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691
63화 그들의 합의
“어태커?”
이진구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졌다. 그러자 유성원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필리핀 조폭입니다.”
“그런데 걔들이 왜?”
“M.O.U. 맺잡니다.”
“에모유? 그건 뭐야?”
“엠오유입니다. 기업 간 양해 각서 같은 겁니다. 뭐, 이런저런 일 같이하자고 맺는 약속 같은 겁니다.”
성원의 설명에 진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이, 씨. 그냥 손잡자는 거잖아!”
“예.”
“오라질, 세계화 시대는 맞는갑다. 그런데 어태커 파는 뭐야?”
진구는 국내 조폭에 대해서는 아는 편이었지만, 해외에서 유입된 조폭들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얘들이 좀 과감합니다.”
“과감?”
“예, 아무래도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우리와는 달라서 총기 사용을 하는 히트맨들도 많고…….”
“왕년에 총 안 다뤄 본 놈 있어?”
“우리나라야 특이한 케이스잖습니까. 게다가 우리 바닥에 군대 다녀온 놈들도 적고 말입니다.”
“음.”
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은 총기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 그런 것에 비해 총기에 대해 다들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징집이라는 특수성에 감안한다.
대한민국 남자치고 총 한 번 안 만져 본 이들은 드물다.
별문제가 안 된다면 이 년이라는 기간 동안 군대에 가서 질리도록 만지는 게 총기다. 그런데 또 이게 재미있는 것이 조직폭력배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이들 중 군대를 다녀오는 비율은 현저히 낮은 편이었다.
전과를 달면 군대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유가 있지 않아? 갑자기 손을 잡자는 게.”
“외국 조폭들이 다 비슷하지만,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동남아는 말입니다.”
“뭐, 그렇지.”
불체자.
즉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은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가진다. 또 필리핀 조폭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나라든 범죄자들의 체류를 허락하는 곳은 없다.
더욱이 치안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한민국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해서 그들이 하는 일은 좀 과격한 일이 많지요.”
“과격?”
“제일 흔히 할 수 있는 게 청부 살인 같은 겁니다.”
“그게 특별한 건가?”
청부 살인이라는 말에 진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원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싸거든요, 한 일이백이면 됩니다.”
“허?”
성원의 말에 진구가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종종 조직 간에도 외국 조폭을 고용하는 일이 가끔이지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그런 경우 운 나쁜 경우에는 한국 조직이 경찰에 의해 거덜 나는 경우가 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여자 장사입니다.”
“아아…….”
성원의 말에 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최근 들어 동남아에서 여자들을 데려오는 일이 많아졌다. 이유는 싸고 일하겠다는 여자들은 많으니까.
옛날 일본이나 한국도 후진국일 때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없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장기 같은 것?”
“흐음, 조금 겹치는데?”
어찌 보면 그들과 일이 겹친다. 진구의 말에 성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안정적인 공급책을 확보하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가?”
“예.”
사업적인 수완이 있는 성원이었다. 사실 주먹 실력은 모자람이 많지만 그를 중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었다. 또 한 가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게 진구가 성원을 오른팔로 삼고 있는 이유였다.
“좋긴 한데 왜 우리일까?”
‘왜’라는 질문이 또 나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하지만 진구는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접점이 없던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진구의 질문에 성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알아봤습니다.”
“뭘?”
“어태커 말입니다.”
“어떤데?”
성원의 말에 진구가 눈을 빛냈다.
“원래 보스가 앙헬이라던 자였더군요.”
“앙헬?”
“예.”
“그런데?”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말에 진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바닥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곧 죽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지금 어태커 이끄는 놈이 한 짓인가?”
“아닙니다.”
“아니라면?”
진구의 반문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신중했다. 마찬가지로 성원 역시 답변에 신중함을 담았다.
“그뿐 아니라 일부 인원이 사라졌던 모양입니다. 이후 내분이 일었고 지금의 보스인 아킬리노라는 자가 장악을 했습니다.”
“흐으음.”
“그런데 이전 앙헬과 일부 인원이 사라진 게 의뢰의 실패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짐작인가?”
“소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정확한 정보입니다. 청부라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 실패 아닙니까.”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청부 실패보다는 실패로 인해 의뢰자가 드러나는 일이었다. 의외로 살인 청부는 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엮인다. 가진 게 많은 자들 일수록 뒤가 구린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일을 하는 해외파들은 많으니까요.”
“청부 실패를 경쟁자들이 소문냈다는 말이군.”
“예.”
