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62
35화 무법지대
명산실업 건물은 사무실들이 밀집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만큼 유동 인구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명산실업 좌우로 있는 오피스텔들은 모두 명산실업의 사원 주택이었다.
한마디로 주변 건물들의 방해를 입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도시 공동화라는 말에 걸맞게 밤 시간이면 아무도 나다니지 않았다. 주변에 술집도 없었다. 있다면 저녁 일곱 시면 문을 닫는 구내식당 정도.
그러니 자연 밤 시간이면 사람이 나다니지 않았다.
번화했으면서도 고요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게다가 주 오 일제가 정착된 지금, 토요일 밤은 더더욱 고요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명성실업만 요란 법석할 뿐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없더라도 경찰이 순찰을 오거나 혹시 모를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지는 않을까?
역시 그럴 일 없다.
아무리 껍데기가 바뀌었고, 영역 싸움을 하지 않는다 해도 폭력 조직이 기반인 곳이다. 다만 없는 자들을 수익의 대상으로 삼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거물들의 뒷일을 봐주는 단체이기에 순찰 정도는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게 권력과 재물의 힘이었다.
사실 일반 민간인들과의 충돌은 전무에 가까우니 일선 파출소에서 건드릴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경찰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이유는, 어쨌든 일을 하다 보면 눈에 띄어서 좋지 않을 일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그 시간만큼은 명산실업이 이 일대의 지배자였다.
그 지배자가 거대한 침입자…… 아니, 포식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와장창!
거대한 외벽 유리가 박살이 나며 책상이 퉁겨져 나왔다. 그 부서진 잔해 사이로 사내들이 흉흉한 무기를 들고 악다구니를 쓰며 한쪽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하지만 달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사내가 뒤로 튕겨 나갔다. 일부는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것과는 달리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쇠 파이프와 사시미라 불리는 칼을 휘두르며 뒷걸음질 쳤다.
저벅저벅.
그 사이로 고진천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어떻게 된 놈이야!”
“어디서 저런 괴물이…….”
괴물이라는 단어로밖에 형용이 되지 않았다.
휘두르는 무기는 모두 피하거나 막았다. 물론 막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분명 후려친 이는 팔뚝을 내려쳤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팔뚝은 쇳덩이처럼 단단했고, 오히려 내려친 쇠 파이프가 휘거나 혹은 맞고 튕겨져 손에서 놓치기 일쑤였다.
그 이후의 결과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무력화.
단 한 방씩이었지만, 그 한 방으로 무력화되어 버렸다.
기절하거나 꾸역꾸역 먹은 것을 게워 내며 꿈틀거리거나 했다. 두 발로 서 있는 자는 없었다. 그쯤 되자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사내들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앞을 막아서는 사내들은 많았다. 이 건물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이 나왔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진천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가 없었다.
나른함, 권태로움, 혹은 무미건조.
그것이 상대하는 이들로 하여금 더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차라리 같이 악다구니를 부리거나 욕설을 뱉었다면 이렇게까지 질린 표정들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기를 막는 순간에도, 한 방으로 사내들을 무력화시키는 순간에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지만, 비유하자면 쌀을 수확하는 농부가 낫으로 벼를 베며 당연히 잘릴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아주 당연히.
그게 사내들로 하여금 공포로 다가왔다.
“뭐해! 새끼들아!”
그때 사내들의 뒤쪽에서 성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주춤거리며 물러서던 사내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사이로 일본도를 들고 있는 사내들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피 냄새가 가득한 이들이었다.
마치 조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본도를 이들은 실제로 들고 나온 것이다. 패용하는 모습이나 행동은 칼을 한두 해 잡아 본 모습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 건물에서 칼부림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상황실에서 보니 제법 한 수는 있는 듯하니 빨리 끝냅시다.”
일본 야쿠자 영화처럼 나타난 사내들은 일제히 일본도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들이 풍기던 살기와 피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그때 처음으로 진천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물론 칼을 마주한 이의 본능적 두려움이나 조심성 따위는 없었다.
멈추어 선 진천이 질문을 던졌다.
“칼을 들었다. 이래도 안 되는 건가?”
누군가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자신들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의 대상은 광호였다.
그는 진천에게 가급적이면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는 굳이 무기를 뽑지 않아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일본도를 뽑아 들고 있었다.
적어도 십여 명은 넘어가 보였다.
진천이 이겨야 그도 산다.
그렇기에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사실 이미 서른 명이나 되는 이들을 죽인 진천이었다. 여기서 한둘 더 추가된다 해도 솔직히 거기서 거기다.
