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11
83화 새 신분증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결국 기자는 두고 보자는 말을 외치고 되돌아갔지만, 방법은 없었다. 말 그대로 손도 안 댔는데 쓰러진 상황이었다.
심적으로는 진천이 무언가를 했기에 그렇게 된 상황임을 알 수 있었지만, 증거는 없다. 뭘 했는지 입증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해보라고 한 이는 바로 기자였다.
보는 눈도 많았다.
심지어 영상매체도 있었기에 누가 봐도 혼자 자빠져 실금하며 기절한 상황이었다. 다른 병이 있어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협박이나 다른 것을 빗대기도 어려운 것이 진천에게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뭔가 휘두르는 동작 하나뿐.
결국 기자는 스스로 일일검색어 순위 1위를 달성하며 한동안 자취를 감춰야만 했다.
물론 이 일로 인해 전창걸 대표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토록 사전 연습을 시키고 했건만 이렇게 저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남의 잔칫상에서 똥물을 튀기려 했던 이를 통쾌하게 갚아 줬다는 것 덕분에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말라 했지만, 걸리는 게 있는 전 대표는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만약 진천의 일이 터지면 전 대표는 당연하고 강 피디와 드라마까지 전반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판도라? 당연히 훅 하고 날아간다.
“끄흐흐흑!”
내가 ‘왜 그랬을까?’를 수십 번도 더 자책하고 있었다.
시사회의 대성공으로 인해 넘쳐 나는 호의적인 기사와 진천을 광고에 쓰고 싶다는 수많은 러브콜 속에서도 전 대표는 오히려 지옥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진천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일단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시사회 날 곽주호가 깍듯하게 형님이라 모시는 부분, 그리고 강 피디 역시 쉽게 대하지 않는 모습 등은 기자들로 하여금 충격을 받게 했다.
강 피디가 이 바닥에서 어렵게 대하는 배우는 일부 원로뿐이었다. 그런데 처음 본 진천이라는 자에게 어렵게 대하는 것은 신기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곽주호가 누군가?
연예계의 열혈남아 혹은 개차반으로 불리는 이였다. 정의롭기는 하나 워낙 성격이 불같아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 곽주호가 졸졸 따라다니며 형님 형님 하는 모습은 기자들로 하여금 조심하도록 만들었다.
곽주호 역시도 기자들이 조심스러워하는 배우 중 하난데 그가 진천에게 그리 어렵게 대한다면 일단 답이 나왔다.
아니, 시사회장에서도 보았다.
손 안 대고 코 푼다는 말이 있지만 정말 손 안 대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웃어넘기기에는 그곳에 있던 기자들이 너무 많았고, 또 그 꼴을 당한 기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저분한 행동뿐 아니라 심성 역시 독종에 가깝다.
심약한 이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런 이가 스치지도 않았는데 오줌을 지려 인터넷을 장식했다.
무예가라는 소개에 걸맞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짐작들을 할 뿐이었다. 대신 호기심을 키워 갔다. 과연 이 사람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고, 그가 하는 무예는 어떤 것인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뒤를 캐기 시작한 것이다.
퍼스트에서는 자신들도 모른다 했지만 모른다고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다. 오랜만에 기자의 소명 의식이 순수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전 대표는 지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덜컹.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지옥으로 그를 안내할 저승사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얼굴이 말랐군.”
“…….”
진천의 질문에 전 대표는 멍하니 올려다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굳이 대답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진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이어트인가.”
“…….”
순간 전 대표가 손끝을 움찔했다. 그 손끝이 있던 곳에는 서류철이 있었다. 서류철을 집어 던질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참아낸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진천에게 맞기까지 하면 얼마나 비참한가.
“이거면 되겠지.”
그때 진천이 뭔가를 하나 툭 던졌다.
“이…… 이건.”
신분증이다. 그것도 진천의 얼굴이 나온 새 신분증이다. 전 대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진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진짜요?”
“진짭니다.”
그때 광호가 뒤늦게 들어서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대표실 문을 닫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전 대표가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광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광호가 안심하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아에 노숙자로 살다가 죽은 이의 신분증입니다. 외형도 비슷했고 또 노숙 기간 자체도 길어서 주변에 아는 이들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본명도 바꿨습니다.”
“본명을 바꾸다니?”
“원래 이 사람 이름이 고 씨 성에 자였습니다.”
“고…… 자.”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이름은 바꾸어 주니까요.”
순간 전 대표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그, 그럼?”
“진짜인 겁니다. 모든 사회활동이 가능한 진짭니다.”
“지, 지문은?”
“그게 어이없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응?”
그때 커다란 손이 그의 눈앞을 가렸다.
마치 나무껍데기를 연상하게 만드는 손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지문이 거의 없었다.
“지문이…… 없어?”
“그렇더군요. 이 부분은 추후 다시 가봐야 하지만 일단 별문제 없이 넘어갔습니다.”
“하아아아…….”
길고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었다. 이제 좀 살겠다는 마음이 담긴 한숨이었다.
“눈 밑이 꺼멓군. 다이어트 부작용인가.”
“끙!”
이 상황에서도 팔짱을 끼고 복장을 지르는 진천의 한마디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전 대표의 표정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거 구하려면 쉽지 않을 것인데…….”
전 대표가 조심스럽게 광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과 마주친 광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광호의 전직이 어떤 쪽인지는 전 대표도 안다. 진천과 어느 정도 얽혀 있다는 것도 말이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전대표가 이렇게 생각 한 듯했다.
