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mal agent of steel RAW novel - Chapter 718
90화 결전 전야
“눈이 멀겠네.”
“대체 얼마나 온 거야?”
“누가 보면 UFCC 한국대회라도 열린 줄 알겠네.”
트렌든의 입국과 함께 사방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끊이지 않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매체들까지 와서 연신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완전 대박쳤네, 주먹이 울다.”
“그러게 말이야.”
기자들은 이렇게까지 커진 판을 보며 혀를 찼다.
그동안 공중파를 위협한 케이블 프로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단발성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일단 흥행 면에서는 대성공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뿐이야? 리드 FC도 이참에 한자리 걸쳤잖아.”
“아아, 특별전?”
“그래.”
고진천과 트렌든의 경기가 메인 이벤트로 꾸며지고 리드 FC가 사전 경기들을 꾸몄다.
장소도 장소고, 이런 이벤트에 사전 경기가 없을 수는 없다면서 꾸민 것이다. 국내용으로 머물던 리드 FC 입장에서는 정말 꿈에 그리던 기회였을 것이다. 물론 UFCC 홍보와 그들의 몫도 책정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후다닥 끝나면 그것도 문젠데.”
“뭐, 고진천 그 양반이 무예가라니까 일단 최대한 버티기를 믿어 봐야지.”
“무술이든 무예든 몰라서 그래? 초반 이종격투기 대회에 뛰어들었던 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킥복싱이랑 유술만 살아남았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동료 기자의 반박에 말을 꺼냈던 이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고진천은 좀 다르지 않을까? 난 그때 촬영장 가봤는데 진짜드만.”
“뭐, 나도 보기는 했지만…….”
몇몇 기자가 자신들의 의견을 내었다. 하지만 승리를 예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 같은 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힘들지.”
“트렌든이 그냥 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상대가 나쁘지.”
진천이 이길 거라고 예상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그들의 관심사는 과연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였다.
이런 관심 속에 트렌든이 드디어 입국을 했다.
* * *
트렌든의 입국 소식에 대한 내용은 퍼스트 엔터 내부에서도 이슈였다.
“이거 장난 아니던데요?”
“대한민국에 있는 매체란 매체는 다 왔어요.”
“그것뿐이야? 해외 매체들도 많던데?”
“그런데 대표님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구빈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연습실.”
“또요?”
질린다는 표정을 짓는 직원들에게 빈관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대표님은 최선보단 차선에 올인하신 모양이야.”
“하긴 그게 좀 현실적이긴 하지요.”
“뭐야? 응원 안 해?”
“에이, 응원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좀…….”
나름 고진천을 옆에서 지켜봐 왔다던 직원들조차 고개를 저었다.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래서인지 생방일이 가까워져 올수록 사무실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그래! 잘했어!”
전창걸 대표의 목소리가 호탕하게 울려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한 레이니가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와, 우리 데뷔할 때도 저러지 않으셨으면서.”
“이해해야지.”
세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제이 역시 그런 전 대표를 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보고 홀랑 벗어도 된다고 한 걸 보면 모르니? 다 건 거야.”
“하긴. 그런데 다 벗진 않겠지?”
레이니가 미간을 모으고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제이가 그녀의 이마를 툭 치며 대꾸했다.
“다 보여 주는 건 우리 주호 오빠뿐이거든!”
“헉! 벌써 보여 준 거야?”
“훗 비밀.”
“뭐야, 알려 줘!”
“훠이, 애들은 가라!”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전 대표가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그녀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자! 그만! 쉴 시간이 어디 있어!”
“에효.”
“자! 세계로 가는 거야!”
전 대표가 두 주먹 불끈 쥐고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세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왠지 마지막 불꽃을 태우시는 것 같아…….”
세인의 말에 레이니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언니도 그런 농담 할 줄 알아?”
“…….”
“지, 진담이구나.”
레이니는 너무도 솔직한 세인이 이럴 때는 왠지 무서웠다.
그때 전 대표의 외침이 들려왔다.
“뭐야! 노출이 적잖아! 이따위 것을 입고 옥타곤에 서겠다고!”
“대표님, 약 드셨어요? 평소에는 이 정도도 거품 무셨잖아요!”
“몰랐냐! 나 매일 약 먹고 있는 거!”
전 대표와 제이가 옥타곤 걸로 나설 때 입는 옷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레이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언니 말이 맞을지도.”
* * *
“허, 이런 것도 해?”
“그러게.”
찰칵! 찰칵!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고진천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의 반대편 끝자리에는 아직 주인이 오지 않았는지 의자가 비어 있었다. 그것도 잠시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오자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트렌든이다!”
찰칵! 찰칵! 찰칵!
트렌든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금보다 더 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갔다. 어디까지나 이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그쪽으로 몰려 버린 열기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하지만 진천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앉아 있었다.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그 옆으로는 광호가 타월을 목에 걸고 앉아 있었다. 가끔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했는가.’
뭔가 삶의 회한이 어린 표정이었다. 물론 그 옆의 이승배는 나름 즐기고 있었다. 고개를 빼들어 트렌든을 보며 ‘우와!’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광호에게 귀엣말을 하였다.
