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78
2화 분량 촬영을 마친 강 피디가 호기롭게 스태프들과 단합을 위해 체험을 나왔다.
바로 서울 액션 스쿨이었다.
일전에 조연출과 나누었던 이야기대로 단단한 결집력을 위해 선택한 임사체험이다. 보통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행동이지만, 강 피디는 촬영 중이 무슨 대수냐며 서울 액션 스쿨로 왔던 것이다.
마침 그 역시 취미로 이런저런 운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그러나 난관은 있었다. 서울 액션 스쿨의 감독인 의찬을 비롯해 연기자들이 놀라서 적극 만류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말리면 더 하고 싶은 오묘한 반항 심리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체험을 자처하며 호기롭게 외쳤다.
“자! 봐주지 말게나!”
그의 말에 고진천은 기꺼이 봐주지 않고 지옥을 보여 주었다.
오히려 고꾸라져 버린 강 피디를 보며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거울 좀…….”
뒤이어 강 피디가 거울을 찾자 의찬이 이미 준비한 거울을 내밀었다. 비슷한 경향을 보인 피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받아 든 강 피디가 목 주변을 비추어 보며 다른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붙어 있네.”
다행이라는 음성이었다.
천천히 거울을 내려놓은 강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거로군.”
웃고 있는 그의 주름진 두 눈가를 타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삶의 소중함을 느낀 이의 기쁨의 눈물이었다.
“자네들은 괜찮나?”
정신을 차린 강 피디가 조연출과 다른 스태프들을 보며 묻자 그들이 한 걸음씩 물러서며 말했다.
“위험한 것 같아 중단했습니다.”
“진귀한 체험이 될 걸세.”
“예?”
강 피디의 말에 다들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강 피디가 다시금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그의 호통 소리에 다들 우물쭈물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일부는 설마 자신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갔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강 피디가 몸이 허해서 기절한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것은 이미 체험을 해봤던 연기자들과 서울 액션 스쿨의 사람들이 보장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너희들도 당해 보라는 의도였다.
그들이 나가자 의찬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이 나간 문을 보며 말했다.
“아니, 말리시지 왜…….”
“육 감독.”
“예.”
“나만 당할 수 없었네.”
“…….”
“이대로 끝나면 나만 바보 될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 말은 맞았다. 강 피디는 혼자 당할 수 없기에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혼자 기절하면 창피하지만, 다 같은 결과를 얻으면 당연한 게 된다. 강 피디는 그 부분을 예상한 것이다.
“자네들, 다 이런 경험을 한 거지?”
“예.”
“그렇죠.”
강 피디의 말에 연기자들이 회한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쩐지 모니터를 보면서 연기 이상의 희노애락이 나오더군. 정말 전장에 나온 무사들의 비장함이라든지 생존 욕구라든지 그런 것 말이야. 연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장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배우들 중 대표로 곽주호가 나서며 말했다.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장면을 너무 많이 따는 것 같습니다. 편집부에서도 장면들이 다 좋아서 버릴 수 없어 골치라 들었습니다.”
“그, 그게…….”
순간 강 피디가 움찔거렸다.
그때 주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은 지금 한 번 체험한 것으로 끝이지만 저희는 그 상황을 매번 촬영할 때마다 겪어야 합니다. 제발이지…….”
주호의 말을 듣는 순간 강 피디가 움찔거렸다.
검을 베기 직전의 그 서늘하고도 살기 넘치는 눈빛이 기억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 그 정돈가?”
“보시면 알잖습니까. 연기지만 그 양반은 진짜로 합니다. 그게 편하다고요.”
“그, 그래도 좀 살살해 달라고 하면…….”
말을 하면서 의찬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의찬이 말했다.
“국어책 읽듯 말합니다. 극과 극이지요.”
“…….”
“제발…….”
연기자들이 한마음으로 간절함을 담아 강 피디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왔다. 동시에 강 피디의 몸이 조건 반사처럼 움찔거렸다.
“약속하지, 최대한 짧게 카메라를 더 동원해서라도 하겠네.”
“가, 감사합니다.”
연기자들이 안도와 또 감사의 눈빛을 강 피디에게 보냈다.
커어어!
또다시 몸을 움찔거린 강 피디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적어도 그는 이 체험만큼은 끝까지 이어 가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물론 연기자들도 이쯤 되자 모른 체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도 당해 봐야 연기자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늘 진천은 그동안 그들에게 쌓인 것을 마음껏 풀었다. 그가 망나니가 된 날이었다.
