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87
59화 미끼
“아, 눈꼴 시려.”
“훗, 애들은 가라.”
레이니가 불퉁거리고 있었고, 제이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한 손으로 벌레 쫓듯 휘휘 젓고 있었다. 그리고 곽주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제이야, 일단 이건 좀…….”
“왜 옵하?”
“…….”
“왝.”
제이가 혀를 삼분의 일 토막을 내며 말을 내뱉자 주호는 할 말을 잃었고, 레이니는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토해냈다.
제이는 지금 주호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앉은 채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주호는 지금도 건장한 육체의 신호에 쩔쩔매면서도 제이를 매몰차게 내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율배반적인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상대가 제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안드로메다급 적극성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고, 또 이게 그녀의 콘셉트이자 본질이었다. 물론 엄청난 안티를 양성하고는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엄청난 팬층 또한 몰아오고 있었다.
어쨌든 제이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주호의 입장에서는 묘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연예계의 커플들이 조심조심하던 것과는 달리 제이의 적극성은 또 다른 이슈가 되었고, 나름 숨기고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호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좋았다.
이렇게 한다 해도 함께 있을 때만이지 오히려 구속력은 없었다.
각자의 시간을 오히려 존중해 주는 타입이랄까?
이러다 보니 오히려 주호도 그녀의 마수에 점점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남들 눈치를 안 보니 오히려 더 좋았고 말이다.
다들 그런다, 제이니까.
어떻게 보면 그녀의 이미지 뒤에 숨은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결론적으로 주호도 좋으니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되기까지 일등 공신이었던 진천의 접대에 소문으로 듣던 현실을 경험하고 난 뒤에는 사람을 풀어 소를 통으로 경매해 사왔다. 차라리 그게 쌌다.
결국 모두가 좋게 끝났다, 한 사람만 빼고.
* * *
“미친!”
박연우는 머리를 싸잡았다.
일이 손쉽게 마무리된다 싶었는데 오히려 반전이 되면서 판도라의 주가가 확 솟구쳐 버렸다. 그뿐 아니라 곽주호 역시 더불어 주가가 상승해 버렸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 아픈데 망하길 원했던 이들이 승승장구를 하자 미쳐 버릴 것 같은 게 당연했다.
심지어 손을 써 두었던 기자들 역시 대세를 운운하면서 호의적인 기사들을 써내니 연우로서는 당장에 돌아 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연우가 고개를 돌렸다.
총괄 매니저 김신양이 눈치를 보며 시립해 있었다.
“자세한 거 알아왔어?”
“예.”
제이가 그런 큰 사고를 혼자 칠 리 없다는 생각에 조사를 명령해 두었다.
“굳이 어렵게 조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미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퍼져서…….”
“뭔데.”
화를 억누르며 대답을 종용했다.
“고진천이라는 자가 도왔…….”
“에이 씨!”
콰앙!
고진천의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연우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말문을 이어 가지 않았다.
책상을 너무 세게 내려친 탓에 연우가 자신의 주먹을 감싸 쥐고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목 가구의 단단함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었다.
“크아아악!”
짜증이 솟구치는지 연우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신양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 안 되면 쓰려고 했는데 더는 못 참겠다.”
“그럼…….”
“진구 파에 연락해서 손 쓰라 해! 판도라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자식은 최대한 빨리 치워야겠어.”
“그자를 손댄다 해도 별로 실익이 없을 것 같…….”
“그냥 조져! 몰라? 조지라고!”
눈이 벌게진 채 소리를 지르는 연우를 보며 신양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후우.”
자신이 과했음을 안 것인지 연우가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고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일을 생각해 보면 고진천이라는 자가 퍼스트에 끼친 영향이 적다고 생각하나?”
“그건…….”
갑자기 나온 질문에 신양은 곧바로 대답을 이어 가지 못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서 진천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걸리적거리는 이를 치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후 일이 터질 때마다 연관된 인물이 바로 진천이었다.
최초 판도라의 세인이 캐스팅된 것도 진천 덕이었고, 곽주호가 넘어간 것도 그 과정에 연우가 멱살을 잡힌 것도 진천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이번 일만 해도 진천이 한 발 담그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모든 일의 배후에 진천이란 자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도 확대 해석은 아니었다.
“다른 곳은 손대지 못해도, 그자는 손댈 만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퍼스트에서도 이슈가 될 만한 자를 감추고 있으니 말이야.”
아직 연우나 다른 이들은 진천이 국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퍼스트야 당연히 인터넷 용자들이 파고들며 언급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진천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연우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을 들으니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말입니다, 괜찮을까요?”
걱정을 담은 신양의 질문에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뭔가 있다 해도 그리 크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일을 보면 개인의 역량으로 보이지 뭔가 뒷배가 있다거나 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그런 조짐은 없기는 했습니다. 뭐, 한우 홍보 대사쯤이라면 모를까.”
그가 소고기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쓸모없는 정보만 연일 들어오고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지금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분위기를 보면 그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 그 말은 드라마가 시작되면 손대기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러니 지금 손을 써야 해. 기다리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된다는 말이야.”
“알겠습니다.”
“나가 봐.”
연우는 신양을 내보내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얼굴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병원을 가야 하나…….”
