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01
73화 얼마면 돼!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머리통 위에 얹어 놓은 손에 기분이 나쁘다고 소리를 지를 생각도 가지지 못했다. 진구의 반응을 봤을 때 일이 틀어진 게 분명했다.
‘날 팔아먹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를 빠득 갈았다.
지금 상황에서 연우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진구 파의 배신뿐이었다. 배신한 놈이 오히려 왜 열을 내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이런 단순한 판단은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고개를 돌리자 진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실제로 보지는 않았지만, 몇 번인가 보고를 받으며 사진을 통해 본 적은 있었다.
꾹 다문 입술에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이는 눈.
그리고 철갑을 입은 것같이 근육이 온몸을 뒤덮은 모습은 단단함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그게…….”
무언가 변명을 해야 하는데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치로 보아 그가 진구 파에게 의뢰한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무슨 변명이 통하겠는가.
그럼에도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사이 진천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소파가 놓인 자리의 상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푹신해서 좋군.”
진천이 소파를 이리저리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끔 퍼스트 엔터 사장실의 소파에 앉아 나름의 휴식을 취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이 소파가 조금 더 만족감이 높았다.
그렇게 소파에 앉은 진천이 천천히 연우를 바라보았다.
“할 말은?”
“예?”
대뜸 할 말을 묻는 진천의 화법에 연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지금 어떻게라도 이야기를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그…….”
그때 진천이 고개를 돌리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하나쯤은 괜찮지 않나?”
질문을 던진 대상은 바로 광호였다.
“아,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더 안 됩니다.”
광호가 당황하며 만류하자 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후환을 남겨 두는 게 제일 귀찮은 짓이건만.”
“…….”
“…….”
진천의 중얼거림을 들은 진구와 성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 질문의 진의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진구는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인간 백정 새끼! 뻑 하면 죽이려 하는 게 정상이야?’
그도 평소 잔혹하다는 평을 듣고는 있었고, 또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판단은 최후에 내리는 결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인간은 제일 먼저 하는 판단이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것도 귀찮다는 말 운운하면서…….
그가 한 짓을 몰랐다면 뭐지 했겠지만, 이미 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제대로 작살이 났다. 그라면 충분히 학살극을 벌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마찬가지로 성원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제대로 똥 밟았어…….’
진구 파라는 이름을 제대로 이어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인 상황이었다. 주력은 전부 환자가 되어 버렸고, 그중 상당수는 불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물론 그것도 이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살려 두고 있지만 또 수틀린다고 손을 쓰면?
절대 못 막는다. 지금 보니 광호는 옆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치는 게 전부였다.
반면 연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광호와 진천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원은 한줄기 측은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불쌍한 놈.’
자신이 지금 저승 문턱에 다녀온 것을 모르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그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상황을 살피던 연우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크음,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흐음.”
“보상해 드리지요.”
“…….”
나름 강건한 음색으로 말을 하면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진천에게 자신이 가진 패를 내밀었다.
“얼마면 되겠소?”
연우의 자신감 넘치는 딜에 진구와 성원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가 이곳에서 죽어 나가면 그들 역시 골치 아파진다.
NS엔터라는 간판을 등에 지고 있는 그가 죽으면 경찰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뒷돈을 쓴다든지 대충 숨겨서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당당한 연우를 보며 진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자살을 하려면 나가서 할 것이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진천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흐음, 얼마면 될까.”
그때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진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만약 돈이 통하는 이라면? 지금 그들 역시 희망은 있다.
성원 역시 진천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가능하면 이들도 돈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고 나아가 조금 더 쓴다면 조직원들의 공백까지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면 그동안 귀찮게 굴던 조직 한두 개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때 진천이 고개를 돌려 연우에게 질문을 되돌렸다.
“얼마지?”
“예?”
“네 목숨값.”
“…….”
순간 연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진구의 얼굴 역시 확 구겨져 버렸다.
‘그럼 그렇지. 이 일을 무마하는 값이 아니라 목숨값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은 백 명치 가격을 다 내놓으라 하면 어쩌지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물론 어태커 쪽은 별도다.
“하, 하하 농담도.”
연우는 일부러 크게 웃으며 눈치를 보았다.
“하하…….”
그의 웃음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주변 인물들, 즉 바로 앞에 앉은 진구나 성원이 측은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한쪽에 서 있는 광호 역시 조마조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려왔다. 그제야 이 거실 안의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진천의 앞에 앉은 진구와 성원은 지나치게 움츠리고 있었고, 광호는 마치 하인마냥 시립해 있었다. 오로지 진천만 유유자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우는 성원에게 말을 건넸다.
“실망이야.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 몰랐어.”
“차라리 뒤통수를 쳤다면 속은 편했을 거요.”
음울한 표정.