“그래서 청부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건가? 현지 조직과 손을 잡는 식으로?”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는 듯 진구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성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실패한 청부를 완수하겠다는 의미 같습니다.”
성원의 말에 진구가 미간을 다시 찌푸렸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데?”
성원이 살짝 굳은 얼굴로 답변을 했다.
“우리가 잡아 놓은 광호의 동생을 그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뭐?”
* * *
“아킬리노!”
“진구 파에게 연락이 왔나?”
“그래.”
아킬리노는 아만도의 얼굴 표정이 밝은 것을 보니 이야기가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오케이야!”
“의외로 빠른 대답이 나왔군.”
“그런데 말이지…….”
그때 아만도의 말이 살짝 늘어졌다.
“왜?”
“그쪽도 우리와 비슷한 의뢰를 받은 상황인 모양이야. 우리 정보를 원하고 있어.”
“정보?”
“앙헬 일을 까발려 달라는 거지.”
순간 아킬리노의 얼굴이 구겨졌다. 조직의 치부를 스스로 밝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아만도는 나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쪽에 신중한 이가 하나 있더군.”
“흐음.”
“아무래도 우리에 대해 좀 알아봤던 모양이야.”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손을 잡자고 한다고 덥석 손을 잡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시간이 짧다 하더라도 이리저리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적지 않았다.
일단 그들의 경쟁자들이 이리저리 떠벌려 놨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오픈하고 제대로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런가?”
“맞아, 그쪽에 신중한 이가 있다고 했지?”
“그래.”
아킬리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만도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업가 같더군.”
“사업가?”
“응, 일이 잘 처리된 이후 우리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고 일했을 때 얻을 이익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
“이익이라…….”
아킬리노가 중얼거리자 아만도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지금 상황을 잘 파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당장 이번 일을 처리한다 해도 당분간은 청부 받기가 쉽지 않으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군.”
아만도의 말에 아킬리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을 했다. 그것은 아만도 역시 같았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그게 가능한 것은 각자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군.”
공급과 유통.
서로 간의 일이 명확해진다. 물론 유통이 더 많은 과실을 얻을 수 있지만, 이쪽도 나쁘지는 않았다.
안정적인 유통을 해줄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말이다.
“알려 줘, 이미 알고 있는 패는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오케이!”
아만도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으음.”
광호의 얼굴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형님, 왜요?”
우천만이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통화를 마친 광호가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틀 후에 만나잔다.”
“이틀요? 왜 이틀이에요? 당장 만나자고 할 것 같더니.”
“영철이를 다른 곳에 실어 놨었다고 다시 데려오려면 시간이 걸린다네.”
“걔들 캠프에 있다면서요!”
천만이 열을 올리자 광호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우, 끌려가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나랑 통화하기 전에 이미 옮겼던 것을 몰랐다고 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그,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일단은 별문제 없다고 하니까 믿어야지. 좀 맞기는 했는데 지금은 치료도 해주고 있다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요!”
“믿어야지.”
“사실이 아니면요!”
천만이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광호가 입술을 꽉 물고 대답했다.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 줘야지.”
“젠장!”
광호 혼자서 무엇을 하기는 사실 힘들다. 하지만 진천이 함께 가주기로 했다. 그가 있다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공포스럽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났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든든했다.
적이 아닌 아군이기 때문이었다.
“가자.”
“어, 어디로 말입니까?”
결연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서는 광호에게 천만이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광호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정육점!”
“예?”
“한우 사러.”
역시 진천에게 최고의 뇌물은 한우 소고기였다. 정육점에서 사서 옥상에서 먹으면 적어도 전과 같은 피해는 덜 입을 것이다.
정육점으로 향하는 광호와 천만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했다.
* * *
유성원이 들어오자 이진구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어태커?”
“예.”
“얘기 좀 해봐.”
일부러 광호라는 다 잡은 고기를 잠시 놓아 주었다.
어태커 파라는 조직이 의외로 작은 조직이 아니고 또 청부업에 대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이들이라는 정보를 안 뒤로 부터는 자신들이 하는 일에 문제가 없나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명산 실업 건도 그렇고 말이다.
이런 일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았다. 원래 진구의 성격은 이런 쪽은 아니지만, 성원의 조언을 무시해서 좋을 것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자신도 찝찝했다.
“몇 명이나 동원했대?”
진구의 질문에 성원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스물아홉 명이 청부에 동원됐었다 합니다.”
진구의 얼굴도 굳어져 버렸다.
(6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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