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7
30화 관대한 나라
“상대가 무기를 들고 덤비는 데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인가?”
고진천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이승배가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큰일 납니다.”
“관대한 나라군. 그럼 팔다리 정도 잘라 버리는 것은 무방하겠지?”
“대체 어디 계시다 온 겁니까?”
“안…… 되는 건가?”
승배는 순간 자신은 엄청난 살인을 저지른 인간과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법에 대해 묻더니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안 됩니다. 구속됩니다. 물론 정당방위란 것이 있기는 하지만 과하게 손을 쓰면 안 됩니다.”
“정당방위?”
“예, 상대방이 위해를 가해올 때 반격을 가하는 것을 말하는 건데 사실 이게 또 애매합니다.”
“자세히.”
진천이 귀를 기울이자 승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를 들어 누가 시비를 걸며 주먹질을 했다고 칩니다.”
“음.”
“그걸 막고 상대방을 두들겼을 경우 보통은 쌍방 과실이란 결과가 납니다.”
“왜?”
“법이 그럽니다.”
“말도 안 되는 법이군.”
진천의 단언에 승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법이란 게 현실의 법이다. 그도 어렸을 때 걸어온 시비에 주먹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이런 경험을 하거나 경험을 한 친구쯤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결과는 진단서에 의해 결정이 난다. 사전에 합의를 안 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벌금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찰서에 가서도 대충 사전에 합의시켜 돌려보낸다.
그게 법이다.
“그런데 걸리지만 않으면 되지 않은가?”
“뭐, 안 걸리면 그만이긴 합니다만, 요즘은 그것도 힘듭니다.”
“왜?”
“CCTV가 곳곳에 있으니까요.”
“그건 뭐지?”
“…….”
승배는 대화할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용병이라면서 영어에 취약했다. 아니, 그것도 아니다. 영어도 대부분 알아듣는데, 약자 같은 건 전혀 못 알아듣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진천이 가진 통역기는 만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법적으로 상대방의 대화를 해석해 주는 것이지만, 완전 생소한 것의 경우는 일차적인 정보를 습득해야 적용이 된다. 물론 그런 게 이 세상에 있다면 난리 날 획기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감시 카메라입니다.”
“음…….”
이번에는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는 진천이 카메라라는 것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엔 대륙에도 비슷한 작용을 하는 마법이 있었고 말이다.
“답답한 세상이군.”
“…….”
승배는 그런 진천에게 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 전쟁 용병일 거라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승배에게 있어 진천은 백지장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장.
문제는 이 사실을 점점 일행에게 말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런 질문은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를 믿는다는 의미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새어나가 문제가 되면…….
꿀꺽.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후회된다, 월세를 안 받겠다는 말에 이런 위험한 인간과 함께하게 된 것이.
* * *
“이자?”
“그래. 앙헬,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
앙헬이라 불린 사내가 어눌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사내가 가방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천. 끝내면 삼천 더 주지.”
“전쟁 용병이라 했지?”
“그래, 부족한가?”
“아니다.”
사람 한 명 처리하는 데 보통 받는 돈은 천만 원이다. 그런데 앙헬은 그 다섯 배를 받았으니 부족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쟁 용병이라 해도 조금 더 번거로울 뿐이라 생각했다.
“그럼 우리 쪽에서 유인을 도와줄 이를 붙여줄 테니, 마무리까지 잘 부탁한다.”
“알았다.”
장주호 부장은 가방을 넘겨주고 밖으로 나왔다.
영화에서나 보던 분위기의 폐공장을 나서니 대기해 놓은 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리핀 애들 쪽 말고 큰 곳들도 있지 않습니까?”
운전대를 잡은 사내가 묻자 장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이쪽이 딱 좋아. 다른 곳은 덩치가 커서 나중에 골치 아플 수도 있고.”
“영 걱정되는데요, 필리핀 조폭이라니.”
“오히려 이쪽이 나아. 중국 쪽에서 넘어온 이들이나 베트남 쪽은 이미 확고한 위치를 잡고 있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쪽은 아직 성장세거든. 게다가 주 업종도 마약이나 카지노 같은 게 아니라 저렴한 청부업 위주고.”
“그런가요?”
“그래, 무지막지하기는 먼저 말한 두 단체 이상이야. 거기에 권총 같은 것도 잘 다루고 말이지.”
장 부장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가자고.”
“예, 부장님.”
* * *
“예?”
“유인만 하라고.”
광호는 진땀을 흘리며 양명우를 바라보았다.
“형님, 정말 유인만 하면 됩니까?”
“그래, 일은 우리가 처리 안 할 거야.”
명우의 말에도 광호는 걱정이 되는지 질문을 했다.
“어설픈 이들이 맡으면 곤란합니다.”
“어태커라는 조직이 맡는다더라.”
“예? 잠깐 혹시…….”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광호가 말끝을 흐리자 명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필리핀 쪽 조폭이지.”
“앙헬이 두목으로 있는 조직 아닙니까?”
“응? 잘 아나 봐? 꽤 무지막지하다던데.”
“무지막지하긴 하지요.”
신흥 조직이면서 필리핀인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다. 손속에 사정을 안 두는 것도 그렇고, 총기 사용에도 거리낌이 없다. 게다가 싼값에 인간의 목숨을 거래할 수 있어 최근 힘을 얻고 있는 조직이었다.
만약 한국에 총기 규제가 강하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를 정도다. 거기에 조직원 수도 백오십 명에 달한다는 것은 이쪽 세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모두가 안다.