“형님, 봤어요? 팔뚝이 아주 그냥…… 역시 장난 아니네요?”
“챔피언이니까.”
“진짜 실력도 엄청 나겠죠?”
“챔피언이니까.”
“설마…… 엄청 강해서 잘못되지는 않을까요?”
“비행기니까.”
“예?”
“그럴 일은 없을걸.”
비행기라는 소리가 광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눈을 감고 있던 진천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 모습을 보며 승배가 입맛을 다셨다.
“뭐, 그렇긴 하네요.”
그때 진천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마치 주문을 외듯이 계속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주변의 소란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모르는 게 나아.”
“궁금하잖아요.”
“…….”
옆에서 자꾸 귀찮게 하는 승배를 물끄러미 바라본 광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종사뿐 아니라 스튜어디스까지 구하려면 돈이 더 들 텐데 그것까지 걸었어야 했는데 너무 즉흥적이었군, 라고 깊은 후회를 하고 계신다.”
“…….”
“뭐 그런 거지.”
승배는 한숨을 내쉬며 진천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문답이 오갔다. 그러고 나서 진천과 트렌든이 테이블 앞으로 나왔다. 사진 촬영을 위한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트렌든이 셔츠를 벗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우와아아!”
“역시…….”
세계 최정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벗은 몸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주눅 들게 만드는 그런 몸이었다.
헬스로 다져진 근육과는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옷도 벗는 건가?”
진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광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원래 하는 겁니다.”
“으음.”
왠지 달가워하지 않는 진천을 보며 광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마디 더 꺼내었다.
“비행기가 걸려 있으니 웬만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천이 셔츠를 벗어 젖혔다. 목표가 워낙 뚜렷하기에 망설일 이유조차 없다는 모습이었다.
진천이 셔츠를 벗어젖히자 이번에는 침묵이 흘렀다. 감탄도 없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일도 없었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없는 그런 침묵이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모두가 할 말을 잊은 것이었다.
트렌든 이상의 압도적인 근육. 하나하나 조각해 낸 것처럼 완벽한 근육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침묵하게 된 이유는 그 근육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위로 지렁이들처럼 지나가고 있는 무수한 상처들이 할 말을 잊게 만든 것이었다.
“저거 분장이 아니었나…….”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드라마에서 화제가 되었던 장면 중 하나가 상체 일부분이 노출된 컷이었다. 그 일부만으로도 근육에 수많은 여인이 열광을 했다. 그런데 그때도 저 상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실제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분장이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상의를 완전 탈의한 지금 그 상처들이 분장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갑자기 침묵이 흐르자 이상함을 느낀 트렌든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
“오, ㅤㅅㅞㅅ!”
트렌든의 귓가로 그의 매니저가 내뱉는 욕설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의 침묵이 끝난 뒤 엄청난 빛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마치 기관총 소리와 같은 셔터 소리가 연신 울려왔다.
“제길.”
인상을 구긴 트렌든이 진행에 따라 진천에게 다가갔다.
그가 197센티미터의 거구인데 비해 진천은 184∼5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그럼에도 체구에서 전혀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진천은 생각 이상이었다.
‘이자…….’
무심한 눈동자였다. 호기를 부린다든지 혹은 흥분감에 싸여 있다든 지의 반응이 아니었다. 너무 담담한 것이 오히려 트렌든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감히!’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여흥거리라는 마음은 접었다.
적어도 뭔가 있을 수 있다는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포즈 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트렌든이 파이팅 포즈를 잡으며 다가갔다. 의도적이었는지 그의 주먹 끝이 진천의 볼에 가 닿았다.
툭!
“어이쿠, 미안.”
트렌든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의도적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진천은 별다른 변화 없이 그를 보았다. 그러자 오히려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박살을 내주지.’
순간 트렌든의 눈가에 살기가 솟구쳤다.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미 특수부대 출신으로 비공식 작전을 통해 수많은 실전을 겪었다.
당연히 사람의 목숨 역시 많이 거두어 본 만큼 그가 내뿜는 살기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파이팅 포즈를 잡는 진천이었다. 그러고는 주먹 끝으로 그의 볼을 툭 건드렸다. 조금 전 트렌든이 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건드는 것인가 보군.”
중얼거리는 진천의 말을 매니저가 깔끔하게 통역을 해주었다. 물론 트렌든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것은 당연했다.
두 사람의 포즈가 잡히자 연신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서는 진천에게 트렌든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제대로 덤벼야 할 거야. 죽을지도 모르니까.”
이전 그와 통역의 대화를 들은 것으로 보아 영어를 구사한다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트렌든을 보며 진천이 말했다.
“땡큐.”
“…….”
사진 촬영을 마친 진천이 다가가 옷을 걸쳤다. 그러고는 잠시 빼놨던 통역 반지를 끼었다.
“답답했군.”
“예?”
그의 옆에 있던 광호가 멀뚱한 표정으로 묻자 진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 세상엔 없는 통역 반지의 단점은 그가 한마디 하면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다 알아듣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부득불 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그나마 승배가 제공해 준 훌륭한 교재 덕에 한글이 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9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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