광호는 굳이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알아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호는 말이다.
“진구가 알아서 해주더군.”
“진구?”
“그, 그게…….”
“진구 파랬나? 그 애들이?”
“…….”
“후우.”
전 대표는 멍하니 광호와 진천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광호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구 파.
뭐뭐 뒤에 파가 붙는 것은 초딩도 아는 사실이다.
조직. 이런 신분증도 만들어 줄 수 있는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전 대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혹시 그 진구 파? 유성원 실장이 있는…….”
“유명한 친구들인가 보군.”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동시에 전 대표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모를 리가 없었다. NS엔터에서 나오게 된 일 중 하나가 진구 파가 박연우 실장의 일을 처리하면서 불거졌던 것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쪽에 있으면서 듣는 것이 많았다.
그중 좋지 않게, 아니, 악명 높게 들려온 것이 바로 진구 파였다. 그들과 엮여 버렸다는 생각에 전 대표의 얼굴이 다시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아,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믿으실지 모르지만 그들도 형님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뭐?”
“수가 많아서 포로로 안 잡혀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광호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제야 전 대표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갑자기 돈을 펑펑 쓰고 다니던 진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돈도 그 일과 연관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진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전 대표가 손을 부르르 떨며 책상 위의 하얀색 동그란 통을 집어 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부들거리며 겨우 뚜껑을 열어 콩알만 한 것을 손바닥에 덜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철퍼덕!
전 대표는 심장을 부여잡고 엎어졌고, 광호는 또다시 외쳤다.
“대표님이 쓰러졌다! 대표님이 쓰러졌다!”
결국 전 대표는 심장에 오는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무너져야만 했다. 그런 전 대표를 보며 진천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즐거움이 지나치면 독이 된다더니.”
“…….”
그런 진천을 보며 광호는 이게 어디가 즐거워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지 묻고 싶었다. 최근 들어 진천에 대해 또 한 가지를 알았다.
그는 눈치가 없다. 아니, 눈치 따위를 안 본다.
그게 진천이었다.
전 대표가 실려 나갔지만 직원들은 이내 자리에 앉아 일에 몰두했다. 한 번이면 놀라지만 이미 놀라기에는 전 대표가 자주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하루 누웠다 나오면 다시 멀쩡해질 이가 바로 전 대표였다.
* * *
“미쳐 버리겠군.”
박연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요즘 들어 머리가 더 빠지는 느낌이었다. 계속적으로 이슈가 되다 보니 손대기가 쉽지 않아졌다.
게다가 이미 두 번의 실패를 맛봤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돈도 뜯기고, 무엇보다 자신이 배후인 것을 고진천이 알아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눈치도 봐야 했다.
어떻게 손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진구 파와 명산실업까지 손보지 못했다. 그중 진구 파는 크게 깨진 느낌이었다.
“이대로 넘겨야 하나.”
총괄 매니저인 김신양을 닦달해 놓기는 했지만 솔직히 답은 없었다. 일단 쥐어짜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볶았을 뿐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신양이 들어왔다.
“왜.”
짧게 툭 튀어나온 말. 신양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저 고진천 말입니다.”
“그게 뭐.”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후로 뭔가 의견을 말하기 위해 온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생각이 있으니 왔겠다 싶었다.
“그게 판도라를 다시 노리는 건 어떻습니까?”
“뭘 어떻게.”
“굳이 뭘 어떻게 하는 것보다는…….”
“빨리 말해.”
연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신양의 말이 빨라졌다.
“언급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언급?”
“그 왜 있잖습니까. 그런 거 좋아하는 양반들.”
그런 거라며 은근한 웃음까지 입에 베어 무는 신양을 본 연우의 눈이 살짝 크게 떠졌다. 대신 목소리는 낮아졌다.
“스폰?”
“예. 그거 유도하는 정도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흐으음.”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 중 음담패설이 빠지지는 않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이다.
물론 술자리 로비가 필요한 이들 자체가 워낙에 그런 쪽을 좋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더 잘 먹힌다. 신양의 이야기에 연우가 고심했다. 왠지 그 방법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언급만 하고 떠밀면 전 대표가 알아서 대응을 할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밉보여 찍힐 수도 있다. 그리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는 결과다.
일단 그렇게 찍어 누른 뒤라면 어떻게든 손을 쓰기 쉽다. 직접 움직이지도 않고 등만 떠미는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묘안인 것이다.
연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은데?”
“그, 그렇습니까?”
“그래. 리스트 작성해 봐.”
“예! 주체 못 하는 인간들로만 뽑아 놓겠습니다.”
“그래. 기왕이면 우리 애들 몇 뽑아서 접대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지.”
연우의 말에 신양이 허리를 접었다.
“알겠습니다. 잘 뽑아 보겠습니다.”
“아니야.”
“네?”
“외모는 A, 다른 건 C, 알지?”
신양이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만족하지 못해야…….”
“그래, 그래야 먹히지.”
“알겠습니다.”
신양이 시시덕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혼자 남은 연우의 표정은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좋아. 이제 뭐가 좀 풀리는 느낌이잖아?”
붉게 달아오른 연우가 컴퓨터 모니터에 떠올라 있는 진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 거냐? 이 나라의 권력을 상대로 주먹질이라도 할 거야?”
우습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좌절하는 모습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8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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