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59
32화 공포의 끝
퓻! 퓨퓨퓻!
소음기로부터 총알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음기라 하지만 그 소리를 완전 죽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째앵!
달려 나가던 고진천이 환두대도를 휘두르자 불꽃이 튀었다. 그 모습을 본 앙헬의 수하 중 하나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서, 설마 튕겨 낸 건 아니겠지?”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튕겨 내! 운 좋은 거지!”
동료 중 하나가 윽박지르며 총을 쏘았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진천을 맞히는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한 방을 안 맞아!”
어태커파 조직원은 연신 총을 쏘면서도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필리핀 조폭의 특징 중 하나가 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이다. 또 그들 중 상당수가 총기를 이용한 살인 때문에 도피해 온 전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쏘아 대는 총알은 모조리 빗나가고 있었다.
“으으으…….”
광호가 동생들과 몸을 숨긴 채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튕겨 나온 총알에 혹시라도 맞을까 두려워 몸을 숨긴 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진천의 모습을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벌써 수십 발은 발사되었음에도 한 발도 진천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가끔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총알 세례를 모조리 피하는 장면에서 코웃음을 치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그와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 거짓말이죠? 형님.”
동생 중 하나가 덜덜 떨며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광호는 무어라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믿지 못하겠는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설마 이대로…….”
동생 중 하나가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는지 멍한 음성을 흘렸다.
지금은 앙헬을 응원해야 할 때다.
찡! 찌징!
“음.”
이제 대충 뭔가 감이 잡힌다.
저 물건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려면 구멍을 상대방에게 조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조금 전 적들 중 하나를 방패 삼아서 들어 보았을 때 관통력은 약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는 충분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감으로 피해 내고 환두대도로 막아 냈지만 계속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충분히 봤으니 됐군.”
난 시선을 앞으로 한 채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 하나를 들어 그대로 던졌다.
뻐억!
“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총을 쏘던 어태커파 인원 중 하나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며 천천히 몸이 무너져 내렸다.
“억!”
순간 옆에 있던 사내가 달려가 부축하려 했지만 이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 돌이…….”
주먹보다 작은 돌이 미간에 틀어박혀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리뼈를 부수고 박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절명이다.
“조심해! 놈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으적!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튕겨 나갔다.
우당탕!
한쪽에 쌓인 드럼통에 날아가 처박힌 그는 잠시 몸을 떨다가 멈추었다. 날아온 손도끼가 가슴을 부수고 박힌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어태커파 조직원들이 일제히 엄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싸우다가 놓친 무기들 중 하나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짱돌까지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된다는 생각에 그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대체 저놈은 뭐야!”
“몰라!”
“대장! 대장! 이거 어떻게 된…….”
말을 하던 조직원은 갑자기 시위가 어두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콰직!
“으, 으아아아!”
옆에서 무어라 떠들던 조직원이 날아온 자동차 엔진에 깔려 죽자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담이 있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했다.
쾌액! 떠어엉!
“끄어억! 끄아아아아!”
어디선가 날아온 쇠 파이프에 그대로 몸통이 관통당한 채 마치 곤충 표본처럼 담벼락에 매달려 버렸다.
그러고도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던 그는 곧 숨을 거두었다.
퓨슉!
앙헬이 그의 뒤통수에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크윽!”
눈이 충혈된 그는 질린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제 열 명도 안 남았다.
이젠 그에게 의뢰는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이 문제였다. 생각을 정리한 앙헬이 외쳤다.
“전부 달려들어!”
“예?”
“일제히 달려들라고!”
앙헬의 외침에 몸을 숨겼던 수하들은 이를 악물고 일제히 달려 나왔다. 그의 말대로 일제히 나가서 거리를 좁히며 총을 쏘아 대면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금!”
앙헬의 외침에 어태커파 조직원들이 일제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퓻! 퓨퓨퓻! 풋!
새로 탄창을 갈아 낀 조직원들이 이를 악물고 진천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면서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진천이 몸을 숨긴 차에 총알이 박히면서 유리창은 박살 나고 타이어에는 바람이 빠지며 주저앉았다.
그러다 진천의 반응이 없자 조직원들은 힘이라도 얻은 듯 걸음을 옮기며 방아쇠를 당겨댔다.
그때였다.
드득!
순간 진천이 숨어 있던 승용차가 들썩였다. 하지만 앙헬의 수하들은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까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자동차 엔진을 집어던졌지만,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하지만 이것조차 오산이었다.
“억!”
승용차가 그대로 세워지더니 옆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콰아앙!
마치 폭발음을 연상케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승용차가 달려들던 앙헬의 수하들을 덮쳤다. 미처 피하지 못한 수하 둘이 승용차에 깔리는 순간 옆으로 돌아간 이들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없다!”
한 조직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총을 겨눈 채 외쳤다. 하지만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위! 위!”
순간 조직원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하늘이 반 토막으로 갈라지는 장면을.
콰드득!
“히이익!”
