 서울 액션 스쿨도 그에게 배우는 처지고 말입니다.”
“그만 없으면 만사 끝이란 말인가?”
“예.”
장 부장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하자 고심하던 성일이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장 부장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이거 너 가져라.”
“예?”
“내가 가지고 있어 봐야 애들 골통이나 부수지 않겠냐? 너도 슬슬 배워야지.”
성일의 말에 장 부장이 벌떡 일어서 허리를 접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해라.”
장 부장이 밝은 얼굴로 사무실을 나서자 홀로 남은 성일이 서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고진천이라……. 재미있는 놈인데 아쉽군.”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준 돈만큼 일 하나는 확실하게 해주는 동남아 폭력배를 고용했으니 말이다.
(3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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