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1
강철의 열제 71화
처음 리셀의 걱정과는 달리 전쟁준비를 갖추어 가는 모습은 빈틈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니 전쟁준비야 말로 이들의 모든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서인지 백성들을 지휘하는 가우리 병사들의 행동은 합리적 이었으며 효율적이었다.
“열제 폐하.”
“뭔가?”
그날 이후로 모든 장수들이 하는 보고에 있어 의례는 군례로 간단히 하고 있었다. 몽류화가 가져온 서신에는 얼마 전에 정보력의 필요성으로 인해 고윈 영지에서 출발한 상단에 딸려 보냈었던 베론과 다룬의 보고가 적혀 있었다.
[현재 북 로셀린이 전격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여 남 로셀린역시 모든 병력을 국경 쪽으로 배치하여 치열하게 대치 중이옵니다. 마주한 국경이 짧은 탓에 지금까지는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쉽게 결과가 나지 않아 남 로셀린으로서도 이번 전쟁에서 수성을 이루어 낼 것으로 짐작을 하는 듯합니다.그러나 문제는 ……(중략)…… 남 로셀린의 방심을 틈타 신성제국을 우회하여 후미에서 공격 한다는 소문이 은연중에 비치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믿을만한 증거로는 저희 상단이 이번전쟁물자의 판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 로셀린이 아닌 남 로셀린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신성제국의 허가를 받은 상단이 남 로셀린으로 갈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분명 이 소문이 어느 정도는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더 확인을 하여 다시 서신을 띠우겠습니다.
– 다룬 -]
서신을 읽어 내려간 진천은 다시 이리저리 움직이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였다. 그것을 아는 진천의 마음은 조급해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입은 누굴 다그치기 위해 열리지 않았다. 그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 * *
로셀린 국경.
남과 북으로 나눠진 국경지역에는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며 시체의 눈알을 파며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시체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전란의 시대.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만 했다. 서로가 서로의 심장에 칼을 마주 박아 넣고 쓰러진 시체부터 팔 하나와 양 다리가 잘려 나갔음에도 하나 남은 손에 쥐여진 칼을 놓지 않은 시체까지. 죽는 그 순간까지 휘둘렀던 것이다.
“제길, 이거 안 빠지는군.”
“시간 없어. 그냥 잘라.”
전장을 정리하던 병사가 죽은 병사의 손에 쥐여진 칼을 떼어내고 있었다. 죽은 자는 어쩔 수 없는 일. 살아 있는 자가 전장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무기를 만드는 철을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곳 역시 전장이었다.
“개 같은 북 로셀린 놈들.”
퍼억!
“카악 퉤이!”
거칠게 튀어나온 욕설.
죽은 병사의 손가락을 잘라내며 칼을 떼어낸 사내가 발로 시체를 걷어차며 침을 내뱉었다. 동족이라는 단어도 칼을 마주 댄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단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어이! 빨리 움직이자고.”
“잠깐, 거기 수레 가져와!”
오늘은 남 로셀린이 승리를 하였기에 전장에 쓰러진 시체들에게서 이렇게 전리품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새끼들, 매일 깨지면서 왜 이리 집요한지.”
“그러게.”
남 로셀린군은 북 로셀린의 선전포고이후 세 번의 전투를 치렀고, 세 번 다 승리를 했다. 그렇기에 지금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가자.”
“그러자고.”
“철수하자!”
고참 병사의 외침이 고요한 전장에 울려 퍼졌다.
남 로셀린 진형은 세 번의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고요한 분위기를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아직까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남 로셀린의 최정예 병사들 아닙니까.”
“음.”
남 로셀린군의 총사령관인 헬리오스 바이칼 후작은 부관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얼굴의 인상이 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나?”
“어떤 점 말입니까?”
부관인 실렌 베르스 남작은 바이칼 후작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너무 쉬워. 안 그런가?”
“…….”
베르스 남작도 바이칼 후작의 말에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둘 사이의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북 로셀린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끄응.”
막사 안으로 들어온 기사의 보고에 바이칼 후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첫날 전투에도 둘째 날 전투에도 어김없이 사신이 찾아왔다.
“그래 뭔가?”
“투항권유입니다. 지위는 보장해 준다는…….”
“허허.”
바이칼 후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부관인 베르스 남작은 혈기가 넘치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표했다.
“당장에 목을!”
“그만.”