대충 감이 왔다. 이들이 자신을 배신한 게 아니라는 것.
‘이런 병신들!’
박살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 원망이 연우의 얼굴 위로 드러났다. 그런 연우를 보며 성원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 이곳에 백 명이 있었소.”
“뭐?”
“그 인원이 지금 어디 갔겠소.”
“…….”
순간 연우는 할 말을 잊었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나 정확한 건 어디로 놀러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명산도 우리와 같이 당했을 것이오.”
“……억.”
순간 연우의 입이 뒤늦게 떡 벌어지면서 천천히 진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진천이 다시 물었다.
“얼마일까?”
“…….”
“그래, 그거 뽑아 와.”
[어디다 쓰시게요?]“닥치고 당장 뽑아 와!”
[아, 예.]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연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밑에 직원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
왠지 너그러워 보이는 진천의 모습을 보며 연우는 한숨을 돌렸다. 어찌 되었든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일억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자존심 상하지만 일억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예?”
“보상금.”
“예?”
순간 연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연우에게 진천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서 널 살려 준 대가는 받았으니 귀찮게 만든 대가는 따로 계산해야 하지 않겠나.”
“…….”
“얼마면 될까.”
연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띠리리~!
“왜 또 전화를 해!”
스마트폰에 찍힌 이름을 보며 짜증을 팍 부린 NS엔터 총괄매니저 김신양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예, 실장님 이제 출발…… 예? 일억 더요? 아, 알겠습니다.”
신양이 전화를 끊으며 투덜거렸다.
“하나 처리하는 데 뭔 이억씩이나 내지? 에이씨, 한도도 있는데 귀찮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인출기로 향하는 신양이었다. 그는 카드 여러 개를 꺼내 차례로 한도만큼 돈을 더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억이면 많은 건가?”
그때 진천이 고개를 돌려 광호에게 물었다. 그러자 광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고깃값이나 해야겠군.”
광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천이 중얼거리자 그 소리를 들은 연우가 울분에 찬 표정을 애써 숨기며 생각했다.
‘목장을 차려라!’
그때 진천이 진구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진구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억이면 감당할 만한 금액이었다. 그를 보며 진천이 물었다.
“넌 얼마지?”
“저, 저희도 이억이면…….”
그때 성원이 서둘러 말문을 열었다.
“목숨값에 애들 사고 친 것 합쳐서입니다.”
“적군.”
진천의 대꾸에 진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액수를 올렸다.
“이억 오천…… 아니, 삼억입니다.”
“흐음, 적은 것 같은데…… 그 정도로 하지.”
진천의 말에 진구는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고 사억까지는 염두하고 있던 차였다. 성원 역시 다행이라는 표정이 얼굴위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때 진천이 연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들었지?”
“예?”
“이쪽 애들이 좀 다쳤다. 시킨 놈이 부담해야지.”
“그, 그게 무슨…….”
연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진천을 바라보았고, 진구와 성원 역시 뭐가 다르게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진천이 말했다.
“내라, 삼억. 이쪽 애들 목숨값이랑 뒤처리값이다.”
“억!”
연우가 심장을 거머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은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면 약값은 나오겠지. 큰돈이라니까.”
“그, 그럼.”
얼떨떨해하는 진구를 뒤로하고 진천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광호와 그의 동생들을 불렀다.
“돈 가져올 때까지, 우린 좀 쉬지.”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계단을 올랐다.
진천이 사라지고 남은 자들은 진구와 성원이었다.
“이, 이런 병신들이!”
연우가 벌떡 일어서며 참았던 열을 터뜨렸다. 그러자 진구가 으르렁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라 그랬냐.”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고! 백 명이라며? 다 병신들만 모았냐?”
진구의 으르렁거림에도 연우는 시뻘게진 얼굴로 대거리를 했다. 그러자 진구가 천천히 일어서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 이 새끼!”
진구가 말없이 다가오자 연우가 뒷걸음질을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연우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큭!”
“야이 개새꺄. 총도 안 통하는 괴물을 어떻게 하라고?”
“초, 총?”
“네놈 때문에 완전 개박살났어. 못 들었어? 명산실업도 작살나서 네놈 일을 되돌린 거라고!”
“쿨럭!”
연우가 거칠게 기침을 하자 진구가 그를 내팽개쳤다.
“크윽!”
소파에 파묻히며 연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를 향해 진구가 살기 어린 음성을 내뱉었다.
“삼억이다. 그거 안 뱉으면 사지를 다 잘라서 팔아먹을 거다.”
진구가 내뿜는 살기에 연우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띠리리리~!
“아, 왜또!”
운전을 하며 돈을 운반하던 김신양은 짜증난 얼굴로 전화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의 차는 은행 옆에 다시 멈추어서야 했다.
(7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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