“그렇다고 해서 쇠꼬챙이 같은 걸로 상대하려면 안 될 겁니다.”
“그거야 알아서들 하겠지. 전쟁 용병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도 줬으니 말이야.”
“그렇군요.”
“그래도 휘말리지 않게 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약간은 걱정이 되는지 명우가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었다. 그에 광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걱정 마십시오.”
* * *
“어라?”
고진천과 훈련하던 이승배는 생소한 번호를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이스 피싱이려니 하고 한 번은 무시했는데 같은 번호로 또다시 연락이 왔기에 받았다.
[고진천 형님이십니까?]“아, 전 아니고 옆에 계신데 누구신지…….”
[그냥 아는 사람인데…….]순간 승배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맞혔다.
“아! 고기 쏘신 분!”
[…….]진천과 연관된 사람 중 외부에서 연락 올 이는 없었다. 그나마 승배의 전화로 이전에 연락을 했었기에 광호가 이 번호로 걸어온 것이다.
“누구냐.”
진천이 통화 내용을 들었는지 승배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저번에 고기 쏜 분요.”
“줘보도록.”
진천에게 승배가 휴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무슨 일이지?”
[남은 목숨값 내려 합니다.]“흐음.”
진천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사실 자꾸 연락이 오는 게 부담스럽고 해서 빨리 마무리하려고 합니다.]“그런가.”
진천이 무덤덤하게 받자 다시 광호의 말이 이어졌다.
[해서 저번에 뵌 곳으로 오시면 제가 모시겠습니다.]“나쁠 것 없지.”
[그런데 여러분을 모시고 오면 제가 감당하기가…….]“혼자 가지.”
[가, 감사합니다.]통화를 끊고 휴대 전화기를 넘겨주자 승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보자는군.”
“위험하잖습니까.”
순간 승배의 얼굴이 굳었다. 분명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뭔가를 꾸몄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가신다고…….”
승배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말을 흐리자 진천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굳이 피해야 할 이유를 모르니까. 그리고…….”
이어서 한쪽에 세워놓았던 환두대도를 집어 들며 허연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뭔가를 꾸민다면 감시 카메라 같은 건 없겠지.”
“…….”
승배는 등줄기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차라리 묻지를 말 걸 하는 자책을 했다. 마치 살인 예고라도 들은 느낌이었다.
* * *
“올까요?”
“몰라,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입술을 질끈 씹은 광호가 말을 이었다.
“……나름대로 핑계가 생기잖아.”
“그건 그렇지만 형님.”
“오, 옵니다!”
“뭐?”
동생의 말에 광호가 화들짝 놀라 차 밖을 바라보았다.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천으로 둘둘 둘러싼 몽둥이 같은 걸 어깨에 걸쳐 메고 천천히 걸어오는 고진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광호는 서둘러 차 문을 열고 나갔다.
“오셨습니까!”
“안내해라.”
“아…… 예.”
허리를 숙여 인사 했음에도 진천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승합차에 미리 타 있던 동생들이 서둘러 자리를 만들며 긴장했다.
“가지.”
“예…….”
진천이 차에 올라타고 말하자 광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불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액셀을 밟았다.
‘빌어먹을. 찜찜해, 역시…….’
그래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생각한 광호였다. 어태커파라는 필리핀 조폭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곧 도착한답니다.”
“그래.”
앙헬은 수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살폈다. 쇠파이프와 직접 갈아서 만든 도검을 들고 있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사시미라 불리는 회칼을 든 이까지 다양했다.
그 수는 무려 서른에 달했다.
사실 이 인원까지 필요하겠느냐 싶었지만, 의뢰인 측에서 상대방이 전국구라 불려도 모자랄 주먹을 가진 이와 건장한 사내 셋을 한 방도 맞지 않고 꺾었다는 말에 철저히 준비한 것이다.
한국의 조폭 중에서도 전국구라 불리는 이들의 실력은 그들 역시 무시 못 할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또 넉넉히 받았기에 무리가 없었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받기 수월할 테니 말이다.
가능하면 좋은 거래 선은 잘 잡아두는 게 중요했다.
“온다!”
누군가의 말이 아니어도 헤드라이트가 비추어지며 공장 안으로 승합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앙헬이 일어서며 나직이 말했다.
“손님맞이한다.”
차가 거칠게 들어오자마자 문이 열리며 사내 셋이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광호와 그 동생들이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뛰쳐나온 광호는 식은땀을 흘리며 차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진천이 아직도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모르고 온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런 여유를 부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뒤쪽에서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저잔가?”
“아마 습격할 것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광호의 동생 중 하나가 질린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앙헬은 별 상관 없다는 듯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그의 수하들이 열려진 공장 문을 닫았다.
“뭐, 뭐하는 거야! 우리가 나갈 길은.”
“일 마치면 확인해 줄 사람도 있어야 한다. 걱정 마라, 금방 끝난다.”
앙헬의 말에 광호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미 문은 닫혔고 얼핏 봐도 서른에 달하는 필리핀 조폭이 무기를 들고 나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부는 차를 부수기라도 하듯 해머를 끌고 나왔다.
“빌어먹을…….”
광호는 찜찜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된 이상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때 승합차에서 진천이 발을 내딛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멈추었다. 바로 광호에게서 말이다.
등줄기가 싸했다.
어스름한 주변에 비추어진 전등 빛에 진천의 무덤덤한 표정이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시 카메라는 없겠지?”
(31화에서 계속)
# 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