롱 소드를 뽑으며 달려 나가려는 베르스 남작을 만류한 바이칼 후작은 기사에게 기다리라 하고 서신을 적어 나갔다.
“…….”
“됐군.”
바이칼 후작은 양피지를 둘둘 말아서 자신의 인장을 찍은 후 기사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걸 잘 가지고 가서 사신에게 주게.”
“예.”
기사가 공손히 서신을 받아가지고 나가자 바이칼 후작이 미소를 떠 올렸다.
* * *
[존경하는 카밀리엔 페런 로셀린 공작 각하.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북 로셀린으로 기어들어 가셨나이까?
여기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것이 모자라더이까?
저에게 투항을 권고 하시다니, 지난 삼일 간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였는지 기억을 못하시나 봅니다. 본 후작은 전 공작각하의 치매에 심히 걱정이 되옵니다.
그래도 저에게 투항을 권유 하셨으니 조건을 걸어 봅니다. 제가 투항을 하면 북 로셀린 전체를 영지로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일단 투항을 고려하겠습니다. 아! 그러기 위해서는 페런 공작 각하의 싱싱한 모가지가 탐이 나는데, 기왕이면 그것도 떼어 주시겠습니까?
싫습니까?
그럼 내일 전장에서 봅시다.
– 헬리오스 바이칼 -]
“이런 개애애애자시익!”
와장창!
“훅훅훅!”
“진정 하시지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 내려갔는지 페런 공작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옆에서 말리는 남자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스쳤다.
‘네놈 모가지만이라면 당장에 바이칼 후작과 바꾸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위로를 하면서도 속으로 조소를 보낸 세일르 뮤엔 백작이었다. 허울만 있는 공작인 페런 보다는 동부의 무신 바이칼 후작이 훨씬 탐이 나는 상대였던 것이다.
“뮤엔 백작, 이것을 보고도 진정하겠소!”
“페런 공작님이 화를 내도록 장난질을 친 것인데, 어찌 이리 흥분을 하십니까.”
“뮤엔 백작! 아무리 그래도 남 로셀린의 공작이었소!”
씩씩대는 페런 공작의 모습을 본 뮤엔 백작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일국의 공작이라는 작자가 왕 자리를 탐내다가 안 되자 적국으로 망명을 했는데, 어떤 미친놈이 곱게 볼까.’
오히려 바이칼 후작의 서신이 마음에 드는 뮤온 백작이었다. 도무지 페런 공작이라는 인간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본 국에서는 일부러 총사령의 직위를 주고 혼자 알아서 말아먹도록 적당한 부대를 넘겨준 것이었다. 물론 주력이 아니었다. 대충 숫자만 불린 허깨비군대였던 것이다.
허깨비 군대에 허깨비 사령관이니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리가 없었다. 지난 삼일 간 그의 능력은 여실히 증명 되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페런 공작이 겁이 많다는 것이다.
남 로셀린의 바이칼 후작이 이끄는 동부군은 총 4만의 군세였다. 그것을 공략하는 페런 공작의 군세는 처음에 7만이었다. 그런데 페런 공작의 지휘로 첫 격돌 때 일만을 말아 먹은 것이었다. 물론 바이칼 후작의 동부군은 불과 이천 여의 사상자만 내었고 말이다.
그 이후 두 번의 격돌이 더 있었으나 첫날과는 달리 삼천여 씩의 사상자만을 내었다. 페런 공작의 지휘가 갑자기 일취월장해서는 아니다. 맞붙자마자 깨져 나가는 진세를 보고 작전상 후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항상 제일 먼저 도망 온 것이었다.
그러니 병사들이 맞아 죽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고 남 로셀린의 동부군도 전투개전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치는 북 로셀린의 군대를 신기하게까지 쳐다보았다. 아마도 남북 로셀린 전사(戰史) 상 가장 빠른 후퇴를 감행한 지휘관일 것이다.
‘뭐 시간을 끈다는 목적은 이루는 것이니 괜찮겠지.’
나름대로 위로를 하는 뮤엔 백작이었다.
* * *
남 로셀린의 왕국 수도 로셀리안의 중심에 위치한 헤브리언 궁에서는 전장에서 날아온 승전보에 졸였던 마음을 놓았다. 7만이라는 숫자를 맞아 동부군이 잘 싸워 주었던 것이다.
“허허허, 역시 바이칼 후작이오.”
“예, 전하.”