우발적 살인이 아닌 의도적 살인 때문인 숫자가 두 자리를 넘어가는 순간 무의미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가급적이면 살인을 하지 마라 주문했던 것은 이들의 뒷배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시체를 처리할 곳도 없었고, 또 밀항이나 불법 밀입국자 천지인 필리핀 조폭들과 달리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누군가 죽어 나간다면 반드시 경찰의 개입을 불러올 것이다.
그 수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면 반드시 말이다.
대한민국의 경찰은 무능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명산실업에서도 순찰 경로만 제외되도록 손쓴 것이다. 그쯤에서의 타협이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목격하는 상황이 되면 경찰도 거기에 대해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전부 일본도를 들고 나온 이상 죽이지 말고 상대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올 때에는 아까의 괴력을 보인 진천이라면 적당히 싸우다 몸을 뺄 수 있을 정도는 되리라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 이상이었다. 어쩌면 아까의 필리핀 조폭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이들이었다.
총도 두렵지만, 일본도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 이렇게 깊이까지 들어온 이상 진천이 이기길 바라야 하는 처지와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처지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그의 고민을 알아챘는지 진천이 다시 물었다.
“결과를 고민 말라.”
진천의 음성이 들려오는 순간 광호는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고민이 왠지 바보 같단 생각이 든 것이다. 그의 음성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어태커 파를 대했을 때부터, 아니, 그들이 기다릴 것을 알면서 자신의 차에 탈 때부터 말이다.
왠지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살리는 게 좋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미친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거친 음성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조금 전까지 진천에게 밀리며 벌벌 떨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기세가 등등해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욕설들을 들으면서도 진천은 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행동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진천이 도집을 감싸고 있던 천을 풀러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건?”
“검?”
일본도와 달리 곧은 형태의 검집이 자태를 드러냈다.
단순하고 투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광택이 나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일본도와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때 한 사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
그때 진천이 그에게 답변이라도 해주듯이 도집에서 천천히 도신을 뽑아내었다.
스르릉.
나직한 쇳소리가 울려 나왔다.
곧고 바른 자태가 그들의 앞에 드러났다.
“직도?”
의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신이 곧은 직도 형태는 보기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는 게 맞았다. 대부분이 환도 형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을 쓰는 이들도 없었다.
영화에서나 쓰면 썼지…….
“어디서 봤더라.”
일본도를 든 이 중 하나가 자신이 알던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온다!”
직도를 뽑아 든 진천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선두에 선 사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들 중 다수는 검도를 오래 수련을 했거나 검도를 배우지는 않았어도 그와 유사한 검술 혹은 실전으로 깨우친 이들이었다.
단지 무기만 요란한 이들이 아닌 것이다.
실제 사람을 베어 본 경험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다가오고 있는 이는 느낌이 달랐다. 직도를 뽑아 들고 팔을 늘어뜨린 채 산책하듯 다가오고 있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단순히 무기를 든 게 아니라 그들처럼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익숙함에서는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자세나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이 걷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순간 많은 생각을 했던 사내는 긴장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손에 땀이 베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동요.
그것은…….
‘긴장?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야쿠자들과 칼을 섞은 적도 많았다. 비공식적인 일을 처리하다가 간혹 마주치는 경우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이런 긴장은 없었다.
오히려 진검을 맞댄다는 묘한 흥분감이 있었다. 유명한 검도 고수와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알았다.
지금 긴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저벅저벅.
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올 때마다 심장 소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원래 심장이란 게 이렇게 크게 뛰었나 싶을 정도였다. 오직 들리는 것은 발걸음 소리와 심장의 울림.
“크아압!”
그 심장의 울림을 지우기라도 하듯 커다란 비명과 같은 기합성과 함께 사내는 달려 나갔다.
쉬칵!
일본도가 공기를 날카롭게 잘라 내며 진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어헉!”
광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본도가 내리그어지는 데도 진천은 도를 늘어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쯔캉! 팍!
언제 휘둘렀는지 진천의 직도가 사선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내리그어졌던 일본도는 깔끔히 잘려 나갔다. 잘린 반 토막은 옆쪽 벽면에 그대로 날아가 깊이 박혔다.
그리고 진천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진천이 다가가도 일본도를 휘둘렀던 사내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아니, 움직였다.
앞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털썩!
“동욱아! 이런, 씨팔!”
동료가 쓰러지자 사내들이 거센 욕설과 함께 일제히 달려들었다.
수많은 검광이 형광등 빛이 번쩍이는 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36화에서 계속)
# 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