사람이 좌우로 반 토막이 나는 비현실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조직원들을 향해 진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의 비명과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길어야 오 초 내외.
그 짧은 시간 동안 달려들었던 조직원들이 모두 땅에 뒹굴었다.
“커억.”
앙헬은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진천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보통은 자신의 목이 잡힌 상태에서 상대방의 손을 잡는데 앙헬은 오히려 반격의 기회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총구가 겨누어지기도 전에 그의 총을 진천의 커다란 손이 붙잡았다.
콰드득!
“크, 큭!”
대롱대롱 매달린 앙헬이 눈을 부릅뜨고 못 믿겠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총이 엿가락처럼 우그러졌기 때문이다. 그의 손도 총과 함께 우그러졌지만,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진천에게 목줄을 잡힌 탓이었다.
우둑!
목이 옆으로 확 꺾이며 앙헬의 벌려진 입에서 혀가 길게 비어져 나왔다. 잠시 부르르 떨던 앙헬의 바지가 젖어 들었다. 이어 그의 엉덩이가 묵직해지며 구리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죽으면서 사지가 풀린 탓이다.
조용했다. 더 이상 신음도 비명도 없었다. 부상자는 없고 죽은 자만 즐비했다. 진천이 들고 있던 앙헬의 시신을 한쪽으로 집어 던졌다.
첨벙! 치이이익!
아까 열어 놓았던 황산으로 빠져 드는 소리와 함께 살 타는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사시나무 떨 듯이라는 말이 있다.
광호와 동생들의 상태가 바로 그러했다. 손발은 연신 떨리고 있었고, 발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동생 중 하나는 눈물 콧물을 연신 흘리고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오줌을 지렸다.
광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포도 이런 지독한 공포는 처음이었다. 예전 잠시 몸담았던 폭력조직 간의 항쟁 때도 사람이 죽는 경우는 있었다.
사시미가 배를 연신 뚫고 들어가고 칼침을 맞는 이는 죽어라 비명을 질렀다. 그런 모습도 익히 보았지만 이건 아니다.
사람이 토막이 났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특히 마지막에 사람이 세로로 쪼개지며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비현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가 이건 현실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다 죽은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 모두가 이토록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오직 한 사람에게 말이다. 그렇게 공포에 떨고 있는 광호의 눈앞에 차가운 칼날이 들이밀어졌다.
또옥. 똑.
도신을 흐르는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려왔다.
광호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그 도신을 따라 올라갔다.
길고 곧은 도신을 따라 올라가자 그 도신을 가볍게 쥐고 있는 손이 들어왔다. 그 위로 피가 점점이 묻어 있는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팔에 보이는 근육은 마치 밧줄을 꼬아 만든 것처럼 자잘하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다.
이어서 떡 벌어진 어깨와…… 옷깃처럼 솟아 있는 승모근 그리고 굳게 다물려져 있는 입술, 칼끝과 같은 콧날, 그리고…….
무심한 시선.
“…….”
광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잠시지만 심장이 멈춘 느낌도 받았다. 그 무심한 시선을 보내는 그 눈동자 속에 버러지처럼 떨고 있는 광호와 그의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맑은 거울에 비춰진 것처럼.
굳게 다물려 있던 그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더 없나.”
그의 음성은 무료했다.
“웨엑!”
쓰레받기로 바닥에 흘러져 있는 내장을 담던 광호의 동생 하나가 헛구역질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누런 위액뿐이었다. 더 나올 게 없는 탓이다.
뒤처리를 하면서도 떨리는 손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체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담벼락에 곤충 표본처럼 매달려 있는 시신을 보면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나 있었다.
첨벙! 치이익!
황산 타는 냄새가 메케하게 풍겨 나왔다. 벌써 열 구의 시신이 들어갔다. 하지만 워낙 황산을 담은 탱크가 커서인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마치 지옥의 아가리처럼 느껴졌다.
생각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반사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중 하나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전쟁터 같아.”
지금의 전쟁이 아닌 옛날 고대의 전쟁터가 이러했을 것 같아 내뱉은 말이었다.
그때 소름 끼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전쟁을 모르는군.”
모두가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사실 소름 끼치는 음성이라기보단 무덤덤한 음색일 뿐이었다. 하지만 듣는 이가 그의 음성을 소름 끼치게 느꼈다.
왜냐면 그 말을 한 이가 진천이었기 때문이다.
광호가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 진천이 있었다. 진천은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누군가의 옷가지를 가지고 칼을 천천히 닦고 있었다.
마치 이 광경과는 상관없다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말이다.
이 대한민국에서 이런 짓을 벌일 이가 얼마나 될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살인마라는 말도 부족한 행위였다. 그런데 광호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천을 보면서 살인마의 느낌은 그리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전장의 장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즐기는 모습도 없었다.
그저 할 일을 한다는 듯한 모습뿐이었다. 그렇다 해서 이 많은 이를 죽인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광호의 시선이 동생들을 향했다.
눈물이 났다.
그가 동생들을 사지로 끌고 온 것 같아서였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3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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