연 삼일 승전을 이어가자 어느 정도 긴장이 풀어진 듯 남 로셀린 국왕 디슬리온 엘류안 로셀린은 연신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대전을 채우고 있는 다른 귀족들의 표정도 밝았다. 한쪽에서 한 귀족이 나서며 엘류안 국왕에게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전하, 이제 성도에서 출발한 5만의 구원군이 내일이면 동부군과 합류하오니 이제 전쟁은 끝이 났다고 보면 됩니다. 아니 잘하면 이 기회에 잃어버린 고토회복도 노려볼 만합니다.”
“허나 아직은 전쟁이 끝이 난 것은 아니요. 그 점을 다들 명심하길 바라오.”
엘류안 국왕의 표정이 신중하게 변하며 주변의 귀족을 향해 신중한 면모를 표했다.
“경들은 이번전쟁의 향방에 대하여 어찌들 생각 하시오?”
엘류안 국왕의 질문에 머뭇거리는 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엘류안 국왕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때 한쪽에 말없이 있던 무장 출신의 귀족이 고개를 숙이며 일어나 엘류안 국왕에게 입을 열어갔다.
“국왕전하의 걱정과 마찬가지로 소신도 의문점이 몇 가지 있사옵니다.”
“오, 헤벅 자작, 말해 보시오.”
엘류안 국왕의 얼굴이 환해지며 마뉴온 헤벅 자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국왕의 밝은 표정에 비해 헤벅 자작의 표정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엘류안 국왕이 아니었다.
“헤벅 자작.”
“아, 죄송합니다.”
엘류안 국왕이 한 번 더 재촉하자 그때서야 고개를 숙이면서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지금 상황에서는 바이칼 후작을 후방으로 끌어 내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헤벅 자작의 발언에 엘류안 국왕의 눈이 함지박 만하게 커진 것이다.
잘 싸우고 있는 바이칼 후작을 뺀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 아닐까? 그러나 엘류안 국왕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헤벅 자작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헤벅 자작, 무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상당히 심각한 첩보가 접수 되었습니다.”
“무언가? 말해 보시게.”
엘류안 국왕의 궁금증을 유발한 헤벅 자작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적의 군세가 7만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음.”
“그런 군대가 지금 싸우는 양상을 보노라면 첫날 전투를 제외하고는 시간을 끄는 흔적이 역력 합니다.”
“그런 국지전은 그 전에도 있었네.”
헤벅 자작의 설명을 자르고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수도군 총사령인 미욜 세자르 백작이었다. 헤벅 자작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런 국지전은 전에도 비슷하게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당시의 전투 양상은 단순 국지전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왕위를 노렸던 이가 적국에 들어간 상태라는 것입니다.”
“…….”
“그런 상태에서 지금의 공세는 의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성제국이 노골적으로 북 로셀린을 지지하고 나선 마당에 작금 이루어진 전투는 시간 끌기 용에 가깝다 볼 수 있습니다.”
헤벅 자작의 말에 귀족들의 얼굴에 의혹이 스쳤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첩보에서 보면 하이안 왕국에서 온 상인들이 북 로셀린으로 가지 않고 남 로셀린을 향해 오고 있답니다. 이 부분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오? 물자가 모자라는 판에 웃돈이라도 주고 사야 할 물건을 싣고 이리로 온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오?”
헤벅 자작은 수도군 사령관인 세자르 백작에게서 답답함을 느꼈다. 신성제국이 북 로셀린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상태에서 남 로셀린에 물자를 파는 것을 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그 상단이 우리에게 물자를 팔러 온다 하더라도, 신성제국이 그걸 보고 있으리라 봅니까?”
“이미 그 상단은 나와 밀약이 되어 있소. 나에게 물자를 보내기로 약속한 상단들이란 말이오.”
“……!”
“오오!”
세자르 백작의 말에 대전의 귀족들의 얼굴에 놀람이 비추어졌다. 지금까지 열변을 토하던 헤벅 자작의 얼굴에도 당황의 빛이 감돌았다.
“으흠. 국왕폐하, 심려 놓으시지요. 동부는 바이칼 후작이 있지만 여기 헤브리온 궁은 제가 지키고 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헤벅 자작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럴 리가 없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남 로셀린은 꺼져가는 등불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익이 된다 해도 위험을 감수할 상단이 있을까? 그것도 하이안 왕국의 상단이 말이다. 헤벅 자작은 입술을 씹으며 대전에서 웃어대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대전을 울려 퍼지는 웃음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만일 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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