주먹이 아직도 욱신거리는 게 왠지 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후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나왔다.
물론 진천에 대한 원한은 한층 더 깊어졌고 말이다.
* * *
“그래? 한참 뜸들이더니만.”
이진구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있는 놈들이니까, 이런저런 신경이 쓰였겠지요.”
진구 파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유성원이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대꾸했다.
“동선은?”
“이미 파악해 놨습니다.”
“애들 모아 봐.”
“그냥 칩니까?”
“하나라며?”
진구의 질문에 성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이 일 조금 신중한 게 좋겠습니다만.”
“뭐가 그리 복잡해.”
진구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 성원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일 명산 실업에 갔다가 온 일인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명산 실업이라는 이야기에 진구의 표정이 달라졌다. 명산 실업이라면 그들과 비교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박연우가 천성일과 친분이 있습니다.”
“그랬나?”
“예,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일을 맡긴 게 조금 이상해서 팠습니다.”
“그걸 뭐하러 파. 전에도 일 하나 맡았었잖아. 명산 실업이 자잘한 일까지 다하는 애들은 아니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그냥 잘만 하면 주기적으로 일감이나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접근했는데…….”
“그랬는데?”
“장 부장이 사라졌습니다.”
진구의 입이 다물어졌다.
“교통사고라고 하더군요. 벌써 사망 처리도 되고 화장도 했습니다.”
“그게 지금 일이란 관련이 있어?”
약간 신중해진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명산 실업의 실질적인 움직임은 장 부장을 통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 이가 갑자기 사망했다면 확실히 이상했다.
“솔직히 더 파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시점이 조금 이상해서 말입니다. 박연우가 명산에 들락거린 이후 장 부장이 사망했고, 사망 전에 우리에게 오더가 왔습니다.”
“으음.”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산 실업이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해서 장 부장이 처리된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명산이 어디 개 이름도 아니고. 다른 일에 엮여서 명산이 움직이지 못한 걸 거야. 말 그대로 장 부장이 정리될 정도의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맞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더 알아볼 수 있는 여지는 없겠지요. 다만 조심하자는 겁니다.”
“다른 방법 있어?”
“일단 판도라 멤버들은 건들기가 좀 어렵고 주변도 딱히 보이는 이들이 없기는 한데…….”
“그런데?”
“광호를 엮어 보지요.”
“광호? 그 광호?”
“예.”
“광호가 왜 나와, 여기서.”
광호란 이름에 진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러자 성원이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연기하고 있답니다.”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원래 연극했었답니다.”
“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진구에게 성원이 말을 이었다.
“광호가 그 고진천이라는 자 따까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애들이 봤답니다.”
“그래?”
“광호의 동생들을 가지고 엮어 보지요.”
“으음.”
친동생은 아니지만 아우들을 아끼기로 유명한 이가 바로 광호였다. 충분히 미끼가 될 수 있었다.
“나쁠 것 없지. 방법은?”
“이미 작업 중입니다.”
성원이 히죽 웃으며 대꾸하자 진구가 피식 웃었다.
“새끼, 쓸데없이 철저하기는. 돈이냐?”
“예, 이자 받는 재미가 좀 쏠쏠합니다.”
“좋아, 부업도 하는 셈 치지.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동생들에게 연락 좀 해. 계집질 고만하고 체력 단련도 좀 하라고.”
“알겠습니다.”
진구의 말에 성원이 고개를 숙였다.
* * *
“장난해? 준다고 했잖아!”
김영철은 자신을 찾아온 떡대들을 보고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냈다.
“그 말을 한 지 벌써 석 달째입니다.”
“에이 씨, 곧 월급 받으면 준다고 했잖아!”
“회사가 문을 닫았는데 월급이 나옵니까?”
영철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왠지 예의 있는 답변과는 달리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일감을 주던 사장이 갑자기 잠수를 탔다. 왠지는 모르지만 이전 고진천과 관련된 사건을 겪은 뒤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도 그날의 공포를 아직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왜 이자들이 알고 있는가였다.
그제야 그 사내의 주변 떡대들에게 영철의 시선이 움직였다.
병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세요?”
영철의 입에서 조심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채권자지요.”
“그, 일단 며칠 내로 이자라도 갚겠습니다.”
“이제는 이자로는 안 되겠습니다.”
“예? 그, 그게 무슨.”
“원금 상환 기간이 지났고 회사에서는 더 이상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순간 영철이 당황했다.
돈을 빌려 쓸 때 그리 큰 이자가 아니고 그저 보편적인 이율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자가 밀려도 대충 일감 하나 얻으면 갚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말에 뭔가 있구나 싶은 것이다.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이자놀음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들은 원금의 반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내용 증명도 보냈습니다만.”
“나, 난 모르는 일인데…….”
“몸으로 때우시겠습니까?”
“예?”
“신장 한쪽 떼면 될 텐데요.”
사내가 웃는 모습에서 영철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영철을 보며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잡아 와.”
“예.”
떡대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는 영철을 쫓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사내가 휴대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연결했다.
“형님 성원입니다. 광호 잡을 미끼 준비됐습니다.”
저 멀리 골목을 꺾어 들어갔다가 튕겨 나오는 영철을 보며 진구 파의 오른팔인 유성원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6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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