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75
48화 첫 촬영
최근 개과천선한 곽주호의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 성격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진천이 있음으로 해서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니 다른 배우들 역시 불만 없이 따랐다. 지정철 역시 임사체험 이후 진천이 있는 자리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임사체험이라는 게 묘한 중독이 있는 모양이었다.
주호와 정철이 쓰러진 뒤 몇몇 배우들이 자신들도 제대로 한다며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그 덕에 다른 배우들 역시 죽는다는 게 어떤지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액션 연습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꼭 군대 같지 않아요?”
세인의 말에 다른 배우들이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옛날 군대가 있다면 아마 이럴 거다.”
손에 칼만 안 들었지, 군대 같은 분위기가 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진천은 명령하는 데에 익숙했다. 그리고 군기반장이나 마찬가지인 주호가 그 명령을 가지고 설치니 군기가 정연한 군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주호의 경우 역할에 몰입을 한 것인지 어렸을 때 철없던 시절의 꿈이 되살아나서인지 행동 자체도 군기가 바짝 들은 장수와 같았다.
그 모습을 배우들의 액션을 체크하러 온 강찬성 피디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좋아했다. 배우들이 촬영이 시작도 되기 전에 배역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싫어할 감독은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분위기가 진천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모를 강 피디가 아니었다. 연기자로 따지면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진천이었지만, 주연급 배우들을 비롯해 액션 연기에 나름 도가 텄다던 중견 연기자들도 그를 따르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그렇게 사전 연습 끝에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이들과 분장을 담당하는 이들이 최종 체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첫 촬영에 돌입할 준비하고 있는 배우들이 최종적으로 액션의 합을 맞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신중하다 못해 경건해 보여 마치 전장을 나서는 이들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강찬성 피디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사극 한두 편 찍은 것도 아니지만, 내 살다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네.”
“그러게요.”
강 피디의 말에 조연출인 박규찬 피디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사극 경력이 많기는 하지만 이처럼 좋은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단지 연기자들 간의 사이가 화기애애해서 좋은 것은 아니었다.
촬영에 임하는 배우들의 눈빛이 달랐다.
촬영장의 분위기는 액션을 담당하는 배우들이 이끌고 있었다.
물론 사극의 정체성이 액션 사극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분위기가 자못 진지하다 못해, 필사적으로까지 보이니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때 강 피디의 눈이 어느 한쪽으로 향했고, 이어서 감탄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진천이 한쪽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고, 그를 중심에 두고 배우들이 최종적으로 손발을 맞추는 모습. 마치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가 바위 위에 앉아 무리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일이다. 촬영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닳고 닳은 배우가 아닌 액션을 담당하기 위해 캐스팅했던 이라는 게 말이다.
그를 캐스팅을 할 때에는 약간의 반발도 예상했다. 처음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그를 캐스팅에 넣기는 했는데 그의 행동이 예사 사람들과 달랐다. 총감독인 강 피디에게도 어려워하는 모습이 없었다.
그쯤 되자 스태프들이 오히려 불쾌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강 피디도 그의 반응이 조금 불쾌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이후 육의찬 감독을 통해 단편적인 정보를 얻은 것도 이런 인식을 가지게 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정말 전쟁 용병이었을까요?”
“왜? 궁금한가?”
“아뇨,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렇지?”
“예, 주호 형 하는 것도 그렇고…….”
곽주호 이야기가 나오자 강 피디가 손바닥을 치며 웃었다.
“맞아! 내 말이 그거야!”
사실 강 피디의 걱정은 다름 아닌 곽주호였다.
그의 강렬한 이미지가 탐이 났기에 그를 처음부터 캐스팅에 염두 했었다. 하지만 지정철을 더블 캐스팅에 놓고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주호가 선배임은 분명했지만, 정철의 인지도도 무시 못했다. 자칫 분열이라도 나면 정말 곤란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을 진천이 해결해 준 것이다.
물론 그 도중에 약간의 알력이 있다고 들었지만 주호가 의외로 성격이 단순한 부분도 있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그런데 임사체험이 뭡니까?”
“응?”
조연출 박 피디의 질문에 강 피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강 피디의 질문에 박 피디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알면 제가 여쭤 봤겠습니까. 자주 가셨으니 뭔가 아시나 싶어서 여쭤 본 거지요.”
“그래? 그게 왜 갑자기 나와?”
“저 양반이 어떻게 했기에 분위기가 이러냐고 배우들에게 물어보니 임사체험 한 번하면 이렇게 된다더라고요.”
박 피디의 말에 강 피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뭔가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런 건가?”
“그럴까요?”
“거, 왜 있잖나. 관짝에 문 닫고 들어가서 체험하는 것도 있고 말이야.”
정확히 관에 들어가는 것은 임사체험이 아닌 입관체험이었다. 강 피디의 말에 박 피디가 기억난다는 듯 말을 받았다.
“아! 들어 본 것 같습니다. 그런 걸까요?”
“뭐, 그게 그렇게 효과 좋으면 스태프들도 단체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뭐, 그렇겠네요.”
“쯧, 저 사람들 이거 뭐 따돌리는 것도 아니고 한 작품을 하는 동료들끼리 지들만 그런 체험하고 하면 안 되지.”
약간의 투정 섞인 말에 박 피디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나서서 부탁해 보지요. 기왕 좋은 거면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해, 나도 해보지. 내 나이쯤 되면 그런 것도 중요해. 얼마 안 남은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강 피디의 동참 의견에 박 피디가 의욕을 가지며 대답했다.