* * *
전창걸 대표는 요즘 바빴다.
물론 이전에도 바빴지만 그때 바쁜 것과는 달랐다. 이전이라면 판도라의 출연을 부탁하러 다니느라 바빴지만 판도라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바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보다 그의 마음을 들뜨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
“아이쿠, 오랜만이야!”
“전 실장님, 아니 이제 전 대표님이죠?”
“하하하, 이거 영 쑥스럽게, 왜 이러나.”
곽주호가 방문한 것이다.
“그래, 요즘 어떤가? 작품이 잘되어 간다던데.”
“예, 그렇지요.”
주호가 살짝 웃으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전 대표가 밝게 웃었다. 잘되면 좋은 것이다. 세인이나 진천이 함께 촬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진천의 출연 분은 이십 부작 중 앞의 네 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네 편의 주연에 가까운 조연이 바로 그였다.
원래는 비중 있는 조연에 지나지 않았지만 촬영 직전 비중이 높아졌고, 촬영 후에는 그를 위주로 편집했다.
초반의 흥행몰이를 아예 진천에게 건 것이다.
파격도 이런 파격은 없었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강렬한 초반에 비해 뒤가 밋밋한 느낌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배우들이 죽을 둥 살 둥 노력했고, 다들 연기력이 받쳐 주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실제 진천의 연기는 전투신이 거의였기 때문이다.
진천의 진정한 역할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데 적합했다. 분위기도 그랬고 말이다.
그때 전 대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만나자고 한 건 무엇 때문인가.”
“아시잖습니까.”
전 대표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주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지금 주호는 소속사를 찾고 있었다. 일인 기획사로서는 한계를 느껴 서포트를 해줄 소속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 바닥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지금 전 대표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퍼스트 엔터는 작은 업체다. 연기자도 신인 두 명 정도에 연기와 가수를 겸하는 세인뿐이었다. 물론 진천도 있지만 그는 논외였다. 거기에 음반 쪽을 치면 이번에 데뷔한 판도라와 솔로 데뷔를 준비 중인 신인 두 명이 전부다.
주호가 아무리 최근 하향세를 탔다 해도 그는 엄연히 S급이라 불리는 급수의 배우였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작품이 감이 좋아 주호가 다시 전성기를 맞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 이가 찾아올 만한 곳은 솔직히 아니었다.
그것은 퍼스트 엔터의 대표인 전창걸이 더 잘 알았다.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면서도 아니겠지 싶은 마음으로 질문을 했던 것이다.
전 대표가 살짝 놀란 얼굴을 하자 주호가 말을 이어갔다.
“퍼스트 엔터와 계약을 논하고 싶습니다.”
“정말인가?”
“예.”
“허…… 이것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전 대표는 혼란이 왔다. 퍼스트 엔터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를 넘어 꼭 잡아야 할 이였다. 그가 들어옴으로써 입지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또 그뿐 아니라 주변 연기자들이 함께 들어올 확률 역시 컸다. 그가 일인 엔터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의 연기자들을 봐주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제가 모자랍니까?”
주호가 피식 웃으며 묻자 전 대표가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넘쳐서 그렇지.”
“퍼스트 엔터가 어때서요?”
“신생이라 사실 부족한 게 많은 것은 사실이니 말이네.”
보통은 어떻게든 입에 발린 말을 하겠지만 전 대표의 성향이 여기에서 나왔다.
“외형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전 대표님 인맥이야 유명하잖습니까. 신망도 있고 말입니다.”
“그야…….”
이번에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 부분이야말로 그가 독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다.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는 이 바닥에서 별로 없었다.
다만 규모가 작아 다들 망설일 뿐이었다.
“솔직히 잘할 자신은 있네. 하지만 돈이 없네.”
솔직히 대답했다.
주호를 영입할 돈이 없었다. 그게 진실이었다.
물론 돈 없이 사업할 리는 없었다. 그도 그동안 충분히 모아 온 게 있으니 시작을 한 것이다. 하지만 주호를 계약할 수 있는 돈까지는 없었다.
“흐음.”
그 말에 주호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비율을 줄여 주시지요.”
“그야 사실 당연한 일일세, 하지만…….”
“지분을 받겠습니다.”
“지분을?”
“투자도 하지요, 적당히.”
전 대표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분 이래 봐야 신생 법인의 가치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투자까지 한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전 대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퍼스트를 선택한 건가?”
“전 형님을 택했을 뿐입니다.”
“…….”
주호는 단순하게 진천바라기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5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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