그렇게 둘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무덤을 파고 있었다. 물론 이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준비 다 되었네요?”
“송 작가 왔어?”
송가은이 수척한 얼굴로 다가와 있었다.
진천과 그 액션을 보고 난 뒤로부터 대본을 수정하느라 쪽잠을 잔 덕에 얼굴이 꽤나 상해 있었다. 그래도 눈빛에는 생기가 도는 것이 그녀도 이번 작품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아.”
“그러게요?”
촬영장으로 들어서면서 가은 역시 촬영장 분위기가 묘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묘함은 좋은 쪽이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시선이 진천을 향했다.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의 캐스팅이 신의 한 수가 될 거야.”
강 피디의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은은 짧게 대답했다. 별로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신경이 온통 그에게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를 강 피디가 아니었다.
“자, 실전은 어떤지 한 번 보자고.”
“예.”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촬영이자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다. 시청자들을 단번에 끌어모을 장면 중 하나였다. 첫 화에 강렬한 액션을 보여 주어 시청자들의 이목을 모은 뒤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자주 쓰는 만큼 확실했다.
물론 첫 화의 퀄리티를 따라가지 못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리허설 들어갑니다!”
강 피디의 앞에 모니터가 놓이고 카메라와 장비들이 배우들에게로 집중했다.
조명 상태를 확인한 이들이 뒤로 빠지고 배우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때 강 피디가 외쳤다.
“잠깐, 리허설도 다 촬영하자고!”
“예?”
“그냥 아까운 장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연기자들도 리허설이지만 실 촬영이라고 생각하고 잘해 주고.”
“알겠습니다.”
배우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스태프가 외쳤다.
“그럼 슛 들어갑니다!”
딱!
슬레이트가 빠지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기를 든 무장들이 달려 나갔고, 그 뒤를 병사들이 따랐다. 그때 그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저벅 저벅 저벅.
가볍지 않은 발걸음이 울려 나왔다.
활짝 열려 있는 문 사이로 갑주를 차려 입은 무인 하나가 멈추어선 병력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발걸음이었지만 저절로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는 진천이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멈춰 있는 무장들과 병사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행동에 긴장감은 없었고, 마치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무리를 지은 승냥이 떼를 보듯 오연하고 오만했다.
진천의 반대편에 있던 무리 중 주호의 옆에 있던 중견 배우가 한 걸음 나서며 으르렁거렸다.
“막아 봐야 소용없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순간 촬영 감독들의 입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들의 귀에도 대사가 짝짝 달라붙는 듯했다. 오디오 감독들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앞을 주시했다.
진천은 무표정으로 그들이 아닌 어두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때 주호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개먹이가 되는 걸 택하겠다는 말인가?”
주호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다들 숨을 죽였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혹은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런 마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대사를 이을 진천을 주시했다.
찰나의 침묵을 지켰던 진천이 하늘을 응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끝인가.”
이미 침묵 속으로 돌입한 촬영장이었다. 하지만 다들 느꼈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오는지를 그리고…….
하늘을 향하던 시선이 앞의 무인들을 향하는 순간 내뱉어진 말.
“유언은.”
나른하게 들리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홀로 적을 막아서는 무인의 비장감도 없었다. 그저 소름이 돋았다. 생사를 결정하는 절대적 무인의 모습이었다.
강 피디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그의 시선은 어느새 모니터가 아닌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되어져 왔다. 지금 이 순간 마치 배우들이 있는 공간과 촬영을 담당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공간이 분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타임 슬립이라도 해서 전장의 상황을 찍는 느낌이라면 비유가 맞을까?
“쳐라!”
순간 한 배우의 외침이 터져 나오면서 무장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오로지 한 명을 향하고 있었다.
진천을 향했다.
으와아아!
함성이 울렸다. 그 함성에 사람들이 떨었다. 전율이 일었다. 단지 함성이었지만, 느껴지는 게 달랐다.
필승의 의지? 그런 게 아니었다.
명백한 적의.
최강의 적을 향한 무장과 병사들이 토해 내는 적의와 다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용기를 북돋는 외침이었다.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진천이 천천히 환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달빛에 반사된 환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순식간에 휘둘러진 환도에 정면으로 달려들던 두 명의 무장이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순간 모두 움찔했다.
특수 효과 팀이 누른 피가 비산하였다.
진천이 발길질을 하자 그 발에 맞은 이가 퍼엉 하고 날아가 나뒹굴었다.
“죽어!”
누군가가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칼을 휘둘러갔다.
진득한 살기가 묻어 나오는 눈동자에 스태프들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의 칼은 진천이 휘두른 환도에 두 동강이 났다.
째앵!
잘려진 칼날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 진천이 걸어 나왔던 문의 기둥에 날아가 박혔다. 반 토막 난 칼의 주인은 그럼에도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빠르게 뻗어진 진천의 칼에 몸을 새우처럼 꾸부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엎어졌다.
비명도 없이 그대로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사방에 비명과 비가 솟구쳤다.
그때 일단의 무리들이 문 안에서 달려 나왔다.
“장군!”
“장구운!”
세인과 몇몇 무인들이 뒤늦게 달려온 모습. 그때 진천이 뒤로 손을 뻗어 손바닥을 펼쳤다.
“멈춰라.”
묵직한 한마디에 세인과 무인들이 움찔거리며 멈추었다.
여전히 적을 향한 시선.
진천이 주호를 바라보며 피 묻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전쟁이다.”
(49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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